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꾸만 딴짓하고 싶다]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나는 자꾸만 딴짓 하고 싶다 - 중년의 물리학자가 고리타분한 일상을 스릴 넘치게 사는 비결
이기진 지음 / 웅진서가 / 2014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부제로 '사물잡학사전'이라고 붙여주고 싶은 책이다.

읽던 도중에 종종 '아니 이 단순하게 보이는 물건에 이런 사연이?' 놀라곤 했는데, 이를테면 '유럽의 Tea' 얘기가 그렇다. 사실 이 에피소드의 가장 강렬한 인상은 '돈이 많고 볼 일이구나'지만 여튼.

 

가볍게 읽는 행간에서 언뜻 엉성한 듯 싶지만 실은 매우 꼼꼼한 태도가 읽힌다. 일례로 '물리학자의 연구실'을 시작하는 페이지의 그림 말인데, 본문에 들어가면 이 어수선한 그림에 등장하는 사물들이 거의 다 등장한다. 읽다 말고 그림을 뒤져보는 재미가 숨은그림 찾기를 하는 것처럼 쏠쏠하다.

 

읽다 보니 자연스럽게 <윤광준의 생활명품>이 떠오른다. 두 저자의 공통점은 책에 등장하는 물건들이 (적어도 두 사람에게 만큼은)명품이라는 것이고, 차이점은 한 사람의 명품은 구매를 부추기고 다른 한사람의 명품은 보는 걸로 만족한다는 것 정도일까.
실제로 중년의 물리학자의 보물을 쭉 둘러보는 기분은 황학동 만물시장을 구경하는 그것과 흡사하다. 일단 '만물상'이라는 점에서 그렇고, 그것이 새 것이 아닌 하자 있는 중고품이라는 데서 그렇다. 하지만 황학동 중고와달리 '구매욕'을 부추기지 않는 건 여전하다(물론 주인은 팔 생각도 없겠지만).

 

사실 저자의 보물이 가진 가장 특별한 부분은 그것들이 대부분 멀쩡하지 않다는 데 있다. 저자의 보물을 보면서 놀랍고 신선했던 것은 그것들이 대부분 깨지고, 일부를 분실한 결핍을 고스란히 드러낸 것들이어서다. 그런데 저자는 오히려 그러한 결핍 때문에 그것들을 품 안의 자식처럼 아끼고 귀하게 여긴다. 그러니까 물건이 품은 결핍에서 이름 모를 누군가의 사연을 읽고, 상상하고, 그것을 귀히 여기는 것이다.

그릇에 국한시켜, 나는 깨진 그릇에 편견이 없는데 이는 중국 여행 이후에 생긴 태도이다. 중국에선 식당에서 깨진 그릇에 담긴 음식을 먹는 일이 매우 일상적인 풍경인데 그런 문화를 경험하고 나니 내겐 그것이 더 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된 것. 결국 물건은 물건 그대로인데 인간의 제각각 다른 마음이 물건을 이것, 저것으로 나누고 가치의 차이를 매기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해골바가지에 담긴 물이랄까.

저자가 정성스럽게 내놓는 보물을 구경하고 사연을 읽노라면 '내게로 오라, 와서 꽃이 되어라.' 손짓했을 작가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누구든, 무엇이든 누군가에게 의미가 되는 순간 그는 혹은 그것은 이미 보물인 것이다.

<윤광준의 생활명품>에서도 했던 얘기지만, 정말 귀한 것은 물건에 치른 가격이 아니라 긴 시간을 함께 하는 동안 그것에 깃든 유·무형의 나만의 흔적들이다. (예전엔 주로 지갑이었지만)최근 스마트폰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한결같이 '전화기는 또 사면 되지만 메모리에 저장된 사진은 되찾고 싶다'고 하소연하는 걸 봐도 그렇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