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4일 오전에 비 그침, 화창  오전 9도 오후 18도

 

어제 심었던 상추의 품종은 선풍포찹이라고 한다. 포는 포기상추를 찹은 낱장 상추를 의미한다. 포찹은 포기로도 낱장으로도 수확이 가능한 품종이다. 주름진 적상추인데 식감보다는 예쁘장한 모습 때문에 사람들이 찾는 품종이다. '보기좋은' 떡에 대한 욕구는 상추와 같은 쌈채소에까지도 적용된다. 아니, 언뜻 생각해보면 인간의 미에 대한 시각적 욕망의 대상은 세상 모든 것에 다다를 것 같다.

 

아무튼 어제 심은 상추 중간 중간 옥수수를 심었다. 원래 하우스 안에 옥수수는 잘 안 심는다고 한다. 충해 때문이다. 하지만 옥수수의 고소한 맛이 다른 작물의 진드기를 유인해 줄 수 있다는 혼작의 장점을 시험해보고자 몇개를 심어보기로 했다.

 

 

오후엔 하우스 옆 짜투리 땅을 로타리 치고 두둑을 만든 후 멀칭을 했다. 이곳엔 가지를 심을 예정이다. 농기계-이번의 경우 관리기-를 잘 사용할 줄 안다면 혼자서 몇시간이면 될 일을 남자 세 명이 쩔쩔 매며 겨우 완성했다. 그러고 보면 농사도 기계를 다룰 줄 아는 것이 절반인 시대가 됐다. 석유와 기계가 고령화 되고 줄어만 가는 농민의 노동력을 대신해 줄 거의 유일한 대안인 셈이다. 물론 자연농법이나 태평농법 등도 있으나 이것은 자급자족의 수준을 넘어서 다른 이들에게 풍족히 나누어 줄 만큼의 꾸준한 생산력을 담보할 수 있을지 확신이 없다. 그리고 사람의 손길로만 농사가 이루어진다면 농민 자체가 일하는 기계가 될 판이다. 여기서도 적절한 조화를 찾아야만 한다.

 

  

오후엔 볍씨 소독을 했다. 토종벼 약 27종(돼지찰, 녹미, 맥도 등등)을 1킬로그램씩 묶어 60도 정도 데운 물에 10분씩 담가둔다. 그리고 바로 찬 물에 식힌 후 황수화제를 탄 물에 하루 담가둔다. 이렇게 소독을 하는 것은 파종 단계에서부터 병충해를 예방하고 건강하게 모를 키우기 위해서다.

 

 

볍씨 소독을 끝내고 허리를 죽 펴니 저 멀리 보름달이 휘영차다. 이번주엔 매일 달을 보며 퇴근이다. 오늘따라 달이 유독 더 밝다. 내 마음 속에도 오늘밤처럼 이그러지지 않는 달이 살고 있기를 기원해본다. 저멀리 소쩍새 울음소리 구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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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3일 - 하루종일 비, 아침 6도, 오후 12도

 

오늘은 상추를 심었다. 누군가의 가르침도 없이 모종을 받아서 심기 시작했다. 흑백필름의 검정색을 위로 하고서 멀칭을 했다. 그리고 20*20으로 뚫려진 구멍에 구덩이를 내고 상추 모종을 넣은 후 흙으로 덮어 나가기 시작했다.

 

한 두둑이 거의 끝나갈 즈음, 그러니까 허리가 뽀개질 정도로 아파오기 시작할 즈음, 연구소장님께서 방문하셨다. 그리고는 한 말씀. 상추는 시원한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라 필름의 흰 면을 위로 해 빛을 반사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구덩이를 팔 필요없이 모내기 하듯 쿡 눌러 모종을 심으면 된다고 알려준다. 이런 제길.... 지금까지 우린 무얼 한거야?

그런데 노지에서 보면 대부분 멀칭이 검은색이던데 이건 왜 그런걸까.

심는 시기에 따라 멀칭의 색이 달라질 수 있다고 한다. 사실 시기라기 보다는 날씨 특히 온도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 하겠다. 노지에서 심거나 또는 하우스에서 조금 일찍 심는다면 날씨가 아직 쌀쌀하기에 보온 효과를 가져다 줄 검은색 필름을 사용해도 무방하다. 단지 보름 차이만으로도 검은색이 효과를 발휘할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럴 땐 흑백필름보다는 더 싼 검은색 필름을 사용하는 것이 경제적일 것이다. 아무튼 멀칭 필름의 다양한 색깔은 그 용도에 따라 다르다는 것을 허리로(?) 알게 된 셈이다. 온도, 수분, 풀. 이 세가지를 얻고자 멀칭을 사용하기에 작물 특성과 잘 맞는 것을 고를 수 있도록 공부 좀 해야겠다.

아무튼 아직은 날씨가 쌀쌀한 탓에 일단 검은색 멀칭을 그대로 두고, 나머지 두둑만 흰색으로 사용하기로 했다. 검은색과 흰색을 비교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 셈이다. ㅋㅋ. 이젠 긍정의 마인드로 농사일을 대하는 게 자연스러워진다. 

 

 

오늘 상추 모종은 거의 5000포기. 저녁 8시가 되어서야 겨우 심기를 끝낼 수 있었다. 비가 잦아들면서 안개가 차오르는 산자락을 바라보니 끊어질 것 같은 허리도 잠시 잊혀진다. 가까이서 또 저 멀리서 들려오는 산새 소리가 귓전을 파고 든다. 안개 속에서 들려오는 새들의 노래가 마치 허리를 안마라도 해주는 양 시원한 느낌이다. 에구구가 입에 밴 입가에 어느새 미소가 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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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2일 - 날씨 쾌청

 

오전엔 잔디밭 주위로 옥수수를 심었다. 오후엔 다음날 상추를 심을 두둑을 만들었다. 하우스 안에서 관리기로 골을 만든 후 써레로 두둑을 평평하게 만드는데 꼬박 반나절이 걸렸다. 물이 한곳에 고이는 것을 방지하고자 밭을 평평하게 잘 골라야 하는데 생각처럼 쉽진않다. 써레를 움직일 때마다 움푹 파인 곳에 날이 걸리면서 땅이 더욱 파지는 경향이 있다. 마치 상처를 지우려고 마음의 평온을 가장하면 가장할 수록 더욱 상처가 드러나고 아픔이 커지는 것처럼 말이다. 이럴 땐 조심조심 힘을 빼고 살며시 만져주어야 한다. 억지로 힘을 들여서 될 일은 아닌 것이다.

 

 

 

오늘은 드디어 숙소에 음식을 해 주시는 아주머니를 모셔왔다. 하지만 그 덕에 그나마 전기장판이라도 꽂을 수 있는 콘센트가 있는 식당방에서 나와야 할 처지가 됐다. 아무래도 사람들이 드나드는 곳에 개인 물품을 놔두고 숙식을 해결한다는 것이 거북했기 때문이다. 새로 옮긴 방은 너무 넓은 데다 ㅜㅜ 전기마저 들어오지 않는다. 이런. 아직도 새벽이면 싸늘한데. 얼어죽지는 않아야 할텐데^^; 등 따시고 배 부르면 족하다는 것. 이 작은 것마저도 실은 쉬운 일이 아니었구나. 등 한번, 허리 한번 제대로 지져봤으면 소원이 없겠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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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0일 - 아침엔 진눈깨비, 오후엔 비, 저녁엔 그치면서 흐림

 

혼작은 그 작물의 특성을 잘 파악해야 가능한 재배법이다. 작물 서로간의 병충해를 막아주고, 성장에 도움을 주는, 한마디로 궁합이 잘 맞는 작물을 찾아내어 함께 키워야지만 한다. 자칫 잘못하다간 서로간의 성장을 방해하거나 병충해를 번창하게 만들 수도 있다. 그냥 아무렇게나 무턱대고 심는다고 다 잘 자라는 것은 아닌 것이다. 그렇다고 살 성 싶은 것만 살리는 것은 농사가 아닐 것이다. 수확량을 최대한 늘리고자 고심한 흔적이 농사의 기술 아니겠는가. 이것은 또한 적자생존이 아닌 모두의 생존을 위한 기술이기도 할 것이다. 이것이 생명을 키우는 기쁨이지 않겠는가 얼치기 농부는 생각해본다.

 

진눈깨비가 내리는 오전부터 흙살림은 분주하다. '토종아 놀자'라는 행사 때문이다. 연수생들은 이른 아침부터 농장정리를 하느라 바빴다.

 

오후엔 행사진행과 상관없이 작물을 심는라 정신 없었다. 하우스 한 동을 정리해서 두둑을 만들고 거기에 삼채, 곰보배추, 자주감자, 감자를 심었다. 토종 행사 참가자 중 한 명이 곰보배추의 효능에 대해 열변을 토한다. 자신의 아버지가 천식을 앓고 있는데 곰보배추가 꽤 효험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번처럼 배움은 시시때때를 가리지 않고 느닷없이 찾아오는 경우도 있다.

 

 

 

이태근 회장은 하우스 한 동을 혼작으로 키워보고 싶어한다. 가운데에는 키가 크게 자라는 옥수수를 심어 고소한 맛으로 진드기를 유도할 심산이다. 나머지 두둑에는 상추를 심을 계획이다. 개인적으론 삼채나 배추 등 다른 작물들과의 혼작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사뭇 궁금하다. 하우스라는 조건이 무차별적 혼작마저도 가능하게 해줄까? 아니면 이 모든 작물이 서로 궁합이 맞는 것일까. 궁금증이 더해 간다. 우리 사람도 찰떡궁합을 찾는 게 얼마나 힘이 들던가. 그런데 좋은 궁합이라 하더라도 옥수수처럼 희생이 필요한 것이라면 글쎄.... 그것을 궁합이라 부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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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9일 - 날씨 청명

 

오전엔 어제 저녁 한바탕 난리법석을 떨었던 볏짚을 농장에 옮겨놓았다. 벼를 쌓는 것을 노적이라고 하는데, 이것도 다 방법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볏짚을 곧바로 퇴비로 활용할 계획이라 그냥 보기좋게 쌓는데 만족했다.

 

노적을 한 후엔 K형님은 심토파쇄를, 나와 L씨는 탈망을 했다. 심토파쇄란 땅을 깊게 갈아주는 것을 말한다. 처음엔 40센티미터 정도를 갈고, 바로 70~80센티미터 정도 깊이로 다시 간다. 이렇게 땅을 깊게 갈아주는 이유는 겨울을 나며 말라붙은 땅으로 말미암아 지하수위가 위로 올라와 있는 것을 낮추어 지하수맥과 연결시키기 위해서다. 이렇게 물길이 뚫리면 웬만한 가뭄에도 땅이 말라붙지 않는다고 한다. 한편 심토파쇄는 진동으로 하는데 그 진동이 땅속 6미터 깊이까지 전달된다고 한다.

 

탈망이란 까락 또는 까끄라기를 제거하는 것을 말한다. 까락은 볍씨에 붙어있는 수염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요즘의 볍씨는 까락이 없어 파종을 위해 탈망을 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이곳 농장에서 토종을 시험재배하고 있기에 까락이 붙은 볍씨들이 많다. 이번에 탈망을 한 것은 조동지라는 종자다. 원래 까락은 외부의 적을 막고, 종자를 전파하며, 수분을 돕는 등의 일을 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사람의 손에 의해 종자가 전파되면서 까락은 쓸모없는 것이 되어버린 것이다. 갑자기 노자가 말한 쓸모없음의 쓸모있음이 생각난다. 인간에게 불필요한 존재였다면 이런 시련을 겪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인간의 손에 의해 변모됨으로써 종자의 전파라는 사명은 제대로 해낸 셈이지 않을까.

 

오후엔 잠깐 감자밭을 둘러보았다. 지난 3월 22일쯤 파종한 감자가 드디어 싹을 틔워 쑥 고개를 내밀었다. 수미감자는 강원도 감자로 알려진 남작감자에 비해 단맛은 강하지만 식감이 떨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자칩으로 만들어 팔리고 있는 것은 우리나라 감자 수확량의 80퍼센트를 차지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추측해본다.

 

서서히 작물이 자라나고, 또 하우스에도 작물을 심을 시기가 다가오면서 더욱 바빠질 것 같은 분위기다. 겨우 몸이 적응해가나 싶은데... 작물 자라는 재미로 실컷 보상 받아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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