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이는 아주 눈이 컸다. 말이 잘 통하지 않을 때 그 눈은 습관처럼 반달이 되곤 했다. 때로는 못알아들어도 알아들은 척 고개를 열심히 주억거리기도 했다. 강의 시간 그 큰 눈에 물음표를 품고 서툰 한국어로 열심히 해독하지 못할 기호같은 필기를 해대던 그 아이는 우리 학교로 유학온 재일 교포3세였다.  

나는 그 아이가 같은 한국 사람이라는 사실을 자주 잊어버리곤 했다. 아니, 솔직하게 나는 그 아이를 일본인이라고 여겼다. 묘한 이질감과 일본풍의 풍모, 그리고 서투른 한국어들 갈피짬 사이로 우리가 친해질 기회는 요원해 보였다. 졸업을 앞둔 어느 날 나는 그 아이와 단둘이 될 기회를 얻었다. 무언가를 열심히 얘기했지만 다 알아들은 것 같진 않았던 그 아이는 또 활짝 웃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나는 그 때 잠시 그 아이가 같은 한국인이라는 기억을 떠올렸던 것도 같다.   

 

'추방당한 자의 시선'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을 읽고 나서 그 아이가 다시 생각났다. 지금쯤 일본으로 돌아가서 자신의 바람대로 한국어 선생을 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그러고 보니 지극히 요즘 일본 아이 같았던 그 아이가 하필 한국어 선생을 하겠다고 했던 대목도 묘한 대비를 이루며 떠오른다. 왜 하필 한국어 선생이었을까? 다시 이 책을 더듬게 된다. 

원래는 이산을 의미하는 그리스어인 디아스포라근대의 노예 무역, 식민 지배, 지역 분쟁 및 세계 전쟁으로 대부분 폭력적으로 자기가 속해 있던 공동체로부터 이상을 강요당한 사람들의 의미로 확장된다. 식민지배와 제2차 세계 대전, 한국전쟁, 군사정권하의 정치억압 등으로 발생한 코리안 디아스포라가 자그마치 육백만에 육박한다고 한다. 재일조선인인 저자 역시 '의식적인 피차별자'로 살아갈 것을 스스로에게 엄격하게 요구하는 디아스포라다.  

이 책은 그런 저자가 런던, 잘츠부르크, 카셀, 광주 등을 여행하며 각각의 장소에서 접한 사회적 양상과 예술작품을 테마로 현대의 디아스포라적 삶의 유래와 의의를 탐색하고 있다. 그것은 디아스포라의 시선으로 '근대'를 재해석하고 '근대 이후'를 탐구하는 여정이다.   

근대 국가의 틀로부터 떨어져 나가 방랑하는 디아스포라의 삶은 끊임없이 삶의 우연적 굴절과 그것을 통해 눈물흘리며 직시해야 하는 자신의 모습에 대한 회의를 통과해 나가야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방황이 단순한 굴욕주의적 감상으로만 귀결되는 것은 아니다. 런던 교외 공동묘지 마르크스의 묘비는 어쩌면 이 방랑의 길에 하나의 이정표 같다. 

철학자들은 세상을 이런저런 식으로 해석해왔을 뿐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세상을 바꾸는 일이다. 
                                                                                                                           -
마르크스

스물 일곱의 마르크스가 부르짖었던 것처럼 프리모 레비가 얘기했던 것처럼 이 디아스포라적 삶의 다중심성은 근대의 광신적인 내셔널리즘의 그 인위적인 '타자'의 설정과 그것을 향햔 무자비한 배척, 증오를 직시하고 그 틀을 해체하여 더 근원적이고 유연한 휴머니즘으로의 회귀의 물꼬를 트는 것일 수 있다. 이것은 이 책의 출발점이기도 하고 귀결점이기도 하다.  

특히나 재일 코리안 디아스포라의 역사는 한 글자 한 글자 눈물로 들어와 박혔다. 단순히 재일교포로 뭉뚱그려 이해되는 그들의 모습에는  일제 식민치하에서 일본 신민으로 강제 노역에 동원됐다 해방기 갑자기 무국적자로 버려졌다  일본과 남한의 국적을 선택하기를 강요당한 비애가 서려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러했음에도 한국국적을 선택한 이들은 출입국시 번거로운 절차를 거듭 거쳐야 하고 참정권이 없다. 군사정권하 한국으로 유학했던 두 형들이 방북 문제로 투옥되는 고난을 겪은 저자는 과연 자신이 외국에서 위험한 일체 처했을 때 한국이 나서서 보호해 줄지 자신할 수 없다고 했다. 국경이라는 것은 실체적으로 와닿지 않는 느슨한 임의적 경계 같지만 막상 우리는 모국 바깥으로 나가면 그것의 삼엄한 위엄을 실감하곤 한다. 그럼에도 안도하는 것은 우리가 돌아올 곳이 있고 우리를 지켜줄 수도 있다는 막연한 국가라는 개념이 주는 든든함 때문이다. 결국 우리는 인위적이고 조악한 가느다란 경계선에 또 인위적이고 모순과 허점 투성이이지만 결코 버릴 수 없는 개념 하나를 얹어 두고 있는 셈이다. 그것에서조차 거부당한 디아스포라적 삶은 그래서 항상 연약할 수밖에 없다.  

재일 조선인 1세 시인 김하일의 얘기는 그 연약한 삶을 뚫고 나오는 그 처절한 모순적 개념에 대한 근원적 애정을 체현한다. 그는 한센병으로 손가락도 시력도 잃게 된다. 그러니 그가 혀로 점자를 핥아가며 우리의 역사를 읽느라 혀끝이 뜨거워졌다는 대목은 목울대를 울린다. 디아스포라적 삶이 근대의 국가적 개념을 부정하고 그 너머를 지향한다지만 결국 그들은 또 나라로 돌아오고야 만다. 이 책이 가지는 회귀적 모순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회귀를 절통하게 이해할 수 있기에 그 모순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나의 개인적인 비극은 타인의 관심사가 될 수도, 되어서도 안 되겠지만,
그토록 자연스러운 내말, 자유롭고 풍요하고 끝없이 온순한 러시아어를 버리고
이류의 영어를 해야하는 내 설움에 있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롤리타>의 작가가 고뇌했던 것은 그 어린 님펫에 대한 도착적 성애가 아니었다. 바로 이것이었다. 고국 러시아를 떠나 끊임없이 방랑하다 그 방랑지에서 죽어야만 했던 그가 가장 슬퍼했던 대목은 자신의 모어를 버려야 했던 사실이다. 하고 싶은 수많은 얘기들을 1차적으로 자신의 모어의 체에서 걸러 영어로 변환시키는 지점에서 그는 항상 고뇌했다.  

이제 그 아이의 얘기로 돌아와야 할 것 같다. 그 아이도 그랬을까? 그 아이에게 모어는 일본어였다. 저자의 설명을 빌리자면 모어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익혀 자신의 내부에서 무의식적으로 형성된 말"이다. 하지만 그 아이의 모국어는 한국어다. 그리고 그 아이는 자신의 모어를 쓰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모국어를 가르치고 싶다고 얘기했다. 할아버지의 나라쯤으로 여겨지는 모국이 그 아이를 불러낸 그 모호하지만 강렬한 힘은 근대 국가를 세웠던 그 무모하고도 위험한 동인이기도 했다. 디아스포라를 만들어 내고 또 그 디아스포라들을 끊임없이 손짓해서 불러내는 힘. 허구적이고 얄팍하다지만 또 그만큼 강렬하고 처절한 그 힘. 

대체 나라란 무엇이고 국민은 무엇이고 민족은 무엇이란 말인가. 인간의 유한성에 무한의 가능성의 환각을 덧씌운 것이 국가의 개념이자 애국자의 망상이라지만 그것은 끊임없이 우리를 가두고 또 우리를 나아가게도 한다. 이것은 또한 끊임없이 적을 만들어 내는 전쟁의 광신도들을 만들어 내고 그들의 프로파겐다에 차용되어 수많은 디아스포라의 행진을 가속화시킨다. 생산적인 질문들을 만들어 내지만 대안적인 해답이 다원적인 중심성이라는 모호성으로 감침질 되고 마는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 그럼에도 공고한 개념을 마구 흔들어 대는 이러한 독서는 언제나 우리를 살아 있게 한다. 산다는 것은 질문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 질문들에 대한 답은 어쩌면 저 삶의 국경 너머에서 찾아질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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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5-28 0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젠가.. DMB 로 뭔가를 보는데 서경식 교수와 한 서독의 간호사였다가 후에 화가가 된 어떤 분에 대한 다큐가 나오더라고요. 디아스포라.

일본,러시아,독일..등등 그곳으로 가게 된 우리 이웃들에 대한 생각이 잠시 마음에 머뭅니다. 그리고 관동대지진, 강제이주, 간호사들의 차별등 그들은 그런 차별을 너무나 까닭없이 당했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하네요.

blanca 2010-05-28 10:36   좋아요 0 | URL
아, 그런 다큐를 보셨군요. 우리가 잊고 사는 것들을 때로는 되돌아 봐야 할 것 같아요. 저 지금 신경숙쌤의 <어디선가~> 읽다가 바람결이라는 용어 발견하고 거기에 동그라미 쳤어요. ㅋㅋㅋ 뭔가 아주 심오한 의미가 있나 싶어서요.^^;;

비로그인 2010-05-28 1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라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해...내몰리듯 외국으로의 유학을 떠나게 되는 것, 그래서 기러기 아빠를 만들어내는 것...그리고 또 그 이후의....
이것도 이젠 디아스포라라고 표현해야 맞을것 같네요.ㅠㅠ

blanca 2010-05-28 10:37   좋아요 0 | URL
마기님! 맞아요. 유학생들도 그렇게 이해될 수 있을 것 같아요. 고개를 마구 끄덕거립니다. 그런데 마기님 패션 센스 진짜 짱이시네요. 그리고 저도 저런 웨이브 머리 너무 해보고 싶어요. 저는 지독 곱슬이라 무조건 매직입니다용--;;

비로그인 2010-05-28 10:50   좋아요 0 | URL
'트위스트 펌' 인데요, 곱슬머리에게는 딱입니다.
저도 맨날 볼륨매직 했었는데,,,요거 재생시간이 짧잖아요.
ㅋㅋ일부러 유행에 역행하는 게 저의 패션 노하우?랄까요~~푸하하~

blanca 2010-05-28 10:53   좋아요 0 | URL
마기님, 저 그럼 진짜로 트위스트 펌하고 대문 사진에 사자머리 올릴 지도 몰라요. 재생시간 얘기에 완전 혹합니다. 저 진짜 담달에 할까봐요 ㅋㅋㅋ 유행을 선도하시는 것 같은데요.^^

비로그인 2010-05-28 11:10   좋아요 0 | URL
처음 하시는 거니까 좀 굵게 해달라 그러세요.
처음부터 너무 빠글거리면 스스로가 감당이 안되어요.ㅋㅋ
저처럼 가운데 가르마 하시면 더 어울리실꼬예요.
트리트먼트랑 에센스로 잡아주면 이뻐요.

유행 따라가지 않는 것...남들이 하는 건 일단 피하고 보는 것.
그냥 이거다!싶은 때가 있는데, 그 순간을 놓치지 않는 것.
남들의 평가를 너무 무시하면 안된다는 것.
색을 교묘하게 조화시키는 것.
뭐 제 머리속에는 여러가지가 맨날 날아다닙니다만....
제일 중요한 팁은~~
나의 단점을 커버하고 장점을 극대화 시킬 수 있는 노하우를 연구하는 것!
결론적으로... 나에게 가장 어울리는 패션을 잡아라!!!

비로그인 2010-05-28 11:17   좋아요 0 | URL
참~~이 헤어스탈은요, 그 자체가 야~하기 때문에....
다른 부분을 좀 수수하게 매치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엑서세리가 번쩍번쩍하고 화장이 진하면...정말 못봐주거든요.
ㅋㅋ제가 왜이리 참견이랍니까?ㅋㅋ

기억의집 2010-05-28 1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글 너무 멋져요. 디아스포라의 가장 큰 딜레마가 언어였네요. 저도 언어에 대해 많이 생각하는편인데.. 이 글 읽으면 추방당한 자들의 언어에 생각해 볼 수 있었어요. 나의 모국어를 하지 못한다는 괴로움은 어떤 것일까요?

blanca 2010-05-28 10:38   좋아요 0 | URL
기억의집님 그전에 작가의 DNA 글 읽고 얼마나 좋았던지 몰라요. 어디선가 꼭 써먹고 싶은 얘기였어요. 게다가 스티븐 킹이라니.

언어라는 게 진짜 묘한 것 같아요. 아직 저는 이 모국어조차 제대로 이해하고 쓰지 못하는 것 같아요.

마녀고양이 2010-05-28 15: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여, 블랑카님 만큼 리뷰를 쓰면 소원이 없겠습니다.
왜 항상 감탄하게 만드세여? 아하하---

blanca 2010-05-29 14:37   좋아요 0 | URL
마녀고양이님. 제 기분을 업시키는 기술을 가지고 계신듯 해요^^;; 저는 오늘 청소를 아주 열심히 했어요. 그리고 지금은 헤이즐넛 티백 커피를 마시고 있어요. 감기도 많이 좋아졌지만 선거 홍보물을 보다 갑자기 우울해 졌어요. 선거 끝나고 할 얘기가 많아질 것 같아요.

마녀고양이 2010-05-30 10:58   좋아요 0 | URL
블랑카님. 저는 선거에 엄청나게 야당이 패하면, 2년간 뉴스도 안 보고 정치판 이야기도 안 하려고 마음먹고 있습니다. 머....... 고민한다고 변할게 없으니 당분간 묻는 수 밖에요. ^^

꿈꾸는섬 2010-05-28 2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블랑카님의 글을 보며 늘 어쩜 이리 짜임새 있게 구체적으로 게다가 감동까지 주는 글을 쓰실 수 있을까 늘 부럽습니다.^^

blanca 2010-05-29 14:38   좋아요 0 | URL
꿈꾸는섬님, 정말 감사합니다. 꿈꾸는 섬님 가족도 저희 가족도 항상 건강하기를 바랍니다. 온통 감기가 헤집고 가니 가족들이 다 골골합니다.

프레이야 2010-05-29 1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롤리타, 모국어에 대한 나보코프의 구절들이 인상깊었던 책이에요.
요즘 전 언어를 다시 잘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이건 뜬금없이 좀 다른 얘기지만요,
사랑하는 사람의 언어를 배워라고 하는 아랍의 격언이 있답니다.
우리는 타자의 언어를 왜 이리 잘 알아듣지 못하는 걸까요.
오해, 갈등, 싸움.. 아, 그게 따지고 보면 언어의 문제가 아닐까요.

blanca 2010-05-29 14:39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 맞아요. 언어! 얼굴 맞대고 조목조목 설명해가며 얘기해도 결국은 오해만 남는 경우도 있고. 그래도 이런 언어가 있어 프레이야님과 좋은 인연도 맺을 수 있는 거니까 감사할래요.^^
 

MBC에서 방영한 법정 스님 관련 스페셜의 아련한 잔상과 오월을 머금고 돌아온 아카시아 향기가 만들어 준 고적한 밤.
 

인간의 미덕에 대한 최후의 마지노선마저 무너뜨린 나치점령하의 집단수용소에서 살아 돌아온 자들의 얘기를 들었다.
남의 불행을 자신의 안온한 행복의 거름으로 당겨쓰는 행위를 제일 치사하다고 생각하건만 아카시아 향기가 수런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지금' 행복하다고, 살아있는게 좋다고 느꼈다. 그리고 진심으로 미안했다.

 

행복하여라, 훌륭한 아파트나 누추한 오두막집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여!
행복하여라, 사랑하는 사람들을 가진 채, 홀로 앉아 꿈꾸고 울 수 있는 사람들이여!
행복하여라, 형이상학적 문제를 두고 스스로 마음을 괴롭히고 있는 사람들이여!......
행복하여라, 타인의 돌봄을 받는 환자들이여! 그리고 그들을 돌보는 자들이여,
그리고 또 행복하여라, 그대들이야말로 얼마나 행복한 사람들이냐,
병원의 침대나 저택에서 정상적인 생을 누린 끝에,
정상적인 죽음을 맞는 사람들이여!
-마우렐(본문 중 인용) 

추억으로 아로새겨진 과거를 의식적으로 망각하고 감히 내일을 떠올리지도 못한 채 엄혹한 참경을 직시하고 같은 인간이 행하는 패악들을 견뎌나가 마침내 그것들을 증언하기 위해 돌아온 자들의 얘기다. 마흔에 요절한 저자 테렌스 데 프레가 나치와 소련의 강제 수용소에서 살아 돌아온 자들의 증언을 채집하고 그것을 문학적, 심리학적, 철학적으로 재구성한 역작은 34년이나 삶의 지주로 이 책을 품어왔던 역자의 노고에 힘입어 한층 빛난다. 암투병중인 역자는 이 책의 서문만 세 번을 쓴다고 했다. 유신의 군사체제하 햇병아리 수습기자로 처음 접하게 된 이 책은 그의 삶의 굴곡직 서사를 돌아와 아직도 살아있다,고 자신을 표현하기에 이르른 현재에 이르기까지 스스로를 버티게 한 힘이었다고 한다.  

 

자신의 기록을 보존하려는 욕망처럼 강한 것은 없다 

살아돌아온 자들은 강렬한 증언의 욕구를 얘기했다. 고통의 아로새겨짐은 본능적으로 그것을 세상을 향해 토해내기를 부추겼다. 질병. 궁핍 속에서도 이 시기의 모든 일들을 자세히 기록하려는 움직임이 광범위하게 일어났다고 한다. 심지어 만오천 명을 하루에 처형한 트레블랑카 집단 강제 수용소에서는 그곳의 기억을 보존하고 참상을 세상에 증언할 한 두 사람을 세상밖으로 내보내기 위하여 폭동이 일어났다. 산 자는 죽은 자들에 대하여 빚진 바를 청산하고 그들을 자신을 통해 복원해내려고 몸부림을 쳤다. 그들이 증언하려고 하는 대상으로서의 이 세계가 그들이 고발하려고 했던 조건의 일부였다는 사실은 이 증언이 가지는 시사점을 보여준다. 증언은 곧 문명의 전진이 어떻게 생명의 존귀함을 교묘하게 짓밟을 수 있는지에 대한 통렬한 자기비판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진실을 얘기하려는 것이 일차적인 본능이라면 이 본능은 결과론적으로 이 지향하는 세계와 살고 있는 세계의 그 간극을 직시하고 나아가야 할 바를 모색해야 하는 인류의 각성을 촉구하는 것이다. 

 

하루도 빠짐없이 씻는 데 실패한 자는 죽는다. 

신체의 생리적인 작용을 학대와 조롱의 대상으로 의도적으로 이용했을 때 인간의 존엄성이 어떻게 무너지는지에 대한 참혹한 보고의 대목이다. 또한 그럼에도 끊임없이 자신의 내부에서 뚫고 나오는 체면을 지키고자 하는 마지막 저항이 어떻게 생의 의지로 승화되고 결과론적으로 생존의 승률을 높이는지에 대한 통찰은 놀랍다. 극한 상황에서는 신체와 정신의 구분이 모호해지고 자신의 모습을 관리하지 않는 것이 곧 엄혹한 현실을 직시하고 뚫고 나가지 못해 죽음으로 치닫게 되는 도화선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물론 이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저마다의 고통의 시기를 지나가게 된다. 이 기간은 흔히 자신의 신체를 돌보지 않고 혹은 학대하기 쉬워진다. 심적인 위기에서 육체는 하나의 거추장스런 부산물로 치부된다. 그러나 극한 상황에서는 되레 심신의 구분의 철책이 무너져 묘한 상호순환성을 획득하게 된다는 깨달음은 우리가 처할 위기 상황에서 스스로를 어떻게 관리해 나가야 하는 지에 대한 강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슬프고 괴롭다고 부스스한 모습으로 술과 담배로 육체를 학대하는 것이 상황을 더 악화시킬 수 있음을 기억해야 겠다. 화장실에 갈 최소한의 자유도 얻지 못한 채 용변을 서서 흘리고 다녀야 했던 그들도 매일 세수를 하고 신발끈을 묶으며 외모를 가꾸었다는 것을 기억하자. 그리고 그런 자들은 살아 나왔다. 

 

그럼에도 살아나가야 한다는 생의 의지의 촉발 

재소자들이 초기의 수용소 생활을 접했을 때 받은 충격이 자아의 붕괴로까지 이어진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 해체와 붕괴는 상당 시간이 흐른 후 다시 통합과 회복으로 승화되는 신비로운 메커니즘을 보여주었다. 죽음이 사방에서 넘쳐 흐를 때 사람들은 절망의 심연에서 생의 의지를 회복했다. 특히나 제대로 먹지도 싸지도 자지도 못하는 상황 속에서도 별이 총총하던 어느 날 밤, 한 노인이 구슬프게 불렀던 노랫소리에 다들 귀를 기울이며 감동받아했던 체험을 얘기하는 생존자의 증언은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끝까지 보존되는 인간의 아름다움에 대한 하나의 메타포 같다. 

 

생명은 생명을 먹고 산다 

수용소에서의 집단 생활은 아귀다툼을 연상하게 한다. 서로를 불신하고 배척하고 배신하고 짓밟는 참경들. 그러나 여기에는 기적이 있었다. 우리가 예상했던 카오스와 아노미는 결코 나타나지 않았다. 살아남는다는 것은 어떤 개인의 요행이 아니라 집단적 성취였다. 점호시간 쓰러지면 총살이었다. 그러나 비척대는 재소자는 앞뒤로 받쳐주는 이들 덕택에 죽지 않을 수 있었다. 심지어 생일날 자신의 자리에 사과와 낡은 칫솔을 누군가가 선물로 두고 가기도 했다. 그들은 서로를 지켜주며 버텨냈다. 인간다움을 나타내는 무수한 작은 아름다운 모습들이 연출되었다. 벌겨벗겨지고 머리를 박박 깎고 오물이 엉긴 몸으로 그들은 서로 빵을 나누어 먹고 어린이들을 끝까지 온전하게 지켜내었다. 이 지옥에서 그들은 주린 배로 질서를 짜 나가고 있었다. 인간의 연대는 요원하거나 이상적인 지향이 아니었다. 생명 간에 열린 틈을 따라 끊임없이 흐르는 배려와 지지가 인간의 존엄을 사수하는 것이다. 우리들의 비극적인 운명이 우리를 거대한 하나의 가족으로 결합시켰다는 생존자의 증언은 가슴께를 둔중하게 울린다.  

 

살아남는다는 것의 의미 

집단 강제수용소의 체험은 정신분석학적, 행동주의적 해석이 주류였다. 그러나 저자는 이런 시각은 지극히 1차적인 적응에 대한 단편적인 해석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유아적 퇘행 등으로 설명되는 이 대목은 그들이 2차적으로 통합,보수,극복의 모습으로 승화되는 과정을 간과한 것이다. 땅에 밀착하고 생존 그 자체로 집결되는 그 의지들의 출현에 복잡다단한 의미를 덧붙이는 것도 경계한다. 생명이란 그저 우리의 몸속에 있는 원형질적 자기 보존력인 것이다. 숨쉰다는 것이 가지는 그 단순한 마력이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우리는 살기 위해 분투한다. 

 

집단수용소 자체의 해석 

이 책이 훌륭한 것은 재소자들의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가해자, 집단수용소 자체의 출현에 관한 통찰력 있는 고찰이 있다는 것이다. 집단 수용소가 인류의 예술, 문학,신학 가운데 악마적 요소를 추출하여 신중하게 재현한 것의 사례로 제시되고 파괴,고통, 상해와 모독을 향한 극단적 상상의 정당화,합법화의 가장 잔인한 예시로 해석되는 것이다. 두렵고 패악스러운 것들을 꿈꾸면서 어느새 그것을 현실 속에 재현하는 데에 무감각해지는 모습은 소름끼친다. 또한 죽음을 강하게 부정하고 육체와 정신을 분리하여 인식하고 고차원적이고 형이상학적 가치를 지향하는 문명의 발달이 인간 그 자체의 명징한 생명력에 대해 무의식적으로 기피하는 결과를 낳지 않았는 지에 대한 지적은 날카롭다. 우리는 몸을 상품화하면서도 비하하는 묘한 딜레마의 질곡으로 묶어 버렸다. 이미지화되어 소비재로 탈바꿈시킨 몸은 인간 그 자체를 도구화하는 결과를 낳지 않았는 지 짚어볼 일이다. 아름다운 몸을 숭상하는 것이 그 몸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존중하는 것과는 동떨어져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지 않은가. 지독한 다이어트로 죽음에까지 이르는 사례들은 하나의 예증 같다.  

 

살아 돌아온 자들이 남기고 간 메시지

우주의 다른 모든 것은 하향 운동을 하는 반면 생명만이 상향운동을 한다고 한다. 생명에 대한 갈구, 삶에 적합한 어떤 소질 같은 것은 선험적으로 주어져 있으며 생명 자체에 원형 보존력이 내재되어 있다는 얘기는 우리가 죽음을 통과하여 살아 남아온 생존자들을 통해 터득하게 되는 하나의 거대한 메시지다. 자크 모노는 모든 살아있는 하나의 생명체는 하나의 화석이며 그 내부 단백질 입자 하나 하나마다 조상의 자취가 남아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우리의 몸 속에도 지옥을 뚫고 돌아온 생존자들의 핏자국이 남아 있을 것이다.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생명은 끈질기게 공생하고 살아남고야 만다. 그 존귀함을 또렷하게 응시할 때 인간이 인간을 어떻게 인식하고 대우해야 할 지에 대한 단순한 해답을 알아차리게 된다.  

순간 순간 우리는 행복감을 가슴 깊이 들이마실 수 있다. 타인의 고통을 덜어 내어 내 가슴 깊은 곳 작은 여백에 눈물을 채울 수 있다. 그게 지금 살고 있는 우리가 끝내 죽어간 자들, 그럼에도 살아 돌아온 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생명은 생명을 덜어 먹고 사는 것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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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0-05-24 1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 이번에 학교 과제물 때문에 집단 심리에 대해서 공부를 좀 했어요. '악의 평범성'이란 단어가 눈에 들어오더군요. 우리처럼 평범한 누구라도 압력과 분위기가 조성되면, 조종당하여 악과 범죄를 저지른다는 거여염. 그런데 소수의 사람들 만이 그에 저항하여 선을 행한다는거지요. 집단 수용소의 피해자는 그 반대겠죠. 살아남고자 거기에 집중한 사람만이 살아남는다는거죠? 참 대단하고 존경스러우면서도 죄스럽습니다.

우리는 현재 무의식적으로 어떤 집단에 수용되어 어떤 피해자를 만들고 있을까요?

blanca 2010-05-24 18:35   좋아요 0 | URL
마녀고양이님. 집단심리라는게 그렇게 무서운 거라니.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이 있다는 것만으로 소름이 끼칩니다. 희망을 가지고 그래도 내일은 있다고 믿고 그렇게 살아나가야 겠지요. 오늘은 감기에다 인터넷만 보면 심란하고 화나는 소식에 날씨까정. 아주 대박입니다.-..-

마녀고양이 2010-05-24 19:21   좋아요 0 | URL
아아.. 블랑카님이랑 나랑 전생에 쌍동이 아니었을까요?

저도 동일한 이유로 대박입니다, 오늘. 감기 몸살 + 뉴스 승질 + 개인적 화나는 소식 + 날씨 짬뽕.
액땜이나 하러 어디 한번 가야겠군요, 둘이~ ^^

blanca 2010-05-24 22:41   좋아요 0 | URL
마녀고양이님. 저는 게다가 말안듣는 아기까지--;; 약먹고 헤롱대는데 밖으로 나가자고 한바탕 울어대는데 분노의 게이지가 급상승하더라구요. 아, 진짜 여름에 한번 얼굴 보며 얘기좀 해야 할까요?^^;;
 

나는 그 때 지독한 육아 우울증에서 질척거리고 있었다. 하나의 너무 무기력한 작은 사람 하나를
코알라처럼 몸에 붙이고 다니며 쪽잠마저 황송하게 여기며 하루하루를 견디며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처절하게 깨달아 갈 무렵 그 사람은 축축한 눈가를 예의 그 하회탈의 주름으로 감싸며 행복하다,고 했다. 

나는 그 행복하다,는 말에 울었다. 행복하지 않은 내 자신을 절망하거나 그를 질투해서가 아니였다.
진심으로 행복하다,고 말하는 그의 후반의 삶의 시작이 감동스러웠기 때문이다.
퇴임대통령이 그리는 새로운 지도가 신기루처럼 눈앞에 떠올랐다.  

그리고 그는 죽어 버렸다. 아이는 많이 컸다. 달리는 아이를 쫓아다니며 나는 또 울며 다녔다.
아이를 업은 두 엄마가 함께 울었다. 눈물을 흘리고 다니니 웃는 사람이 다 미웠다.
웃으면 안돼, 정말 그러면 안돼는 거야,라고 타인의 감정까지 강요하고 다니는
내 자신이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서 또 울었다.
많이 행복하다던 그가 스스로 삶의 마침표를 찍었다는 그 외형적 사실 밑에 가라앉아
미처 움트지 못한 수많은 가능성의 씨눈들이 아까워 진저리를 치기도 했다.   

벌써 그런지 일 년이 다 되어 간다. 아이는 이제 말대꾸를 한다.
자꾸 왜냐고 묻기 시작했다. 나도 왜냐고 묻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아지는데
그것조차 어쩌면 허용안되는 그 분위기가 치사스러워서 웃음이 난다.  

언제 가장 그리우세요? 

밤에 혼자 숙소로 돌아갈 때 ...여기 일교차가 큰 날은 물안개가 짙거든요. 가로등 불빛에 몽환적인 분위기인데...문득 누가
등을 툭 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그런 느낌이 드어서 자꾸 뒤를 돌아보게 돼요
<...> 소 같은 눈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다. 취재수첩을 덮었다. 

-한겨레 21 제811호 <그는 가고 뜻은 남았다>중 인용  

대학 농활 때 거머리가 무서워 논에 들어가지도 못했던 김전비서관은 이제 홈페이지에 농군일기를 올린다.
양복을 입고 책상에 앉아 문자로 세상을 이해하고 조직화했던 그가 이제는 논에 오리와 우렁이를 풀어놓으며
세상을 직접 만지고 더듬으며 새로 배워 나가고 있다. 그의 상관은 그의 기안서류에 서명을 해주는 대신
그의 가슴 속 상흔으로 결재를 해 준다.   

여름이면 늦반딧불이가 황홀하게 귀환한다는  그곳에 정작 그것들을 불러모으고
저편으로 저물어 버린 그가 또 그리워지고 만다. 
비겁하고 말뿐인 진보는 언제나 흘러넘치는 감정에 질식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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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0-05-19 1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죠. 진보는 항상 흘러넘치는 감성에 질식하고 만다는 표현, 딱 맞아 떨어지는거 같아요.
어째 블랑카님 요즘 쳐진거 같아요? 나도 그런데...
우리 둘 다 흘러넘치는 감성을 감당하지 못 하고 있는 걸까요? 요즘 같아서는 미칠거 같아요.
그래서 내 주문을 걸며 날씨 탓을 하며 뉴스 탓을 하며 별 짓을 다하는데,, 빠져나오기 힘드네요.

노대통령 1주기네요. 그분이 그립습니다.

blanca 2010-05-20 13:40   좋아요 0 | URL
저는 대체로 쳐져요 ㅋㅋㅋ 벌써 1주기예요. 세월 너무 빠르죠? 마녀 고양이님도 저도 다 행복하다고 즐겁다고 자기주문을 걸면서 그렇게 살아가야되겠죠? 그런데 투표결과보고 더 기분나빠지면 어떡할까도 싶어요^^;;

2010-05-20 09: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5-20 13: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기억의집 2010-05-20 21:46   좋아요 0 | URL
ㅋㅋ 저는 제가 남매를 둔 사람으로서 장점을 말해볼께요. 일단 어느 정도 키워놓으니깐 둘이 놀더라구요. 전 거의 책 읽어주는 것 이외에는 애들사이에 잘 안 끼어들어요. 둘이 잘 노니깐...애들이 놀다가 잠깐 잠깐 불러 제낄때가 있는데 그 때 응해주는 척 하죠.
하지만 엄청 싸우기도 해요. 장난 아니여요.
단점은 진짜 돈 많이 들어요. 흑흑 오늘 우리 월급날인데..학원비 제하고 뭐 했더니 겨우 현금 삼십만원 쥐나봐요. 전 학원 많이 보내는 것도 아닌데 그래도 70만원 넘게 깨져요.돌아버리죠. 아들한테만 50이고 딸애가 이십오만원이에요. 아들애는 방학중에는 미술 좀 보내달라고 하는데 일단 보내주기로 했는데 학원비 13만원을 어디서 쪼개야할지 모르겠어요.
저는 애 낳지 말라고 해요. 어차피 크면 따로 노는데 궂이 형제애를 강조하고 싶지 않더라구요. 전 언니하고 친했는데 애 어느 정도 크니깐 거의 연락 안 하고 살게 되더라구요.
오히려 여기 블로그에서 친하게 지내는 분들하고 자주 연락하고 자주 만나요.
저의 고민도 거의 다 블로그 지인들에게 터 놓게 되고.
블랑카님, 애 낳을려면 터울 없이 낳으세요. 같이 놀게 하려면 터울 없이 낳는 게 좋더라구요.
하지만 저는 저의 아이들한테도 애 낳으란 말은 하고 싶지 않아요. 부부끼리 여유롭게 즐기며 사는 것도 나쁘지 않는 거 같아요. ^^ 너무 현실적인가요!

2010-05-20 21: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5-20 16: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5-20 21: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무서운 여고생들은 미남자에 탐닉했다. 여기에서 무서운 여고생들이란, 용수철처럼 탄성 있는 지독한 곱슬머리, 혹은 눈이 빙글빙글 돌아가고 원래 눈의 이분지 일 크기도 안보이게 하는 독한 근시렌즈의 안경, 무쇠 같은 종아리 중 어느하나라도 지녀 존재감을 빛내는, 그러니까 전혀 은교 같지 않은, 롤리타의 백만분지의 일도 안닮은 그런 여고생들을 뜻한다.  물론 그녀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눈부신 반전을 몸으로 이루어냈다. 그래서 그녀들은 자신들의 과거가 담긴 사진을 죄악시한다. 누군가가 그 사진을 싸이에라도 나도 친구좀 있었다며 올린다면 바로 그것때문에 늙어도 이지메를 당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  

쩡! 쩡! 봤냐! 봤어? 역시 그녀는 그 날 아침도 다크호스 소식을 물어왔다. 스탠바이미, 쥑인다. 리버피닉스! 환장한다!
<스탠 바이 미>는 나에게도 특별한 추억이다. 초등학교 5학년때 개봉한 셈이었지만 한참이나 지나 비디오로 접하고 그 밤을 지새웠을지도 모르는 나의 절친은 영화 그 자체보다는 그 영화에 등장했던 어린 리버피닉스의 아우라에 굴복했다. 보지 않고도 하도 얘기를 많이 들어 지레 물렸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지금도 내가 그 영화를 정말 봤는지 봤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인지를 확신할 수가 없다. 

그래도 여전히 나는 <스탠 바이 미>를 떠올리면 그 무서웠던, 무모했던 지독한 장난꾸러기 여고생 4인방들이 떠올라 미소짓게 된다. 그 때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여전히 그녀들은 친하다. 목소리도 작아지고 웃음도 줄고 스티븐 킹이 얘기했듯이 단순한 설렘도 점차 잃어가면서. 그래, 설렘의 순간이 줄어든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감정의 외줄타기의 그 곤혹스럽지만 황홀한 스릴은 점점 희미해져만 간다.

 

빅맥 햄버거와 감자튀김의 문학적 등가물이며 평론가들이 개똥으로 안다는(그 자신의 표현이다.) 소설을 쓰는 스티븐 킹은 <유혹하는 글쓰기>로 만났었다. 글쓰기의 그렇고그런 작법이나 너절하게 늘어놓는 진부함대신 사실 그 자신의 문학적 자서전으로 재기와 말발이 용솟음치는 정말 사랑스러운 책이었다. 너무 재미있어서 책을 읽다 울기도 했다. 요즘같이 문자 텍스트가 천대받는 풍조에서 글만으로 독자를 미친듯이 웃길 수 있는 것은 정말 대단한 재능임에 틀림없다. 한편 이 책은 그 자신에 대한 하나의 선입견을 공고하게 하는데 일말의 책임이 있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부사로 덮여 있을 것이라고 독설을 뿜고 진부한 플롯이나 문체에 치중하는 작품을 과도하게 비난하는 모습은 역설적으로 그 자신이 어떤 예술적인 성취에 대한 열등감이 있지 않나, 하는 추측을 몰고 오니 말이다. 그는 허술한 반전에 걸핏하면 등장인물을 죽여대며  그렇고 그렇게 독자를 속여먹어 부자가 된 작가로 오인받을 여지를 남겨두었다. 그리고 나는 속았다. 그의 그런 작위적 허풍에. 그는 자신이 느끼는 것보다 더 훌륭하다.  

그가 중편의 작품들을 독립 출간할 기회를 벼르다 드디어 네 편을 두 권으로 묶어 내놓게 되었다. 그리고 이 네 편은 그가 단순히 공포물 작가가 아님을 방증한다. 그의 작품이 개똥으로 폄하될 이유가 없음을 강변한다. 이 두 권을 아우르는 타이틀 사계 중 가을, 겨울에 각각 속하는 '스탠 바이 미'와 '호흡법'을 거의 단숨에 다 읽고 나머지 봄,여름편을 같이 구입하지 않은 것을 통탄했다. 여기에는 그 유명한 '쇼생크 탈출'의 원작이 실려있다.  

제일 중요한 일들은 제일 말하기도 어렵다,로 시작하는 '스탠 바이 미'는 그의 자전적인 작품 같다. 서른 네 살 베스트셀러 작가의 늙어가는 몸뚱이 속(너무하잖아. 겨우 서른 네 살인데.)에 잠들어 있던 열두 살의 '나' 고든 라챈스의 그 여름을 복기해 나가는 얘기다. 그 여름, 열두 살에서 열세 살로 넘어가던 그 찌는 듯했던 여름, 죽은 형의 존재감 속에 부유하는 '나'는 블루베리를 따러 나갔다 실종된 레이 브라워라는 아이의 시체를 세 명의 친구들과 함께 찾아 나서게 된다.

1960년 여름, 그들이 철길을 따라 간 길은 하나의 의식과도 같았다. 왜 하필 캐슬강 교각 위에서 기차를 간발의 차로 피하며 건너는 그 무모한 경로를 택했는지, 곧죽어도 두 개의 선로 위를 고집했는지를 한참 후에야 의아해하면서도 그래서 그 대단찮은 여행이 대단한 것으로 변모했음을 깨닫는다. 그 시절에는 항상 어리석고도 과감하고도 우직한 길을 선택한다. 나중에는 항상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그런 길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선택으로 되돌아 갈 수 없는 전진을 했음을 안다. 그건 성장이다. 꼭 그 길이 아니었어도 됐었을 것이라고 깨닫는 순간 그 길을 고집했던 치기와 미숙함은 저멀리 흩어져 간다. 그 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같을 수 없음을 깨닫는 순간은 언제나 씁쓸하고 알딸딸한 슬픔이 치밀어 오른다.

결국 그 불쌍한 아이의 시체를 두고 갑자기 차를 타고 편하게 오는 반칙을 한 형들과 서로 접수하겠다고 다투는 장면이 연출된다. 그러다 결국 누구도 그 시체를 접수하지 못한다. '나'는 그 아이를 보며 아무것도 할 수 없고, 하지 않고, 안 하고, 못하고, 해서도 안 되고, 하려고 하지도 않고, 하려고 해도 못하는 죽음에 대해 섬뜩한 이해를 가지게 된다. 과거를 이해하고 죽음에 대비하기 위하여 소설을 쓴다는 그의 고백이 이해되는 대목이다.  

별볼일없는 하층민 집안의 아이로 없어진 우유값의 도둑으로 지목되고 대학진학반의 천덕꾸러기로 낙인찍혔던 크리스가  그 아이의 시체가 '우리 거'였어 라고 얘기하는 대목은 그가 갈망했던 것이 결국 어른들의 이해와 존중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것들이 잘해나가는 아이들한테만 정당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잘해나가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더 절실함을 호소한다.이 은근히 진중하고 의젓한 아이는 미래의 유명작가가 될 '나'에게 이런 아름다운 조언을 한다. 이 대목은 정말이지 더없이 문학적이다. 개똥이라니! 

네가 그렇게 소설을 쓸 수 있는 건 하느님이 재능을 주셨기 때문이야. 이건 하느님의 말씀이야.너한테는 이걸 주겠다. 꼬마야. 잃어버리지 마라. 그런데 누가 돌봐주지 않으면 아이들은 뭐든지 잃어버리기 마련이야. -p.180 

이런 친구가 물 속에서 나를 아무리 끌어내릴지라도 결국 같이 살기 위해 그의 소망을 나의 일부로 받아들임은 당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넘어가는 햇빛에 반사되어 빛나던 철로를 다이아몬드가 박혀 있는 것으로 묘사했던 작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역시 이 책에도 그 보석처럼 군데군데 빛나는 통찰들이 박혀 있다. 특히 글쓰기에 대한 적나라한 자기고백, 삶에 대한 깨달음들. 

내 경우에는 글쓰기는 언제나 섹스를 대신하고 싶어 하지만 언제나 섹스에 미치지 못하는 어떤 것이다. <...>지금은 글을 쓰는 것이 나의 직업이다. 그래서인지 즐거움이 조금은 줄어들었고 자위행위처럼 죄책감이 섞인 이 쾌감이 내 머릿속에서 인공 수정처럼 냉정하고 분석적인 이미지와 결합되는 일이 점점 더 많아진다. 다시 말하자면 출판 계약서에 명시된 규칙과 규범에 따라 사정을 하게 되는 것이다.-p.151

그가 끼적인 소설을 누군가가 보려고 했을 때 적극적으로 제지하지 않았던 경험을 회고하는 대목은 글쓰기가 가지는 그 은밀하지만 이중적인 즐거움을 얘기해준다. 글을 쓰는 행위는 지극히 사적이고 비밀스럽지만 또 단 한명의 독자라도 염두하게 되는 모순적인 행위다. 또 그 점이 글쓰기가 가지는 아주 독특한 매력이기도 하다. 나 혼자서만 간직하고 싶으면서도 또 공유하고 싶기도 한.  

이 무모하고 약간 괴기스럽기도 한 탐혐이 이 작품의 전부는 아니다. 그 탐험의 와중에 친구들을 거의 미칠 정도로 매혹시킨 작가지망생 소년의 기가 막히게 재미있는 작품 두 편도 감상할 수 있다. 특히나 블루베리 파이 먹기 대회의 반전을 다룬 액자 소설은 또다른 수확이었다. 스티븐 킹은 문자 텍스트로 영상 이미지를 띠워 올리는 특출난 재능을 가진 것 같다. 축 늘어지기 쉬운 문자들에게 쭉쭉이를 시켜줘서 신나게 뛰어다니게 한다. 독자는 그러니 지루할 틈이 없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서스펜스는 영화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게 아니다. 그의 소설에서는 이런 추체험이 가능하다.   

 함께 실린 <호흡법>은 그가 공포작가로 찍히기를 주저하지 않고 이 중편집에 실은 유일한 작품이다. 우연찮게 노년의 남성들의 기묘한 클럽에 들어가 그 멤버중 한 명이 산부인과 의사시절 환자로 만났던 미혼모와의 얘기를 듣게 되는 구도로 진행되는 얘기는 섬뜩하면서도 흥미진진하다. 그 아름다운 미혼모가 순산을 도와주는 호흡법을 열심히 연습하며 사회적 편견들을 헤쳐나가다 맞게 되는 비극적인 최후는 스릴러처럼 흐르려던 작품의 기류를 하나의 처절한 비극적 아취로 마무리지어 주고 있다. 그러니까 의지의 겨울, 인간의 의지가 무력하지만은 않음을 모정을 통해 보여준다.  

스티븐 킹이 알고 있는 가장 따뜻한 마법, 우리의 마음을 짓누르는 현실을 잠시나마 잊어버리고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따뜻한 곳으로 가는 그 환상적인 체험을 하고 오는 길, 주인공 고든 라챈스의 바람은 나의 것이기도 했다. 

내 마음의 일부는 언제나 6월처럼 거의 9시 반까지 하늘 한 구석에 햇빛이 어슴푸레 남아 있기를 기대하는 것 같다.
                                                                                                                                              -p.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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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0-05-10 2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탠 바이 미> 영화를 못 봤답니다. 그런데 4월 행사로 DVD 세일을 하는거여여..
그래서 냉큼 장바구니에 넣어놓고, 지나친 구매에 대한 반성의 의미로 며칠을 미루었어요...
그 사이에 홀랑 품절 되었답니다. 으흐흑...

blanca 2010-05-11 18:00   좋아요 0 | URL
아, 그랬던 거였어요? 저는 품절된 상태만 봤는데 그랬군요. 지나친 구매에 대한 반성의 의미 ㅋㅋㅋ 저도 자숙과 반성기간을 가져야 할 것 같습니다. 또 무슨 책을 주문했는지 기억 못하는 상태로 치닫고 있답니다. 무서워요, 제 자신이--;;

L.SHIN 2010-05-11 1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군요. 추천을 2개 주고 싶은데.

"네가 그렇게 소설을 쓸 수 있는 건 하느님이 재능을 주셨기 때문이야. 이건 하느님의 말씀이야.너한테는 이걸
주겠다. 꼬마야. 잃어버리지 마라. 그런데 누가 돌봐주지 않으면 아이들은 뭐든지 잃어버리기 마련이야."

생각해봤습니다. 나를(재능을) 돌봐주는 것은 수 많은 책들과 알라디너들의 이야기들 때문은 아닌가 하고.
나를 키운 것은 책이 5할이었어요.

blanca 2010-05-11 18:01   좋아요 0 | URL
L.SHIN님 8할이 아니라 5할이라고 하시니 그 나머지가 더 궁금해집니다. 저도 이 대목을 읽으며 괜히 뭉클하더라구요. 저는 잃어버리지 않았나 싶어서요--;;

순오기 2010-05-11 2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티븐 킹은 참 매력적인 작가예요~ 결코 공포작가로만 기억하면 안되겠군요.

blanca 2010-05-12 14:12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 저는 정말 몰랐어요. 그렇고 그런 작가인 줄만 알았는데 자녀분들이 좋아한다고 하셨죠? 참, 좋은 작가인 것 같아요.

순오기 2010-05-13 00:53   좋아요 0 | URL
우리 애들은 스티븐 킹 많이 읽었어요.
나는 책을 빌려오거나 사주기만 하고 '유혹하는 글쓰기'외에는 제대로 안 봤지만, 영화는 제법 봤어요.^^

穀雨(곡우) 2010-05-12 0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학다닐 때 스티븐 킹에 빠져 한 동안 헤어나지 못했던 기억이 가득합니다.
그런데, 순오기님 말씀처럼 공포스릴러 작가로만 기억하면 스티븐 킹의 한면만을
보는 일이네요.

blanca 2010-05-12 14:13   좋아요 0 | URL
곡우님 그러셨군요. 저는 대중소설적 재미만 추구하는 작가인 줄 알았어요. 좀더 일찍 알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네요.

순오기 2010-05-13 1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말은 글샘님이 전공이시니 관련 책도 많이 보셨을 듯합니다.
저는 어린이 책은 몇 권 봤지만 일반인을 위한 책은 달랑 '건방진 우리말 달인' 하나 봤거든요.^^

blanca 2010-05-14 16:42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순오기님 오늘 날씨 정말 너무 더워요. 근처 공원에 갔다 땀으로 온몸이 흠뻑 젖었답니다.

후애(厚愛) 2010-05-15 06: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은 왜 하나밖에 안 될까요... 속상해~ ㅜ.ㅜ

주말 행복하게 보내세요~ ^^

blanca 2010-05-16 16:55   좋아요 0 | URL
후애님, 주말이 거의 다 저물었네요. 벌써 초여름 날씨 같아요. 행복하게 보내셨죠?

후애(厚愛) 2010-05-17 08:16   좋아요 0 | URL
이곳은 아직 일요일 오후에요.
조용히 잘 보내고 있어요.^^

2010-05-16 19: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5-17 16: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기억의집 2010-05-18 1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탠바이 미에 나왔던 리버 피닉스를 알고 있는 십대들이 몇 명이나 될까요? 스탠바이미는 우리 세대를 위한 책이 아닌가 싶어요.

blanca 2010-05-18 16:42   좋아요 0 | URL
기억의 집님, 그럼요. 그 책을 읽고 정말 꿈을 꾸는 느낌이었어요. 다시 그 시절로 귀환한 듯한. 그리고 리버 피닉스는 바로 그 모습 그대로 정지되어 있고요. 스티븐 킹에 대하여 과연 책이나 많이 팔아치우는 싸구려 작가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원서로 읽어보고 싶어졌어요.
 
[뒷북] 책의 날 기념, 10문 10답 이벤트!

하늘은 께느름한데 모처럼 가디건을 벗어던지고 싶다고 느꼈으니 날씨가 좋았다고 눙칠 수 있을 지경이다. 그 정도로 파란 하늘과 샤방샤방한 날씨는 이 해 들어 거의 볼 수가 없었다. 어린이날 전날 지독한 콧물 감기와 배려받지 못한다는 자괴감은 하늘을 찔러 한 마디로 구린 하루였다. 예전에는 귀엽고 ㅋㅋㅋ 젊었으니 우울하다면 돌봐주는 사람도 몇 있었건만 나이들고 아줌마 되니 누구하나 내 우울에 관심 기울여 주는 이 없다.-..- 근처 대학교가  두 개나 있는데 그 아이들의 젊음을 보면 눈이 부시고 슬며시 질투가 난다. 아놔~이렇게 나이들어 가나 보다. 스무살 적 스물 아홉살을 보고 정말 절망적인 나이다,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내 나이의 아줌마에 대한 기억은 없는 걸 보니 아예 사정권밖으로 치워버렸었나 보다. 그러니 10문 10답이나 하련다.

 

1. 개인적으로 만나, 인생에 대해 심도 있게 대화를 나누고픈 저자가 있다면?  

<혼불>의 최명희를 만나고 싶다. 이미 이 생의 사람이 아닌 그녀가 미처 끝내고 가지 못한 <혼불>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못다한 얘기들이 매듭을 짓지 못하고 너덜거리는 듯한 느낌에 아연했다. 그 자체로도 경이롭고 아름다운 작품이지만 살아 숨쉬는 듯하는 등장인물들의 뒷얘기를 알 수 없음에 목이 말랐다.   



2. 단 하루, 책 속 등장 인물의 삶을 살 수 있다면 누구의 삶을 살고 싶으세요?

이 생에서는 결혼을 해봤으니 다음 생에서는 결혼을 안할테다.(비장한 어조로) 그런 의미에서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의 올리버 색스가 쓴 <색맹의 섬>을 읽고 이 팔자좋은 할아버지의 삶에 진심으로 부러움을 느꼈다. 이른이 훌쩍 넘은 나이로 평생 독신으로 살았던 올리버는 때로는 자신이 심취한 양치식물을 탐사하기 위하여 혹은 풍토병을 연구하려고 동에 번쩍 서에 번쩍이다. 미크로네시아섬에서 태평양이 보이는 옥상에서 저물녘 사카우를 마시고 만취하여 조이스의 "축축한 암청빛 열매가 주렁주렁 열린, 별 가득한 하늘나무'를 봤다는 대목에는 절로 질투가 났다. 내가 저기 앉아 있어야 하는데--;; 참, 이건 그러니까 작가가 자신의 얘기를 쓴 것이니 등장 인물이라기 보다는 실제 인물이 되버려서 질문과 어긋난 것 같기도 하고. 




3. 읽기 전과 읽고 난 후가 완전히 달랐던, 이른바 ‘낚인’ 책이 있다면?

낚인 책은 정말 많지만 얘기하지 않는 편이 좋을 것 같다. 


4. 표지가 가장 예쁘다고, 책 내용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책은?

솔직히 심미안이라고는 없기(미술은 항상 우미였음)에 표지를 논할 자신이 없다. 다만 도서출판 이후의 수전손택 시리즈는 그녀의 사진들을 활용하여 가장 그녀다운 표지를 만들어 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표지에서 카리스마가 느껴진다. 세워서 꽂아 놓으면 그 자체로 하나의 그림이 된다. 수전 손택의 얼굴로. 연인 사진작가 애니 레보비츠의 작품들인 것 같은데(확실하진 않으나 확인하기 귀찮다--;;) 역시 불순한 감정이 담겨야 사진이 샤하게 나온다. 연인이 같은 여자였다는 것을 최근에 알고 조금 놀라긴 했다. 하지만 수전 그녀다웠다. 




 

 

 

 

 

 

5. 다시 나와주길, 국내 출간되길 학수고대하고 있는 책이 있다면? 

솔직히 학수고대하고 있지만 않지만 춘원 이광수의 책이 대부분 절판인 것은 의아하고 아쉽다. 중학교 때 참 좋아했었다. 힘들게 수집해 놓았는데 아버지가 딱 <흙> 한 권만 남기고 다 처분하셨더라. 왜 하필 <흙>이었는지.

6. 책을 읽다 오탈자가 나오면 어떻게 반응하시는지요.

동그라미를 친다. 왜 치는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만다. 많이 나오면 혼자 막 신경질 낸다. 

 
7. 3번 이상 반복하여 완독한 책이 있으신가요?

사실 같은 책을 여러 번 읽는 편이 아니라서. 어렸을때 계몽사에서 나온 소년소녀문학전집은 다 매우 여러 번 읽은 것 같다.
 

8. 어린 시절에 너무 사랑했던, 그래서 (미래의) 내 아이에게 꼭 읽어주고 싶은 책?

계몽사의 소년소녀문학전집에 나왔던 책 대부분. <쿠오레>, <소공녀>, <소공자>, <작은아씨들>. 참, 그리고 로라 잉걸스의 초원의 집 시리즈는 미리 장만해 뒀다. 같이 읽고 싶은 책이다. 뒷심이 좀 부족한 책이긴 해도 정말 너무나 다사롭고 읽기만 해도 마구마구 행복한 책이다. 




9. 지금까지 읽은 책 가운데 가장 두꺼운(길이가 긴) 책은?  

<태백산맥> 10권. 시작할 때는 분량에 질렸지만 마칠 때는 아쉬웠다.  



10. 이 출판사의 책만큼은 신뢰할 수 있다, 가장 좋아하는 출판사는?

결국 좋은 책을 좋은 장정으로 내놓을 수 있는 것도 자금력의 문제인 것 같다. 좋다는 의미는 여러 면으로 해석될 수 있겠지만. 사람들이 많이 안 읽을 것 같은데도 좋은 책을 공들여 찍어낸 출판사는 그 어디라도 그 공력에 감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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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0-05-05 1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명희와 수전 손택이 눈에 띄네요.
블랑카님 휴일은 잘 보내셨어요?
전 그저 뒹굴거리며 잘 보내고 있어요.
저녁공기가 신선하게 느껴지는데 나가서 자전거나 탈까싶기도 하고 그러고 있어요.^^

blanca 2010-05-06 12:50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 근데 둘째 따님은 아직 어린이 아닌가요?^^;; 저는 집앞 공원에 가서 벤치에서 아이스크림 먹었답니다.ㅋㅋ 멀리는 못가고 근처 대학교 캠퍼스도 가구요. 덥기만 했지 하늘은 어찌나 꾸무룩하던지. 저는 자전거를 못타서 이런 얘기 들으면 너무 부러워요. 자전거 타며 바람가르고 싶어요

마녀고양이 2010-05-06 0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쿠오레... 이거 얼마만에 들어보는 제목인지 모르겠어요!
아직도 <모자를 아내로~> 못 읽었는데, 블랑카님 때문에 엄청 끌린네요.
오늘 외출하면서 가지고 나가야겠습니다.
혼불...... 보고 싶어라~ 그런데 지금은 여유가, 영.... ㅠㅠ

blanca 2010-05-06 12:51   좋아요 0 | URL
모자 책 있어요? 그럼 마녀 고양이님 꼬옥 읽어보세요. 저는 가수 호란 추천으로(이러면 꼭 친구 같지만 ㅋㅋㅋ) 읽게 되었는데 완전 빠져서 이 사람 책 다 샀답니다. 혼불은 다른 책 다 치우고 나서 그것만 읽어야 할 것 같아요. 저도 요즘 갑자기 또 책욕심이 동해서 주문 대박입니다.--;;

비로그인 2010-05-29 1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최명희, 조정래, 수전 손택에 눈길이 갑니다.

새로 나온 [혼불] 보다는 예전 한길사 표지가 더 끌리네요. 다행입니다. 그때 차곡차곡 사둬서 말이죠..

아마 제가 처음 이자리에 흔적을 남기려고 했던 건, 이 페이퍼를 보면서였을거예요. 그게 생각나 몇 마디 덧붙여 놓고 갑니다. ^^

주말. 얼마남지 않은 봄날. 부디 좋은 시간 되시길 빌겠습니다.

blanca 2010-05-29 14:45   좋아요 0 | URL
바람결님! 그런데 바람결님 같이 말씀하시는 분이 또 있더라구요. 저는 글씨가 크게 잘 나왔다고 해서 알라딘 중고서점에 이 신판이 나왔을 때 오호! 하며 질렀드랬죠. 예전 표지가 주는 또 묘미가 있군요. 그리고 아무래도 소장가치도 훨씬 더할 것 같네요.

하늘이 오늘은 또 꾸무럭하네요. 얼마남지 않은 봄날. 그래도 아직은 봄이라는 것을 잊지 않겠습니다. 바람결님도 행복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