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하고 지겨운 일일수록 그 속에 신적인 것이 들어 있는 거야."-92쪽
"우리와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이 많아. 강간사건은 무수히 많으니까. 그래서 임신한 아이를 없애는 사람도 있고, 낳는 사람도 있어. 어느 쪽이 옳다고 생각해? 아이를 낳아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난 모르겠어. 정답은 없으니까."-97쪽
"아마도 인간은 세계를 바꾸기 위해 불을 사용하는 것 같아." 하루는 불이나 불꽃 이야기와는 어울리지 않게 시원스런 표정을 짓고 있다. "그리고 신이 세계를 바꾸기 위해 사용하는 수단은 물이야. 성서에도 나오는 홍수."-103쪽
"정말로 심각한 것은 밝게 전해야 하는 거야." 하루는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그렇게 말했다. "무거운 짐을 졌지만, 탭댄스를 추듯이." 시처럼 들렸다. "삐에로가 공중그네를 타고 날아오를 때는 중력을 잊어버리는 거야."-109쪽
"형도 조심해야 해. 똑바로 가려고 의식하면 할수록 길에서 벗어나게 되니까. 살아가는 일과 똑같아. 똑바로 살아가려는데도 어딘가에서 저도 모르게 굽고 말아. 굽어라, 굽어라, 하고 외쳐대도 굽는 거지만." "커브밖에 못 던지는 피처 같은 거로군." "포크밖에 못 던지는 피처보다는 나아. 낙하할 뿐인 인생보다는 말이야. 어쨌든 그 다리에는 가까이 가지 않는 게 좋아."-120쪽
최종적으로 인간이 의지할 곳이란 결국 '성선설'이 아닐까. 사원들 책상 앞에 각자의 부모 사진과 자신의 어린 시절 사진을 놓아두게 하는 것이 부정 방지책으로 가장 좋지 않을까 하는 게 내 생각이다.-124쪽
사람의 일생은 자전거 레이스와 똑같다고 단언하는 상사가 있는가 하면, 인생을 레스토랑에서 식사하는 것으로 비유하는 동료도 있다. 즉, 인생을 죽을 힘을 다해 페달을 밟아야 하는 경주로 승자와 패자가 존재한다는 사고방식과, 인생은 풀코스 요리를 즐기는 것과 같으므로 옆 테이블에 앉은 다른 사람과 경쟁할 필요가 없다는 사고방식이다.-147쪽
"차밍하면서 우울, 그거 모순 아냐?" "모순은 어디에나 있는 거야." 마치 모순은 길거리의 모래만큼이나 된다는 식의 말투였다.-150쪽
세상에는 인터넷이 세계의 전부라고 믿는 사람이 많다. 인터넷으로 검색하여 표시되지 않는 인물이나 사물은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세계에서 몸을 숨기고 싶다면 은밀하게 사는 곳을 옮길 필요도 없이 검색 조건에서 빠져나가는 방법을 생각하는 편이 현명할지도 모른다.-160쪽
건축한 지 십 년 이상은 된 건물일 것이다. 'CSS' 로고가 빌딩 맨 꼭대기에 그려져 있었다. 휴일인데도 실내 여기저기에 불이 켜져 있었다.대체 이 세상에는 언제나 휴일에는 출근하지 않는 날이 찾아올까?-161쪽
"자신이 생각하는 건 남도 생각한다는 것. 그러므로 대부분의 시도는 여지없이 자신에게로 되돌아오는 법이지."-179쪽
문득 어머니가 떠올랐다. 어머니는 마음의 위로라는 말을 좋아했다. "그때 그 자리의 위안이 사람을 구원하기도 해." 그런 말을 자주 했었다. 아버지가 직장 일로 피곤해하거나 좌절하면, 맛있고 화려한 요리를 만들어 "사람을 구원하는 것은 말이 아니라 맛있는 음식이야" 하고 말하기도 했다. 먹으면 없어져 버리는 음식이, 어머니에게는 한순간이나마 마음의 위로가 되어주었던 것 같다.-197쪽
성냥, 이란 말에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유명한 소설이 떠올랐다. "인생은 한 통의 성냥과 비슷하다. 소중하게 다루는 건 웃기는 일이다. 그러나 소중하게 다루지 않으면 위험하다."-209쪽
자전거를 타고 가면 꼭 알맞겠다고 시간 계산을 해 본다. 계산대로 움직이는 인생은 정말 싫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계산을 그만두지 못한다.-212쪽
"인생이란 강물 같은 거라 뭘 하든 흘러가는 거야." "안정이니 불안정이니 하는 건 커다란 강의 흐름 안에서는 사소한 일에 지나지 않아. 나아가는 방향에는 별 차이가 없어. 마음이 가는 대로 하면 돼."-71쪽
"어떤 시대에도, 상상력이란 선인에게서 이어받는 것이 아니라 매순간마다 예술가가 필사적으로 짜내야 한다는 거야. 그래서 예술은 진화하지 않는다는 거지." "알 것 같기도 하고, 모를 것 같기도 하고." "십 년 전에 비해 컴퓨터나 전화는 더 편리해졌어. 진화했다고 해도 좋아. 그렇지만 백 년 전의 예술에 비해 지금의 예술이 더 훌륭하다고 할 수는 없는 거야. 과학처럼 업적을 쌓아올리는 것과 달라서 예술은 그때마다 전력질주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야. 그래서." "그래서?" "만칠천년 전의 라스코 동굴에 벽화를 그린 호모 사피엔스도, 21세기의 지하도에 낙서를 하는 나도, 같은 정도의 상상력을 작용시키고 있다는 거지. 에셔는 벽화를 보고 그 사실을 깨달은 거야."-346-347쪽
"인생은 생각하는 게 아니라 알게 되는 거야."-382쪽
"준비하지 않으면 기적도 안 일어나."-397쪽
"아냐. 휘파람새는 아마도 모든 걸 알고 있을 거야. 그래도 뻐꾸기를 길러. 왜냐하면, 자신만이 아니라 보다 큰 세계를 생각하기 때문이야. 덩치도 작고 울음소리도 보잘것없는데, 정말 대단해."-4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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