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의 배신 - 왜 하버드생은 바보가 되었나
윌리엄 데레저위츠 지음, 김선희 옮김 / 다른 / 2015년 5월
평점 :
절판


서연고 서성한 중경외시

오찬호의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144)에 나오는 이야기다. 얼핏 주문처럼 보이는 저 문장은 수능배치표상의 대학 서열이라 한다. 대학 서열로 사람을 차별하는 끔찍한 이야기가 실려 있는데, 그저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습이다.

 

공부의 배신은 한국으로 치면 앞서 말한 서연고 서성한 중경외시쯤에 속하는 미국의 대학을 주로 다룬다. ‘엘리트 교육의 문제점을 키워드로 원인, 영향, 해결책 등을 톺아보는 책이다. 미국(딴 나라) 얘기하는데 왜 내 속이 갑갑하고 부글거리면서 근심이 깊어지는 건지. “‘좋은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은 무조건 읽어야 한다. ‘후진 대학에 다닌다는 열등감에 젖어 있는 학생들은 정신 똑바로 차리고 읽어야 한다.”는 김정운 교수의 추천사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두 눈을 가린 양 한 마리가 그려진 표지. 소위 엘리트라 불리는 학생들은 똑똑하지만 앞을 못 보는 온순한 양이라는 걸 암시한다.(원제가 ‘Excellent sheep’이다.)

 

대학생, 대학원생, 교수, 강사, 대학교직원 등 대학에 관련한 사람도 아니면서 난 대학 문제에 열을 올린다. 아마 학부 시절에 대한 아쉬움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입학해서 졸업할 때까지 내내 방황만 했던 나는 복수전공도 부전공도 하지 않았고 그 흔한 토익점수도 없다. 이렇다 할 자격증도 없고 교내외를 불문, 수상경력 같은 것도 없다. 해외봉사활동은커녕 국내봉사활동 증명서(?)도 없고, 인턴십이나 교환학생 프로그램에 참여한 적도 없다. 동아리 활동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학과 점수가 좋은 것도 아니다. 그럼 대학 다니는 동안 무엇을 했느냐고 묻고 싶을 것이다.(실제로 물어본 사람도 꽤 있다.)

 

나는 고민이 많았다. 알고 싶은 것도 많았고 흥미로운 것도 많았다. 연애하면서 사랑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했고, 하루에도 몇 번씩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탔다. 술도 많이 마셨고 우정에 대한 고민도 많았다. 부모로부터의 독립을 모색하기도 했다.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어떤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할지 고민했다. 학교에서는 여러 학과의 전공수업을 들었다. 남들은 영어나 시험공부를 할 때 나는 학교 도서관에서 읽고 싶은 책만 읽었다. 결석도 많았다. 취업이나 국가고시 같은 공통의 관심사에 끼어들지 못했던 나는 늘 겉돌았다. 중간에 학교를 그만두고 싶었지만 그럴 용기도 없었다.

 

다른 건 모르겠는데, 대학 생활에서 후회하는 것이 딱 하나 있다.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 ‘공부란 것은 내게 있어 화두와도 같은 낱말이다. 시험을 위한 공부를 제외하면 공부가 딱히 하기 싫은 적은 없었다. 역사, 미술, 교육, 철학, 국문, 한문, 영어, 심리, 사회, 식품영양, 생물 등의 학과 수업을 수강한 것도 내 관심이 여러 분야에 걸쳐 있었고 그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지는 못했다. 공부가 내 삶과 연결된 것, 삶 자체를 치열하게 고민하고 찾아보고 토론하고 실천하는 거라면 말이다. 관심도 많고 흥미도 느꼈지만 어떻게 읽고 생각하고 써야 할지를 몰랐고 어떻게 내 삶과 연결해야 할지도 몰랐다.(지금도 모른다) 학교생활을 충실히 했다면 지금보다는 나았을 것 같다.

 

공부의 배신은 대학생으로 또 대학을 나와서까지도 하고 있는 공부에 대한 내 고민을 체계적으로 보여준다. 나의 고민은 나만의 고민인가, 그저 시스템의 문제일 뿐인가? 한국 학생들도 (책에 나오는) 미국 학생들처럼 진정한 배움에 대한 갈망이 있는가? 스펙이나 취업이 아닌 자신과 공동체의 삶과 미래, 인간 자체에 대한 관심 때문에 공부하고 싶고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할까?

 

대체 대학이 어때서? 대학에 다니던 시절을 돌이켜보자.(지금은 많이 다를까?) 20명 이상은 당연하고 50명 이상이 듣는 강의도 흔한 강의에 대해 나는 늘 불만이었다. 토론은커녕 누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한 학기를 보냈다. 타학과 전공 학생들을 제한하는 수업도 더러 있었다. 교수님과 개인적으로 면담할 기회는 졸업할 때까지 몇 번 오지 않았다. 내가 제출한 과제물에 대해 피드백을 받은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고, 무엇이 어떻게 부족한 것인지(또는 잘 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교수님들이 늘 하는 질문 있어요?”란 말에, 왜 교수님은 우리한테 하는 질문이 질문 있어요?”밖에 없는 건지 늘 궁금했다.(‘넌 어떻게 생각하니?’도 있을 텐데.) 강의 중에 간혹 사회적 약자나 기득권층에 관한 얘기가 나올 때면 나는 왜 교수들이 자신들의 비정규직동료들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더 마음이 아픈 것은, 내가 그 모든 것에 대해 내 생각을 드러낸 적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어쩌면 나도 ('똑똑한'건 아니지만) 한 마리의 '눈 먼 양'인지 모른다.

 

이 책이 우리에게 던지는 중요한 질문들은 이런 것이다. 공부(배움)란 무엇인가,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가, ‘엘리트는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가, 대학은 어떤 곳이어야 하는가, 사회는 아이들을 어떤 사람으로 키워야 하는가, 교수는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가 등. 비단 대학문제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우리의 미래는 우리가 키워내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찾을 수 있다. 교육문제가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중요한 이유다. 그래서 결국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된다. 우리는 어떤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가?

 

교육의 목표는 당장 써먹을 수 있는 기술을 습득하는 것뿐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당신을 직장에서는 쓸모 있는 인력으로, 시장에서는 잘 속아 넘어가는 소비자로, 국가에서는 순종적인 국민으로 전락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대학의 존재 이유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중요한 건 바로 온전한 인간으로 남을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이다.”(121)라는 저자의 말이 깊은 울림을 주는 이유는 한국의 대학도 미국 대학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나라는 교육열이 높은 것으로 세계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든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교육이 어떤 것이고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진지하게 성찰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한 성찰의 시간을 갖기위해 이 책을 일독하길 권한다.

어쩌면 똑똑한 부모 밑에서 자란 똑똑한 아이들과 이 아이들을 가르치는 똑똑한 선생으로 가득한 곳은 가장 끔찍한 곳일지도 모른다. 이들은 마침내 배움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들 머릿속에 어떤 생각도 집어넣지 말아주세요."라는 요청은 너무도 잘 받아들여지고 있다.
누구나 내 아이가 교육을 받길 원한다. 하지만 누구도 내 아이가 `교육다운 교육`을 받길 원하지 않는다. (80쪽)

만약 우리가 우아한 사회, 정당한 사회, 현명하고 번영하는 사회, 아이들이 배움에 대한 애정으로 공부하고 사람들이 일에 대한 애정으로 일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고자 한다면, 우리는 다음을 믿어야 한다. 우리는 이웃을 우리 자신처럼 사랑할 필요는 없지만, 우리 이웃의 아이들을 우리 자신의 아이들처럼 사랑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귀족사회를 열었다. 우리는 실력사회를 열었다. 이제는 민주주의를 열 시간이다. (34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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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cus Aurelius 2015-05-23 02: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겉에 드러난 것만 보지 말고, 본질을 보라는 말을 많이 듣지만.. 참 힘든 것 같습니다...
왜 공부를 하고 계속 배우고 해야하는지에 대해서 현실적인 이유(돈,직업, 명예 등등) or 너무 추상적이고 막연한 이유(배움,앎에 대한 즐거움, 지식의 추구를 통한 인격완성과 인생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서 등등..)를 대는 것으로 점철되어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으로 생각하니.. ㅜㅜ

cobomi 2015-05-23 12:58   좋아요 1 | URL
예로 드신 두 가지 이유 모두 가벼운 내용은 아닌 것 같아요. 직업도 중요하고 인격완성(?)도 중요하지 않을까요? 문제는 그 중 어느 하나만을 맹목적으로 추구할 때 발생하는 게 아닌가 합니다. 더구나 그게 사회 전체적인 흐름이 되어버린다면 개인으로서는 대세에 거스르거나 비판하기 쉽지 않죠. 이 책 추천드릴게요. 진지한 조언들도 있고, 생각할 거리가 많습니다.

Marcus Aurelius 2015-05-23 14: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넵, 그렇죠..
책 꼭 읽어보겠습니다^^

2019-07-09 07:19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