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공간들, 되살아나는 꿈들]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사라진 공간들, 되살아나는 꿈들
윤대녕 지음 / 현대문학 / 2014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최근에 읽은 에세이에 '공간이 말을 걸어온다'는 표현이 등장하는데 보는 순간 윤대녕의 에세이에 부제로 붙여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실제로 모든 공간은 이야기를 품고 있기 마련이고, 이야기를 품은 공간은 제 앞에 멈춰 선 인간에게 그들만의 방식으로 말을 걸어온다. 추측컨데 그 대부분은 이렇게 시작할 것이다. "기억해?"
<사라진 공간, 되살아나는 꿈들>은 작가의 유년의 공간에서부터 시작하는데, 작가의 기억이 거슬러 올라가는 최초의 장소가 유년 시절과 접목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작가는 태어나서 자란 그 곳을 '고향집'이라고 명명한다. 이 공간은 작가의 성장과 함께 대전으로 평택으로 서울로 이동하고 사이사이 징검다리처럼 작가가 머물렀던 장소들이 등장했다 사라졌다 반복한다.
사람들은 옛 것을 대할 때 대개 이중적인 태도를 가진다. 그러니까 옛 것을 그리워하면서 한편으로는 기피하는 습성을 보이는 것인데 그때 그 시절을 추억하는 건 괜찮지만 현재에 재현하는 것은 꺼리는 것이다. 박물관에서 구경하는 건 괜찮지만 구태여 집에 가지고 오고 싶진 않은 무엇이랄까. 결국 추억은 어떤 의미에서 기억의 박제라고 할 수도 있겠다. 향수는 박제한 기억으로부터 얻는 작은 위안 쯤일 것이고. 
작가가 옛 공간을 더듬는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공간과 장소의 의미가 확연하게 구분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러니까 원래는 비었던 공간을 내가 채우면서 장소가 되고, 내가 장소를 떠나는 순간 그곳은 다시 빈 공간이 되지만, 그곳은 이미 예전의 그 빈 공간이 아닌  내 이야기를 품고 있는 곳이며 어느 날엔가 내가 그곳을 찾으면 말을 걸어오는 것이다. "기억해?" 라고.
윤대녕의 에세이는 비유를 하자면 작가의 소설의 뒷풍경을 보는 기분이 들곤 하는데 이번 에세이 역시 그런 느낌을 받는다. 에세이이니 당연히 화자는 '나'지만 읽다 보면 작가의 얘기가 아니라 작가의 1인칭 얘기를 읽는 듯한 기분이 드는 것이다. 그러니까 카메라 밖에서도 배우로 사는 배우처럼 원고지 밖에서도 작가로 사는 작가가 있다면 윤대녕이 그렇지 않을까 싶다. 나는 작가에게 편견이 없으니 이는 전적으로 책 속 병원 에피소드에도 등장하는 "과인이 ~말이외다" 하는 식의 작가의 화법 때문이다.
책을 읽으면서 종종 제목을 확인하곤 했다.

과거의 장소를 다시 찾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단지 한때 내가 점유했던 장소를 확인하는 것이 전부인가? 그렇게 단순한 얘기는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든다. 아마 그것은 지나간 시간의 복기를 통해 꿈의 복원에 다가가고자 하는 쓸쓸한 열망이지 않을까.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