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2교시 여섯 번째(마지막)로 이야기 나눌 글입니다.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무척 쫄(졸)아 있습니다.

 

 

철학의 시대, 철학이 필요한 시대

(강신주, 《철학의 시대》, 사계절, 2011)

 

 

대학 시절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논어》를 읽은 적이 있다. 강산이 한 번 바뀐 지금 머릿속에 남아 있는 구절은 《논어》를 읽지 않아도 모두가 아는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學而時習之 不亦說乎)”라는 첫 번째 문장뿐이다. 오랜 시간 고생하며 원문을 강독하고 남은 것이 중학교 때에도 배우는 저 문장 하나와 여성을 비천하게 본 공자에 대한 화뿐이니, 지금 와 생각해보면 참으로 의미 없는 독서였다. 그 의미 없는 독서가 지금까지 내 인생에서 제자백가를 가장 깊이 접한 순간이었다. 그 후, 대학 교양 시간에 맹자, 장자, 묵자 등과 아주 짧게 스쳤을 뿐, 진지하게 텍스트로 그들과 마주한 적이 없었다. 철학의 시대는 지금 내가 살아가는 시대와 너무 멀었다.

내가 본 지금은, 자신만의 정치 철학을 내세우기보다는 잘 먹고 잘살게 해주겠다는 말을 전면에 내세우는 이가 나라의 지도자가 되고, 아무 생각 없이 웃을 수 있는 TV 프로그램이 인기 있으며, 성인 남성은 자동차에, 성인 여성은 명품 가방에, 미성년자는 노스페이스 점퍼에 열광하는 시대다. 철학이 사라진 시대, 사유하지 않는 시대, 그래서 철학이 필요한 시대에 살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나 역시 좀 더 잘살아보자는 헛발질뿐이었다.

헛발질로 온몸에 피멍이 든 채 살아가던 내게 철학계의 아이유, 강신주와의 만남은 반갑고도 고마운 일이었다. 스타로서의 상품성과 가수로서의 가창력, 연주 실력 등을 두루 갖춘 아이유처럼 강신주의 철학책은 상품성과 내용의 깊이를 두루 겸비하고 내 앞에 나타났다. 상품성은 이미 출간된 책의 판매 수가 방증하지만, 굳이 덧붙이자면 문장이 어렵지 않고, 어떤 어려운 철학 사상이라도 철저하게 한 인간의 현재의 삶에 대입할 수 있게 만든다는 것에서 기인한다. 그러면서도 통속적이지 않고, 사상가마다의 주요 논지를 정확히 짚어주어 결코 가볍지만도 않다. 동서양 사상가의 철학을 해체하고, 대중이 각자의 삶에 대입해볼 수 있는 글로 재탄생시키는 작업은 결코 얄팍한 내공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닐 것이다. 이렇게 강신주 팬임을 자처하는 나는 삼촌 팬이 아이유의 새로운 뮤직비디오를 보는 마음으로 강신주의 새 책 《철학의 시대》를 펼쳐 보았다.

책을 처음 펼칠 때는 대학 시절 나름 《논어》도 읽어봤을 만큼, 그리고 그 후 한 번도 안 쳐다봤을 만큼, 제자백가 사상에 대해 아는 듯하지만 실상 하나도 모르는 내가 대뜸 읽어도 되는 책일지 망설였다. 하지만 책을 읽고 나니 그 망설임은 왜 나는 강신주를 더 믿지 못했느냐는 팬심으로 흡수돼버렸다. 머릿속에 흐릿하고 너저분하게 잔존하던 제자백가 사상이 이합집산하더니 끝내는 큰 줄기로 모여 체계화되는 데 어느 정도 성공했다. 또 그뿐이었으면 서운했을 뻔도 했는데, 기존에 내가 어렴풋이 알던 제자백가는 어렴풋하게 안 것이 아니라 잘못 알고 있었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철학의 시대》는 ‘제자백가의 귀환’ 시리즈의 문을 여는 첫 번째 책이다. 본격적으로 제자백가의 사상을 다루기 전에 다양한 사상가들이 사랑과 평화를 찾을 수 있는 그들만의 방법, 도(道)를 천차만별로 부르짖었던 원인이 무엇이었는지 되짚는 내용이다. 사상이 나온 배경과 문맥을 먼저 읽고 제자백가의 사상을 찬찬히 살펴보자는 당연한 논리의 발로인 셈이다. 춘추전국 시대에 국가주의에서 아나키즘까지 다양한 사상이 나온 배경은 뭐였을까?

저자는 답을 혼란한 시대에서 찾는다. 여러 명의 군주가 끊임없이 폭력으로 맞서던 시기, 삶의 상처가 깊어 그 상처의 치유를 위해 다양한 사상이 등장한 것이다. 또한 패권을 다투는 여러 군주로 권력이 나누어져 있어, 하나로 취합되는 권력이 없었기에 군주들은 지식인층의 지지를 받기 위해 사상가들에게 언로를 열어놓았다.

맹자가 살았던 시기에 제나라의 직하학사라는 곳에서는 다양한 사상이 열띤 토론으로 꽃피었다. 거기에는 양주 같은 아나키스트도 있었고, 예수와 비견되는 사상을 지닌 묵자도 있었다. 최근 자신의 트위터에 북한 언론 매체인 우리민족끼리의 트위터를 리트윗하거나, 북한과 관련한 트윗을 써 국가보안법 7조(찬양·고무)를 위반한 혐의로 박정근 씨가 구속되는 사건이 있었다. 21세기에 사는 우리는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이렇게 촘촘히 제한받는데, 우리에게 보수의 아이콘으로 상징되는 공자와 맹자가 살았던 2500년 전 중국에서는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었던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눈여겨봐야 할 점이 한 가지 더 있다. 당시 사상계에서 유학은 ‘죽은 개’ 취급을 받았다는 점이다. 공자의 사상은 훗날 순자를 만나 다시 빛을 보지만, 공자는 생전에 관료로 나아가지 못한다. 시대가 원하는 것과 맥을 같이하는 사상이 살아남고 그렇지 않은 것은 도태되었다. 때마다 시대의 요구에 맞는 사상이 달랐고, 군주에게 채택되는 사상가도 달랐다.

공자가 강조한 예(禮)는 법치를 전면으로 거부하는 사상이었기에 민중을 법으로 직접 다스려 권력을 공고히 하려 했던 군주들에게 채택될 수 없는 사상이었다. 귀족층의 지분 늘리기에 적합한 사상이 당시에는 채택되지 못하다가 훗날 현실로부터 극적인 초연함을 유지하는 철학 학파로 변신하여 필요한 세력에 의해 확대 재생산되었다. 그리고 바다 건너 조선에까지 강력한 영향을 미친 것이다. 조선의 양반들에게 안빈낙도 등 선비의 고결함을 강조하면서도 신분에 따른 예가 법보다 우선한다는 예치가 얼마나 매력적인 사상이었겠는가.

이 책에서 저자가 방점을 찍는 또 다른 것은 우리에게 조금 덜 알려진 역사서, 《회남자》의 의의다. 《회남자》는 《한서》와 《사기》와는 다르게 한제국의 중앙집권적 정치 이념을 토대로 작성된 것이 아니라 지방분권적 정치 이념 위에 만들어졌다. 《한서》와 《사기》가 황제 권력의 후원으로 만들어진 반면, 《회남자》는 지방 제후에 의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다른 세력 위에 만들어진 만큼 이 책들은 한나라 이전의 사상을 정리하는 기준이 다르다. 유가와 도가 중 어떤 사상을 더 위에 두느냐도 다를 뿐만 아니라 제자백가 사상을 다루는 방식도 다르다. 《한서》와 《사기》가 유가, 도가, 묵가 등의 학파 개념으로 사상사를 정리한 반면, 《회남자》는 학파 구분을 하지 않고 사상가들을 각각 강태공, 공자, 묵자, 상양 등의 고유명사로 풀고 있다. 저자는 《한서》와 《사기》 그리고 《회남자》를 비교하며 자의적인 분류 방식의 허점과 위험을 지적한다. 자의적으로 여러 사상을 분류하여 한 가지 틀 속에 가둠으로써 오독의 소지를 낳기 때문이다. 이는 ‘제자백가의 귀환’ 시리즈가 왜 유가, 도가, 묵가 등의 학파로 묶여 출간되지 않고, 사상가 한 명 한 명의 고유명사를 제목으로 달고 출간하게 되었는지를 설명하는 셈이다.

기득권층의 레드 콤플렉스 사고가 여전히 사상의 자유를 가두는 우리나라의 지금을 보면, 기원전 춘추전국 시대는 자유로운 사상이 꽃피웠고, 나라를 아예 새롭게 세울 수 있던 시기였기에 오히려 지금보다 개혁적이었다. 다양한 사상이 시대의 흐름을 타고 서로 논쟁하며 성장하였다. 그 사유와 논쟁의 역사를 보며 자유롭게 사유하는 중요성을 새삼 느낀다. 억압받고 무질서했던 시기에 진흙탕의 연꽃으로 핀 제자백가처럼 시대의 억압과 가능성을 파악하며 사유를 발전시켜나가야겠다. 또한 기존의 사상을 보고 사유하면서 타인이 분류해놓은 잣대 때문에 오인할 수 있다는 사실도 경계해야겠다. 매일 칼을 휘두르고 목을 베는 전쟁이 일어나 권력이 뒤바뀌는 시대는 아니지만, 쇠가 아닌 칼은 지금도 있고, 죽음이 아닌 참형은 오늘도 일어나고 있다. 철학이 필요한 시대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나 역시 좀 더 잘살아보자는 헛발질이 아니라, 사유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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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가게재습격 2012-02-03 1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이현실님. 고심하며 꼼꼼하게 작성하신 서평 무척 잘 읽었습니다.^^ 서평을 자주 작성하시는 블로거로 활동하시는게 아닌가, 쓰는 글마다 많은 추천이나 공감을 받는 블로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여러번 쓰고 읽고 고치는 것이 습관화 된 분이라는 생각도 했고요. 문단마다 정확히 주제를 정해 마무리하는 솜씨나, 다른 소주제를 다루는 문단을 연결시키면서도 전혀 이질감을 느끼지 못하게 하는 전개가 무척 인상적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또한,

'머릿속에 흐릿하고 너저분하게 잔존하던 제자백가 사상이 이합집산하더니 끝내는 큰 줄기로 모여 체계화되는 데 어느 정도 성공했다.' 같은 사고의 흐름을 묘사하는 문장에서는 서평가의 '내공(?)'도 느껴볼 수 있었고요. 재미있고 유익했던 서평 흥미롭게 잘 읽었습니다. 저는 <철학의 시대>에 별 흥미를 가지고 있지 않았는데, 현실님을 글을 읽고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쉽게 느껴지는 것은 다음과 같은 점입니다. 이 서평에서 필자가 가장 감동을 받은 부분은, '1) 머릿속에 흐릿하고 너저분하게 잔존하던 제자백가 사상이 이합집산하더니 끝내는 큰 줄기로 모여 체계화되는 데 어느 정도 성공했다. (또 그뿐이었으면 서운했을 뻔도 했는데), 2) 기존에 내가 어렴풋이 알던 제자백가는 어렴풋하게 안 것이 아니라 잘못 알고 있었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인 듯 합니다. 따라서 이후에는 1)의 내용이 나오거나 2)의 내용이 나올 것이라고 자연스레 예상하게 되는데요. 문제는 그 다음 어디에서도 1)과 2)의 내용을 찾아볼 수 없다는 점입니다. 연관지어 한 가지 더 말씀드리자면 이 서평의 몸체를 이루는 '사상출현의 배경, 사상의 자유, 유학의 평가와 조선의 흡수양태, 역사서 기술의 문제'에 관한 것입니다. 이 소주제 모두는 흥미롭기는 하지만, 함께 나열되며 전체 내용을 이루어야 할 어떤 공통된 의의가 없습니다. 다시 말해 필자의 기억에 남았던 인상적인 부분을 두서없이 나열한 것이지 일관된 연관성이 없습니다. 이 때문에 책에 대한 인상이 산만하며, 어떻게 '철학이 필요한 시대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나 역시 좀 더 잘살아보자는 헛발질이 아니라, 사유하는 것이다.'라는 무시무시한(?) 결론이 나오게 되었는지 공감하기 어렵습니다. 각 소주제에 좀 더 긴 설명을 추가하거나, 소개하고자 하는 책의 핵심을 한 두가지로 한정하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이상입니다.^^

** 한가지 여쭤보고 싶은데요. '상품성은 이미 출간된 책의 판매 수가 방증하지만, 굳이 덧붙이자면 문장이 어렵지 않고, 어떤 어려운 철학 사상이라도 철저하게 한 인간의 현재의 삶에 대입할 수 있게 만든다는 것에서 기인한다. 그러면서도 통속적이지 않고, 사상가마다의 주요 논지를 정확히 짚어주어 결코 가볍지만도 않다. 동서양 사상가의 철학을 해체하고, 대중이 각자의 삶에 대입해볼 수 있는 글로 재탄생시키는 작업은 결코 얄팍한 내공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닐 것이다.'라는 구절은 강신주 선생의 이전 저작을 지칭하는 것 같은데, 어떤 책을 염두에 두고 쓰신 글인지요? <철학이 필요한 시간>>?, <철학VS철학>? 호기심에 간단히 질문 덧붙입니다.^^

시실리 2012-02-04 14: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의 전개가 자연스러우며 꼼꼼하여 소개하신 책에 대한 흥미를 유발시키는 좋은 글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한가지 저에게 있어 읽는데 좀 버거웠던 부분은, "책을 처음 펼칠 때는 대학 시절 나름 《논어》도 읽어봤을 만큼, 그리고 그 후 한 번도 안 쳐다봤을 만큼, 제자백가 사상에 대해 아는 듯하지만 실상 하나도 모르는 내가 대뜸 읽어도 되는 책일지 망설였다" 입니다. 어려운 문장은 아닌데도 '무슨 말이지?'하며 재차 읽게 만드는 부분이었읍니다. 이런것은 저도 종종 겪는 일입니다.

꽃별이 2012-02-04 2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철학은 제게 언제나 어려운 부분인데, 잘 읽었습니다. 저 먼 혼란스러웠던 춘추전국시대의 논점들이 지금 21세기에도 여전히 이야기되고 필요한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면, 세상은 진화한다고 하는데, '사람은 왜 항상 그 자리일까?'라는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사회(사람 사이)갈등구조는 항상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는 거, '사람의 본성'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만드는 책 같습니다. 개인간의 철학적인 사유를 통해 서로 의견을 나누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새삼 다시 한 번 생각해 봅니다...^^

이준입니다. 2012-02-05 0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혀 쫄 필요가 없네요. 합평하는 사람이 쪼는데요.

저도 이 책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이것이 서평의 효과겠죠. 안 읽으면 안 되게 만드셨으니, 성공하셨습니다.

그러나 숙제는 하겠습니다. 책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과제물에 대한 의견입니다.
첫째 문단, 논어가 공부가 의미가 없었다고 선언하고, 뒤 문장에서, 바로 부정을 하시는군요. 논리적 오류로 봐야 하지 않을까요. 물론 강조로 볼 수도 있겠지만, 독자는 서평가 수준이 아니라는 것을 고려한다면 쉽게 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둘째 문단, 지금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정확하게 지적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제자백가 시대에는 이런저런 문제가 없었습니까?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해결방법 또한 뒷부분에서 명확하게 나타나는 것이 없습니다.
셋째 문단, 앞 문단에서 처참한 현실을 나열해 놓았는데, 그것을 해결할 사람이 이이유 같은 스타입니까? 강 박사에 대한 논의는 다음으로 미루더라도, 아이유를 비유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차라리 누구나 강 박사보다 한 수 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영국의 ‘버트런드 러셀’을 인용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노벨 문학상을 탈 정도로 상품성도 인정받았고, 사회 운동도 활발했으며, 강 박사처럼 공학 분야도 좀 알고, 가장 적절할 것 같은데요.
중간 부분, 이 부분 대체로 강 박사 책 내용을 발췌한 것으로 보이니, 논의를 보류하겠습니다.
마지막 문단, “사유와 논쟁의 역사를 보며 자유롭게 사유하는 중요성을 새삼 느낀다.”이 문장은 공감합니다. 문제는 나머지 문장들입니다. 레드 콤플렉스 사고가 우리의 사유를 가두고, 제자백가 시대가 더 자유롭고 개혁적이었다. 그러나 뒤 문장을 보면, 제자백가시대가 좋았는지 싫었는지 명확하지 않습니다. 굳이 따진다면 근시안적 귀납적 오류로 보입니다.

제자백가 시대나 플라톤이 살았던 시대, 당대 대부분의 사람은 위대한 성인들과 동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 어느 쪽방이나 강의실에서 위대한 성인이 현실을 고민하고 있지 않을까요?

철학이라는 것은 특정 사태가 벌어지고 난 후, 그것에 대한 내면적 근거와 본질 및 전체적인 의미연관을 통찰하여 보다 근원적으로 사태를 파악하는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사태가 먼저 발생하고 그것을 해결하는 방법들은 나중에 생겨나는 것입니다. 제자백가 사상을 우리 현실에 바로 적용할 수는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급진적으로 말한다면 [철학이 필요한 시대]는, 현실님 말처럼, (돈 독毒이 올라서) 잘 살아보겠다는 헛발질을 버리고, 지금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사태를 깊이 사유해야하는 시대입니다. 지금 당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혁명이 필요할 뿐이죠.

아네스 2012-02-05 16: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평소에 책을 많이 읽고, 어떤 형식으로든 글을 쓰는 분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서평이라고 보기엔 책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개인적 경험이 너무 많고, 감상문이라고 하기엔 조목조목 짚어가는 것이 전문가 냄새가 납니다 ^^ 서평과 감상문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들고 있는데, 저도 평소에 굉장히 고민스러운 부분입니다.
글쓴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지금 우리는 사유하지 않는 반철학의 시대에 살고 있다. 나도 그러했지만 이 책을 보면서 나도,우리 시대도 사유가 필요하다"이지요? 아쉬운 것은 왜 철학이 필요한 지, 사유해야 하는 지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으면 하는 점입니다. 또 하나 제자백가의 시대처럼 억압이 다양한 사유를 가능케 한다면, 지금 우리시대야말로 다양한 사유와 철학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에 대한 설명이 있어야 글쓴이의 주장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덧붙이자면 아이돌과 저자를 같은 수위에서 비교하는 것은 적절한 것 같지 않습니다. 아이돌이야말로 자기 생각없이 기획사의 마케팅에 따라 움직이는 가장 반철학적인 사례의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bytheway 2012-02-06 1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철학이라는 주제라니! 읽기도 전부터 겁을 집어먹었습니다.
의외로 쉽게 잘 써주셔서 재밌게 읽을수 있었습니다.

의외로 철학계의 아이유라는 표현이 어색합니다. 첫시간에 읽은 칼럼에서 아이돌이나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을 언급한건 자연스럽게 읽혔는데, 왜 이 글에서 아이유언급은 어색할까 생각해 보니까, 원글님은 상대적으로 저와 같은 또래니까 저 자연스럽게 '아이유'같은 단어를 쓸거라고 기대한 것 같습니다. 60먹은 사람이 아이유에 관해서 말하면 무척 신선하지만, 젊은 사람이 아이유를 언급하면 [왠만큼 세련되게 언급하지 않는 이상은] 촌스럽게 보이는 것 같아요. 모델은 당연히 44사이즈이길 기대하는 것처럼요.(물론 모델이 꼭 44사이즈가 되어야 할 필요도 없을테고, 젊다고 연예가십에 밝아야 할 필요도 없지만, 그냥 그렇게 기대하게 되는 건 어쩔수 없네요.저도 제가 논리적으로 틀린건 알고 있습니다만......)

후반부의 [여러 명의 군주가 끊임없이 폭력으로 맞서던 시기, 삶의 상처가 깊어 그 상처의 치유를 위해 다양한 사상이 등장한 것이다. 또한 패권을 다투는 여러 군주로 권력이 나누어져 있어, 하나로 취합되는 권력이 없었기에 군주들은 지식인층의 지지를 받기 위해 사상가들에게 언로를 열어놓았다.]-> 이 부분은 논리적으로 너무 엉성합니다. 그냥 저자의 넘겨짚음 정도로 보여요. 철학에 대한 해석을 자신있게 제시할 정도의 작가라면 훨씬 더 논리적으로 그럴듯하게 써야 하지 않았나 싶어요. 원글님이 저자의 저 의견에 대해서 조금 더 생각하시거나,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 그냥 받아들여서 많이 아쉬웠습니다. []안의 내용은 그냥 여러가지 가능성중의 하나일 뿐인데 당연한 사실인 것처럼 써서 글 전체에 대한 신뢰도가 저 부분에서 상당히 낮아졌습니다.

책을품은삶 2012-02-07 0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의 호흡이 대체로 깁니다. 그래서 읽는데 약간 힘이 듭니다. 수식하는 말이 많아서 그리 된 것 같습니다. 또 너무 많은 말을 하시고 싶어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다양한 사상을 내세운 철학가들의 시대와 박정근씨의 구속을 결부시키면서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언급한 것은 범주의 오류로 보입니다. 말씀하신 바대로, 춘추전국시대에는 "하나로 취합되는 권력이 없"었고, 지금은 권력(자)이 자신의 기득권을 위해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과는 다른 양상이기 때문입니다. 레드 컴플렉스와 춘추전국시대의 사상적 다양성을 빗댄 것도 같은 맥락에서 어긋난 지점 같고요. 책을 설명하기 위해 다소 억지로 지금의 상황을 끌어들였다는 느낌입니다.

따라서 "왜 철학이 필요한가"에 대한 글쓴이의 사유가 약합니다. 좀 더 명확한 근거와 범주를 갖고 철학의 필요성과 사유의 절박함을 말씀하시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보거스 2012-02-07 14: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 위에서 밤9시의커피 님께서 지적하신 대로 호흡이 짧은 글이 좋은 글이다, 라는 말이 있지만 전 약간 길어도 현실 님의 생각의 흐름을 따라가는 데 지금 정도의 문장길이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한 문장에서 너무 많은 말을 하고 싶어하는 것은 경계해야겠지만요.

2. "아무 생각 없이 웃을 수 있는 TV 프로그램이 인기 있으며, 성인 남성은 자동차에, 성인 여성은 명품 가방에, 미성년자는 노스페이스 점퍼에 열광하는 시대"에 대한 현실 님의 사유는 무엇인가요? 사람들은 정말 '아무 생각 없이' TV프로그램에 열광할까요? 그렇다면 '(저를 포함한) 그들'은 왜 아무 생각 없이 그런 행동을 할까요?
'혼란의 시대'였던 춘추전국시대는 제자백가가 등장할 정도로 '철학하는 시대'였는데
오늘날 한국처럼 '혼란의 시대'에는 왜 사람들이 '철학하지 않는' 걸까요? 덜 혼란스러워서인가요?

3. 기존의 사상을 보고 사유하면서 타인이 분류해놓은 잣대 때문에 오인할 수 있다는 사실도 경계해야겠다
-> '무엇을' 오인할 수 있는 것인지가 분명하지 않습니다.

4. 사유하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의지를 반복해 쓰셨는데 구체적인 사유의 사례가 드러났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생각합니다. 강신주 선생님의 소개로 <회남자>의 의의도 알고, 제자백가가 등장한 배경도 알았는데, 그래서 현실 세계를 어떻게 사유하고 계신지는 알 수 없는 글인 듯합니다.

5. 제자백가 사상이 이합집산하더니 끝내는 큰 줄기로 모여 체계화되는 데 어느 정도 성공했다, 고 하셨는데 정말.. 강신주 선생님 책만 읽으면 그렇게 될 수 있습니까? 강신주 선생님께서 정리하신 내용을 이해한다고 그게 과연 내 지식이 되는 건가요?

질문이 좀 공격적이었나요;
사실 이 거친 질문들은 제 스스로에게 던지고 있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 왜 사람들은 명품에 열광할까,
나는 그 가치를 온전히 배제하고 명품 따위는 아무 의미 없다고 고고하게 살아갈 수 있나
명품 가방 하나쯤은 있어도 좋지 않을까? 이런 마음을 갖고 사는 것은 내가 '사유하지 않아서'인가?

- 타인의 지식을 읽기만 한다고 그게 과연 내 지식이 될 수 있나? 머리로 '아는 것'이 과연 내 것인가?
내가 가진 얇은 줄기를 튼튼하게 해주고 이파리를 무성하게 기르려면 무슨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하나?

등등이요. 생각할수록 어렵고, 공부를 해야겠는데 게으름이 가장 큰 적이네요.
일단 뭐라도 시작해봐야 하는데, 늘 말뿐이라 제 스스로가 걱정입니다. 하악.

고리 2012-02-08 0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철학이 사라진 시대, 사유하지 않는 시대를 자조적으로 비판하며 <철학의 시대>를 읽게 된 심경을 먼저 밝히신 점이 이 글의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글쓴이의 감정에 공감하고, 자기성찰의 겸허한 말에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효과가 있어요. 이대로 가만 있지 말고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게 하고요. 그런 고로 <철학의 시대>의 책장을 열 마음을 자아내기에 알맞은 글이라고 봅니다.

돌이 2012-02-08 0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 인문학 글쓰기에서 처음 만나는 서평이라 좋고, 서평이 거의 '책' 수준이라 더 좋고, 또 이 서평을 읽고 장바구니에 담아두었던 책을 얼른 구입해서 읽어야겠다는 욕망이 꿈틀거려서 무엇보다 좋습니다.

문장이 길지만 읽기에 부담스럽지 않고, 얘기하려는 내용도 손에 잡히듯 명료하네요. 많이 읽고, 많이 쓰신 분의 내공이 느껴져 부럽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합니다. 열공해야겠습니다. 열공!! 제가 감히 뭐라 지적하기에 이 글은 너무 높은 곳에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다만 제자백가가 활동했던 당대를 우리 사회와 직접적으로 대비시키며 현재를 비판하는 부분은 논리적으로 매끄럽지 못한 것 같습니다. 뭐랄까, 논리적 비약도 있는 것 같고, 사실을 좀 더 날카롭게 분석할 필요도 있어 보입니다. 저는 춘추전국시대에 자유로운 언론과 사상이 꽃을 피웠다거나 조선시대에 예치가 매력적인 사상이었다는 데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패권을 잡기 위해 지배이데올로기에 목말랐던 군주들과 이들에게 '채용'되기 위해 안간힘을 썼던 사상가들에게서 진정 자유의 냄새를 맡을 수 있는 것인지, 또 오로지 주자학 하나로 사문난적의 칼을 휘둘렀던 조선시대에도 안빈낙도나 예치의 향기는 그저 명분이 아니었을까, 그런 의심을 거두기 어렵습니다.
철학이 필요한 시대라는 말에는 찬동하지만, 춘추전국시대가 철학의 시대였거나 그런 비슷한 시대였다는 건 글쎄요...좀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