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터 옆 작업실 - 홍대 앞 예술벼룩시장의 즐거운 작가들
조윤석.김중혁 지음, 박우진 사진 / 월간미술 / 2005년 11월
평점 :
절판


 

 우리는 중학교, 고등학교 도덕시간에 '진로적성' 단원에서 그렇게 배웠다. 직업을 선택할 때는 돈, 명예, 사회적 지위를 떠나 자아실현이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한다고. 배우기는 그렇게 배웠으되, 사회로 내던져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살지 않는다. 또, 지금 나에게 배우고 있는 나의 사랑스런 제자들도 책에선 그렇게 말하지만 그들에게 "너의 직업 선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뭐냐?" "그 직업을 택하는데 있어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한 것이 무엇이냐?" 물어보면 그들은 여지 없이, 절대 다수가, '돈'이라고 대답한다.

  모든 것이 돈에 의해서 움직이는 세상이다. 돈은 곧 신이다. 얼마전 신문에 이런 기사가 나기도 했다. 아무리 밤을 새고 일이 고되도 좋으니깐 연봉이 높았으면 좋겠다고. 자기는 직장을 선택하는데 있어서 연봉을 최고로 고려 할 것이라고. 현재의 자신의 직장에 불만을 가지고 있는 대다수의 현 직장인들이 그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중학생이 생각하는 직업의 최고 가치나 현재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그들에게 있어서나 최고 가치는 돈으로 수렴된다.

  그런데 <놀이터 옆 작업실>에 나오는 여러 사람들의 삶은 이와 다르다. 그들은 마치 인생을 달관한 듯 하다. 돈은 있다가도 없는 것이요, 계속 없더라도 그게 뭐 그리 중요하냐는 등 그들은 위에 언급한 저들과 달리 너무나도 지나치게 돈을 천시하는 듯하기까지 보인다. 돈 니가 뭔데?! 난 그런거 필요 엄떠! 

  그들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들은 정말 교과서에서 말하고 있는 자아실현을 위해 일을 하고 있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이것이고, 이 일을 함으로써 나는 나의 존재감을 맛보므로 내가 해야할 일은 이것이다. 벽에 그림을 그리고, 점토를 가지고 이쁘장한 장식품을 만들고, 남들이 필요 없다고 버린 천조가리로 쌔끈한 가방을 만들어내질 않나, 이들이 하는 짓(?)을 보자면 마술사가 따로 없다. 그들이 즐기는 그들이 자신의 존재감을 느끼는 그 일은 대부분 이렇게 손에서 시작된다.

  그들은 같은 돌맹이를 봐도, 같은 나무를 봐도, 같은 벽을 봐도, 같은 흙을 봐도 남들과 다르게 본다. 남들이 거들떠 보지도 않는 그것들을 통해 생각을 하고, 머릿속으로 이미 작업을 시작한다. 아 저것은 무엇이 되겠구나, 저걸 가지고 이렇게 하면 이런 이쁜 예술작품이 탄생하겠구나. 처음부터 예술작품을 만들으려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다보니 저절로 끝에가선 예술작품이 되었다.

  "원석이 매력적인 이유는 똑같은 모양이 하나도 없다는 거에요. 가공하지 않은 거니까 모양이 전부 제각각이죠. 전 원석을 하트 모양이나 이상한 모양으로 다듬는 건 싫어요. 그냥 원석 그대로의 모습을 어떻게 잘 보여줄 수 있을까만 생각해요."

 '책은 무언의 물체가 아니다. 책 속에선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을까? 어렸을 땐 커다랗게 높은 나무를 바라보면서 저 속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를 상상했다. 나무 속에는 어떤 생명들이 자라고 있을까. 나란히 꽂힌 저 책들은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 나는 책을 숨쉬는 하나의 생명이라 생각하고 책 속에서 일어나는 어떤 일에 관해 상상했다. 나무 등걸의 형상으로 향이나 촉감을 느낄 수 있는 수제 종이 작업 후 책 속에도 나이테가 자라고 있지 않을까. 나이테가 마치 태아가 자라는 것처럼 크고 넓어지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한다.'

  이들이 삶을 달관해있는 것 처럼 보이는 이유는, 그들이 돈을 벗어나 자아실현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그들이 하는 일을 통해 - 대부분 손으로 하는 작업임에도 불구하고 - 넓은 생각의 장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손으로는 작업을 하고 있지만 머리 속으로는 생각을 하고 사유를 하고 있다. 그들은 철학자다. 플라톤이나 칸트, 데카르트, 라깡 아마 이름도 못들어봤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철학자의 이름과 그들의 이론을 한톨도 모르더라도 그들 각각은 이미 철학자다. 철학자는 철학의 역사를 알고 있고, 자신의 독특한 이론을 가진 사람만이 철학자가 아니다. 자유로운 영혼을 가지고 사유의 나래를 펼치고 있는 그들 자신이 이미 자신의 철학을 가지고 있는 '철학자'이다.

  이 각박한 세상에 어떻게 그런 사람들이 있을까 싶다. 도대체 그들은 어떤 교육을 받았고, 어떤 환경에서 자랐으며, 누구로부터 그런 영향을 받았던 것일까. 법정스님에게 '무소유'라고 배웠던 것일까. 도에 이른 스님처럼 삶을 달관한 그들의 삶에 대한 가치관은 그저 부럽기만 하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저들이 나중에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쓸데없는(?) 현실적인 걱정도 든다.

  그러나 그들이 하고 있는 작업 자체는 그 자체로서 자신에게 의미가 있는 작업이며, 나중에 그들이 무엇을 하든, 무엇이 되든 간에 그들의 삶의 토양을 가꾸는데 일조하게 되리라 생각한다. 마음껏 즐겨라.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이들이여. 그리고 이곳 놀이터로 모여라. 함께 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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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5-12-20 1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귀차니즘 때문에 계속 미루고 있다가 이제서야 올렸어요. 읽은지는 오래됐는데

BRINY 2005-12-20 1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여러분들께서 계속 리뷰를 올려대시면 사고 싶어지잖아요~

마늘빵 2005-12-21 2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부추기는건지도 몰라요. 짜고서.

히피드림~ 2005-12-21 2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장 좋기로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그 일이 어느 정도의 수준에 올랐을때 돈도 함께 따라오는 건데... 그렇게 사는 사람들은 몇 안되는 거 같죠? 그래두 전 책 속의 등장인물들이 왠지 부럽네요.^^

마늘빵 2005-12-22 07: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그러게요. 좋아하는 일 하다가 어느 정도 수준에서 돈 버는 거(박지성, 이영표) 그게 제일 좋은거 같아요. 너무 젊었을 때부터 돈돈 하다가는 평생 돈의 노예로 살기 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