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에서 두번째 여자친구
왕원화 지음, 문현선 옮김 / 솔출판사 / 2005년 8월
절판


어째서 이렇게 힘들여서 억지를 부리는 걸까? 억지로 얻은 것은 오래 가지 못한다.
책상위의 전화가 울렸지만 그녀는 받지 않았다. 그녀는 인정해야만 했다. 그녀가 얼마나 예쁘든, 그에게 얼마나 잘 해주든, 얼마나 인내심이 있든, 얼마나 보답을 바라지 않든 간에, 사랑은 생겨나기 힘들 것이다. 사랑은 달리기와 같지 않아서 삼십 분마다 반드시 삼백 킬로칼로리가 연소되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일년을 뛰어도 여전히 땀 한 방울 나지 않을 수 있다. 아무도 설명해줄 수 없고, 답은 자기 혼자서 고민하고 찾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녀는 빨리냐, 아니면 늦게냐를 선택할 수 있을 뿐이고 받아들여야 한다. -292쪽

"어떤 사람은 일생동안 한번밖에 연애를 못해. 뒤에 오는 연인은 모부 복사본이지." 그레이스가 말했다.
"난 다른 사람의 복사본이고 싶지 않아요."
"그도 알아. 그래서 당신을 가까이 하지 않으려고 하는거지."
저우치도 조용해졌다.
-294쪽

"난 정말 아무렇지도 않아요" 저우치가 말했다.
"전 남자친구의 결혼식은 날 힘들게 하지 않아요. 단지 날 힘들게 하는건, 내가 영원히 다른 사람들의 '끝에서 두번째 여자친구'라는 거죠."
"끝에서 두번째 여자친구가 뭐죠?"
"내가 사귀었던 남자는 둘 다 나와 헤어진 다음에 결혼할 사람을 만났거든요."-332쪽

"만약 어느날 그가 당신을 잃는다면, 그는 마침내 당신이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이해하게 되겠죠. 지나간 잘못을 아파하며 뉘우칠 거고. 그러고는 그가 다음 여자를 만날 때는 더 나아지는 거에요. 그는 그녀와 결혼할 거고, 아주 좋은 남편이 되겠죠. 하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영원히 당신이 있을 거에요......"-402쪽

"맞아요. 그날밤, 두팡은 날 '메아리 입구' 앞으로 데려갔고, 거기서 큰 소리로 '나는너를 사랑해'라고 외쳤어요. 난 아주 기뻤고, 줄곧 메아리를 들었어요."
"그곳의 메아리는 오래가죠?"
"아주 오래. 심지어는 이 가게에서도 메아리를 들을 수 있어요. 그리고 오늘까지, 난 줄곧 메아리를 들었죠."
밍홍은 머리를 카운터에 대고 있었는데, 문득 조금 서늘한 느낌이 들었다.
"사실 그 '나는 너를 사랑해'라는 말은 진작부터 존재하지 않았어요. 맞죠?"
안안이 물었다.
한바탕 기나긴 침묵으로 무거운 숨소리마저 메아리가 뒤어 돌아왔다.
"말해봐요. 맞죠?"
"난 몰라요. 난 두팡이 아니니까."
"당신은 당연히 알고 있어요! 당신은 사실 두팡과 마찬가지로...... 당신들은 모두 다른 사람을 사랑할 줄 몰라요......"
밍홍은 고개를 떨구었다.
"당신은 나랑 같아요." 안안이 말했다.
"우리가 어떻게 같죠?"
"우린 다 알거든요. 사실 그 '나는 너를 사랑해'라는 말은 진작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는걸."
"난 몰라요."
"당신은 당연히 알고 있어요! 린밍홍, 사실 당신도 나랑 같아요 우린 모두 '메아리 입구'앞에 살고 있죠......"-4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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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시보 2005-12-31 1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앞에서 두번째 여자 친구가 아니라 끝에서 두번째 여자친구라... 그럼 지금 사귀는 사람 바로 전의 사람을 뜻하는건가? 아...헤깔려요.

깐따삐야 2005-12-31 1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 앞에서 정말 쿨~ 한 여자가 되기는 너무나 힘들다니깐요. ㅜ.ㅜ

마늘빵 2006-01-01 0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라시보님 /네 이 여자를 만난 다음에 만난 여자와 남자들이 결혼을 하게 되는거죠. 이 여자는 사귀었던 모든 남자들이 결혼한 여자의 바로 전 여자친구일 뿐이고요. 슬픈 운명.
깐따삐야님 / 네... 남자 역시 마찬가지에요.
 
놀이터 옆 작업실 - 홍대 앞 예술벼룩시장의 즐거운 작가들
조윤석.김중혁 지음, 박우진 사진 / 월간미술 / 2005년 11월
평점 :
절판


 

 우리는 중학교, 고등학교 도덕시간에 '진로적성' 단원에서 그렇게 배웠다. 직업을 선택할 때는 돈, 명예, 사회적 지위를 떠나 자아실현이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한다고. 배우기는 그렇게 배웠으되, 사회로 내던져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살지 않는다. 또, 지금 나에게 배우고 있는 나의 사랑스런 제자들도 책에선 그렇게 말하지만 그들에게 "너의 직업 선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뭐냐?" "그 직업을 택하는데 있어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한 것이 무엇이냐?" 물어보면 그들은 여지 없이, 절대 다수가, '돈'이라고 대답한다.

  모든 것이 돈에 의해서 움직이는 세상이다. 돈은 곧 신이다. 얼마전 신문에 이런 기사가 나기도 했다. 아무리 밤을 새고 일이 고되도 좋으니깐 연봉이 높았으면 좋겠다고. 자기는 직장을 선택하는데 있어서 연봉을 최고로 고려 할 것이라고. 현재의 자신의 직장에 불만을 가지고 있는 대다수의 현 직장인들이 그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중학생이 생각하는 직업의 최고 가치나 현재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그들에게 있어서나 최고 가치는 돈으로 수렴된다.

  그런데 <놀이터 옆 작업실>에 나오는 여러 사람들의 삶은 이와 다르다. 그들은 마치 인생을 달관한 듯 하다. 돈은 있다가도 없는 것이요, 계속 없더라도 그게 뭐 그리 중요하냐는 등 그들은 위에 언급한 저들과 달리 너무나도 지나치게 돈을 천시하는 듯하기까지 보인다. 돈 니가 뭔데?! 난 그런거 필요 엄떠! 

  그들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들은 정말 교과서에서 말하고 있는 자아실현을 위해 일을 하고 있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이것이고, 이 일을 함으로써 나는 나의 존재감을 맛보므로 내가 해야할 일은 이것이다. 벽에 그림을 그리고, 점토를 가지고 이쁘장한 장식품을 만들고, 남들이 필요 없다고 버린 천조가리로 쌔끈한 가방을 만들어내질 않나, 이들이 하는 짓(?)을 보자면 마술사가 따로 없다. 그들이 즐기는 그들이 자신의 존재감을 느끼는 그 일은 대부분 이렇게 손에서 시작된다.

  그들은 같은 돌맹이를 봐도, 같은 나무를 봐도, 같은 벽을 봐도, 같은 흙을 봐도 남들과 다르게 본다. 남들이 거들떠 보지도 않는 그것들을 통해 생각을 하고, 머릿속으로 이미 작업을 시작한다. 아 저것은 무엇이 되겠구나, 저걸 가지고 이렇게 하면 이런 이쁜 예술작품이 탄생하겠구나. 처음부터 예술작품을 만들으려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다보니 저절로 끝에가선 예술작품이 되었다.

  "원석이 매력적인 이유는 똑같은 모양이 하나도 없다는 거에요. 가공하지 않은 거니까 모양이 전부 제각각이죠. 전 원석을 하트 모양이나 이상한 모양으로 다듬는 건 싫어요. 그냥 원석 그대로의 모습을 어떻게 잘 보여줄 수 있을까만 생각해요."

 '책은 무언의 물체가 아니다. 책 속에선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을까? 어렸을 땐 커다랗게 높은 나무를 바라보면서 저 속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를 상상했다. 나무 속에는 어떤 생명들이 자라고 있을까. 나란히 꽂힌 저 책들은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 나는 책을 숨쉬는 하나의 생명이라 생각하고 책 속에서 일어나는 어떤 일에 관해 상상했다. 나무 등걸의 형상으로 향이나 촉감을 느낄 수 있는 수제 종이 작업 후 책 속에도 나이테가 자라고 있지 않을까. 나이테가 마치 태아가 자라는 것처럼 크고 넓어지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한다.'

  이들이 삶을 달관해있는 것 처럼 보이는 이유는, 그들이 돈을 벗어나 자아실현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그들이 하는 일을 통해 - 대부분 손으로 하는 작업임에도 불구하고 - 넓은 생각의 장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손으로는 작업을 하고 있지만 머리 속으로는 생각을 하고 사유를 하고 있다. 그들은 철학자다. 플라톤이나 칸트, 데카르트, 라깡 아마 이름도 못들어봤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철학자의 이름과 그들의 이론을 한톨도 모르더라도 그들 각각은 이미 철학자다. 철학자는 철학의 역사를 알고 있고, 자신의 독특한 이론을 가진 사람만이 철학자가 아니다. 자유로운 영혼을 가지고 사유의 나래를 펼치고 있는 그들 자신이 이미 자신의 철학을 가지고 있는 '철학자'이다.

  이 각박한 세상에 어떻게 그런 사람들이 있을까 싶다. 도대체 그들은 어떤 교육을 받았고, 어떤 환경에서 자랐으며, 누구로부터 그런 영향을 받았던 것일까. 법정스님에게 '무소유'라고 배웠던 것일까. 도에 이른 스님처럼 삶을 달관한 그들의 삶에 대한 가치관은 그저 부럽기만 하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저들이 나중에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쓸데없는(?) 현실적인 걱정도 든다.

  그러나 그들이 하고 있는 작업 자체는 그 자체로서 자신에게 의미가 있는 작업이며, 나중에 그들이 무엇을 하든, 무엇이 되든 간에 그들의 삶의 토양을 가꾸는데 일조하게 되리라 생각한다. 마음껏 즐겨라.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이들이여. 그리고 이곳 놀이터로 모여라. 함께 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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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5-12-20 1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귀차니즘 때문에 계속 미루고 있다가 이제서야 올렸어요. 읽은지는 오래됐는데

BRINY 2005-12-20 1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여러분들께서 계속 리뷰를 올려대시면 사고 싶어지잖아요~

마늘빵 2005-12-21 2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부추기는건지도 몰라요. 짜고서.

히피드림~ 2005-12-21 2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장 좋기로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그 일이 어느 정도의 수준에 올랐을때 돈도 함께 따라오는 건데... 그렇게 사는 사람들은 몇 안되는 거 같죠? 그래두 전 책 속의 등장인물들이 왠지 부럽네요.^^

마늘빵 2005-12-22 07: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그러게요. 좋아하는 일 하다가 어느 정도 수준에서 돈 버는 거(박지성, 이영표) 그게 제일 좋은거 같아요. 너무 젊었을 때부터 돈돈 하다가는 평생 돈의 노예로 살기 딱.
 
늦어도 11월에는
한스 에리히 노삭 지음, 김창활 옮김 / 문학동네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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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후에야 나는 알았다. 그가 얼마나 소심하고 부끄러워 했는지를. 그때 나는 알지 못했다. 남자들은 모두 충동적이고 저돌적이며 막무가내인 줄로만 알았다. 나는 그와 같은 남자들이 있는 줄은 알지 못했다. 그는 내가 아는 어떤 남자들보다도 섬세하고 부드러웠다. 지금에서야 나는 그것을 깨달았다. 내가 얼마나 그를 사랑하고 있었는지를. 그가 나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었는지를..."-147쪽

"행복했던 기억은 없었다. 행복했다고 느껴지는 기억의 빈 공간이 있긴 했지만. 정작 그 공간을 채우려 들면 어느 하나 거기에 맞는 게 없었다. 그것이 정말로 내가 체험한 사실인지조차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그러면서도 그 빈 공간은 여전히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2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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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달 2005-12-20 0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늦어도 한참 늦었삼. 1월이 다 되어가는 이 마당에 끙 -_ -

마늘빵 2005-12-20 0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ㅡㅡ; 왜 아침부터 시비삼. 내 마음은 11월이라오. ㅋㅋㅋ 머해? 심심하지? 나랑 놀자.

진/우맘 2006-08-31 1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259p 밑줄긋기를 하고 내려와보니, 역시나, 미리 밑줄이 그어져 있네요.
 
도덕교육의 파시즘 - 노예도덕을 넘어서 프런티어21 1
김상봉 지음 / 길(도서출판) / 2005년 10월
품절


"도덕교과는 사실이 아니라 당위를 가르쳐야 하는 교과인 까닭에 문제가 되는 사실에 대해서는 학문적으로 거의 아무 가르침을 주지 못하면서 무슨 말을 하든 습관적으로 반드시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는 식으로 말을 하게 된다."(머리말)-9쪽

"한국의 도덕교육은 착한 노예를 기르기 위한 것이었을 뿐, 한번도 긍지 높은 자유인을 기르기 위한 도덕교육이었던 적이 없었따. 노예가 아무리 착하다 하더라도, 노예적 삶이란 결코 우리가 추구해야 할 삶의 이상일 수 없다. 우리는 그것이 우리 시대의 엄연한 시대 정신이라 믿는다. 인간을 자유인으로 만들지 않으면서 오직 착하게만 만들려는 것은 언제나 불온한 시도이다. 도덕이 아무리 숭고한 옷을 걸치고 나타난다 하더라도, 그것이 인간을 정신적으로 노예화하는 장치라면 우리는 그런 도덕을 단호히 거부하지 않으면 안된다. 인간성의 자유로운 자기실현에 앞서는 어떤 도덕도 정당성을 가질 수가 없다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기억해야 할 첫번째 가치인 것이다."(머리말)-13쪽

"인간의 도덕적 능력이란 이처럼 실현되어야 할 과제로서의 인간성, 곧 당위로서의 인간성의 이상을 스스로 정립하고 스스로 추구하며, 스스로 실현할 수 있는 능력에 다름 아니다."-23쪽

"법은 명료하고 효율적이기는 하지만 복종하는 사람들의 자발성을 이끌어내지 못할 때에는 언제라도 시민의 저항에 직면할 위험을 안고 있다.
...중략...
그러므로 권력을 권리로 만들고 그 권력에 대한 복종을 의무로 만들기 위해서는 법의 구속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반드시 도덕적 훈육을 통하여 사람들을 세뇌하고 길들여 그들로 하여금 법을 통해 강제하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권력에 복종하도록 만들지 않으면 안된다. 그렇게 사람들을 아예 도덕적 의무의 형태로 권력에 순종하도록 만드는 교육이 바로 한국의 도덕교육이다."
-28쪽

"자유인의 도덕은 주관적으로 자기에 대한 관심과 긍지 그리고 객관적으로는 자기를 위하여 좋은 것을 추구하는데서 시작되지만, 노예를 위한 도덕은 자기 아닌 타인을 위해 좋은 것, 즉 주인을 위하여 좋은 것을 강요하는 것에 존립한다. 그런데 한국의 도덕 교과서는 이 점에서 자유인의 도덕이 아니라 노예의 도덕을 가르치는 책이다."-34쪽

"첫째로 현실적으로 정착되어 있는 불평등한 사회관계에서 아래에 있는 사람이 지켜야 할 도덕뿐만 아니라 위에 있는 사람이 지켜야 할 도덕 역시 학생들이 배울 필요가 있다."
"둘째로 도덕교육은 사회적 약자에게 예절을 강요하는 만큼, 사회적 갖아의 폭력과 횡포에 대해 어떻게 자기를 지켜야 할지도 말해주어야 한다."-38-39쪽

"스스로 동의한 법에 복종하는 것은 자율성의 표현이지만 남이 제정한 자의적 법칙에 따르는 것은 노예적인 굴종일 뿐이다. 법은 오직 우리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보편적인 일반의지의 표현일 때에만 정당성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그것은 내가 동의할 수 없는 악법이요, 악법에 저항하는 것은 자유인의 긍지에 속하는 일이다."-59쪽

"세상 어느 나라든 자라나는 세대에게 이익의 원리가 아닌 순수한 도덕의 원리를 온전히 가르치려 애쓰는 나라가 몇이나 될까마는 한국의 경우처럼 도덕교과의 이름을 걸고 그토록 노골적으로 잘사는 것과 올바르게 사는 것을 뒤섞는 나라는 다시 없을 것이다."-87쪽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도덕을 학문적으로 탐구하는 학문은 일차적으로는 윤리학인데, 윤리학이란 철학의 한 분야이므로 도덕의 어미학문은 당연히 철학이라 해야 한다. 그런데 한국의 도덕교과는 어미학문이 없다. 그 대신 학제적 접근이라는 유령이 어미학문의 자리를 대신한다. 학제적 접근이란 여러 학문들이 같이 도덕교과의 어미학문 노릇을 한다는 말과 같은데 여기에 속하는 학문들이 "한국학, 철학 특히 윤리학을 비롯한 규범과학, 정치학 사회학을 비롯한 사회과학" 그리고 "지도방법이나 평가면에서는 심리학과 교육학"이 도덕교과에 학제적으로 참여하게 된다."-88쪽

"다른 교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이런 학문적 혼합이 유독 도덕교과에서는 학제 간 접근이라는 그럴듯한 이름 아래 정당화되는 까닭이 무엇인가? 그것은 학문적 이유나 교육적 이유 때문이 아니라, 다른 무엇보다 한국의 도덕교육의 교육목표 자체가 참된 도덕성의 함양이 아니라 국민윤리의 주입에 있었기 때문이다."-89쪽

"현재 한국의 도덕교육의 핵심 영역은 "인성 교육과 민주 시민 교육" 그리고 "통일 대비 교육과 국가 안보 교육"이다. 도덕교과의 존재 이유는 참된 도덕적 능력의 함양이 아니라 이데올로기 교육에 있는 것이다."-91쪽

"도덕교과가 구체적인 삶의 문맥에서 윤리와 도덕의 문제를 성찰하기 위해 요구되는 것은 도덕교과가 윤리학의 테두리를 벗어나 다른 학문과 뒤섞여 학제 간 연구와 교육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구체적 문맥 속에서 윤리적으로 사유하는 법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일이다."-94쪽

"참된 도덕교육을 위해 합당한 학문은 철학밖에 없다. 왜냐하며 직,간접적으로 가치를 다루는 모든 학문들 중에 오직 철학만이 타율적 목적에 봉사하지도 않고, 외부로부터 주어진 전제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지도 않으면서 도덕적 가치 일반을 그 자체로서 성찰하는, 자유로운 정신의 학문이기 때문이다."-110쪽

"법칙이 단지 법칙이라는 이유만으로 학생들을 구원으로 이끌 수 있다는 오해는 도덕적 법칙에 대한 무반성으로 나타난다. 법칙이 법칙이라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을 구원으로 이끌 수 있다는 생각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법칙이 법칙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자체로서 정당하다는 확신에 뿌리박고 있기 때문이다."-146쪽

"도덕교육의 과제는 학생들이 사물의 진리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만사를 스스로 생각하고 그 이치를 스스로 깨우치고 터득하도록 생각의 능력을 계발하는 것이다."-176쪽

"현실적 교육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저학년으로 가면 갈수록 모범적 신례들의 제시가 중심이 되어야 하며, 고학년으로 가면 갈수록 도덕적 판단력의 훈련이 도덕교육에서 더 큰 비중을 차지해야 할 것이라는 정도는 말 할 수 있을 것이다."-219쪽

"학생들은 정답이 없는 곳에서 자기 나름의 대답을 찾아내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그 대답을 찾는 과정은 형식적이고 계산적인 사유의 과정이 아니라 윤리적 숙고와 도덕적 성찰의 과정이어야 한다. 도덕교육이 떠맡아야 할 일은 주어진 도덕적 문제 상황 앞에서 무엇이 좋으며 무엇이 나쁜지, 무엇이 옳으며 무엇이 그른지를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도덕적 판단력을 길러주는 것이다."-232쪽

"철학적으로 고찰해보면 한국의 도덕교육이 보여주는 독선적이고 무모한 율법주의는 잘못 받아들인 칸트주의에 기초한다. 즉 그것은 윤리학의 역사에서 칸트의 비길 데 없는 공적은 철저히 외면한 채 칸트의 오류만을 확대 재생산하고 있는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한국의 도덕교육은 도덕성의 본질을 칸트가 말했던 주체의 자유롭고 자율적인 입법능력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칸트가 말했던 추상적이고 형식적인 의무감에서 찾음으로써 칸트가 말하는 도덕을 자유인의 도덕에서 노예도덕으로 뒤바꿔놓은 것이다."-278쪽

"인간은 처음에는 법칙을 그 자체로서 긍정함으로써 직접 의식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법칙에 위배되는 일을 부정함으로써 간접적으로 법칙을 예감하게 된다."-280쪽

"분노해야 할 일에 대해 분노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은 도덕교육의 중요한 과제이다. 이를 위해 먼저 교사는 자연스럽게 분노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그는 학생들 앞에서 올바르게 분노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281쪽

"법칙 비판은 결국 올바른 법칙 수립의 능력을 함양하기 위한 방법에 속한다. 학생들은 무엇이 올바르고 무엇이 아닌지르 반복해서 비판적으로 검사함으로써 법칙을 수립할 때 지켜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 법칙 및 규범교육은 무엇을 가르치든 궁극적으로 법칙을 따르는 기질이 아니라 법칙을 수립하는 능력을 기르기 위한 교육이어야 한다. 그것만이 자유인에 합당한 규범교육인 것이다."-292쪽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말없이 선을 실천함으로써 그 선이 다른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그들 역시 같은 길을 걷도록 모범을 보이는 것 이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 그리고 그런 도덕적 겸손이 가장 먼저 실천하고 모범을 보여야 할 사람들은 다름아닌 교사들인 것이다. 학생들은 그 모범을 보고 자라면서 자율적이고 주체적으로 입법하면서도 언제나 타인에게 겸손을 잃지 않는 사람들이 될 것이다."-293쪽

"정의는 올바름의 현실태를 가리키는 이름이다. 올바름은 그 자체로서는 아직 규정되지 않은 (즉자적인) 보편적 사랑이요, 규범과 법칙을 통해 비로소 구체적으로 (또는 대자적으로) 표현된다. 그 규범과 법칙이 실현된 상태가 바로 정의이다. 그러니까 정의란 올바름이 구체적으로 실현된 상태이며 보편적 사랑의 즉자대자적 진리이다. 그리고 이 단계에서 도덕적 의식은 다른 무엇보다 공정성에 주목하는 의식으로서의 의무감이다."-294쪽

"법은 완전한 균형과 공정성에 도달할 수는 없다. 설령 어느 순간에 그럴 수 있다 하더라도 현실의 권력관계는 언제나 변하는 까닭에 법이 지향하는 균형과 공정성이 언제나 그대로 유지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정당한 법을 마땅히 지켜야 하겠지만 법 자체를 절대시하는 어리석음에 빠져서는 안된다"-29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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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터 옆 작업실 - 홍대 앞 예술벼룩시장의 즐거운 작가들
조윤석.김중혁 지음, 박우진 사진 / 월간미술 / 2005년 11월
절판


"원석이 매력적인 이유는 똑같은 모양이 하나도 없다는 거에요. 가공하지 않은 거니까 모양이 전부 제각각이죠. 전 원석을 하트 모양이나 이상한 모양으로 다듬는 건 싫어요. 그냥 원석 그대로의 모습을 어떻게 잘 보여줄 수 있을까만 생각해요."-80쪽

'예쁘다'라는, 말 그대로 아주 예쁜 말이 예술과 관련된 쪽으로 넘어오게 되면 의미가 변한다. 예쁘다라는 것은 예술적이라기보다 상업적이며, 현실적이라기보다 공상적이라는, 부정의 의미로 변질된다. 우유각소녀는 부정의 의미로 변질된 '예쁘다'라는 말의 근원지를 찾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117쪽

'책은 무언의 물체가 아니다. 책 속에선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을까? 어렸을 땐 커다랗게 높은 나무를 바라보면서 저 속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를 상상했다. 나무 속에는 어떤 생명들이 자라고 있을까. 나란히 꽂힌 저 책들은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 나는 책을 숨쉬는 하나의 생명이라 생각하고 책 속에서 일어나는 어떤 일에 관해 상상했다. 나무 등걸의 형상으로 향이나 촉감을 느낄 수 있는 수제 종이 작업 후 책 속에도 나이테가 자라고 있지 않을까. 나이테가 마치 태아가 자라는 것처럼 크고 넓어지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한다.'-1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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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달 2005-11-30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놀이터 옆에서 작업하면 시끄럽겠다.. ;

마늘빵 2005-11-30 14: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ㅡㅡ;;;

2005-12-05 22:07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