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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알고 싶은 유럽 TOP10 - 내가 사랑한 유럽 TOP10 두 번째 이야기 내가 사랑한 유럽 TOP10 2
정여울 지음 / 홍익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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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올빼미형인 나는, 그러니까 당일 잠들고 당일 일어나는 취침 습관을 가지고 있는데 오랜만에 전날 자고 다음날 일어난 아침에 정여울의 책을 읽다 첫 페이지 프롤로그에서부터 그녀의 문장에 격침당했다.
프롤로그의 제목은 '여행, 우주가 차린 만찬을 포식하는 시간'. 이어 등장하는 장면은 가부좌를 하고 아침을 맞이하는 소년의 모습.
하필 유럽을 제외한 이 대륙 저 대륙을 돌아다녔던 내 지난 여행을 돌이켜보면 가장 또렷하게 떠오르는 기억은 여행지에서 아침을 맞는 시간이다. 새벽이 사위는 자리에 여명이 들어차는 그 시간의 공기, 냄새, 빛... 그것들은 언제나 경이롭다. 내가 내 영역을 떠나 낯선 곳에 있음을 가장 실감하게 하는 것은 이국의 풍광도 사람도 언어도 아닌 '잠에서 깬 첫 순간'이었던 것이다. 

정여울의 책을 읽으면서 내가 여행에세이에서 읽고 싶었던 것은 이런 것이었구나 새삼 확인한다.
장소를 소개하고, 그 장소가 가지고 있는 스토리를 들려주고, 그곳에 가면 놓치지 말아야 할 것들을 알려주는 매뉴얼은 사실 가이드 책자로도 충분하다.

껍데기만 보면 일견 여행가이드처럼 보이는 정여울의 <나만 알고 싶은 유럽>시리즈가 정보를 전달하는 기능에 충실한 실용서 가이드와 차별되는 지점은 두 말 할 것 없이 지면을 가득 채우는 작가의 문학적인 내공에 있다. 그녀의 어느 인터뷰 기사처럼 '소재가 무엇이든 (정여울의)모든 글이 수렴하는 지점은 문학'이고, 그녀의 이러한 정서적 기질이 이번 여행에세이에서도 유감 없이 발휘되는 것이다.
일례로 목차 중 '달콤한 유혹 한조각'을 열어 보면 그녀는 로마 트레비 분수에선 젤라토 아이스크림을 들고 그리스 신화의 재현을 체험하고, 프랑스 샹젤리제 거리의 유명 과자점 라뒤레에선 남편 몰래 마카롱을 먹는 노라의 은밀한 즐거움에 공감하며, 런던의 뒷골목에선 여성들에게 자기만의 방을 가지라고 충고하는 버지니아 울프의 속삭임을 듣는다. 

책 속의 표현을 빌려 '볼거리'보다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는 점에서 이 에세이는 참으로 기껍고 특별하다. 마치 진,선,미를 모두 갖춘 미인과 독대하는 기분이랄까.

어느 TV 프로그램명처럼 '문학과 함께 하는 기행'이라고 부제를 붙여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이 책은 여행 갈 때 꼭 챙겨서 가고 싶은 책이다. 긴 기다림의 줄이 지루할 때, 낯선 장소가 문득 외로우냐고 물어올 때 그녀의 사색이 가득한 이 책은 좋은 동행이 되어 줄 것이 틀림없으므로.

자고 일어나면 소위 유명인사가 뻘 짓을 해대는 작금의 대한민국 현실에서 제 이름 석자를 걸고 활동하는 타인을 대놓고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이 참으로 불안하지만, 그럼에도 말해야겠다. 난 정여울을 참 많이 좋아하고 그녀에게 푹 빠져있다고. 단적으로 '그녀가 꿈꾸는 런던의 하루 시간표'는 나의 그것과도 완벽하게 일치한다. 같은 것을 꿈꾸고 바라니 어찌 그녀를 좋아하지 않겠는가.
그녀의 글은 매번 정신 없이 흡입하듯 읽게 된다. 그녀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그녀의 글쓰기 중독이 오래토록 계속 되길 욕심내본다.

며칠 전에 배송 받은 <나의 문화 유산답사기> 국내편 몇 권을 발췌독 할 때도 했던 생각인데 중요한 건 역시 기획보다 컨텐츠라는 것을 새삼 확인한다. 같은 재료라도 요리사에 따라 다른 음식이 나오는 것처럼 책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역시 글을 다루는 작가인 것이다. 그러므로 공평하게도 베스트셀러는 많지만 스테디셀러는 드문 것일 테고.

 

덧> 이 책에서 유일한 흠은 제목이다. 그녀를 모르는 이들이 제목 때문에 자칫 이 책을 놓칠까 걱정이다. 나만 읽고 싶지만 한편으론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하고 바라는 이 모순이라니...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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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공간들, 되살아나는 꿈들]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사라진 공간들, 되살아나는 꿈들
윤대녕 지음 / 현대문학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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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읽은 에세이에 '공간이 말을 걸어온다'는 표현이 등장하는데 보는 순간 윤대녕의 에세이에 부제로 붙여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실제로 모든 공간은 이야기를 품고 있기 마련이고, 이야기를 품은 공간은 제 앞에 멈춰 선 인간에게 그들만의 방식으로 말을 걸어온다. 추측컨데 그 대부분은 이렇게 시작할 것이다. "기억해?"
<사라진 공간, 되살아나는 꿈들>은 작가의 유년의 공간에서부터 시작하는데, 작가의 기억이 거슬러 올라가는 최초의 장소가 유년 시절과 접목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작가는 태어나서 자란 그 곳을 '고향집'이라고 명명한다. 이 공간은 작가의 성장과 함께 대전으로 평택으로 서울로 이동하고 사이사이 징검다리처럼 작가가 머물렀던 장소들이 등장했다 사라졌다 반복한다.
사람들은 옛 것을 대할 때 대개 이중적인 태도를 가진다. 그러니까 옛 것을 그리워하면서 한편으로는 기피하는 습성을 보이는 것인데 그때 그 시절을 추억하는 건 괜찮지만 현재에 재현하는 것은 꺼리는 것이다. 박물관에서 구경하는 건 괜찮지만 구태여 집에 가지고 오고 싶진 않은 무엇이랄까. 결국 추억은 어떤 의미에서 기억의 박제라고 할 수도 있겠다. 향수는 박제한 기억으로부터 얻는 작은 위안 쯤일 것이고. 
작가가 옛 공간을 더듬는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공간과 장소의 의미가 확연하게 구분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러니까 원래는 비었던 공간을 내가 채우면서 장소가 되고, 내가 장소를 떠나는 순간 그곳은 다시 빈 공간이 되지만, 그곳은 이미 예전의 그 빈 공간이 아닌  내 이야기를 품고 있는 곳이며 어느 날엔가 내가 그곳을 찾으면 말을 걸어오는 것이다. "기억해?" 라고.
윤대녕의 에세이는 비유를 하자면 작가의 소설의 뒷풍경을 보는 기분이 들곤 하는데 이번 에세이 역시 그런 느낌을 받는다. 에세이이니 당연히 화자는 '나'지만 읽다 보면 작가의 얘기가 아니라 작가의 1인칭 얘기를 읽는 듯한 기분이 드는 것이다. 그러니까 카메라 밖에서도 배우로 사는 배우처럼 원고지 밖에서도 작가로 사는 작가가 있다면 윤대녕이 그렇지 않을까 싶다. 나는 작가에게 편견이 없으니 이는 전적으로 책 속 병원 에피소드에도 등장하는 "과인이 ~말이외다" 하는 식의 작가의 화법 때문이다.
책을 읽으면서 종종 제목을 확인하곤 했다.

과거의 장소를 다시 찾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단지 한때 내가 점유했던 장소를 확인하는 것이 전부인가? 그렇게 단순한 얘기는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든다. 아마 그것은 지나간 시간의 복기를 통해 꿈의 복원에 다가가고자 하는 쓸쓸한 열망이지 않을까.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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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팻 캐바나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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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내가 게을러진 것인지, 착각을 안고 책을 펼치는 경우가 잦다.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이하, '사랑은 그렇게') 역시 아내이자 동료였던 문학 에이전트 팻 캐바나와 사별한 줄리언 반스의 회고록 성격을 띤 에세이인 줄로만 알고 페이지를 열었다. 그리고 18p까지 꾸역꾸역 읽다가 뒤늦게 목차를 확인하니 소제목이 '비상의 죄'다.

<사랑은 그렇게>는 모두 세 개의 이야기 묶음으로 구성되는데 차례로 '비상의 죄', '평지에서', '깊이의 상실'로 이어진다. 이쯤되면 원제 <Levels of Life>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닫게 된다.

책 뒷표지 김훈의 짧은 서평(?)에 '삶의 층위'라는 표현이 등장하는데 여기에서 층위 - Level이란 비상(하늘), 평지(땅), 깊이(지하)로 이어지는 수직적인 단계를 의미한다. 그리고 세 이야기는 모두 '이제껏 하나인 적이 없었던 두 가지를 하나로 합쳐보라'로 시작한다. 물론 합쳐보라- 이후는 하늘-땅-지하로 이어지는 만큼 그 내용도 변화가 생긴다.
첫 번째 '비상의 죄'는 19세기 초반 '열기구'와 그것에 열광했던 사람들이 등장하고, 두 번째 '평지에서'는 열기구에서 내린 프레드 버나비가 사라 베르나르와 사랑을 하고 이별을 하는 얘기가, 세 번째 '깊이의 상실'에 이르면 아내와 사별하고 비탄에 빠진 남자가 등장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비탄에 빠진 남자를 위로할 방법은 세상에 없다. 그 비탄에서 남자를 건져낼 방법은 더더욱 없다. 줄리언 반스가 E.M.포스터를 인용해 지적했듯이 '하나의 죽음은 그 자체를 설명할 수 있을지 몰라도, 다른 죽음에는 한줄기 빛조차 비추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슬픔은 보편적이지만 슬픔을 받아들이는 방식은 각자의 몫이 된다.
수직을 따라 점점 아래로 내려오는 작가의 시선이 몹시 무겁다. 상실된 부분은 채워지는 것이 아니라 빈 그대로 안고 가야 하는 것임을 알기 때문에, 그것이 남겨진 이의 삶의 몫인 걸 알기 때문에 아내를 잃은 남자의 고통이 더욱 선연하게 다가온다.
어렸을 땐 말로 위로하는 것이 쉬웠다. 하지만 어느 때부턴가 침묵하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 때론 섣부른 말보다 침묵이 더 위로가 된다는 걸 깨닫게 되면서 그렇게 어른이 되는 것이다.

 

이 순간, 세탁 건조기 앞에서 나는 그 설명할 수 없는 내 청춘의 기억, 다시는 그 달콤함을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수 없는 기억에 매달려 있었다. 죽음이 나쁜 것은 미래를 바꿔놓기 때문이 아니다. 우리를 기억과 함께 외로이 남겨놓기 때문이다. - p.415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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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라디오] 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마술 라디오 - 오래 걸을 때 나누고 싶은 이야기
정혜윤 지음 / 한겨레출판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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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마술 라디오>는 프롤로그 때문에 첫 진입이 꽤 어려웠던 책으로 기억될 것 같다.

일단, 무엇보다, 로맹 가리의 일곱 번째 오렌지를 통해 작가가 전하고 싶은 우화적 감동 혹은 교훈이 좀처럼 와닿지가 않는다. 도전, 비약... 그런 얘기인 건 알겠는데 T.P.O가 맞지 않는달까, 돌잔치에 트로트 가수가 축하공연을 하는 듯 내용과 주제가 겉도는 것이 도통 생뚱맞다.

백 마디 산만한 말보다 한 마디 적절한 비유가 주는 촌철살인의 감동을 새삼 언급할 이유는 없지만 어쨌든 분명한 건 뜬금없는 프롤로그 때문에 14개의 마술라디오를 놓친다면 무척이나 안타까운 일이라는 사실.
다행히 프롤로그라는 가시밭을 잘 빠져 나온다면 14개의 마술 같은 얘기들을 만날 수 있다.
내용과 상관 없이 눈길을 끌기 위한 관상용에 불과한 제목도 있지만 대부분의 책의 제목은 주제 의식을 집약해서 보여주는 제 역할을 충실하게 해내는데 이 책의 제목 <마술 라디오> 역시 제 역할을 십분 해낸다. 즉슨, 책을 읽다 보면 이 책의 제목 '마술', '라디오'를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된다. 아울러 이야기 전달자로서 작가가 선택한 변사적 화법 역시도.
화자이자 필자인 작가의 입을 빌어 등장하는 다양한 계층의 다양한 인물들이 들려주는 얘기는 재미를 떠나 시쳇말로 내가 장자의 꿈을 꾸는가, 나비의 꿈을 꾸는가 싶게 어디서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거짓인지 몽환적인데, 마치 참말과 거짓말을 씨줄과 날줄로 엮은 미로를 돌아다니는 기분이 든다.

이는 실재하는 배경, 직업, 생생한 주변 묘사에도 불구하고 막상 주인공들이 들려주는 얘기는 마치 허구처럼 느껴지기 때문인데 이런 위화감의 가장 큰 이유는 '어법'에 있다. 필자의 귀를 통해 직접화법으로 펼쳐지는 그들의 언어가 지나치게 수사적이고, 문학적이다. 그리고 이런 식의 분위기에 익숙해질 즈음이면 자연스럽게 '마술적 리얼리즘'을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마술적 리얼리즘'은 중남미 문학의 장르적 특징인데 대표적인 작가가 이 책의 에필로그에도 등장하는 <백년동안의 고독>의 마르께스이다. 하지만 14개의 꼭지를 달고 있는 본문을 연이어 읽다 보면 서술적 특징 탓에 마르께스보다 보르헤스에 더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세상은 넓고 사람들은 다양하니 어딘가에 실제로 존재할 것도 같은 얘기들, 하지만 초등 2,3학년 쯤 되는 아이들이 우리 집에... 우리 아빠는... 하는 듯 어딘가 어수룩한 얘기들이 보르헤스식 우아한 '뻥'의 기시감을 불러오는 것이다. 그러니 에필로그에서 작가가 '사실은 꿈속에서 들은 얘기야~' 고백한다고 해서 배신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 스티븐 킹이 일찌기 말하지 않았나. 책은, 일단, 무조건, 재미있고 봐야 한다고. 이 책은 재미있다. 그것도 '문학적으로' 재미있다.

일례로 '빠비용의 아버지', '주먹맨'은 보편적인 인류애를 건드리는 감동을, '두 갈래 길', '신은 나에게 그녀 대신~'은 해방 이후 근대소설을 읽는 것 같은 아날로그적 감성을 준다. 한편 작가는 쌍용노조, 밀양 송전탑 같은 현실적인 에피소드도 놓치지 않는다. 아이러니하달까 이 에피소드조차 문학적이어서 석양을 받아 오색으로 반짝이는 수면을 카메라에 담고 싶듯 밑줄 긋고 싶은 표현들이 무수하다.
결론은, 에세이보다는 소설로 읽히는 책이고 소설로 읽을 때 더욱 글맛이 생생한 책이다.

명심할 건 이 책이 르포르타쥬가 아니라는 점이다. 왜 이 얘기를 하는가 하니, 바로 내가 그런 착각을 지니고 이 책을 펼쳤기 때문이다.

다 읽고 나니 색색의 포스트잇이 가득이다. 정혜윤의 다음 책은 소설로 만나보고 싶은 기대가 생기는 한 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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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걸었고 세상은 말했다 - 길 위에서 배운 말
변종모 지음 / 시공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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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책을 받아들었을 때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예쁘다'였다. 책장을 펼치고 본문을 살짝 엿본 후에는 거기에 감탄사가 붙었다. '아, 예쁘다'.
책 조차도 예쁘면 마음이 더 솔깃해지는 못난 견물생심을 탓하면서 몇 페이지 읽다 말고 작가가 궁금해져서 온라인서점에서 검색해봤다. 여전히 작가의 정보는 부족했지만 작가의 다른 책을 통해 작가의 유목민 기질을 추측할 수 있었고, 책 속 사진이 작가가 직접 찍은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아, 이 책은 느리게 조금씩 읽어야겠구나.

단어, 작가의 내밀한 혹은 사색적인 인상을 담은 산문, 그리고 사진... 이 책을 구성하는 것들이다.
단어는 아포리즘, 산문은 펼쳐놓은 사색처럼 느껴지는데 그 탓인지 첫 인상은 파스칼의 팡세를 연상하게 했다. 그러니까 <나는 걸었고>를 읽는 인상은 여행산문 보다는 사색집 혹은 명상집을 읽는 기분에 가깝다. 감성산문일랄까. 비유하자면 심야에 듣는 라디오 방송 같은...
한번에 완독하는 책이 있고 나눠서 띄엄띄엄 페이지에 구애 받지 않고 읽는 책이 있는데 말하자면 <나는 걸었고>는 후자다. 누군가 손을 내밀 때 그 손을 마주 잡는 손은 성의 있고 진중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데, 하물며 내가 들고 있는 책 속 문장들이 작가의 10년의 편린들이라고 하니 더욱 진지해질 수 밖에.

나이가 드니 여행의 목적은 종착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출발지에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러다 보니 예전엔 '와, 이런 곳 저런 곳을 여행할 수 있다니 부럽다'는 감정이 우선했으나 요즘은 여행 출발 이전의 저자에게 시선이 먼저 간다. 왜 떠났을까. 무엇이 그의 등을 떠밀었을까. 그럼에도 '떠날 수 있는' 그가 부러운 건 여전하다.

 

최근 여행산문이 부쩍 많아진 것을 느낀다. 바야흐로 힐링이 필요한 시대인가 보구나, 한다.

 

 

생각한다는 것은
마음의 지문을 찍는 것
말한다는 것은
세상에 문신을 새기는 것

 

그것들을 옮긴다는 것은
마음에 세상 지도를 달리 그린다는 것.

 

- from <나는 걸었고 세상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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