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여행의 기술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이레 / 200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등산을 좋아한다. 쉬는 날이면 배낭을 메고 산으로 간다. 산에 오르면 가슴이 확 트이고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땀으로 끈적끈적한 몸은 막걸리 한 잔과 파전, 두부 한 모면 다 잊는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하면 몸은 노곤하지만 마음은 천국에 가 있다. 라고 산행일지를 쓰지만 이 글에는 엄청나게 많은 부분이 빠져 있다.
쉬는 날 일어날까 말까 하는 고민, 일어나고 나서도 하늘을 쳐다보며, 날이 좋지 않으면 안갈테야 하는 주저하는 마음, 멀리가지 말고 가까운 곳으로 갈까 생각하며 천천히 몸을 움직이다, 결국 등산화를 신기까지의 과정은 완전히 생략되어 있다. 정상에 서서 아~ 좋다라는 단 한마디를 위해 느껴야 하는 다채로운 감정들, 그리고 또 수없이 들어오는 시각과 청각, 후각 정보들이 깡그리 생략되어 있다.
알랭 드 보통은 여행의 기술이라는 책에서 이런 것부터 이야기하고 있다. 데제생트라는 인물을 통해 여행이란 꿈꾸던 것과는 전혀 다른 현실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여행을 떠나기 위해 가방을 준비하고 역사까지 갔지만, 결국 집으로 돌아와버린 인물을 이 책의 맨 처음에 소개하고 있는 것은 충격 요법일 듯싶다.
예술 작품에서도 상상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단순화와 선택이 이루어진다. (26쪽)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여행을 꿈꾼다. 그림을 보고, 사진을 보고, 그곳을 향해 떠나기를 간절히 바란다. 하지만 여행의 목적지보다도 떠난다는 행위 그 자체가 중요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보들레르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어디로라도! 어디로라도! 이 세상 바깥이기만 하다면!(52쪽)
그래서, 알랭 드 보통은 휴게소나 공항 자체가 오히려 더 낭만적일 수 있음을 말한다. 떠난다는 꿈을 꾼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 이미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몇천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에서 날아와 공항에 착륙하는 비행기 그 자체만으로도 낭만은 묻어나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 책이 여행에 대한 이야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여행은 현실적 문제와 맞닥뜨려야 하지만, 그래도 즐거운 것이다.
이국적인 것에 대하여, 호기심에 대하여, 시골과 도시에 대하여, 숭고함에 대하여, 눈을 열어주는 미술에 대하여, 아름다움의 소유에 대하여, 습관에 대하여로 나뉜 각 장은 말 그대로 여행의 기술을 가르쳐준다.
특히 여행은 여행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자세가 중요하고, 그냥 지나쳐버리기 쉬운 일상의 것들을 유심히 바라봄으로써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잘 이야기해주고 있다. 일례로 데생을 하기 시작하면 그 사물 하나하나가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고, 어떤 풍경에 대해 내가 어디에 관심을 가지고 있고, 어디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며, 나아가 숭고함을 통해 고양될 수 있는지를 말한다. 여행의 기술에서 말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은 데생이라고, 또는 정밀하게 들이대는 카메라라고 감히 말할 수 있겠다. 데생이나 카메라를 통한 이런 관찰은 놓치기 쉬운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기술이라 할 수 있겠다.
이런 기술을 터득한다면 굳이 먼 곳을 향해 떠나지 않아도 지금 내가 살아가고 있는 현장 자체가 여행지가 될 수도 있음을 깨닫게 만든다. 여행은 마음의 문제요, 또한 기술의 문제이기도 했음을... 일상이 여행이 되는 그 순간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