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일의 독서일기 3 범우 한국 문예 신서 53
장정일 지음 / 범우사 / 2003년 2월
평점 :
절판


3권은 앞서의 두 권에 비해 차분하고 냉정한 느낌이다. 독서일기임에도 또렷이 각인된 사건이 있는데, 이 권 전체에 걸친 핵심 사건은 바로 내게 거짓말을 해봐라 할 수 있겠다. 1996년 봄. 처음 파리로 떠난 후의 일상(이라고 해도 독서가 거의 전부이지만)에서 뜬금없이 한국 생활로 배경이 바뀐다. 324일의 두 줄짜리 영화감상문 다음에 곧장 424일의 일기가 나오는 것도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있었음을 암시한다. 앞의 두 권에서 저자는 지금 어디 있는지, 어디에 다녀왔는지를 빠뜨리지 않고 기록해왔는데, 한국으로 돌아온 것을 기록하지 못할 정도로 그리고 한 달 동안 별다른 독서를 하지 못할 정도로 여유가 없었다는 것이 느껴진다. 그 중심에 내게 거짓말을 해봐가 자리 잡고 있다.

 

〈《내게 거짓말을 해봐에 대해 바로 말함(193~199), 리뷰지가 위촉한 이영준과의 대담(203~215), 시사저널이문재와의 대담(230~232), 지역 신문에 게재한 나는 하이틴 작가가 아니다(241~247), 내게 거짓말을 해봐에 대한 설명글(269~275) 등은 모두 당시 작가가 처했던 상황과 심경을 대변해준다.(이 책은 사건 당시 출판사 스스로 판매중지하고 책을 회수하였다. 현재 알라딘 중고 거래가격은 3~10만원) 물론 독서 감상문 자체도 충분히 재미있고 유익했지만, 작가가 쓴 소설을 둘러싼 일련의 사건들과 그것에 대한 작가의 글은 내게 몇 가지 생각할 거리를 제공해주었다. 표현의 자유란 무엇이며 어디까지 허용되어야 하는지, 작가란 어떤 사람인지, 작가가 내놓은 작품에 대해 강제적인 제재를 가할 수 있는 기준은 무엇이며 그런 제재를 가할 권리가 누구에게 있는 것인지 등. 특히 표현의 자유와 관련해서는 20년 전에 비해 지금이 낫다고 말할 수 있는 건지 회의적이다. 사이버 감찰 논란이나 닭그림(풍자화라 하자) 제재(制裁)는 코미디에 가깝다(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 발언은 표현의 자유 아니라 폭력이라고 말한 동성애자 인권연대 사무국장의 의견, 그에 대해 더러운 걸 더럽다고 말하는 게 표현의 자유라며 댓글을 달던 사람들그러나 솔로강아지라는 초등학생의 시집에 실린 동시 학원 가기 싫은 날에 대해서 사람들은 잔인하고 끔찍하다면서 시집을 눈앞에서 불태워 버리라고 했다는데(그리하여 출판사는 전량 회수, 폐기했다 한다), 학원 가라고 하는 엄마가 끔찍하니까 그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었던 아이는 앞서 말한 더러운 걸 더럽다고 말하는 게 표현의 자유라는 논리에 해당하는 게 아닌가. 표현의 자유란 어른에게만 있는 건가 싶기도 하고, ‘내가 동의할 수 있는 것만을 너도 표현할 수 있다’(이때 는 대다수 혹은 강자, ‘는 소수 혹은 약자)는 것을 말하는 것 같기도 하여 이래저래 씁쓸하다.

 

내게 거짓말을 해봐와 관련한 글에서 인상 깊었던 몇 구절을 옮기는 것으로 리뷰를 대신할까 한다. 2001년에 그 소설로 인해 장정일은 유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장정일의 독서일기31997117일 일기로 끝나니까 이어지는 책에서도 당분간 이 사건 이야기가 나오겠지.(읽은 지가 너무 오래 돼서 정확히 기억이 안 난다)

 

부연하자면 내가 이 소설을 포르노로 치장한 다른 이유는 부권적이고 권위적인 문어체에 억눌려 온 구어체를 마음껏 풀어놓기 위해서였으며 더욱 중요하게는 고작 기성 체제에 봉사하는 요즘 소설의 존재 방식에 의문이 났기 때문이다. 흔히 예술은 자유로우며 불온한 것이라고 말해지지만, 굳어진 형식에 아무런 충격을 가하지 못하는 작가의 더듬거림은 체제에 대한 고해에 불과하며 시비를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장인정신은 아버지가 심어준 내면감시에 불과하다. 그리고 자기 갱신의 열정 없는 기계적인 글쓰기는 선생님에게 보이는 매일 매일의 일기쓰기에 불과하지 않은가.”(196)

 

음란도서와 작가, 출판인에 대한 제재는 세 가지 방법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데 첫째 인신구속과 같은 사법처리, 둘째 판매 금지, 셋째 통신판매나 비닐 씌우기 미성년자 판매 불가와 같은 유통방법상의 제재. 나는 인신구속이 중세의 재현이라는 점에서, 판매 금지는 작가의 실존적 체현물인 동시에 경제 수단을 원천봉쇄한다는 이유로 수락할 수 없다.”(23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