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게 영원회귀의 바다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이규원 옮김, 스다 신타로 사진 / 청어람미디어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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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책은 다치바나 다카시가 아토스 반도의 수도원들을 둘러보며 회고한 여행기다. 역사라는 것이 기록된 것보다는 아무에게도 기억되지 않는 부분에서 진정한 삶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을 깨우친 여행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이 돋보인다.   

눈으로 보여지는 역사적 잔해가 있음에도 기록되지 않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천시되는 유적들이 실제 우리의 역사를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은 역사에 대한 접근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이 책의 장점은 이것과 함께 다양한 인문학적 정보를 제공하는데 있다. 델피 신전을 통해 바라본 아폴론과 디오니소스와의 관계, 그리고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가 갖는 의미 등등은 흥미진진하다. 델피 신전을 통해 세계 최고의 지성인이 될 것이라는 운명을 지녔다는 것에 대한 반발로 아무 것도 모른다는 전제하에 대화를 시도함으로써 변증법적 발전을 가져온 소크라테스의 이야기는 지식에 대한 근본적인 자세를 어떻게 가져야 할 것인지를 가르쳐준다.

또 그리스의 타 문화 지배가 제우스 신의 남근을 통하여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프리아포스라는 신화 속 인물은 신화와 문화가 어떻게 통합이 이루어지는지를 살펴보게 만든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여행이란 주마간산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직접 몸으로 알려준다는 점이 이 책이 가진 최고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내 두발로 걷기 시작하자 지칠줄 모르는 욕망을 품고 사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 금방 알게 되었다. 그래, 느긋하게 가는 것이 최고다. 걷다보면 언젠가 목적지에 닿겠지 하는 마음으로 천천히 걸었다.

빨리 빨리 목적지만을 향해 걷다보면 놓치고 가는 것들이 많다. 일찍 정상에 오르면 일찍 내려서야만 한다. 오직 정상만을 알고 그 과정 속에 놓여진 바람과 새의 노래소리, 햇빛과 꽃들의 반짝임을 전혀 알지 못한다. 정상에 대한 끊임없는 욕망이 우리를 뒤틀리게 만든다.

사람의 욕망은 끝이 없다. 욕망에 끌려서 뜀박질을 시작하면 스스로 멈출 수 없게 된다. 욕망은 폭주로 치닫는 메커니즘을 내장한 듯하다. 모든 종교가 거의 예외없이 가르침의 앞머리에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은 욕망을 다스리는데 있다고 설파하는 것도 예로부터 불행으로 가는 지름길이 욕망을 다스리지 못하게 되는데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천천히 걷자. 비록 내일 나의 운명이 끝을 맺더라도 천천히 걷자. 바삐 걸어간다고 해서, 죽기 전에 정상에 오른다고 해서 그것이 삶을 풍만하게 해 줄 수 있는 것인지 천천히 걸어가는 속에 생각해보자. 때론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생각해보자. 삶은 누가 먼저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보다 얼마나 많은 해찰을 통해 해탈을 경험하는 것에 그 참된 의미가 있지 않을까. 100미터 달리기 선수보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사람의 체온이 더욱 뜨거울 것이라는 상상은 그래서 여전히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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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의 달인, 호모 루덴스 - 이제 베짱이들의 반격이 시작된다!
한경애 지음 / 그린비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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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화 개미와 베짱이의 교훈은 당연히 개미처럼 성실하게 일하라는 것, 그래야 굶어죽거나 얼어죽지 않는다는 사실에 있겠다.

하지만 베짱이처럼 살면서도 생계를 이어갈 수 있다면 당신은 그래도 개미의 삶을 선택할 것인가?(플라톤은 목적이 이끄는 삶이 사람들을 피투성이로 만들었다고 탄식한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면 베짱이처럼 사는 길을 택할 것이라고 본다. 일은 자아성취의 중요한 요소가 아니라 이미 노동이 되어버린 사회이니 말이다. 이 노동은 너무나 지루하고 또한 현대인을 그 노동에 갇혀 살도록 만든다. 잠깐의 여유라는 것도 돈으로 사서 즐겨야 하는 여가 상품일 뿐이다. 그래서 노동도 여가도 지루한 일상이 되어 버린다.

그렇다면 삶을 이런 지루함에서 벗어나도록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저자는 놀이의 주인공이 되자고 말한다.

놀이란 일상을 새롭게 바꾸고 즐거운 리듬을 만들어내는 다채로운 무늬(67쪽)라고 말한다. 그래서 우리 안에서 샘솟아 삶을 메마르지 않게 하는 능력이며 나의 삶을 즐거움으로 가득 채운다. 이러한 놀이는 소비해야하는 여가 상품이 아니라 자발적 공동놀이로 표현된다.

이러한 놀이는 무엇을 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무엇이건 노는 것, 어떤 일을 할 때 취하는 특정한 태도이며, 움직임으로만 포착되는 동사다.(73쪽)

따라서 이런 놀이는 우연과 의외성을 품고 자발적으로 이루어지며 서로간의 관계를 만들어 간다. 그리고 차이를 발견하고 그 차이를 즐긴다. 따라서 함께 있으면 즐거운 사람이나 일이 된다.

그런데 이런 놀이의 즐거움이 현재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현대인의 삶에서 과연 가능할까. 사람들은 관계의 차이가 주는 즐거움과 놀이를 즐기고 싶어하면서도 현실이 아닌 사이버공간속으로 침잠해 들어간다. 그 속에서 사이버 관계가 만들어지고(그 관계는 때론 현실화되기도 하지만) 떄론 그것이 현실의 삶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사이버 공간은 미래사회의 보다 많은 부분을 차지할 것이고, 현실 공간의 관계에서 이끌어지는 놀이보다도 더욱 많은 놀이를 제공할지도 모른다. 다만 이 공간이 끝없는 소비를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고단한 노동을 필요로 한다면 문제가 있겠지만....

또다른 한편으론 탈출하고 싶은 현실이 과연 특정한 태도와 움직임을 통해 놀이의 공간으로 변할 수 있을까라는 부분이 염려된다. 대량생산 또는 규격화된 제품을 생산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우연성은 재앙이지 않겠는가.

과연 태도와 움직임만으로 변화는 가능할지 궁금하다. 그러나 놀이의 달인에 대한 꿈을 저버리지 않기 위한 마음과 의지만은 변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난 항상 즐겁게 놀고 싶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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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호모 쿵푸스 실사판 : 다른 십대의 탄생] 공부는 셀프!
    from 그린비출판사 2011-04-06 16:49 
    ─ 공부의 달인 고미숙에게 다른 십대 김해완이 배운 것 공부의 달인 고미숙 선생님. 몸으로 하는 공부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적절한 계기(혹은 압력?)를 주시곤 한다.공부가 취미이자 특기이고(말이 되나 싶죠잉?), ‘달인’을 호로 쓰시는(공부의 달인, 사랑과 연애의 달인♡, 돈의 달인!) 고미숙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공부해서 남 주자”고. 그리고 또 말씀하셨다.“근대적 지식은 가시적이고 합리적인 세계만을 앎의 영역으로 국한함으로써 가장 ...
 
 
 
여행의 기술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이레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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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을 좋아한다. 쉬는 날이면 배낭을 메고 산으로 간다. 산에 오르면 가슴이 확 트이고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땀으로 끈적끈적한 몸은 막걸리 한 잔과 파전, 두부 한 모면 다 잊는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하면 몸은 노곤하지만 마음은 천국에 가 있다. 라고 산행일지를 쓰지만 이 글에는 엄청나게 많은 부분이 빠져 있다.

쉬는 날 일어날까 말까 하는 고민, 일어나고 나서도 하늘을 쳐다보며, 날이 좋지 않으면 안갈테야 하는 주저하는 마음, 멀리가지 말고 가까운 곳으로 갈까 생각하며 천천히 몸을 움직이다, 결국 등산화를 신기까지의 과정은 완전히 생략되어 있다. 정상에 서서 아~ 좋다라는 단 한마디를 위해 느껴야 하는 다채로운 감정들, 그리고 또 수없이 들어오는 시각과 청각, 후각 정보들이 깡그리 생략되어 있다.

알랭 드 보통은 여행의 기술이라는 책에서 이런 것부터 이야기하고 있다. 데제생트라는 인물을 통해 여행이란 꿈꾸던 것과는 전혀 다른 현실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여행을 떠나기 위해 가방을 준비하고 역사까지 갔지만, 결국 집으로 돌아와버린 인물을 이 책의 맨 처음에 소개하고 있는 것은 충격 요법일 듯싶다.

예술 작품에서도 상상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단순화와 선택이 이루어진다. (26쪽)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여행을 꿈꾼다. 그림을 보고, 사진을 보고, 그곳을 향해 떠나기를 간절히 바란다. 하지만 여행의 목적지보다도 떠난다는 행위 그 자체가 중요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보들레르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어디로라도! 어디로라도! 이 세상 바깥이기만 하다면!(52쪽)

그래서, 알랭 드 보통은 휴게소나 공항 자체가 오히려 더 낭만적일 수 있음을 말한다. 떠난다는 꿈을 꾼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 이미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몇천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에서 날아와 공항에 착륙하는 비행기 그 자체만으로도 낭만은 묻어나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 책이 여행에 대한 이야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여행은 현실적 문제와 맞닥뜨려야 하지만, 그래도 즐거운 것이다.

이국적인 것에 대하여, 호기심에 대하여, 시골과 도시에 대하여, 숭고함에 대하여, 눈을 열어주는 미술에 대하여, 아름다움의 소유에 대하여, 습관에 대하여로 나뉜 각 장은 말 그대로 여행의 기술을 가르쳐준다.

특히 여행은 여행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자세가 중요하고, 그냥 지나쳐버리기 쉬운 일상의 것들을 유심히 바라봄으로써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잘 이야기해주고 있다. 일례로 데생을 하기 시작하면 그 사물 하나하나가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고, 어떤 풍경에 대해 내가 어디에 관심을 가지고 있고, 어디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며, 나아가 숭고함을 통해 고양될 수 있는지를 말한다. 여행의 기술에서 말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은 데생이라고, 또는 정밀하게 들이대는 카메라라고 감히 말할 수 있겠다. 데생이나 카메라를 통한 이런 관찰은 놓치기 쉬운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기술이라 할 수 있겠다.

이런 기술을 터득한다면 굳이 먼 곳을 향해 떠나지 않아도 지금 내가 살아가고 있는 현장 자체가 여행지가 될 수도 있음을 깨닫게 만든다. 여행은 마음의 문제요, 또한 기술의 문제이기도 했음을... 일상이 여행이 되는 그 순간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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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구니 산사 가는 길
이기와 지음, 김홍희 사진 / 노마드북스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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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와 시인이 전국의 비구니 산사를 찾으며 느낀 인생무상을 써 내려간 글이다. 김홍희 사진작가의 사진이 어우러져 청정한 느낌을 준다.

불완전한 말에 속지 마라고 당부하고, 한번 화를 내면 백 천 가지 장애의 문이 열린다 했으니, 흔들리지 않는 마음 공부를 이야기하고, 삼일 동안 닦은 마음은 천년의 보배요 백년 동안 탐한 물건은 하루아침의 티끌이라며 탐욕의 대상이 부질없음을 통해 욕심을 버릴 것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라면 다른 어느 불교 에세이를 보아도 다 나오는 이야기요, 스님들 말씀 속에서 익히 들어온 것일 터다.

이 책이 다른 책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산사에서 만난 비구니 스님들의 말씀이 그 하나요, 시인 자신의 파란만장했던 삶의 경험이 그 둘이요, 딸과의 관계에서 드러나는 인생을 바라보는 태도가 세번째라고 할 수 있겠다.

방장산 대원사 담을 넘어 속세로 향하던 스님을 보며 "스님, 파이팅. 너무 멀리 가지는 마세요, 돌아올 길이 막막할 수도 있으니까요" 라는  말 속에 담긴 애정에 따스함을 느낀다. 부모를 여의고, 시다, 중국집 서빙, 신문 배달 하다 19세 때 아이를 낳고 파출부, 미장원 종업원, 포장마차 장수, 유흥업소 마담 등등 전전하다 두번씩이나 자살 기도를 했던 삶의 여정이 비구니 산사의 기행 속에 녹아들어 뜨끔한 죽비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책을 읽으며 가슴 뭉클했던 것은 자신의 딸이 19세에 자신과 똑같이 자살을 기도했다는 것이다. 산전수전 다 겪고, 삶의 고통이 어디서 오는지, 그 허무가 어떻게 비롯되었는지 알고 있지만, 그것을 설명할 수 없으며, 자식에게조차 자신의 경험을 나눠줄 수 없다는 사실이 나에겐 크나큰 충격이었다. 백가지 천가지 지혜로운 말도 결국 한차례의 경험만 같지 못하다는 깨달음은 삶이 얼마나 신비로운지를 알게 해줌과 동시에 또한 특별한 것이 아님을 이야기해주는 듯 싶다.

자신에게 부닥쳐 오는 것들이 삶을 구성하며, 그것이 흘러와 또한 자연스레 흘러가도록 만드는 것이 마음공부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얽매이지 않는다는 것. 얽매이지 말라는 것에조차 얽매이지 않을 수 있다는 것. 흐르는 것은 흐르도록 만든다는 것. 그것은 나라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을 찬찬히 들여다봄으로써 가능하지 않을까? '항상 부처'가 되지 못하더라도 '잠깐 부처'의 잠깐 잠깐을 늘려보도록 시선을 안으로 돌려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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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6-06-22 1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잠깐 부처'의 잠깐잠깐을 늘려보자는 말이 참 좋습니다.^^

하루살이 2006-06-23 0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항상 부처'와 '잠깐 부처'라는 말은 책 속에서 나온 것입니다. 잠깐 잠깐을 늘리다보면 언젠가는 항상이 되겠죠?
 
사색기행 - 나는 이런 여행을 해 왔다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이규원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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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치바나의 기행문이라니 귀가 솔깃하다. 실은 귀가 솔깃한게 아니라 눈이 반짝였다가 맞는 말이려나? 제목도 범상치 않다. 사색기행이라... 여행은 만사를 잊게 만드는 알코올과 같은 힘과 더불어, 새로운 생각을 만들어주는 창조의 씨앗이기도 하다. 이 책 속에서 드러난 다치바나의 여행은 모든걸 잊고 떠나겠다는 경우는 하나도 없다. 다치바나의 여행은 휴식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오히려 탐사에 가깝다.

그가 말하는 여행의 의미를 잠깐 살펴보자.

여행은 결국 만남이다. 만남은 본질적으로 계산이라는 것과 어울리지 않는 일이니, 만남을 기대한다면 일정일랑 짜지말고 되어가는대로 몸을 맡기는 것이 상책이다.(26쪽)

여행의 패턴화는 여행의 자살이다. 여행의 본질은 발견에 있다. 일상성이라는 패턴을 벗어났을때 내가 무엇을 발견하는지, 뭔가 전혀 새로운 것을 접했을 때 내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새로운 나를 발견하는데 있다. (79쪽)

이렇게 그의 말을 써놓고 보니, 다치바나는 무작정 여행을 떠나는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의 글을 읽다보면 이건 뚜렷한 목표의식을 가지고 떠난 여행이다. 만남이라는 것도 그 목적의식에서 벗어나있지 않고,  그가 여행에서 발견한 것 또한 이미 작정을 하고 떠났기 때문에 가능한 수확이다. 그렇다고 그가 거짓말을 했다고는 볼 수 없다. 만남들이 우연히 전개되기도 하고, 꾸며진 일정표대로 움직이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마치 잘 짜여진 여행계획표를 들고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그의 탁월한 취재능력에 있다고 보겠다. 그저 눈요기만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묻고 탐구하는 일상의 자세가 여전히 여행지에서도 발휘된 탓에 그의 여행기는 르뽀처럼 보여진다.

특히 유럽 반핵 무전여행이나 팔레스타인, 뉴욕에 대한 글은 이런 경향을 잘 보여준다. 지금이야 원하는 정보를 인터넷 등을 통해 어느 정도 손쉽고 빠르게 구할 수 있겠지만, 다치바나가 여행한 당시의 상황을 보면 정말 대단하다는 인상을 준다. 뉴욕의 경우엔 당시의 시대 상황과 미래 예측이 현재의 우리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놀랍다. 더군다나 밖으로 보여지는 모습 뒤에 감춰진 차별의 벽(시오니즘과 유태인, 팔레스타인 사이에 존재하는, 이슬람 원리주의와 이슬람, 기독교간의, 에이즈에 걸린 사람들과 나머지 사람들간의 )을 들춰내는 그의 날카로운 눈은 그야말로 그가 말하는 새로운 발견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의 여행에서 가장 부러운 것은 프랑스 여행이었다. 최상급의 포도주를 전문가의 설명을 듣고 모두 느껴볼 수 있는 행운, 유럽의 치즈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행운은 아무나 누릴 수 있는게 아니다. 이것은 생존의 문제와 전혀 상관없는 최상의 사치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언어로 표현될때 느낌은 비로소 인식이 된다. ... 맛있다 좋다 시시하다라고 하는 것은 와인을 마시는 행위가 생리적 행위에 머물뿐 문화적 행위로 승화되지 못한 것이다"라고 할만큼 문화적 승화라는 최고의 특권을 누린 것이다. 이런 여행은 아무나 어느때고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또한 그가 말하는 패턴화되고 계산화된 만남이라는 여행의 본질과 먼 계획을 세우더라도 결코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니 부러움 말고 무엇을 표현할 수 있겠는가? 다만 그가 느낀 문화적 풍요로움을 글로서 조금 맛보는 것으로 만족, 아니 억울해하고 싶다.

그의 여행이 문화적, 정치적 발견이나 충격만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그의 무인도 경험이나,  개기일식 체험은 삶을 통째로 바꿔버릴 수 있는 감성적 충격을 전해온다. 아마도 이런 급진적 체험은 자연의 경이를 통해서 느끼는 경우가 많을것 같다. 인간 또는 자신이라는 존재의 초라함을 발견하거나, 생명의 신성성을 경험한다는 것은 개인이 경험할 수 있는 어떤 극대치가 아닐까 싶다. 개기일식 여행에서 소개된 사람들처럼 인생의 모든 목표가 개기일식 사냥으로 변해버릴 정도의 강렬한 만남, 그런 만남이 기다려진다. 또한 무인도의 경험같은 새로운 삶의 방식도 체험해보고 싶다. 

나그네의 발걸음이 아닌 내가 딛고 있는 이 땅의 주인으로서 살아가기 위해,

그래서 여행은 충격으로 또는 사색으로 우리를 유혹하는 것임을 다치바나를 통해서 깨우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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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03 21: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루살이 2005-11-04 0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각보다 술술 읽히거든요, 다치바나 책의 이상한 특징 중의 하나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