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머리가 호강을  한다는 생각이 든다.  인문학 고전 스터디 1, 2강을 모두 듣게 되다니... 

게다가 지난번 1강 때 길벗 사옥에 도착하고서 강당을 찾느라 약간 헤맸다는 댓글을 남겼더니 알라딘 진행자 분들이 2강 때는 화살표와 포스터로 안내를 해주셔서 처음 오는 사람들도 장소 찾기가 수월했을 것 같다.  이런 행사를 주관하는 진행자 분들의 작은 정성이 그 매체에 대한 강력 이미지를 만든다는 것을 강의 시작 전부터 새삼 절감한다.  

 

 필기구 하나로 두 시간 가까이 청중들을 사로잡은 조현설 교수님. 

우리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의 확장이란 차원에서 소수자의 시각에서 보는 고전문학이라는 접근법을 생각해내셨다고 한다. 

들뢰즈는 유대인이면서 독일어로 창작활동을 했던 카프카  해석에서 [소수자]라는 개념을 도입했지만, 우리 고전 문학에서 그와 비슷한 사례를 찾기는 어렵다. 결국  성, 신분, 신체, 그리고 사상에서의 소수자와 그들의 문학이 주요 대상이 될 터인데 2강에서는 문자 활동의 주요 담당자였던 조선시대 사대부, 그중에서도 주변부에 속하는 사상적 인물들을 주로 살펴보았다. 

김시습은 [남염부주지]에서 불교, 유교의 기존 관념들을 부정하고 작가 나름의 세계를 펼치는 과정에서 특유의 팽팽한 긴장감을 놓치지 않고 있다. 결국 '전기(傳奇) 라는 반 유가적인 형식을 선택한 김시습의 성향을 잘 보여주는 것이 [금오신화]이다.

허균은 유교를 기본으로 하되 불교와 도교를 망라한 작품 활동을 했다. 특히 [호민론]에서 호민이란 사회에 숨어서 틈새를 노리다 불만을 표출하며 앞장서는 사람들로, "왜 조선 시대에는 호민이 없는가"라며 사회 저항 세력을 공공연하게 부추기기도 했다. 이런 작품의 연장선에서 홍길동전의 이해가 가능하며, 이같은 혁명적 사고를 하던 허균이 아니면 홍길동전 같은 작품을 과연 누가 쓸 수 있겠냐는 교수님의 말씀에 호민론을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박지원은 18세 때 [광문자전]을 지었는데 사유가 완전히 성숙하지 않은 나이의 작품이지만 비천한 거지의 내부에 숨겨진 재능에 주목함으로써 기존 통념을 부정, 전복하는 박지원 특유의 사유 체계를 보여주고 있다는 설명이다. 당시의 순명배청 조류에 휩쓸리지 않고 청의 발달한 문물을 배우자고 말하되, 조선 사회가 발견하지 못한 어떤 것을 에둘러 말하는 글쓰기 전략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를 두고  '연암은 조선 시대의 대 문호'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김삿갓으로 유명한 김병연은  민란의 시기라고 할 수 있는 19세기 조선사회에서 전국을 떠돌며 접하는 하층민들의 곤궁한 삶을 호흡이 짧은 시로 노래했다. 특히 파자시, 파격시, 숫자시 등을 통해 전통을 전복하고 한시의 관습을 조롱거리화하기도 했다. 

 질의응답 시간에는 '소수자란 누구인가'와 교과 과정에서 고전 작품을 다양하게 수용하기 위한 고민 등이 논의되었다. 또한 조선시대에 여성은 남성에 비해 소수자라고 할 수 있지만, 사대부 집안의 여성은 상대적으로 소수자라고 보기 어려운데 이런 예에서 보듯이 [소수자]는 결국 관계적이며 위상적, 상대적인 개념이라고 정리되었다.   

마지막으로, 갈수록 다양화되는 현대사회를 생각해 볼 때, 고전에서 소수자문학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일지 생각해보자는 과제(?)를 받았다. 

 1강 때보다 더 많이 모인 사람들과 진지한 열기로 시간은 금방 지나갔지만 강의 끝무렵 살짝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김시습, 허균, 박지원... 이들을 과연 조선시대의  소수자라고 할 수 있는 것일까. 

2강의 추천자료 중 [역사 속의 소수자들] 서문에는 소수자를 '자신이 지닌 어떤 특징으로 말미암아 사회의 주류/지배 집단으로부터 차별받는 비주류/하위 집단 혹은 그 구성원을 말한다.때로는 명백한 사회 집단의 범주에는 속하지 않지만 역시 주류에 반하는 사상이나 생각을 가진 어떤 개인이나 공동체를 가리키기도 한다. 전자는 사회학적 측면에서 본 소수자 집단-이른바 사회적 소수자-이고, 후자는 지적 이단자로서의 소수자다. 비주류/하위 집단으로서의, 혹은 지적 이단자로서의 소수자라는구분은 단순히 수적 소수자란 듯이 아니라(소수자 집단의 구성원 수가 더 많은 경우도 있다), 스스로가 스스로를 통제하는 권력-자결권-이 미약하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고 정의하고 있다.

사상적 이단자들도 소수자이긴 하겠지만 유교 질서를 내세우는 조선 사회에서 진정한 소수자는 유교 테두리  바깥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을까. 무속인들, 승려들.  

그리고 사상이 아닌 성, 신분, 신체상의 무수한 소수자들일 기녀들, 예인들, 기인들...그들의 여러 기록들.

교수님이 강의 시작 초입에 말씀하셨던 구비문학의 특수성-개인적 발화에서 다소 미흡함이 있고 보편적, 집단적 목소리- 때문에 소수자 문학은 기록, 즉 문자화라는 특성을 살릴 수 있는 사대부들과 접점이 있게 된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그리고 부족한 시간을 고려하더라도 정작 소수자들의 문학은 강의에서도 소외된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살짝 남았다. 

 

좋은 강연 해주신 조현설 교수님과 밤 늦은 시간까지 뒤에서  여러가지 챙겨주신 알라딘 진행자분들께 감사드린다. 지방 순회 강연으로 계속되는 인문학 스터디, 내겐 이제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지만 다른 분들껜 정말 좋은 기회가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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