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나와 너가 아닌 다른 남자를 가리킬 때는 “그”, 여자를 가리킬 때는 “그녀”라고 쓴다. 실생활에서 말로 할 때는 그이, 그 사람, 그 애, 그 여자, 그 남자 하는 식으로 쓰지만 글로 쓸 때는 그/그녀가 완전히 정착되었다.
예전에는 성별 구별 없이 그, 그이(‘그’를 좀 높여서 하는 말)라고 했다 한다. ‘그 사람들’이란 뜻인 그네도 오래전부터 쓰였을 것이다. 연세 지긋하신 분들은 “그니”란 표현도 쓰는데, 그니는 그이의 경기도 사투리라 한다. 그런데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사전]에 따르면, 신문학 초창기에 이광수, 김동인 같은 소설가들이 그/그녀라는 말을 쓰기 시작했다. 영어의 he를 ‘그’로 옮기고, she는 일본어 彼女(かの-じょ)를 본떠 ‘그녀’라고 번역했다.
“그녀”라는 말은 이제 아주 친숙해져서 별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지긴 하지만, 가만히 글자의 모양새를 뜯어보면 볼수록 기이하다. 우선 “그”라는 토박이말에 “녀(女)”라는 한자어가 붙은 것도 어색하고, 그 남자는 그냥 “그”라고 하는데 여자만 굳이 “그녀”라고 하는 것도 그렇다. 우리말에는 명사, 대명사에 성별 구분이 없다. 아, 욕에는 있구나. 그놈, 그년. -.-
하긴 토박이말과 한자어가 한데 어우러져 생긴 말도 많다. 한참 동안 할 때의 한참도 한+참(站)으로 된 말이고, 감감소식도 감감+소식(消息)으로 이루어졌다. 관자놀이도 관자(貫子)+놀이, 난장판도 난장(亂場)+판...
그러니 어차피 널리 정착된 “그녀”란 말을 굳이 쓰지 않을 이유는 없다. 그래도 영 마음에 안 들었는지 그녀 대신 “그미”라고 쓴 작가도 있다. 하지만 그미는 그리 널리 쓰이진 않는다.
나는 그녀란 말보다, “그”라는 성별 구분 없는 말이 남자를 가리키는 말로 굳어진 게 더 못마땅하다. 뒤집어 말하면 남자를 가리키는 말이 3인칭 대명사의 대표어가 된 셈이다. 영어에서 남자를 뜻하는 man이 ‘사람’을 대표하는 말인 것과 같다. 전에 보니까 고려대 여성주의 교지인 <석순>을 만든 후배들도 그게 못마땅했는지, 남자를 가리킬 때는 “그남”이라고 썼다. 하지만 이 말이 널리 받아들여질지는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되도록이면 “그” “그이”를 성별 구분 없이 쓰고, 여자와 남자를 구별해서 표시해야 할 때는 “그 여자”나 “그녀”, “그 남자”라 쓰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