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6일 연일 뜨거운 날씨

 

오늘 한 일 - 감자밭 후작으로 배추 정식(불암 3호, 토종 괴산, 구억리, 청갓 등)

 

"후루룩 국수 안 사주면 다음주부터 안 나올거유"

농담처럼 건네는 할머니의 말씀엔 독기가 조금 서려 있다.

"아침 참도 제대로 챙겨주지 못하면서 말이야"

사실 아침밥을 챙겨드시지 않고 아침 6시에 일을 하러 나오시는 할머니들에게 참을 제대로 챙겨주지 못해 늘 죄송스러웠다. 하지만 할머니들의 품을 산 첫날부터 이미 농장 사정을 말씀드려온 터였다. 할머니들도 이 점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다. 처음엔 두유와 빵이었지만 두유 대신 미숫가루라도 타 드리려 노력했다. 미숫가루를 타 온 첫날엔 굉장히 만족스러워 하셨다.

"이거라도 먹으면 그래도 든든해"

그러던 할머니들께서 점차 요구하시는게 많아지기 시작했다. 특히 방울토마토의 열과를 따지 못하도록 주지하는 일이 많아지면서 요구사항이 늘어난듯 느껴진다.

 

시골에 노동력이 부족하다는 건 이제 삼척동자도 다 아는 일이다. 그러다 보니 사람을 구하는 일이 어려워졌다. 할머니들께선 초반기 눈치를 조금 보며 일하셨다. 그러다 농장에서 사람을 잘 구하지 못한다는걸 아시게 되자 점차 '갑'의 자세로 변하셨다.

"품삯도 올랐어. 다른데선 5천원을 더 받아"

그래도 다른 할머니 한 분은 꽤 상식적이시다.

"다른 사람들이 받으니까 받지만 미안스러워. 밭주인은 빚더미에 올라 죽네 사네 하는데 일꾼들이 돈 5천원 더 안주면 일 안한다고 하니..." "그래도 받을 건 받아야제. 망하는 건 우리 사정이 아니잖여."

나도 노조활동을 하고 파업의 진통까지 겪으며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받고 신장시키려 애쓴 적이 있다. 노동자로서는 한 번도 갑인 적이 없었다. 못내 당하고 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노동자가 갑인 세상이 오기를 바라는 사람이다. 그런데 노동자가 갑이 되었다고 해서 갑 행세를 하는 것엔 반대다. 누가 갑이 되었든 갑이 된 자는 그 위치의 이권을 마음껏 누리려 해서는 안된다. 갑은 갑이 아닌듯 을과 함께 갈등 없이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제시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나의 위치는 갑도 을도 아니다. 할머니들을 내가 고용하는 것도 아니고 품삯을 주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흙살림에게 잘 보이려 할머니들을 윽박지르며 일하도록 채찍질 할 필요도 없다. 할머니들이 일하면서 불편한 사항이 있으면 잘 해결해 드리고, 다른 한 편으론 흙살림에서 필요한 일을 잘 마무리 짓도록 함께 일하면 된다. 손해를 본다거나 복종을 한다거나 하는 손익이나 힘의 싸움에서 벗어나 서로가 윈윈 할 수 있는 게 최고다. 그런데 사람들은 완장을 차는 순간 확 바뀌고 만다. 할머니들의 '갑' 행세를 보자니 입맛이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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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4일 날씨 뜨겁다 뜨거워

 

 

별 도장이 찍힌 방울토마토. 그래 넌 나에게 별이다. 희망을 품게 만드는...

 

 

오늘도 방울토마토 수확 작업을 했다. 일주일에 두번 꼴이던 수확이 한 번 정도로 줄어들었다. 5개 하우스 중 두개 동 만이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머지 3개 동은 병충해로 건질 것이 별로 남아있지 않다. 게다가 끝물이기도 하다.

지금까진 수확한 토마토를 E마트나 대전에 있는 흙살림 직영 매장 '농부로부터'에 납품했었다. 그런데 오늘은 농장을 방문한 손님들에게 직접 판매하는 기회가 생겼다. 회장님의 인심으로 납품가보다도 싸고 일반 마트의 절반가에도 못미치는 가격이었지만 뿌듯했다. 한번 맛보기로 먹어본 방울토마토가 맛있다며 너도나도 사가겠다고 줄을 서는 모습에 흥이 절로 났다. 덤을 퍼주고도 아까운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다. 하지만 여름 내내 피땀흘려 키운 토마토를 헐값에 내놓는다는 아쉬움도 한쪽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래서 회장님에게 다소 질타가 섞인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그저 투정이었다. 소비자들과 직접 얼굴을 맞대며 직접 키운 토마토를 판매하는 것이 이렇게 기쁜 일이 될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런 기회를 갖게 된 것에 감사하다.

요즘은 포장을 하면서 생산자의 사진을 올려 소비자와의 간접적 만남을 추구한다. 사진만으로도 어느 정도 신뢰감을 쌓아갈 수 있다는 생각때문이다. 그러나 직접적 대면보다는 아무래도 덜한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직거래가 꼭 좋은 건만은 아니다. 생산자 입장에서는 그만큼의 노력과 시간을 투자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경험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생산의 기쁨을 온전히 느낄 수 있어서다. 누군가에게 어떻게 팔리는지를 모르고 생산하는 것과는 천연지차다. 로컬푸드의 정신도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하지만 로컬 푸드도 매장을 필요로 하는데,  이에 한 발 더 나아간다면 농장을 직접 방문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얼굴을 맞대는 교류를 통해 탄탄한 믿음을 쌓아가고 인간적 풍취마저도 풍겨나도록 말이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모두 행복해질 수 있도록 말이다. 그럼으로써 노동의 소외도 말끔히 없어지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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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9일 불같이 뜨거운 하루 1분간의 소나기가 아쉽다

 

오늘 한 일 - 옥수수 밭 후작으로 양배추 약 400주 정식, 가을 배추 약 100주 정식, 방울토마토 곁순 정리

 

끔찍할 정도로 무더운 하루였다. 이런 날엔 오후를 통째로 쉬어도 부족할 정도다. 하지만 오늘은 할머니들이 일하러 오는 날이다. 할머니들은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일하신다. 오전에 참 시간, 오후에 참 시간, 그리고 1시간여 정도의 점심시간을 빼고는 줄곧 일하신다. 그렇게 해서 버시는 돈이 일당 5만원. 요즘은 5천원이 올라 5만 5천원까지 받는다고 한다. 일당은 지역별이나 일의 강도에 따라 편차가 있는듯하다. 어떤 지역에서는 일손이 너무 부족해 7만원 수준까지 받는 곳도 있다고 한다.

아무튼 이런 무더운 날엔 오후에 쉬고 저녁에 조금 더 일하시면 좋을텐데, 할머니들은 극구 거부하신다. 저녁에 집에 돌아가 밥을 지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네 할머니들의 고단한 인생은 쉬이 끝나지 않은가 보다. 이렇다 보니 나도 덩달아 오후 휴식없이 비지땀을 흘려야 한다. 할머니들이 일하려 오시는 날엔 보통 새벽 5시 반에 할머니들을 모시러 가서 하루 종일 함께 일하다 다시 댁으로 모셔다 드리고 일을 마무리 짓다 보면 저녁 8시가 다 된다. 오늘 같은 날엔 무쇠라도 녹을 판인데 한낮에 일할 생각을 하면 진저리가 처진다. 정말 몸이 축 처지고 헥헥 거리게 된다. 할머니들의 체력에 그저 혀를 내두를 뿐이다. 하지만 속사정은 다르다. 약으로 버티시며 일하고 계시는 것이다.

강철 체력을 지닌 듯하던 할머니들도 오늘은 한낮에 하우스에 들어가고 싶어하지 않으셨다. 나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상식적인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하우스에 들어가서는 안된다. 노지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오후 5시 까지 양배추와 배추를 정식했다. 남은 1시간은 그나마 조금 더위가 가신 하우스 안에서 토마토 유인 작업을 하셨다. 하지만 말이 더위가 가신 시간이지 여전히 하우스 안은 찜통이다. 1시간 동안 흘린 땀이 토마토 10주에 물을 듬뿍 줄 정도라면 너무 과장된 것일까.

일이 끝나고 할머니를 모시고 가야 할 시간. 이번 주엔 이태근 회장이 직접 할머니들을 챙기신다. 아무래도 할머니들의 건강이 걱정되신 모양이다. 그래도 이런 걱정이 현실로 다가왔다. 할머니 한 분이 차에서 구토를 하셨다고 한다. 다행히 크게 걱정할 정도는 아니라고 하지만 마음이 무겁다.

무더위 속에서도 일을 하셔야만 하는 할머니들의 모습이 안타깝다.

문득 우리네 할머니들 세대들의 꿈은 무엇이었을까 궁금해졌다. 굶주리지 않고 배부르게 먹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었을 것이다.

 

2주 전쯤 멜론이 생겨 숙소에서 밤중에 먹을 기회가 있었다. 연수생 둘이서만 먹기엔 미안스러워 미얀마 친구들 두 명을 함께 불렀다. 멜론을 먹으면서 짧은 영어와 몸짓 발짓으로 이야기를 나눴다. 이들이 한국에서 받는 월급은 미얀마에서 받는 것의 약 3배 정도라고 한다. 야근이나 특근을 한다면 4~5배 까지 벌 수 있다. 한국에서 3년을 일하면 미얀마에서 최소 10년 정도 일한 것의 보수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한 친구에게 물었다. "그렇게 돈을 많이 벌어서 미얀마로 돌아가면 무엇을 하고 싶나" 그나마 영어를 조금 할 수 있는 친구가 대답한다. "한국의 S전자 대리점을 하고 싶다" "아니, 왜?" "돈을 많이 벌 수 있으니까" "도대체 얼마나 벌길래?" "잘만 경영하면 일반 월급쟁이들보다 7~10배 정도 벌 수 있다" "우와! 그렇게 벌면 금방 부자가 되겠네. 부자가 되면 뭘 하고 싶어?" "세계 여행을 다니고 싶어. 한국의 서울은 물론이고 일본, 호주 등을 돌아다니고 싶어" (애석하게도 괴산에 온 두 미얀마 친구들이 한국에서 본 것은 출입국 관리소와 퇴비공장 뿐이라고 한다. 언어도 안 통하고, 돈도 많이 들기에 섣불리 주말에 돌아다니지 못하고 있다)

오호라, 세계 여행이란다. 이건 한국 사람들도 마찬가지 아니던가. 로또에 당첨되면 해보고 싶은 것 중에 하나로 꼽히는 것이지 않던가. 돈만 있다면. 물론 돈 없이도 혈기만으로 세계를 누비는 사람들도 있지만 말이다. 그런데 갑자기 궁금해졌다. 도대체 언제부터 사람들은 세계 여행이라는 꿈을 공통으로 가지게 됐을까. 이렇게 꿈이 같아진다면 꿈이란 욕망의 다른 이름이지 않을까. 누군가로부터 조종당하거나 세뇌당한. 자신은 의식조차 하지 못한채 말이다. 너무 멀리 나갔다. 음모 이론처럼. 아마도 미디어의 발달이 세계 여행에 대한 꿈을 꾸게 만들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세계를 눈앞에 펼쳐있듯 보여주는 미디어들 탓에 그 꿈이 조장되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아예 직접 대놓고 권하지 않는가. 여행을 떠나라고. 미디어의 태반은 여행과 음식 또는 여행지에서의 음식이지 않는가. 그 형식만 다를뿐.

우리 세대의 꿈. 돈이 있을때 보다 그 가능성이 커지는 꿈. 노마드의 정신은 사라지고 쾌락이 꿈틀대는 꿈. 그렇기에 배낭 하나 짊어지고 길을 나서는 사람들에겐 용기가 필수다.

 

꿈은 세대를 따라 변해간다. 그리고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생각을 지닌 듯하지만 똑같은 또는 비숫한 꿈을 꾼다. 다만 그 꿈을 향한 길이 서로 다를 뿐. 그러니 생각해본다. 애시당초 다른 꿈은 없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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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8일 - 햇빛 쨍쨍

 

7월 27일 배추 파종 했음. 다음주말 쯤 정식 예상

 

연일 올 최고 기온을 경신할 만큼 뜨거운 날의 연속이다. 하우스 안은 말하나 마나다. 40도는 우습게 넘어간다. 폭염 한계기온이 32.8도라는 뉴스도 있다. 시설원예를 하는 농민들에겐 이미 두달 전 부터 그 한계기온과 싸우고 있는 셈이다. 하우스에 차광막을 설치하면 4~5도 정도 온도를 낮출 수 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40도가 가까우니 가히 살인적이라 할 만하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난 지금의 기온이 오히려 더 견딜만해졌다. 이틀전부터 먹고 바르기 시작한 아토피 약 덕분이다. 약의 힘을 빌리지 않고 버티려 했지만 결국 지고 말았다. 움직이는 게 고통이고 땀을 흘리는 게 지옥이다 보니 농사일을 해낼 재간이 없었다. 약을 먹고 바르니 많이 나아졌다. 물론 안다. 이 호전이 그리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부작용이 나타나지 않으면 다행이라는 것도. 하지만 분명 삶의 질은 나아졌다. 고통이 줄었기 때문이다. 건강함이란 바로 고통의 감소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것은 분명 삶의 질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거뜬하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이 더위와의 싸움도 해볼만 해 진 것이다. (꼭 약의 도움 없이도 건강함을 찾을 수 있도록 연구 또 연구해야 할 성 싶다. 나에게 있어 귀농을 꿈꾸게 만들고 이어가도록 이끄는 이유 중의 하나임에 틀림없다)

 

개인의 건강이 이러할 진데 생태계 전체의 건강은 우리 삶의 질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인지 생각해 볼 문제이다. 삼방리에 심었던 토종 모들이 하나 둘 이삭이 패이기 시작했다. 30종에 가까운 토종 벼들은 키도 제각각이고 이삭이 패는 시기도 제각각이다. 이들이 한데 모여 있으니 그야말로 장관이다.

논둑을 걷다보면 개구리가 폴짝 논 속으로 뛰어들어가고, 메뚜기도 허겁지겁 벼와 벼 사이를 뛰어다닌다. 우렁이 농법으로 키워진 논은 생태계가 살아 있어 다양한 종들이 서식하고 있다. 벼줄기 마다 우렁이들이 분홍색 알을 까놓은 것도 신기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내 마음에 꼭 드는 것은 벼 줄기에 드리워진 거미줄이다. 이슬을 머금은 거미줄은 아름답기까지 하다.

농약을 뿌리지 않음으로써 농민이 살고, 흙이 살고, 생태계가 산다. 건강한 땅이 삶의 희노애락을 온전하게 받아들이게 만들고, 그 속에서 행복을 꿈꾸게 만든다. 또한 그 꿈을 향해 힘차게 움직이도록 만든다. 그 움직임이 삶의 질을 드높이게 만드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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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5일 맑음 - 햇빛 쨍쨍

 

7월 20일 토종 잡곡(조, 수수, 콩, 동부, 깨) 정식 7월 27일 잡곡 보식

 

연이은 더위와 장마에 지쳐 일지를 쓸 여유가 없었다. 더군다나 유기농 기능사 필기시험이 있어서 주경야독을 하다보니 짬을 내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힘들게 한 건 더위로 인해 아토피가 더욱 심해졌다는 것이다. 될 수 있으면 약의 힘을 빌리지 않으려 하는데 아무래도 참기 힘들듯 싶다. 몸의 고통이 단순히 그 고통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정신을 갉아먹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잘 견뎌왔지만 8월의 남은 무더위를 버텨낼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게 됐다. 일단 정신을 지켜내기 위해 임시처방인 약의 도움을 받으려 한다. 시골의 환경이 아토피에 도움을 주기 위해선 다른 조건이 필요할 성 싶다. 귀농에 대한 연구와 함께 아토피도 신경을 써야만 하는 상황이 왔다. 개인적으론 무척 위기다. 고통이 주는 괴로움. 그 괴로움의 크기만큼 성장하면 좋으련만. 작물을 키워보니 괴로움을 주는 즉 스트레스를 주는 환경이 작물을 강하게도 하지만 조금만 잘못 관리해도 금방 약해져버리는 역효과도 발생한다.

결국 감당할 만큼의 고통을 떠안아야만 성장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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