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읽어야 할 한국단편 35선
현진건 외 지음 / 타임기획 / 1993년 5월
평점 :
절판


 

 이 소설로 오늘 수업하고 왔다. 철학연구소에서. 흠. 연구소가 자꾸만 일반 논술학원이나 학교 국어시간으로 변질되어 가는거 같아서 요즘 수업을 하면서도 별로 마음에 안든다. 책 선정하는 것도 그렇고, 교재도 그렇고. 어쨌든 오늘은 중학교 1학년과 현진건의 또다른 작품 <B사감과 러브레터>라는 소설로 수업을 진행했는데 이 짧은 소설을 전부 다 읽은건 이번이 처음인거 같다. 분명 이 소설 중고등학교 책에도 나왔던거 같은데 -전문은 아니지만- 왜 다 읽진 않았을까. 부분적으로만 기억이 나고 전체는 생소한 걸로 봐서 난 이 책을 처음 본게 틀림없다. 예전에 최인훈의 <광장>과 <회색인>을 읽을 때도 그러더니. 중고등학교 정규 국어 수업을 제대로 받았다고 하는 - 난 모범생이었으니깐 날 표준으로 보아도 좋아 (퍼퍼퍽) - 내가 이 소설을 비롯해 한국 근대 소설들이 생소하다면 우리네 학교교육은 제대로 이뤄졌다고 보기 힘들다.

 현진건의 작품으로는 <빈처><운수좋은날><B사감과 러브레터><무영탑><적도> 등이 있다고 하는데, 그나마 친숙한게 며칠전 읽은 <운수좋은 날> 뿐.

 <B사감과 러브레터>는 <운수좋은날>보다도 더 짧다. 10분도 안걸린다. 정말이지. 과거엔 왜 이렇게 짧은 단편들이 많았을까? 하는 의문도 생긴다. 한국 근대 소설에는 대부분 이와 같은 짧은 단편들 뿐이다. 지금 우리네 소설계는 적어도 최소한 400쪽 정도 두께의 한권짜리 소설이 제일 짧은거 아닌가? 누구 내게 이 의문점을 해소해주오.

 <B사감과 러브레터>. 등장인물. 여학생 셋. B사감. 남학생. 끝.

  여학교 기숙사를 담당하는 B사감. 절대 그녀의 손에 들어오는 러브레터는 온전치 못하다. 뜯어서 내용파악까지 다 하고 해당 여학생을 불러낸다. 이 남학생 어디서 만났어! 밖에서 행실치 온전치 못했으니 이런 일이 생기는 거 아냐?! 등등등. 그 못생기고 주름진 얼굴에 안경위로 째려보는 그녀의 눈을 감당할  여학생은 없다. 그런데 어느날 어디선가 이상한 소리가 들려온다. 여학생 셋 방에서 나와 소리나는 곳으로 조용히 걸어간다. 어이쿠. 이게 뭐냐. B사감의 문을 살짝 열어보니 이 노처녀 이상한 짓을 하고 있네. 웃찾사 동수를 불러다 내어 안고 애정행각을 하는 것인가. 허공에다 대고 뭔짓이래.

 그녀들의 반응이란,

 "저게 웬일이야"

 "아마 미쳤나 보아"

 "에그 불쌍해"

 세 여학생의 이 각양각색의 반응들. 첫번째의 놀라움과 두번째의 사실감과 세번째의 안쓰러움이 한데 엮여 전달되는 반응. 그랬군... 하며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못생기고 늙어서 남자가 여태 없었지. 그리고 자기가 없으니깐 질투심에 여학생들에게도 남자들이 접근 못하게 하려고 했던게지. 그리고는 밤에 혼자 이상한 짓거리를 하며 가슴 속에 억눌린 욕망을 어떻게든 풀어보려 했던게지.

 인간의 욕망을 부정할 수는 없다. B사감이 학생들 앞에서 보여준 겉모습과 그녀들이 잠든 야밤의 B사감의 진실된 모습은 극명하게 다를 수 밖에 없었던 것. 그녀도 여자다. 흙. 그녀도 인간이다. 어찌 욕망이 없을소냐.

 도덕적 엄숙주의가 우리네 과거를 지배했다면 지금은 이것으로부터 많이 해방되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제 자유롭게 자기를 표현하고, 자신의 마음을 해방시킨다. 욕망을 발산시킨다. 그렇담 이제 문제는 없는걸까. 또다른 의문이 생겨난다. 나의 마음 속에서.

 모순된 인간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던 B사감. 누구나 모순적인 모습을 보일 때가 있다. 나도 이를 부정하지 않겠다. 나 역시도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과 밖으로 드러나는 모습이 분명 같지는 않다. 단정적으로 다르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같지는 않다. 나에게도 나의 내면에 타인에게 섣불리 드러내고 싶지 않은 모습이 있다. 인간이라면,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그렇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로즈마리 2005-07-24 0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근래에 현진건 작품을 새로 발견하게 되었는데...
인간 심리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는 면이 여느 근대소설과 좀 다르게 보이더라구요.
빈처 등에서 지식인에 대한 자의식과 반성도 엿보이고..일본 사소설의 영향을 받은 듯도 보이고. 여튼 근대 소설에서 현진건은 분명 특수한 위치에 있음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마늘빵 2005-07-24 0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찍 일어나셨네요? ^^ 좋은 아침입니다. 근데 덥네요. 현진건 말고도 다른 작가들의 작품도 읽어볼 생각이에요.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접하던 그 느낌이 아닌 다른 새로운 느낌을 받고 있는 중이거든요.

로즈마리 2005-07-25 2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 그렇담, 이인직의 <혈의 누>도 추천해요. 친일파인 걸 의식하면서 보면 재미가 더 쏠쏠하답니다. 전 중고등학교 때, 지루한 책인 줄 알고 안 봤었는데, 최근 보니까, 그냥 드라마같은 책이더라구요. 문학적인 가치보다는 시대적인 가치가 더 높지만, 분명 새로운 느낌을 받으실 겁니다. 얼마 전에 한 외국인이 우리나라에 유학와서 <혈의 누>를 가지고 논문 쓴다는 얘길 들었는데, 호오~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마늘빵 2005-07-26 0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네 ^^ <혈의 누> 영화도 있는데. 전혀 다른거죠? ㅋㅋ
 
꼭 읽어야 할 한국단편 35선
현진건 외 지음 / 타임기획 / 1993년 5월
평점 :
절판


 

 상품화된 '책'을 논하자는 것이 아니다. 사실 '한국단편 35선'이라고 하면 타임기획에서 나온 책 말고도 지금껏 수십권을 나왔겠다. 그 책을 보나 이 책을 보나 다 똑같다. 내용은 모두 같단 말이다. 단지 어느 작가의 작품을 어떤 순서로 실었느냐 하는 것의 차이일 뿐. 그래서 한국단편을 이야기할 때는 상품이 되어 출간된 책 자체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난 이 책에 담긴 35개의 단편 각각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먼저 읽은 소설은 현진건의 '운수좋은날' 

 내가 작가 현진건을 접한 것은 아마도 고등학교 국어 시간이 아니었나싶다. 중학교에서 접한 것 같지는 않고.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현진건, 이상, 황순원, 최인훈 등의 작가들을 중 고등학교 국어  시간이 아닌 다른 기회를 통해 접하기는 힘들 것이다. 달리 이 책들을 소개해주는 사람들이 있는 것도 아니고. 부모님께서 미리 추천을 해줬다면 읽었을지도 모르지만.

 하지만 내가 국어시간에 접했던 현진건과 지금 접한 현진건은 다르다. 물론 동일인물이다. 하지만 느낌이 다르다. 그때 난 현진건의 <운수좋은 날>을 비롯한 여러 소설과 수필을 껍질을 까발리고 회를 뜨고 내장을 뜯어내고 이건 무슨 효과네 저건 뒤에 나올 뭐시기를 위한 복선이네, 이 단어의 의미는 뭐네 하면서 철저히 까발리고 분석하고 뜯어 널었다. 우리나라 국어 교육이란게 이렇다. 오늘날은 어떤지 모르지만. 당연히 현진건의 <운수좋은날>의 그 묘미가 들어올리가 없지. 국어만 이런게 아니라 내가 가르치는 도덕도 마찬가지다. 난 도덕 교과서를 없애고 싶다.

 대학을 졸업한 나이가 되어 접한 현진건의 <운수좋은 날>은 내게 꽤나 놀라움과 감동을 주었다. 그 내용에서 감동을 받은 것이 아니라 그가 그 짧은 이야기를 풀어내는 솜씨에 감동을 받았다는 말이다. 소설의 내용이 아닌 현진건이란 작가에게. 이런 탁월한 놈.

 현진건은 1900년에서 1943년까지 살았다고 하며, 김동인, 염상섭과 함께 국내 단편 소설의 모형을 확립했다고 한다. 사실 이것도 그렇다니깐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는거지 내가 그가 국내 단편 소설의 모형을 확립했는지 어쨌는지는 알 길이 없다. 전문가들이 그렇다고 하니깐 그런가보다 하는거다.

 현진건을 분류하기로는 사실주의 작가로 뽑는데, 그들에 의하면, 사실주의라는 것은,

 "객관적 현실을 가능한 한 충실하게 재현, 묘사하려는 태도, 창작방식을 말한다. 작가의 주관적 요소보다 객관적 현실을 중시하는 리얼리즘은 반리얼리즘적 조류(이상주의, 공상적 낭만주의, 형식주의)와 함께 예술의 발생 이래 양대 조류를 형성해 왔다. 그러나 근대 이전의 리얼리즘은 자연발생적인 것이며 반리얼리즘적인 여러 요소들이 혼재되어 있었다. 리얼리즘은 근대 시민사회에 들어와 비판적 리얼리즘으로 확립되었다."

 라고 한다. 그렇구나. 끄덕. 내래 알길이 있다. 그렇다니깐 그런가부다 하지.

 현진건이 이 소설에서 드러낸 그 아이러니함. 그건 정말이지 탁월했다. 이 짧은 소설 안에서, 이 짧은 이야기 속에서 아이러니를 그토록 극명하게 드러낸 작가가 있던가. (하긴 내가 뭐 소설을 많이 읽어봤어야 나의 이러한 감상이 일반적으로 먹혀드는 거지. 난 소설을 잘 안읽는다.)

 예전에 일기랍시고 쓴 나의 글에는 '운수좋은 날'이라는 문구를 집어넣어 아이러니를 표현하려고 했던 글이 있다. 아주 오래전에 쓴 글인데. 음. 1999년 혹은 2000년 쯤. 지금보니 그다지 효과적으로 표현한거 같지도 않다. 하지만 그땐 정말 나도 현진건과 같은 탁월한 아이러니를 표현하고자 했었다.

 한편으로 운수 대박 터진 날이건만 한편으로 극도로 슬픈 날이구나. 치워라 치워라. 발로 팍팍 차보지만 일어나지 않는다. 꿈쩍도 안하는 아내. 어쩐지 오늘 운수가 좋더니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예전에 한번 봤던 영화이지만 그때의 감동을 다시 느껴보고자 다시 봤다. 다시보니 감동만 남고 내용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마치 처음 보는 영화같았다.

 <제리맥과이어>는 내가 좋아하는 탐크루즈와 르네 젤위거가 주인공인 영화이다.

 발빠르게 지나가는 사람들과 높은 고층 빌딩들. 이 동네를 거닐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당신은 성공한 사람이다. 제리 맥과이어는 성공한 스포츠 에이전트이다. SMI 라는 거대한 에이전트 회사에서 일하며 수십(?)명의 스포츠 선수들을 관리하는 인정받고 돈 많이 버는 에이전트다. 그러나 그는 어느날 새벽 집에서 필받아 글을 쓰기 시작하는데 이른바 '제안서'. 25쪽의 소논문 분량의 제안서를 쓰고나서는 110부를 복사해 다음 날 아침 회사 간부들의 우편함(?)에 집어넣는다. 사.고.예.감.

 그의 제안서를 읽어본 회사 사람들 모두가 박수를 치며 그를 환영하지만 한쪽에서는 이런 대화가 오간다.
 
 "얼마나 갈까?"
 "길어야 한달? 다음주면 짤릴지도 모르지"
 (정확한 대사 아님)
 
 아니 도대체 무슨 내용의 제안서길래? 스포츠 에이전트라는 직업은 뛰어난 기량을 가진 스포츠 선수들이 제값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직업이다. 광고를 따주고, 연봉협상을 벌이면서 선수들에게 최대한의 수익이 돌아가도록 하고, 그 자신 또한 거기에 따르는 커미션을 얻어냄으로써 생계를 유지한다. 많은 연봉을 따내고, 많은 광고를 따낼수록 자신에게 돌아가는 것도 많아지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에이전트라는 직업은, 스포츠 선수들을 상품화시킴으로써만 가능한 것이고, 까놓고 얘기하면 상품이 된 선수들을 얼마나 비싼 값에 팔아넘기느냐 하는 문제가 그들의 주된 관심사인 것이다. 최근 일본에서 활약하던 안정환이 프랑스리그로 팔려간 것은 그의 에이전트의 노력의 결과이다.

 에이전트는 자신이 관리하는 선수를 어쩔 수 없이 상품으로 취급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맥과이어는 여기에 딴지를 걸었다. 그들을 상품으로만 취급하고 어떻게 하면 돈을 더 벌것인가를 고민하지말고 수익 중 일부를 사회에 환원하고 그들을 좀더 인간적으로 대우해야한다는 내용의 제안서를 회사에 뿌린 것이다. 당연히 회사의 경영철학과 반대되는 이야기임은 말 할 것도 없다. 이긍 짤렸지 머.

 회사 후배이자 또다른 에이전트로부터 해고통보를 받게 되고 한순간에 실직자가 되어버린 제리. 하지만 그를 따라 나선 이가 있으니 같은 회사에 근무하던 경리 도로시다. 아이 딸린 26살난 유부녀 도로시. 그는 제리 맥과이어의 제안서에 감동했고, 그의 영혼에 반했다. 당장 생계에 위협을 받는 도로시, 멋도 모르고 회사를 나와버렸으니 어쩐다?

 제리는 그가 관리하던 선수들에게 연락해봤지만 이미 다른 동료가 선수친지 오래다. 남은 한명이 미식축구선수 로드 티드웰. 하루종일 수다를 떨어대며 남을 비방하고 자신이 최고인줄 아는 로드를 관리하기 위해서는 꽤나 피곤하겠다. 경기는 잘하지만 몸집이 작고 매너가 없다는 이유로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하는 로드. 하지만 제리는 그를 위해 백방으로 뛴다. 이 둘은 더이상 이전의 에이전트와 선수의 관계가 아닌 인간적인 유대감으로 맺어진 친구이다. 친구가 친구를 위해 일하고, 친구는 친구를 끝까지 믿는다. 영화의 결과야 당연히 두 사람의 성공으로 끝난다.

 

 사회에 발을 디디는 순간 나는 하나의 상품이 되어버린다. 물건을 사고 팔아야 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나는 물건을 구입하고 소비하지만 한편으로 나 자신이 구입되고 소비되는 또다른 상품인 것이다. 회사에 어렵게 들어가 뼈빠지게 일했다. 수당도 없이 야근에 야근을 거듭했다. 그리고 나이가 들었다. 이젠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퇴출당했다. 수십년간 일했던 직장에서 쫓겨난 자의 기분이 어떨까? 나는 지금껏 회사의 소모품이었고 건전지가 다 되자 버림받았네.

 흔히 사회는 냉정하다 라는 말을 자주하는데 그 말이 의미하는 바는 사회에서는 그 누구도 믿지 못하며 지금 나의 친구, 나의 동료라고 할지라도 내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나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은 아니라는 말일 것이다. 지금 너의 친구가 후일 너의 적으로 바뀔 수도 있느니라. 영화 속에서 제리가 처한 상황이 딱 그것이다. 같은 회사에 근무하던 수많은 사람들이 나의 해고통보에도 끄덕없이, 아무런 변화없이 그들의 삶을 진행시키고 있고, 나는 그들에게 잊혀져야할 존재인 것이다. 이 냉정함. 이 살벌함.

 제리는 자신은 내쫓겼지만 자신의 철학대로 업무에 있어 고객이 되는 스포츠 선수들에게 고객으로서가 아니라 친구로서 대해줬고, 그에 따른 어려움과 고난도 많이 겪었지만, 결국 그들의 신뢰를 얻었고, 함께 성공할 수 있었다.

 
 나는 그런 존재인가? 나는 제리같은 존재인가? 생각해보면 나 또한 냉정한 사회 속에서 함께 냉정해지려고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동료를 대함에 있어서, 학생들을 대함에 있어서, 난 그들과 부대끼지 못했고 그들의 마음 속에 들어가지 못했으며 언제나 외따로 놀았다. 그건 나의 성격 탓이기도 하지만 언제까지나 성격만을 탓할 수는 없다. 나의 노력으로 바꿔야지.

 영화속에서 제리를 외면했던 동료들도 제리의 철학에는 동의했을지도 모른다. 제안서를 읽어보고 박수를 치던 동료들과 해고된 이후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던 동료들은 같다. 하지만 그들은 당신의 의견에는 동의하지만 당신과 함께 싸워줄 만한 여력은 없다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 것. 사회생활을 하는 누구나 친구 같은 인간관계를 원할 것이고, 냉정하기보다 따뜻하고 정감있는 사람들과 함께 부대끼며 일하기를 원할 것이다. 단지 사회는 냉정하기 때문에 나 또한 냉정해져야 한다고 스스로를 세뇌시키는 것일 뿐. 눈치보지 말구 모두가 나의 마음을 열고 일을 한다면 달라지지 않을까. 오늘부터라도 좀더 열린 자세를 취해보자.

 

 

* 르웰 젤위거의 입술은 정말 매력적이다. ^^ 이 말을 꼭 하고 싶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살수검객 2005-07-23 16: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how me the money..전 제리 맥과이어만 떠올리면 이 대사가 기억난다는..^^;;..탐크루즈,르네 젤위거의 연기가 돋보이는 멋진 영화라고 생각해요..

마늘빵 2005-07-23 2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ㅎㅎㅎ 로드가 이치던 그거군요. 쇼미더머니 ㅋㅋㅋㅋ 엄청 수다를 떨던데.
 


 

 

 

 

  아무리 하지원이 나온다고는 하지만 극장에서 돈주고 보기는 아까웠고 그래서 그냥 지나쳤던 영화 중 하나다. 제목과 포스터에서 풍기는 유치찬란함. 귀여니 소설 원작의 <늑대의 유혹>이나 <그놈은 멋있었다>에서는 그래도 뭔가 아른함 이란 것이 포스터에서 풍겨졌으나 <내 사랑 싸가지>에서는 그런 것을 전혀 찾아 볼 수 없었고, 오히려 얼마전 내가 봤던 영화 <여고생 시집가기>를 떠올리게 했다. 그래도! 하지원이라는데 한번 믿고 보자 는 마음으로 케이블에 해주길래 봤다.

 생각보다는 괜찮았다. 아주 유치찬란뽕짝 까지는 아니었으니. 싸가지 없는 명문대 법학과 형준과 공부에는 전혀 소질도 관심도 없는 여고생 하영. 사귄지 백일 되는 날 연하 남자친구에게 차이고 돌아오는 하영 길가에서 찌그러진 캔을 발로찬다. 쓩 하고 날아간 깡통은 랙서스 430(?) 을 탄 형준의 얼굴을 가격! 차는 동네 담에 들이받았다. 열받을대로 받은 형준. 차에서 내려 지나가는 하영이를 부른다.

 "내 얼굴은 그렇다치고 저 차 저 차 어떻게 할건대??!!!"

 "돈도 많게 생겼는데 한번만 봐주시면 안되~~요?"
 "우리집 졸라리 가난한데..."
 "저는 진짜 가난한 고 3 학생일 뿐이에요"

 "그래? 그럼 몸으로 떼워야지"
 
 300만원을 물어내라는 형준이의 요구를 100일간 노예로 지낸다는 계약으로 대신한 하영. 둘 간에는 노예계약이 성립됐다. 짐 들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형준의 집에 가정부로 들어앉은 하영이. 처음엔 이 싸가지가 짜증이 났으나 나중에는 정이 들었는지 점점 좋아진다. 형준이 역시 마찬가지.

 
 잘생기고 멋진 돈 많은 명문대생 형준이 이쁘고 공부 못하는 여고생 하영을 노예로 삼아 100일간 지낸다 라는 기본설정을 가지고 진행하는 이 영화는 12세 이상 관람가로 성적인 장면은 전혀 나오지 않지만 설정 자체가 일단 성적이다. 흔히 변태적 쾌락을 즐기는 어른들 사이에서 노예팅이니 노예계약이니 하면서 은밀한 곳에서 거래가 성립되는데 그것의 기본적인 사항을 본따 만들어낸 영화다.

 감독은 이런 기본설정에서의 위험스런 부분을 희석시키기 위해서 형준이라는 대학생이 여자에는 애초 관심이 없는 인물로 만들어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가 여자를 밝히고 순진한 여고생을 어떻게 해보려 했다면 영화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진행됐을 것.

 김재원과 하지원이 연기를 잘해줘서 그렇지 안그랬다면 <여고생 시집가기>와 같이 되어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냥 그럭저럭 보고 후회는 하지 않을 만한 영화였다. 


댓글(7)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부리 2005-07-22 1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님의 넓은 포용력.... 존경스럽습니다! 우리 테니스 멤버들도 좀 그랬으면 좋겠어요. 아침에 치는데 판정 가지고 싸우더니 그담부터 막 치더군요. 분위기 겁나게 험악해지고... 으아...

마늘빵 2005-07-22 1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별로 포용한 건 없는데요....

세실 2005-07-22 14: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재미있게 봤답니다. 하지원 귀엽잖아요~~~

릴케 현상 2005-07-22 14: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명절날 보는 건 다 재밌나 봐요

마늘빵 2005-07-22 2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실님 / 저도 하지원 귀염떠는거 보는 맛에 봤답니다.
산책님 / ^^ 명절날 다 같이 보는건 뭐래도 재밌죠. 머털도사 열번은 본것두.

놀자 2005-07-23 15: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하지원땜에 본 영화~
근데 마지막에 성적이 바닥을 기던 하지원이
몇달만에 명문대에 갔다는 설정 대략 황당 했어요~ (그녀는 천재였나???ㅋㅋ)

마늘빵 2005-07-23 2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든 영화가 다 그렇죠. ㅋㅋ 맨날 바닥을 기던 애들이 항상 결과에 보면 명문대에 들어가 있어요. ㅡㅡ; 공부가 그렇게 금방 되는건 아닌데... 어쩜 꼴찌도 하면 명문대 갈 수 있다는걸 보여주는거 같기도 하지만, 단기간만 열심히 해도 된다 라는 안일한 생각을 심어줄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어요. 황당한 결말.
 


 

   안데르센의 '빨간구두'라는 동화를 모티브삼아 만들었다고 알려진 영화 <분홍신>은 딱 기대한 만큼만 내가 만족감을 주었다. 애초 <분홍신>에 대해서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고 그냥 볼만한 영화 정도로 치부했기에 이 영화에 실망하지 않았던 것 같다. 영화를 본 많은 이들이 실망했다는 뒷이야기를 들어온지라.

 사실 난 안데르센의 '빨간구두'라는 동화를 읽어보지 못했다. 유명한 동화인 듯 하고, '미운오리새끼' '인어공주'  '성냥팔이소녀''벌거숭이 임금님' 등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많은 동화를 쓴 작가의 작품인데도 이상하게 난 '빨간구두' 를 접하지 못했다. 동화라고 하기에는 너무 잔인한 장면묘사와 내용 때문이었을까.

 동화를 읽어보지 않았으나 동화에 대해 대략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카렌이라는 어린여자아이가 빨간구두를 신고서 춤을 추게 되는데 춤을 멈출 수가 없자 지나가던 나무꾼이 도끼로 발을 잘라버렸다는 이야기 정도. 혹자는 이것이 너무 화려한 인생을 살려고 하는 여자아이에게 하느님이 벌을 줬다는 종교적인 의미로 해석을 하기도 한다. 자살을 한 아이의 장례식에서조차 춤을 추고 있는 발. 그녀의 발은 시체가 썩어문드러지기까지 춤을 추었다고 한다.

 영화 <분홍신>에서 엄마와 딸은 엄마가 길에서 주워온 분홍신을 가지고 뺏고 뺏기는 치열한 다툼을 벌인다. 이 둘 사이에 신발싸움에 잠깐 끼었던 선재의 후배는 신을 신고 걸어가다 미친 듯이 춤을 추며 웨딩샵 진열장으로 뛰어들어 죽게된다. 발은 잘린 채로. 그러나 신발은 사라졌다.

 신을 주운자는 멀쩡하고 뺏은자는  살아남지 못한다?

 때는 일제시대. 분홍신을 신고서 춤을 추고 있는 여배우가 있었고, 그녀를 사랑하는 남자가 있었다. 다른 한 여자 역지 이 남자를 사랑하고 있었고, 분홍신을 신은 여배우를 미워하기 시작했다. 어느날 그녀를 살해하고 시체를 땅에 묻고 분홍신을 빼앗아 춤을 추고 남자의 사랑을 받게 되는데, 공연이 끝나고 여자와 남자는 한데 묶여 죽게 된다. 여자의 발에서 분홍신은 벗겨진채로.

 분홍신의 저주. 버려도 절대 버려지지 않는 제발도 다시 찾아와 품에 안겨버리는 저주 받은 분홍신을 어찌 해야 할 것인가.

 영화의 내용은 사실 별거 없다. 저주 받은 분홍신을 뺏고 뺏기는 쟁탈전과 간혹 보여주는 공포심이 전부. 영화의 매력은 다른 곳에서 찾아야 한다. 김혜수가 아니면 이 영화는 또다른 색깔을 지녔을 것이다.

 김혜수는 이전에 <쓰리>라는 영화에서 그리고 <얼굴없는 미녀>를 통해서 이전에 그녀가 참여했던 다른 영화들, 이나 <신라의 달밤> <미스터 콘돔> <닥터 봉>과 같은 영화들과는 다른 이미지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상업적으로는 모두 실패했다고 하지만 평단의 좋은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녀는 아예 이런류의 공포물로 자리매김하기로 마음 먹었나보다. 또 잘 어울리기도 한다. 시나리오에 의해서라기 보다는 배우의 표정연기나 히스테리, 싸이코적인 연기에서 뿜어내는 공포심은 그녀가 아니면 할 수 없다. 영화 속에서 이중인격을 왔다갔다 하는 그녀의 연기는 정말 미친거 같았다. 그럭저럭 전체적으로 괜찮았다고 생각되는 영화이다. 하지만 함부로 주변사람들에게 추천할 만한 영화는 아니다. 코드가 맞는 사람에게는 괜찮은 영화일지 모르지만 대중적인 영화는 아니다.

 

* 그런데 궁금한 거 하나...



이건 뭘까? 분홍신이라는 제목이 쓰여져있는데....? 안데르센 동화 '빨간구두'를 영어로 옮겨놓은건가.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루(春) 2005-07-20 2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레드 슈즈를 분홍신이라고 써놓은 이유가 뭘까요?

마늘빵 2005-07-21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그냥 빨간신발 하면 될걸가지구. 왜 하필 분홍색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