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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하와이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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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된 그녀의 책 목록을 보니 아마 그녀의 책 대부분이 국내에 번역되지 않았을까 짐작된다. 그 얘기는 즉슨 국내에 그녀의 글을 좋아하는 독자들이 많다는 얘기일 테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나는 그녀의 책을 이제껏 읽은 것이 한 권도 없다. 이유는 모르겠다. 이름 때문인가 싶기도 하고. 설명에 따르면 '바나나'는 성별 불명, 국적 불명의 필명이라는 의미라지만 어쨌든 나는 그녀의 필명에서 지나치게 섬세하고, 페미닌한 어떤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분명한 건 기계공학 쪽 전문서적만 아니면 손에 잡히는대로 읽는 잡식성인 내 책장에 그녀의 책이 한 권도 없으며 이번 에세이가 내가 읽은 그녀의 첫 책이라는 사실이다.

 

"하와이는 정말 천국과 비슷하더군요. 그 바람과 햇빛의 느낌이. 그래서 다들 하와이에 가면 천국 같다고 하는데, 사실은 그 반대가 아닐까요. 천국이 하와이 같을 겁니다. 사람들은 천국을 기억하고 있는 거죠." -pp.144-145

 

하와이에 대한 내 개인적인 감상은 '몹시 지루하고 따분하고 바다 밖에 안 보이는 섬'이다. 이 얘기는 1년에 한번 LA에 갈 때면 내게 한결같이 '하와이 비추'를 외치는 그곳 한인 지인들의 하와이에 대한 감상인데 어쨌든 그리하여 내 여행지는 내내 대륙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지루하고 따분하다'던 하와이도 누군가의 눈과 가슴에 담기면 지상의 천국이 되는 모양이다. 그나마 지인들에게 들은 것과 일치하는 부분도 있다. 바로 '조용하다'는 것. 다만 지인들에겐 지루한 시간이 저자에겐 평화로운 일상이 되니, 그야말로 여행지도 궁합이라는 게 있는 모양.
활자를 보면 늘 신기하다. 기호의 집합에 지나지 않을 그것들은 너무나도 또렷하게 자신만의 어조를 가지고 말을 걸어오기 때문이다. 그런 맥락에서 요시모토 바나나 스타일이랄까, 이 얇은 에세이를 읽으면서 느낌 감상은 아, 이 작가의 어조는 이러하구나 라는 것. 본문의 표현을 빌리자면 '귀엽고 조그만 목소리로' 들려주는 그녀의 일상과 (최소한 그녀가 고르는 데 참여했을)사진이 마치 그녀의 일부처럼 느껴진다.

3인칭 시점, 딱 그만큼의 거리를 내내 유지하며 읽던 그녀의 글 중에 딱 한 번 그 거리가 사라진 것은 대형 지진 발생으로 방사능이 공기 중에 유출되어 외출이 제한되었다는 부분에서였다. 가감없이 계산이 확실한 우리의 현실은 불과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가까이 있다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그녀의 현실의 삶도 그녀의 어조만큼이나 소소한 평화로 이어지고 있길 바라는 마음이 들었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그냥 그런 마음이 들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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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서의 괴로움
오카자키 다케시 지음, 정수윤 옮김 / 정은문고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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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책을 펼치고 첫 장을 채 넘기기도 전에 휴대폰을 켰다. 그리고 기계공학 쪽으로 심하게 지식이 부족한 나는 M에게 진지하게 물었다. "우리 집 말이야, 책 때문에 바닥이 무너질 가능성이 있을까?" 무너질- 까지 얘기했을 때 냉큼 대답이 돌아왔다. "아니."


목차를 지나 '추천의 글'을 읽는데 구구절절 '그래그래, 맞아맞아' 죄다 북마크하고 싶은 문장들이 줄줄 쏟아진다. 뿐인가, 도대체 이 별 내용도 없는 글이 왜 이리 재미있는 거냐고.

의문은 추천사 마지막, '장정일'을 보고서야 풀렸다. 아, 장정일이었구나. 나는 그의 소설은 친구네 걸 빌려서 읽고 그의 독서일기 시리즈는 1부터 하나도 빼지 않고 사서 내 책장 가장 좋은 위치에 꽂아두었다. 새삼 깨닫는다. 나는 역시 독서가 장정일이 정말정말 좋다. 각설하고, 이 책 <장서의 괴로움>은 분명 '에세이'이지만 저자의 분류에 따르면 장서가에 해당하는 내겐 명백하게 '실용서'로 기능한다. 이는 아마 소문난 장서가 장정일도 다르지 않을 터다. 즉슨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남의 얘기가 아니라 내 얘기를 누군가 대신하는 것 같은 생생한 기시감을 느끼며 읽었다.

 

책이 한 권도 없다는 것은 얼마나 불안하고 공허한 일인가. 책이 한 권도 없는 환경에 처해 보지 않고서는 상상할 수 없으리라. -p.107

 

나처럼 집 밖으로 나갈 때 무조건 책부터 챙기는 사람에겐 책이 한 권도 없는 환경에 처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럼에도 딱 한 번 그런 환경에 처한 적이 있는데 몇 년 전에 밴쿠버에 갔을 때다. 어쩌다 책을 못 챙겼는데 비행기에서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부터 안절부절 했다. 결론만 얘기하자면 나를 구원한 건 도착지 호텔 객실 내에 비치되어 있는 Holly Bible이었다. 읽을 수 있다는데 성경이 대순가. 이때의 경험으로 <파이이야기>에서 파이가 구조된 후 호텔에서 성경 즉 '읽을거리'를 발견하고 보이지 않는 신에게 감사하며 이후 기부하게 됐다는 (성경을 전세계 호텔 객실에 비치하는 기부였나 그랬던 걸로 기억한다) 내용에 나는 체험적으로 공감했다.

 

<장서의 괴로움>은 저자가 일본인이다 보니 전반적인 내용이 일본내 장서가들의 독서환경과 관련된 에피소드로 채워져있다. 물론 이런 부분이 독서에 전혀 방해되지 않을 뿐더러 매 에피소드마다 공감하고 재미있게 읽었을 수 있었던 건 '장서가'라는 공통점 때문이다. 문화적 공감대를 형성하는데 언어는 어디까지나 부수적인 요소일 뿐이므로.

 

일본의 장서가들의 독서환경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바로 목조주택인데, 일본의 보편적인 건축 양식인 목조주택은 장서가에겐 여러모로 위협적인 환경이다.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하면 책의 무게를 지탱하지 못해 바닥이 내려앉을 수 있는 위험과 지진으로 인해 언제든 책과 책장에 깔려죽을 수 있다는 위험의 가능성인데, 본문에도 등장하는 작고한 어느 평론가의 저서의 제목이 <책이 무너진다>인 것은 여러모로 의미심장하다. 게다가 저자가 사례로 든 '장서 수난'의 내용을 보면 태평양전쟁 중에 공습으로 집과 함께 장서가 타버린 일화도 예사였던 듯 하다. 불운이라면 불운일, 타버린 장서에 대한 책 주인의 안타까움은 남겨진 기록을 통해 고스란히 전해진다.

 

야나기다 구니오 선생의 《노변총서》가 깨끗이 타서 재만 남았다. 그런데 활자 부분이 하얗게 떠올라 읽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이대로 갖고 있을 수만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손을 대기만 해도 바슬바슬 부서졌다. -p.113

 

책 전반을 통해 등장하는 일본의 헌책방 시스템은 부럽기도 하고 인상적인 부분이다. 헌책방을 찾아보기가 힘들어진 최근 우리나라와 달리 일본은 헌책방이 제법 잘 유지될 뿐 아니라 가격이나 수요공급 전반에 걸쳐 제법 합리적인 시스템으로 운영되는 느낌이다.

 

이 외에도 내용 중에 등장하는 '장서의 습격'이라는 호칭이 재미있다. 말하자면 '화재', '지진', '이사'가 이 습격 요인에 해당하는데, '지진'은 별개로 친다고 해도 나머지 두 개는 아마 책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공포에서 자유롭지 못할 듯 하다.
이중 '이사'에 관해서, 무한증식하는 책을 보면서 나는 최근 들어 좀 다른 고민을 하고 있는데 3천 권까지는 책장을 늘리는 고민을 했으나 4천 권에 육박하니 이사를 하는 걸로 고민이 바꼈다. 우스운 건 '장서의 괴로움'을 벗고자 하는 해법에서 책을 줄이겠다거나 그만 사겠다는 방법은 애초에 제외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책을 그만 사다니, 책을 팔다니 아직까지는 상상도 할 수 없다. 언젠가 M에게 "내가 책이 많은 편인가?" 물었더니 "응" 한다. 어쩌면 내가 가진 가장 큰 문제는 4천 권에 육박하는 책을 보면서도 양적 위기를 실감하지 못하는 것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장서의 괴로움'에서 벗어나려면 책을 정리해서 줄이라고 충고한다. 일본의 저명한 누구는 500권이면 충분하다고 했다고도 하는데, 물론 의미 없는 책 100권을 읽는 것보다 의미 있는 1권을 100번 읽는 것이 훨씬 낫다. 알지만 세상에 의미 있는 책만 골라도 얼마나 많은데 '고작' 500권(숫자가 아니라 제한한다는 게 중요하다)으로 만족하라니 그게 과연 가능할까 싶다.

 

"수집가란 전부 아니면 전무(all or nothing)야. 99는 0과 같지. 100을 모으기 위해 인생의 전부를 거는 것이지." -p.162

 

책 말미에 가면 아니나 다를까 '전자서적' 얘기가 등장한다. 다만 장서가라면 누구나 공감하겠지만 책의 본질(내용)만큼이나 책의 물성을 아끼는 이들에게 전자책은 종이책의 보완재이지 대체재가 될 수 없다는 게 비극이라면 비극일까. 결국 장서가에게 남은 선택이란 책 사는 걸 멈추던가, 책을 팔아서 책장을 비우는 수 밖에 없는 듯. 가장 이상적인 건 어디서 눈먼 돈이 뚝 떨어져서 다치바나처럼 고양이빌딩을 세우는 것이겠지만.

 

* 저자가 재미있게 쓴 걸까, 역자가 재미있게 옮길 걸까 궁금할 정도로 책은 재미있고 가독성도 좋다. 한가지 흠이라면 문맥상 '꽂다'의 오타인 '꼽다'가 너무 많이 등장한다는 것.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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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꾸만 딴짓 하고 싶다 - 중년의 물리학자가 고리타분한 일상을 스릴 넘치게 사는 비결
이기진 지음 / 웅진서가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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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로 '사물잡학사전'이라고 붙여주고 싶은 책이다.

읽던 도중에 종종 '아니 이 단순하게 보이는 물건에 이런 사연이?' 놀라곤 했는데, 이를테면 '유럽의 Tea' 얘기가 그렇다. 사실 이 에피소드의 가장 강렬한 인상은 '돈이 많고 볼 일이구나'지만 여튼.

 

가볍게 읽는 행간에서 언뜻 엉성한 듯 싶지만 실은 매우 꼼꼼한 태도가 읽힌다. 일례로 '물리학자의 연구실'을 시작하는 페이지의 그림 말인데, 본문에 들어가면 이 어수선한 그림에 등장하는 사물들이 거의 다 등장한다. 읽다 말고 그림을 뒤져보는 재미가 숨은그림 찾기를 하는 것처럼 쏠쏠하다.

 

읽다 보니 자연스럽게 <윤광준의 생활명품>이 떠오른다. 두 저자의 공통점은 책에 등장하는 물건들이 (적어도 두 사람에게 만큼은)명품이라는 것이고, 차이점은 한 사람의 명품은 구매를 부추기고 다른 한사람의 명품은 보는 걸로 만족한다는 것 정도일까.
실제로 중년의 물리학자의 보물을 쭉 둘러보는 기분은 황학동 만물시장을 구경하는 그것과 흡사하다. 일단 '만물상'이라는 점에서 그렇고, 그것이 새 것이 아닌 하자 있는 중고품이라는 데서 그렇다. 하지만 황학동 중고와달리 '구매욕'을 부추기지 않는 건 여전하다(물론 주인은 팔 생각도 없겠지만).

 

사실 저자의 보물이 가진 가장 특별한 부분은 그것들이 대부분 멀쩡하지 않다는 데 있다. 저자의 보물을 보면서 놀랍고 신선했던 것은 그것들이 대부분 깨지고, 일부를 분실한 결핍을 고스란히 드러낸 것들이어서다. 그런데 저자는 오히려 그러한 결핍 때문에 그것들을 품 안의 자식처럼 아끼고 귀하게 여긴다. 그러니까 물건이 품은 결핍에서 이름 모를 누군가의 사연을 읽고, 상상하고, 그것을 귀히 여기는 것이다.

그릇에 국한시켜, 나는 깨진 그릇에 편견이 없는데 이는 중국 여행 이후에 생긴 태도이다. 중국에선 식당에서 깨진 그릇에 담긴 음식을 먹는 일이 매우 일상적인 풍경인데 그런 문화를 경험하고 나니 내겐 그것이 더 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된 것. 결국 물건은 물건 그대로인데 인간의 제각각 다른 마음이 물건을 이것, 저것으로 나누고 가치의 차이를 매기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해골바가지에 담긴 물이랄까.

저자가 정성스럽게 내놓는 보물을 구경하고 사연을 읽노라면 '내게로 오라, 와서 꽃이 되어라.' 손짓했을 작가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누구든, 무엇이든 누군가에게 의미가 되는 순간 그는 혹은 그것은 이미 보물인 것이다.

<윤광준의 생활명품>에서도 했던 얘기지만, 정말 귀한 것은 물건에 치른 가격이 아니라 긴 시간을 함께 하는 동안 그것에 깃든 유·무형의 나만의 흔적들이다. (예전엔 주로 지갑이었지만)최근 스마트폰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한결같이 '전화기는 또 사면 되지만 메모리에 저장된 사진은 되찾고 싶다'고 하소연하는 걸 봐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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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세의 여행 - 헤세와 함께 하는 스위스.남독일.이탈리아.아시아 여행
헤르만 헤세 지음, 홍성광 옮김 / 연암서가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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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락사스'라는 형이상학적이고 관념적인 개념을 세상에 툭 던졌던 '헤세'와 '여행'이라니, 처음 헤세의 신간 제목을 봤을 때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이상적인 조합이구나' 였다. 그리고 책을 펼쳐 그의 여행지를 확인하는 순간 웃고 말았다. 아, '인도'다. 헤세의 소설을 읽을 때면 왠지 오리엔탈리즘을 느끼곤 했는데 이게 영 엉뚱한 생각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한편, 내가 가진 작가의 배경이 이렇게 빈약했다니 하는 자괴감을 넘어 내가 한창 헤세의 소설을 읽어대던 때만 해도 헤세의 책이라고는 오직 소설 밖에 없었던 그 시절 내 독서환경이 참 열악했구나, 뒤늦게 억울한 생각도 들고.

 

헤세의 소설은 대개 작가의 고백적 혹은 체험적인 인상을 받는데 이는 헤세의 소설이 대부분 성장소설의 형태를 띄고 있기 때문이다. 10대 후반을 헤세의 소설과 보내고 한참이나 뒤늦게 헤세의 에세이 그것도 여행에세이를 펼치면서 당연한 얘기지만 소설의 감성적 배경에 영향을 미쳤을 작가 내면의 일부분을 엿볼 수 있겠구나 반가운 마음도 있었다. 그런데 헤세의 저작 중 에세이로는 처음인 <헤세의 여행>을 펼친 직후의 첫 인상이 당연하달까 아이러니하달까 '헤세다움'이다.

가끔 말하는 목소리와 노래하는 목소리가 다른 사람을 보는데 말하자면 헤세는 두 목소리가 같은 유형의 작가인 것인지, 읽기 시작한 직후부터 밀려드는 이 낯익고 친숙한 반가움을 어찌하면 좋을꼬. 조곤조곤 수줍은가 싶으면 감각적이고, 반짝이는가 싶으면 소박한 문장들이 주는 기시감은 어느 모로 보나 헤세의 문장이다 싶다. 이를 테면 이런 문장들.

 

나는 여관 집 딸에게 반한 어느 시골 총각과 권투 경기를 함으로써 그곳에 오랫동안 있지 않았지만 - 두 시간 정도 있었다- 아담한 소도시 초핑겐을 잊을 수 없다. 바덴 풍의 마을 블라운 남쪽에 있는 매력적인 마을 함머슈타인은 내가 언젠가 밤늦게 오랫동안 숲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가 지극히 우연히 그곳에 도달하지 않았더라면 모든 지붕과 골목이 그토록 분명하고 아릅답게 기억에 남아 있지 않으리라. - p.40, 본문

 

내게만 국한된 얘기일수도 있지만 헤세의 소설은 읽고 나면 제목 옆에 '청춘에게 고함'이라는 부제를 붙여야만 할 것 같은 의무감 같은 게 든다. 그건 에세이인 이 책 <헤세의 여행>도 마찬가지인데, 에세이임에도 매 편이 끝날 때면 감정이 찌꺼기처럼 남는 여운이 예전에 헤세의 소설 한 권을 읽은 직후 느꼈던 감동과 흡사하다. 사실 1부를 시작하는 '1. 여행에 대하여'와 마지막 '7부 뉘른베르크 여행'을 제외하면 적절한 제목까지 달고 있는 매 편은 마치 단편을 읽는 기분이 든다. '여행'이라는 분명한 동기를 지향하는 에세이임에도 매 편이 완벽한 이야기의 완결성을 가진 탓에 '여행지에서'라는 공통 주제를 가진 수 십 편의 단편선집을 읽은 것 같은, 기대하지 않았던 포식을 실컷 즐긴 포만감을 준다. 게다가 그 이야기가 한결같이 좋으니 더 말해 뭐할까.

 

너무 흔해 이젠 식상한 표현이 됐지만 '정신을 살찌운다'는 말은 결국 외부, 그러니까 우리 정신의 바깥에 있는 (인공이든 자연이든)사물로부터 받은 인상이 사고(思考)하라고 이성을 자극하는 전기적 자극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전기적 자극은 당시에 즉각적으로 올 수도 있고 시간이 한참 지난 어느날 기습처럼 올 수도 있다. 분명한 건 인간의 정신은 외부로부터 끊임없이 자극을 받고 있다는 것인데 이러한 전기적 자극의 가장 전방위적인 형태의 극적인 예가 바로 '여행'이다. 여행은 여행자에게 시각적, 감각적 자극을 주고 그러한 체험은 여행자에게 일종의 스키마(schema)를 남기는 것이다.
말하자면 헤세의 소설은 헤세의 여행이 헤세에게 남긴 스키마가 아닐까 상상해 본다. 그에게 삶과, 내면의 성찰과, 세상은 어쩌면 그 자체로 하나의 문을 통해 드나드는 긴 여정이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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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알고 싶은 유럽 TOP10 - 내가 사랑한 유럽 TOP10 두 번째 이야기 내가 사랑한 유럽 TOP10 2
정여울 지음 / 홍익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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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올빼미형인 나는, 그러니까 당일 잠들고 당일 일어나는 취침 습관을 가지고 있는데 오랜만에 전날 자고 다음날 일어난 아침에 정여울의 책을 읽다 첫 페이지 프롤로그에서부터 그녀의 문장에 격침당했다.
프롤로그의 제목은 '여행, 우주가 차린 만찬을 포식하는 시간'. 이어 등장하는 장면은 가부좌를 하고 아침을 맞이하는 소년의 모습.
하필 유럽을 제외한 이 대륙 저 대륙을 돌아다녔던 내 지난 여행을 돌이켜보면 가장 또렷하게 떠오르는 기억은 여행지에서 아침을 맞는 시간이다. 새벽이 사위는 자리에 여명이 들어차는 그 시간의 공기, 냄새, 빛... 그것들은 언제나 경이롭다. 내가 내 영역을 떠나 낯선 곳에 있음을 가장 실감하게 하는 것은 이국의 풍광도 사람도 언어도 아닌 '잠에서 깬 첫 순간'이었던 것이다. 

정여울의 책을 읽으면서 내가 여행에세이에서 읽고 싶었던 것은 이런 것이었구나 새삼 확인한다.
장소를 소개하고, 그 장소가 가지고 있는 스토리를 들려주고, 그곳에 가면 놓치지 말아야 할 것들을 알려주는 매뉴얼은 사실 가이드 책자로도 충분하다.

껍데기만 보면 일견 여행가이드처럼 보이는 정여울의 <나만 알고 싶은 유럽>시리즈가 정보를 전달하는 기능에 충실한 실용서 가이드와 차별되는 지점은 두 말 할 것 없이 지면을 가득 채우는 작가의 문학적인 내공에 있다. 그녀의 어느 인터뷰 기사처럼 '소재가 무엇이든 (정여울의)모든 글이 수렴하는 지점은 문학'이고, 그녀의 이러한 정서적 기질이 이번 여행에세이에서도 유감 없이 발휘되는 것이다.
일례로 목차 중 '달콤한 유혹 한조각'을 열어 보면 그녀는 로마 트레비 분수에선 젤라토 아이스크림을 들고 그리스 신화의 재현을 체험하고, 프랑스 샹젤리제 거리의 유명 과자점 라뒤레에선 남편 몰래 마카롱을 먹는 노라의 은밀한 즐거움에 공감하며, 런던의 뒷골목에선 여성들에게 자기만의 방을 가지라고 충고하는 버지니아 울프의 속삭임을 듣는다. 

책 속의 표현을 빌려 '볼거리'보다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는 점에서 이 에세이는 참으로 기껍고 특별하다. 마치 진,선,미를 모두 갖춘 미인과 독대하는 기분이랄까.

어느 TV 프로그램명처럼 '문학과 함께 하는 기행'이라고 부제를 붙여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이 책은 여행 갈 때 꼭 챙겨서 가고 싶은 책이다. 긴 기다림의 줄이 지루할 때, 낯선 장소가 문득 외로우냐고 물어올 때 그녀의 사색이 가득한 이 책은 좋은 동행이 되어 줄 것이 틀림없으므로.

자고 일어나면 소위 유명인사가 뻘 짓을 해대는 작금의 대한민국 현실에서 제 이름 석자를 걸고 활동하는 타인을 대놓고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이 참으로 불안하지만, 그럼에도 말해야겠다. 난 정여울을 참 많이 좋아하고 그녀에게 푹 빠져있다고. 단적으로 '그녀가 꿈꾸는 런던의 하루 시간표'는 나의 그것과도 완벽하게 일치한다. 같은 것을 꿈꾸고 바라니 어찌 그녀를 좋아하지 않겠는가.
그녀의 글은 매번 정신 없이 흡입하듯 읽게 된다. 그녀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그녀의 글쓰기 중독이 오래토록 계속 되길 욕심내본다.

며칠 전에 배송 받은 <나의 문화 유산답사기> 국내편 몇 권을 발췌독 할 때도 했던 생각인데 중요한 건 역시 기획보다 컨텐츠라는 것을 새삼 확인한다. 같은 재료라도 요리사에 따라 다른 음식이 나오는 것처럼 책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역시 글을 다루는 작가인 것이다. 그러므로 공평하게도 베스트셀러는 많지만 스테디셀러는 드문 것일 테고.

 

덧> 이 책에서 유일한 흠은 제목이다. 그녀를 모르는 이들이 제목 때문에 자칫 이 책을 놓칠까 걱정이다. 나만 읽고 싶지만 한편으론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하고 바라는 이 모순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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