<아이리시맨>을 봤다. 3시간 30분이라는 러닝타임이 딱 적당해서 고른 것. 등장인물과 이야기 구성을 기껏 파악했는데 2시간 이내에 끝나는 영화는 너무 짧고 그렇다고 8부작 이상의 드라마를 보기에는 내 주말이 좀 짧은 거 같았다. 그런데 마침 3시간 30분이라는 딱 내가 바라는 길이의 영화가 있는 것. 


2시간 안에 압축적으로 이야기를 담은 게 아니라서 콩나물 다듬으면서 보는 저녁 드라마처럼 힘을 빼고 보면 된다는 점이 좋았다. 이번 아카데미에서 작품상, 감독상 등등을 받은 에에올보다 만 배는 더 세련된 영화다. <아이리시맨>은 작품상, 감독상 후보였으나 <기생충>을 만났을 뿐이었다. 에에올처럼 촌스럽고 경박스러운 것을 인내할 수가 없다. <아이리시맨>은 첫 장면부터 어찌나 정갈한지!!! 

호파의 요구사항은 나의 요구사항과 같다. 회의에는 정장을 입어라, 약속 시간에 늦지 마라. 

말년의 프랭크: 내 변호사에게 물어봐.
기자: 변호사는 죽었습니다.
말년의 프랭크: 누가 죽였지??
기자: 암이요.

이 영화에 등장하는 무서운 놈들은 총에 맞아 죽거나 병에 걸려 죽거나 둘 중 하나로 죽는다. 즉, 다들 시시하게 죽는다. 새로운 인물이 등장할 때마다 인물의 머리 위에는 엔젤링처럼 이 인물이 언제, 어떻게 죽게 되는지 말풍선이 뜬다. 

죽음에 관한 영화. 시시한 죽음 들에 관한 영화였다. 3시간 30분은 길고 긴 만담 같았다. 
어떤 만담이냐, 차 안에서는 담배를 절대 피우면 안 되고, 골초였던 부인은 당연히 폐암으로 늙어 죽고, 폭력적이고 눈치 없는 가부장은 결코 딸에게 용서받지 못한다는 만담. 난 페기가 마음에 들었다. (다시 한번 모녀지간 어쩌고 하는 에에올은 얼마나 유치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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