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블린 사람들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3
제임스 조이스 지음, 진선주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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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편의 소설과 한 편의 희곡,  시집 한 권을 남긴 제임스 조이스의 문학은 어렵기로 유명한데 이유는 '열린 텍스트 구조가 다양한 해석을 이끌어내기 때문'(진선주.『더블린 사람들』문학동네)이라고 한다.

원제가 'Dubliners'인『더블린 사람들』은『젊은 예술가의 초상』『율리시스』와 함께 '더블린 3부작'으로 불리우는 단편소설집.
열다섯 편의 단편에 등장하는 많은 화자들과 그 주변인들은 더블린이라는 도시에 살고 있는 동시대인들로 읽는 내내 인물들의 일관된 정서가 느껴진다. 그런데 단편집이라 가볍게 선택한 이 소설은 독서 시작 직후, 그러니까 열다섯 편의 단편 중 첫번째 단편「자매」를 읽은 직후부터 난감한 상황에 빠졌다. 간단하게 말해 왜 이 단편의 제목이 '자매'인가를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단편에서 제목이란 말할 것도 없이 중요하다. 그런데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자매'는 본문 내용과 어울리는 제목이 아닐 뿐더러 이게 제목이어야 할 의미를 찾을 수도 없었다. 결국 의문은 책 말미 해설을 통해서 풀렸는데, 순서상 마지막 단편인「죽은 이들」과 첫번째인「자매」의 제목을 맞바꾸어도 무리가 없는 열린 구조 즉, 각각의 이야기가 순환되면서 하나의 연작으로 읽히는 구조라는 설명이다. 실제로 마지막 단편「죽은 이들」은 '자매'가 제목으로 딱 제격이다.

『더블린 사람들』은 시기적으로 조이스의 첫번째 소설이어서인지 이후의 장편소설에 비하면 소설 자체는 그닥 난해하지도 복잡하지도 않다. 한 예로, 몸 전체가 갈색인 저도 있는 걸요, 라고 대꾸하는 '브라운 씨'(아마도 Mr. Browne일)의 농담은 '영어몰입교육'을 정책으로 미는 것이 전혀 안 이상한 우리나라에서도 충분히 통하는 조이스式 언어 유희인 것. -「죽은 이들」중

문제는 이러한 언어의 내밀한 차이를 비영어권 독자들이 어디까지 수용 가능한가 하는 것인데, 조이스 스스로 '굉장히 많은 수수께끼와 퀴즈를 감추어 두었기에, 앞으로 수 세기 동안 대학교수들은 내가 뜻하는 바를 거론하기에 분주할 것이다. 이것이 자신의 불멸을 보장하는 유일한 길이다' 라고 붙인, 20세기 최고의 고전으로 꼽히는『율리시스(Ulysses)』나『피네간의 경야(혹은 밤샘)』 에 이르면 거의 난공불락의 성처럼 느껴진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경상도 사투리에 '가가 가가 가가'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을 이해 못하는 타지 사람들에겐 부연 명이 필요하다. 이렇게...
"경상도에서는요,그 아이'를 줄여서 '가-'라고 해요. 그리고 의문형 어미로 '가'를 써요. 그러니까 '가가 가가 가가'는 '그 애가 가(씨 성을 가진) 가(집안)의 그 애냐?'라는 뜻인 거죠."
이걸 같은 나라 타지 사람이 아닌 다른 나라, 다른 언어권 사람에게 설명한다고 상상해 보자. 한 발 더 나아가 이걸 문학에 집어 넣는다고 상상해 보자. 이쯤 되면 '그냥 널리고 널린 다른 수많은 고전이나 읽을래요' 소리가 절로 나온다.

이렇듯 조이스 문학이 어려운 이유는 그의 언어 사용에 있는데 획일적인 해석을 거부하는 열린 텍스트라고는 하지만 현실적으로 비영어권 독자들에겐 그의 독창적인 언어 유희로 가득한 문학 세계로 진입하는 것을 방해하는 양날의 검과 같다. 우리나라가 비영어권 국가 중 조이스의 장편을 번역한 네번째 국가라고 하니 더 말해 뭘할까.

움베르토 에코 정도면 가능하겠군, 싶었는데 책 말미 해설에 짤막하게 에코가 조이스 학회장이라는 얘기가 있어 웃었다. (국내에 에코는 소설가로 더 많이 알려진 듯 하지만 실제로 그는 매우 저명한 기호학자다.)

단편 중「가슴 아픈 사고」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강박적이다 싶게 인물의 성격에 객관적이고 현실적인 접근을 하는 조이스의 문체 특징이 잘 나타난 이 단편은 한때 자신의 마음을 흔들었던 여인과의 만남 전후를 시니컬하고 냉정하게 응시하는 남자의 내면이 돋보인다.

조이스 문학의 또다른 특징은 '의식의 흐름'이다. 나는 '의식의 흐름'이라고 하면 과장해서 경기 비슷한 걸 느끼는데 그러니까 마르셀 프루스트나 울프 여사의 책은 펼치기만 하면 5분내 수면 상태가 된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최근 읽으려고 펼친 책들이 죄다 의식의 흐름 기법이다. 문학 속 '의식의 흐름' 기법은 아무래도 넘을 수 밖에 없는 산인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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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의 운명 (반양장)
문재인 지음 / 가교(가교출판)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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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만남」-  '그 날' 아침 일찍 걸려온 전화로부터 시작하는 이 장은 비극적인 그 날을 담담하게 서술하고, 노통과 처음 만났던 30년 전(1982')으로 간다. 무엇보다 두 사람의 인연이 그토록 오래되었다는 사실이 놀랍다. 내가 '문재인'이라는 인물을 처음 본 건 18대 대통령 선거가 끝난 직후 MBC에서 방영한 '대한민국 대통령'에서였다. 내가 그토록 정치에 관심이 없었거나, 그의 행보가 그토록 화려함과는 멀었거나, 였을 것이다.

2장「인생」- '인생'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장은 한국전쟁 통에 함경 흥남에서 피난온 부모님의 내력에서부터 시작해 저자의 가난했던 유년시절을 거쳐 사법고시에 합격하는 청년시절까지 진행된다.
2장은 저자를 이해하는 몇 가지 단서들이 등장한다. 우선, 문학적인 한편 간결하고 명료하게 떨어지는 그의 문장이 장르를 가리지 않는 활자중독에 가까운 독서량과 수없이 많은 법조문을 써야했던 인권변호사 경력에서 나온 것임을 알게 된다. 또한 그가 공수부대 출신이라거나 사법고시 2차 시험 합격을 (반독재민주화시위 중 수감된)유치장에서 듣는 대목에선 노통이 정치 무대에서 이상주의자였다면 저자인 문재인은 보다 현실주의자인 배경의 차이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3장「동행」- 17대 대통령에 취임한 노통을 보좌하며 민정수석으로 보냈던 청와대 시절이 펼쳐지는 3장은 4장과 다른 의미에서 읽는 동안 참 가슴 아픈 장이었다. 그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그리고 열심히 일했는가 보여주는 대목들은 역설적으로 그들이 참 외로웠으리라 헤아리게 한다.

4장「운명」- 읽는 내내 여러 종류의 감정이 엇갈렸던 장이다. 독서가 진행되면서 조금씩 고개를 들던, 이 책은 진보 진영을 향한 목소리가 아닐까, 라던 짐작은 이 장을 읽으면서 확신이 되었다. 어떤 형태로든 현실정치에 발을 담갔던 경험으로 그는 진보 진영이 나아갈 방향에 진지한 고민을 던진다.
 

* 다음은 소박해서 오히려 짠했던 대목.

   
 

(…전략)지금은 개 세마리, 고양이 두 마리, 닭 여덟 마리로 식구가 늘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이놈들 먹이주고, 똥 치우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한다.
개는 부산에서 살 때부터 키워왔고, 고양이는 딸이 키우다 취직을 해서 돌보기 어렵게 되자 우리에게 맡겼다.
닭은 걸핏하면 방안으로 들어오는 지네 퇴치용으로 키우고 있다. 유기농 달걀을 얻는 보람도 있고, 또 때로는 닭이 알을 품어 병아리가 부화되는 것을 보는 재미도 있다. 마당에 뱀이 들어올 때도 있어서 공업용 백반을 사서 마당 주변에 뿌리기도 한다. 채소도 가꾸고 있다. 그야말로 손바닥만 한 밭인데도 둘이서 다 못 먹을 정도로 거둔다. -p.387
 

봉하에 자리를 잡은 대통령도 농군으로 잘 지내고 계셨다. -p.3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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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번국도 Revisited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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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처음 읽은 책은『7번 국도』, 처음 구입한 책은 같은 작가의『우리가 보낸 순간 시/소설(세트)』이다. 물론 다른 책도 함께 구입했지만 어쨌든, 작가를 향한 호불호과 상관없이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
소설을 읽은 감상을 간단하게 정리하면『네가 누구든...』『밤은 노래한다』의 '연장선, 혹은 출발선에 있는 소설' 이랄까. 시기적으로는 출간이 앞서지만 이번에 전면 개정했다고 하니 소설의 위치가 애매하다. '나'는 타자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운가, 세계는 나의 바깥에 존재하는가 아니면 내부에 존재하는가... 라는 이젠 꽤 익숙해진 작가의 내러티브가 펼쳐진다.
이번 소설이 낯설지 않은 건 위에 언급한 두 소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인물 구도, 사건, 서사의 전개를 보여주기 때문인데, 익숙하다는 건 모든 현상이 그렇듯 일장일단이 있다.
포스트모더니즘 문학 냄새가 살짝 풍기는 게 기억에 남는데, 좀 지루해진다 싶으면 어김없이 작가 특유의 시니컬한 유머가 등장하기 때문에 책장은 쉽게 넘어가는 편이다.
다만 현대 일본 사소설의 특징적인 1인칭 정서가 등장하는 게 좀 마음에 걸린다. 뭐, 하루키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오히려 취향일 수도 있겠다 싶다.  
궁금한 건, 이번 소설은 절판된 초판본을 전면 개정했다고 하는데 그럼 이러한 부분은 개정 전의 것인지 개정 후의 것인지 하는 거다.
혹 개정 후의 것이라면 아마 이후에 나오는 작가의 소설은 구입하기 전에 고민을 많이 하게 될 것 같다. 

덧. 김연수 작가의 글을 읽고 나면 늘 그렇지만 '골이 난 일곱 살짜리 우등생'(?)을 만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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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W TO READ 시리즈 - 전16권 How To Read 시리즈
슬라보예 지젝.레이 몽크 외 지음, 김병화.안인희.고병권 외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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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식의 지평을 넓히는 첫 관문으로 삼아도 좋은 선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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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니 - 공지영 장편소설
공지영 지음 / 창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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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광주인화학교에서 일어난 실화를 바탕으로 하는 소설『도가니』는 인호가 기간제 교사로 발령 받아 무진市로 향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실화를 소설화할 때 즉 저널리즘식 글쓰기를 할 때 작가는 감상에 빠지거나 감정적이 되어서는 안 되며, 소설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인물들로부터 심리적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이건 기본이다. 작가는 어디까지나 전달자여야지 소설속 인물들과 함께 어울려서 울고 불고 떠들어대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소설은, 3자가 냉정하게 판단할 수 있도록 객관적인 사실을 정보로 전달해야 할 작가가 오히려 나서서 감정을 선동하고 있다. 저작이 사회소설일 때, 작가 공지영은 여전히 그 차이를 극복하지 못한 듯 보인다. 아니면 극복할 마음이 없던가.
"이 아이들에게 이런 비극적인 일이 일어났어요" 하는 것과 "가여운 아이들에게 그런 짓을 저지르다니 정말 짐승, 악마 같은 놈들 아닌가요?" 하는 것은 어조에서부터 큰 차이가 있다. 이 작가를 보면 주목 받고 산 사람의, 주목 받지 않으면 못 견디는 것 같은 정서가 느껴진달까.
무엇보다도『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선 '죄 없는' 아름다운 청년 사형수가 왜 죽어야 하느냐고 사형제도의 부당함을 주장하여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더니『도가니』는 절정으로 치닫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설득력이 떨어지는 구성상의 몇 가지를 제외하더라도 그 결말에 이르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범죄를 저지른 가해자들은 결국 무죄 처리되어 자기의 자리로 돌아간다는 것으로 리얼리티를 확보하는 반면, 무사히 제자리로 돌아가는 인호는 물론이고 피해 학생들 모두 예전의 악몽으로부터 구원받아 새로운 보금자리와 새로운 삶의 기회를 얻게 되어 그래도 희망은 있다는 감동적인 메시지로 매듭을 짓는 것으로 작가는 슬그머니 발을 빼버리는 것. 이런 동화같은 온화한 결말로 책 판매량은 늘었을지 모르나 독자 입장에선 사회적 독서를 할 기회가 제한된다는 점에서 작가 스스로 한계를 드러낸 셈이다.
늘 감탄하지만 이 작가의 소재를 고르는 재주는 참 뛰어나다. 그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일 터. 하지만 아무리 좋은 재료도 그것을 다룰 줄 모르면 소용없는 법. 곪은 상처를 치료하려면 상처를 찢고 고름과 피가 흘러나오는 것을 지켜보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 적어도 사회고발소설을 쓰려고 작정했다면 그 정도 준비는 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것도 어디까지나 소설외적인 문제일 뿐, 몇 년 새 아동성범죄가 너무도 만연하고 있는 요즘, 다시 한번 광주인화학교 사건을 대중에게 환기시켰다는 의미에서 이 소설이 해낸 역할 - 잊혀진 사건에 대한 주의 환기 - 에 비하면 저런 부분들은 차라리 부수적이고 하찮은 것인지도 모른다. 

광주의 옛이름이 무진주(武珍州)이기도 하지만 소설 속 무진은 김승옥의『무진기행』에 등장하는 가상의 도시 무진(霧津)이다. 문학 비평집을 읽다 우연히 마주친 짧은 문단에 반해서 그 날로 전집을 구입하게 만들었던 바로 그 김승옥의 무진市인 것이다.

무진에 명산물이 없는 게 아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그것은 안개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서 밖으로 나오면, 밤사이에 진주해온 적군들처럼 안개가 무진을 삥 둘러싸고 있는 것이었다. 무진을 둘러싸고 있던 산들도 안개에 의하여 보이지 않는 먼 곳으로 유배당해버리고 없었다. 안개는 마치 이승에 한이 있어서 매일 밤 찹아오는 여귀(女鬼)가 뿜어내놓은 입김과 같았다. 해가 떠오르고, 바람이 바다 쪽에서 방향을 바꾸어 불어오기 전에는 사람들의 힘으로써는 그것을 헤쳐버릴 수가 없었다. 손으로 잡을 수 없으면서도 그것은 뚜렷이 존재했고 사람들을 둘러쌌고 먼 곳에 있는 것으로부터 사람들을 떼어놓았다. 안개, 무진의 안개, 무진의 아침에 사람들이 만나는 안개, 사람들로 하여금 해를, 바람을 간절히 부르게 하는 무진의 안개, 그것이 무진의 명산물이 아닐 수 있을까! - pp.159-160,『무진기행』   

김승옥의 영향일까. 이번 공지영의 소설은 예전 소설에서 볼 수 없었던 담백하고 묵직한 문장들이 많이 등장한다.

강인호가 자신의 승용차에 간단한 이삿짐을 싣고 서울을 출발할 무렵 무진시(霧津市)에는 해무(海霧)가 밀려들기 시작했다. 거대한 흰 짐승이 바다로부터 솟아올라 축축하고 미세한 털로 뒤덮인 발을 성큼성큼 내딛듯 안개는 그렇게 육지로 진군해왔다. 안개의 품에 빨려들어간 사물들은 이미 패색을 감지한 병사들처럼 미세한 수증기 알갱이에 윤곽을 내어주며 스스로를 흐리멍덩하게 만들어버렸다. 바닷가 절벽 위에 선 사층짜리 석조건물 자애(慈愛)학원도 그렇게 안개 속으로 빨려들어가기 시작했다. - p.7,『도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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