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2교시 여섯 번째(마지막)로 이야기 나눌 글입니다.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무척 쫄(졸)아 있습니다.
철학의 시대, 철학이 필요한 시대
(강신주, 《철학의 시대》, 사계절, 2011)
대학 시절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논어》를 읽은 적이 있다. 강산이 한 번 바뀐 지금 머릿속에 남아 있는 구절은 《논어》를 읽지 않아도 모두가 아는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學而時習之 不亦說乎)”라는 첫 번째 문장뿐이다. 오랜 시간 고생하며 원문을 강독하고 남은 것이 중학교 때에도 배우는 저 문장 하나와 여성을 비천하게 본 공자에 대한 화뿐이니, 지금 와 생각해보면 참으로 의미 없는 독서였다. 그 의미 없는 독서가 지금까지 내 인생에서 제자백가를 가장 깊이 접한 순간이었다. 그 후, 대학 교양 시간에 맹자, 장자, 묵자 등과 아주 짧게 스쳤을 뿐, 진지하게 텍스트로 그들과 마주한 적이 없었다. 철학의 시대는 지금 내가 살아가는 시대와 너무 멀었다.
내가 본 지금은, 자신만의 정치 철학을 내세우기보다는 잘 먹고 잘살게 해주겠다는 말을 전면에 내세우는 이가 나라의 지도자가 되고, 아무 생각 없이 웃을 수 있는 TV 프로그램이 인기 있으며, 성인 남성은 자동차에, 성인 여성은 명품 가방에, 미성년자는 노스페이스 점퍼에 열광하는 시대다. 철학이 사라진 시대, 사유하지 않는 시대, 그래서 철학이 필요한 시대에 살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나 역시 좀 더 잘살아보자는 헛발질뿐이었다.
헛발질로 온몸에 피멍이 든 채 살아가던 내게 철학계의 아이유, 강신주와의 만남은 반갑고도 고마운 일이었다. 스타로서의 상품성과 가수로서의 가창력, 연주 실력 등을 두루 갖춘 아이유처럼 강신주의 철학책은 상품성과 내용의 깊이를 두루 겸비하고 내 앞에 나타났다. 상품성은 이미 출간된 책의 판매 수가 방증하지만, 굳이 덧붙이자면 문장이 어렵지 않고, 어떤 어려운 철학 사상이라도 철저하게 한 인간의 현재의 삶에 대입할 수 있게 만든다는 것에서 기인한다. 그러면서도 통속적이지 않고, 사상가마다의 주요 논지를 정확히 짚어주어 결코 가볍지만도 않다. 동서양 사상가의 철학을 해체하고, 대중이 각자의 삶에 대입해볼 수 있는 글로 재탄생시키는 작업은 결코 얄팍한 내공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닐 것이다. 이렇게 강신주 팬임을 자처하는 나는 삼촌 팬이 아이유의 새로운 뮤직비디오를 보는 마음으로 강신주의 새 책 《철학의 시대》를 펼쳐 보았다.
책을 처음 펼칠 때는 대학 시절 나름 《논어》도 읽어봤을 만큼, 그리고 그 후 한 번도 안 쳐다봤을 만큼, 제자백가 사상에 대해 아는 듯하지만 실상 하나도 모르는 내가 대뜸 읽어도 되는 책일지 망설였다. 하지만 책을 읽고 나니 그 망설임은 왜 나는 강신주를 더 믿지 못했느냐는 팬심으로 흡수돼버렸다. 머릿속에 흐릿하고 너저분하게 잔존하던 제자백가 사상이 이합집산하더니 끝내는 큰 줄기로 모여 체계화되는 데 어느 정도 성공했다. 또 그뿐이었으면 서운했을 뻔도 했는데, 기존에 내가 어렴풋이 알던 제자백가는 어렴풋하게 안 것이 아니라 잘못 알고 있었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철학의 시대》는 ‘제자백가의 귀환’ 시리즈의 문을 여는 첫 번째 책이다. 본격적으로 제자백가의 사상을 다루기 전에 다양한 사상가들이 사랑과 평화를 찾을 수 있는 그들만의 방법, 도(道)를 천차만별로 부르짖었던 원인이 무엇이었는지 되짚는 내용이다. 사상이 나온 배경과 문맥을 먼저 읽고 제자백가의 사상을 찬찬히 살펴보자는 당연한 논리의 발로인 셈이다. 춘추전국 시대에 국가주의에서 아나키즘까지 다양한 사상이 나온 배경은 뭐였을까?
저자는 답을 혼란한 시대에서 찾는다. 여러 명의 군주가 끊임없이 폭력으로 맞서던 시기, 삶의 상처가 깊어 그 상처의 치유를 위해 다양한 사상이 등장한 것이다. 또한 패권을 다투는 여러 군주로 권력이 나누어져 있어, 하나로 취합되는 권력이 없었기에 군주들은 지식인층의 지지를 받기 위해 사상가들에게 언로를 열어놓았다.
맹자가 살았던 시기에 제나라의 직하학사라는 곳에서는 다양한 사상이 열띤 토론으로 꽃피었다. 거기에는 양주 같은 아나키스트도 있었고, 예수와 비견되는 사상을 지닌 묵자도 있었다. 최근 자신의 트위터에 북한 언론 매체인 우리민족끼리의 트위터를 리트윗하거나, 북한과 관련한 트윗을 써 국가보안법 7조(찬양·고무)를 위반한 혐의로 박정근 씨가 구속되는 사건이 있었다. 21세기에 사는 우리는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이렇게 촘촘히 제한받는데, 우리에게 보수의 아이콘으로 상징되는 공자와 맹자가 살았던 2500년 전 중국에서는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었던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눈여겨봐야 할 점이 한 가지 더 있다. 당시 사상계에서 유학은 ‘죽은 개’ 취급을 받았다는 점이다. 공자의 사상은 훗날 순자를 만나 다시 빛을 보지만, 공자는 생전에 관료로 나아가지 못한다. 시대가 원하는 것과 맥을 같이하는 사상이 살아남고 그렇지 않은 것은 도태되었다. 때마다 시대의 요구에 맞는 사상이 달랐고, 군주에게 채택되는 사상가도 달랐다.
공자가 강조한 예(禮)는 법치를 전면으로 거부하는 사상이었기에 민중을 법으로 직접 다스려 권력을 공고히 하려 했던 군주들에게 채택될 수 없는 사상이었다. 귀족층의 지분 늘리기에 적합한 사상이 당시에는 채택되지 못하다가 훗날 현실로부터 극적인 초연함을 유지하는 철학 학파로 변신하여 필요한 세력에 의해 확대 재생산되었다. 그리고 바다 건너 조선에까지 강력한 영향을 미친 것이다. 조선의 양반들에게 안빈낙도 등 선비의 고결함을 강조하면서도 신분에 따른 예가 법보다 우선한다는 예치가 얼마나 매력적인 사상이었겠는가.
이 책에서 저자가 방점을 찍는 또 다른 것은 우리에게 조금 덜 알려진 역사서, 《회남자》의 의의다. 《회남자》는 《한서》와 《사기》와는 다르게 한제국의 중앙집권적 정치 이념을 토대로 작성된 것이 아니라 지방분권적 정치 이념 위에 만들어졌다. 《한서》와 《사기》가 황제 권력의 후원으로 만들어진 반면, 《회남자》는 지방 제후에 의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다른 세력 위에 만들어진 만큼 이 책들은 한나라 이전의 사상을 정리하는 기준이 다르다. 유가와 도가 중 어떤 사상을 더 위에 두느냐도 다를 뿐만 아니라 제자백가 사상을 다루는 방식도 다르다. 《한서》와 《사기》가 유가, 도가, 묵가 등의 학파 개념으로 사상사를 정리한 반면, 《회남자》는 학파 구분을 하지 않고 사상가들을 각각 강태공, 공자, 묵자, 상양 등의 고유명사로 풀고 있다. 저자는 《한서》와 《사기》 그리고 《회남자》를 비교하며 자의적인 분류 방식의 허점과 위험을 지적한다. 자의적으로 여러 사상을 분류하여 한 가지 틀 속에 가둠으로써 오독의 소지를 낳기 때문이다. 이는 ‘제자백가의 귀환’ 시리즈가 왜 유가, 도가, 묵가 등의 학파로 묶여 출간되지 않고, 사상가 한 명 한 명의 고유명사를 제목으로 달고 출간하게 되었는지를 설명하는 셈이다.
기득권층의 레드 콤플렉스 사고가 여전히 사상의 자유를 가두는 우리나라의 지금을 보면, 기원전 춘추전국 시대는 자유로운 사상이 꽃피웠고, 나라를 아예 새롭게 세울 수 있던 시기였기에 오히려 지금보다 개혁적이었다. 다양한 사상이 시대의 흐름을 타고 서로 논쟁하며 성장하였다. 그 사유와 논쟁의 역사를 보며 자유롭게 사유하는 중요성을 새삼 느낀다. 억압받고 무질서했던 시기에 진흙탕의 연꽃으로 핀 제자백가처럼 시대의 억압과 가능성을 파악하며 사유를 발전시켜나가야겠다. 또한 기존의 사상을 보고 사유하면서 타인이 분류해놓은 잣대 때문에 오인할 수 있다는 사실도 경계해야겠다. 매일 칼을 휘두르고 목을 베는 전쟁이 일어나 권력이 뒤바뀌는 시대는 아니지만, 쇠가 아닌 칼은 지금도 있고, 죽음이 아닌 참형은 오늘도 일어나고 있다. 철학이 필요한 시대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나 역시 좀 더 잘살아보자는 헛발질이 아니라, 사유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