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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에도 매뉴얼이 있다 - 탁석산의 글쓰기 1 ㅣ 탁석산의 글쓰기 1
탁석산 지음 / 김영사 / 2005년 11월
평점 :
그가 공부를 마치고 대학강단에 섰을 무렵부터 난 그의 팬이었다. 그때가 <한국의 정체성>을 낸지 얼마 안된 시점이었지만 그의 책을 접하기 전부터 난 이미 그의 말빨에 매료되어버리고 말았다. 그 스스로도 자신의 말빨의 대단함을 자랑하시긴 했다. 중고등학교 시절 전교 바닥을 맴돌며 공부도 안하던 그가 재수 일년에 서울대 자연과학계열에 합격, 대학생이 되었고 이후 그 스스로 말하길 "조동일 교수의 강의를 듣다가 그와 한판했다"고 하며 대학을 박차고 나와 군에 입대, 이후 다시 시험을 쳐 한국외대 영어과에 전액장학금으로 입학, 대학원에서 철학을 공부, 결국 철학박사가 되어 돌아왔다. 이 독특하고 화려한 그의 이력 앞에 '독특하기만한' 나의 이력(중고등학교 전교 1등 각각 한차례, 이과로 갔으나 한학기 남기고 문과로 돌변, 수능실패했으나 재수 거부, 경제학과에 입학했으나 1년뒤 철학으로 전과)은 별로 남다르지 않다. 난 남다르게 살고 싶고 평범하길 거부하지만 그의 그것에는 비할바가 못된다. 어쨌든 이러저러한 측면에서 난 그에게 동질감을 느꼈고, 그의 말빨에 빠졌으며, 그의 저서를 접하고 충격을 받았고, 이후 그의 모든 책을 나의 경제사정에 관계없이 질러대고 있다.
이번에 나온 <탁석산의 글짓는 도서관> 시리즈(전5권)도 나를 만족시켜주었다. <한국의 정체성> <한국의 주체성> <탁석산의 한국의 민족주의를 말한다><오류를 알면 논리가 보인다><철학 읽어주는 남자> 모든 책들이 지금껏 조금의 실망감도 안겨준적이 없고, 최상의 만족을 채워주었다. 그가 <한국의 정체성> <한국의 주체성> 두 권으로 일약 소장철학자에서 주목받는 철학자로 급부상하며 이제 그의 이름 '탁석산'만으로도 이분야의 관심있는 이들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하고, 그의 학생다운 행색(?) 또한 충분히 튄다.
언제부턴가 그의 저서에는 그의 사진이 전면에 실리거나(예 <철학 읽어주는 남자>), 책 제목 앞에 그의 이름이 붙고(예 <탁석산의 한국의 민족주의를 말한다> <탁석산의 글짓는 도서관>) 있다. 그 자신만으로도 충분히 대중에게 먹힌다는 말이다. 그는 처음 책을 내면서 "3000부만 고정적으로 팔리면 그다음에 책 내는 일은 쉽다"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이제 3000부는 단 몇일만에 기록하는 하찮은 수치가 되어버렸다.
<탁석산의 글짓는 도서관>은 총 5권으로, 아직 4,5권은 나오지 않았고, 현재는 1-3권까짐나 나와있는 상태다. 1,2권이 처음 나와서 주문을 했고, 다음 3권이 나오자 바로 주문을 했다. 책의 두께에 비해 가격은 약간 높다고 생각하지만 책의 내용을 보면 뭐 그 까짓정도 돈을 내도 아깝지 않다. 1권에서 그는 "글쓰기에도 매뉴얼이 있다"는 말을 던지며, 논술에 대해 그래도 어느 정도 알고 있다는 자들에게 상식을 뒤엎는 발언을 한다. 책의 도입부에 나와 있는 질문 6가지에서 나는 빵점을 받았다. 처음부터 해야한단다. 아니 그래도 잘은 몰라도 논리학을 배웠고, 논술에 대해 관심있게 지켜봤던 난데 이게 뭐람?! 나보고 처음부터 글쓰기 방법을 배우라고? 그러나 그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물론 이론적으로 다 알고 있는 내용들이었지만 그는 우리가 글쓰기에 대해 가지고 있는 편견들을 하나하나 깨부수며 처음부터 다시 짚어주고 있다.
이 책에서 주목할 점 중 하나는 그가 기존의 글쓰기의 교본이었던 이태준의 <문장강화>에 대해 심히 딴지를 걸고 있다는 사실이다. 또한 배상복의 <문장기술>과 서울대 글쓰기 교실의 매뉴얼을 조목조목 비판하며 이렇게 글쓰기를 가르쳐서는 안된다고 지적한다. 가장 권위있는 글쓰기 책과 대한민국 최고의 대학에 딴지를 걸고 있는 것이다. 글쓰기를 가르치는 유명한 논술강사라 할지라도 그의 눈에는 조무래기로 보이는가보다. 이 대담함이여.
그는 일전에도 이런 말을 했었다. 자신이 저서에서 조동일을 비판했는데, 조동일이 조용한단다. 아무런 반박도 없이. 그 이유가 뭔지 아느냐? 라고 물으면서 스스로 다시 대답하길, 거물이 일개 소장학자의 비판에 반박을 하면 뽀대가 안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거물은 그냥 가만히 있으면 그걸로도 충분히 자신의 권위가 유지되는데, 소장학자는 거물에게 딴지를 걸어야 그때 주목을 받는다고. 그는 계속 그런 전략을 쓰고 있는 것이다. 이미 그는 소장학자에서 거물까지는 아니더라도 주목받는 학자로 레벨업했지만 말이다.
글쓰기를 제대로 배우려면 그의 책을 읽어야 한다. 유치찬란뽕짝빤스한 그림과 대화체의 매우 간결하고 재미난 방식으로 책이 구성되어있지만 그 내용만은 가볍고 재밌지 않다.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읽기 쉬워 중고생들부터 글쓰기 강사까지 모두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중고생들에겐 글쓰기의 방법을, 글쓰기 강사들에겐 지금까지의 그들의 글쓰기가 잘못되었음을 일깨워 주는 책이다. 강력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