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생에서는 나 자신을 지배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천천히 말이죠. 사진은 즉각적으로 자신의 구조를 가집니다. 처음부터요. 데생에서는 흐름에 나를 맡깁니다. 그러면서 당장 결과물이 나오길 바라죠. 사진은 다릅니다. 사진을 완벽하게 인정합니다. 데생은 수정을 가할 수 있지만 사진에서는 수정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기껏 다음 사진에나 기대해 봐야 할 테죠. 거기서 쓰레기가 생깁니다. 하지만 지금의 나에겐 아직 다음번 데생이 중요합니다. - P149

관찰하고, 바라보고, 파도 꼭대기에 걸터앉아 있어야 하고, 또 뭔가가 벌어질 때 현장을 지키기 위해 그토록 쏘다닌 거죠. 사진애서 중요한 것은 민첩성이고, 뭔가가 임박했음을 느끼고 간파해내는 일입니다. - P156

우리가 매그넘에 있을 때는 사진 얘기를 전혀 하지 않습니다. 예컨대, 윤리의식이 투철한 모험가인 카파는 오전 열시에 이런 말을 하곤 했지요. "아니, 자넨 지금 이 시각에 여기서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건가? 지금 어떤 곳에서 이러저러한 일이 벌어지고 있으니 어서 가 보게!" 그럼 우리는 달려갔습니다. 미학적인 면에서는 각자가 알아서 대처했습니다. - P156

ㅡ 이지스 같은 사진가들을 좋아하십니까?

ㅡ 놀라운 사진가죠. 매우 뛰어난 화가이기도 합니다. 브라사이도 그렇고요. 빼어난 이야기꾼입니다.

ㅡ 자크 앙리 라르티그는 어떤가요?

ㅡ 초창기 사진들은 대단합니다! 눈이 부시죠. 기쁨에 넘치고, 순수하고...

ㅡ그런데도 수 년 동안 대중의 주목을 받지 못한 까닭이 무엇일까요?

ㅡ 그럼 내 이름은 어째서 알려지게 된 건가요? 부조리한 질문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중요한 건 경험입니다. 어떤 사람들을 만났으며 또 어떤 일이 벌어질 때 그 현장에 있었느냐 하는 겁니다.

ㅡ 예를 들면요?

ㅡ 기억나는 게 없습니다.

ㅡ 그런 말 마세요. 다른 생각이 있는 거겠죠!

ㅡ 아닙니다. 내 사진에서도 그런 점이 느껴졌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내 사진을 들여다보는 데 지쳤습니다. 지금 난 수집가들에게 사진을 팔아서 먹고삽니다. 젊을 때는 한 장도 못 팔았는데 말이죠. 터무니없는 일이죠! 내 사진에 서명을 해서 진품이라누걸 입증하는 게 답니다.

ㅡ 실제로 가치가 높은 사진들이 있나요? 회화처럼요.

ㅡ 아니요. 어쨌든 젊을 때도 팔지 못한 사진을 지금은 팔 수 있다는 게 부조리한 일이죠.(157p.) - P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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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너무 많이 찍지 않으려면 주제가 당신을 사로잡는 순간에만 셔터를 누르면 됩니다. 즉, 미세하게 감이 올 때 말입니다. 그게 전붑니다. - P144

서열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모두 잠재적 예술가입니다. 즉, 느낄 줄 아는 존재라는 뜻이지요. - P146

나는 카메라를 손에서 놓아 본 적이 없습니다. 내 시선은 항상 삶을 훑습니다. 그 점에서 나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마지막 대목에서 프루스트와 닮았습니다. 이렇게 말했죠. "삶, 마침내 되찾은 진짜 삶, 그건 문학이다." 나한태는 그게 사진입니다. - P146

당신은 사람들이 나한테 ‘고전적‘이라는 말을 갖다 붙인다지만, 그게 무슨 뜻인지 도통 모르겠습니다. 나는 고전이라거나 현대적이라는 식으로 구분하는 분류법에 수긍하지 않습니다. 사실상 모든 순간이 동일합니다. 다만, 현실의 흐름 속에서 모든 순간을 포착하지는 못할 뿐이죠. - P148

데생은 빠르건 느리건 간에 명상입니다. 사진에서는 파도의 정점에 선 서퍼처럼 항상 시간에 맞서야만 합니다. 사진은 지속적으로 공간과 시간의 문제를 재해석 합니다. 영속적으로 말이죠. 이 점에서 나의 성마른 기질이 큰 도움을 주지요. 물론 그런 기질은 내가 데생할 때 선의 생동감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하지만 데생할 때는 근본적으로 명상 상태에 젖어 있지요. 시간이 멈춘 상태로 말입니다. - P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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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 그러니까 이론화, 다시 말해 고착화 된 태도를 거부한 거로군요. 이 역시 초현실주의적 선택인 셈입니다. 선생은 줄곧 그런 태도를 견지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ㅡ 네, 그리고 자기 자신을 문제 삼아야 할 필요성도 함께 말이죠. 조금 전 언급한 격한 기쁨이란 게 바로 그겁니다. 나에게 가장 커다란 열정은 사진을 찍는 그 격발의 순간에 있습니다. 그건 직관과 조형적 질서의 인식으로 이루어진 신속한 데생이고, 그간 미술관과 화랑의 잦은 출입, 또 독서와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맺어진 결실입니다. - P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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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 선생은 전쟁 초기에 포로로 잡혔었지요?

ㅡ 1940년 6월, [프랑스 사람들]의 촬영 현장에서 촬영기사였던 알랭 두아리누(Alain Douarinou)와 함께 포로로 잡혔죠. 그 바로 직전, 우리가 보주 지방에 있을 때 군인수첩을 돌려받았는데 내 수첩엔 이렇게 적혀있었습니다. "무기력함. 대단히 무기력함. 진급 불가." 나는 두아리누와 함께 처음으로 도주를 시도했지만 다시 붙잡혔죠. 불행하게도 두아리누는 폴란드로 이송되었습니다. - P129

ㅡ 그런데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ㅡ 세상이 변했습니다! 변화에 순응할 필요가 있었지요. 나는 참과 함께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제 더 이상 미학적 사진은 찍을 수 없게 되었군." 나는 여전히 회화와 형식에 관심이 많았지만 그런 요소들을 변화에 맞춰야 했습니다. - P131

친구 한 명이 있습니다. 그때가, 그러니까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 친구는 의사이자 소설가였죠. 우리는 서로의 직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런데 내가 카메라를 가지고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지 얘기하니까 그 친구가 말하더군요. "자넨 일하는 게 아닐세. 자네는 격한 기쁨을 맛보는 걸세." 폴 라파르그(Paul Lafargue)의 《게으를 수 있는 권리》를 무척이나 감명 깊게 읽은 나한테 그런 말을 한다는 건 정말 놀라운 일이죠. - P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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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 《율리시스》를 처음 읽었을 때가 그때였나요?

ㅡ 아닙니다. 그 책은 군 복무 시절 처음 읽었죠. 당시엔 신병이 부대에 배치되면 소위 받아쓰기를 거쳐야 했습니다. 설문 양식을 채우는 일이었지요. 나는 ‘교육 수준‘란에 ‘무‘ 라고 적었습니다. ‘장교가 되고 싶습니까?‘ 란 질문에는 ‘아니요‘ 라고 답했죠. 부대의 인상에 대해 묻는 항목도 있었습니다. 나는 조종사가 되고 싶었지만 대번에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설문지에 이렇게 썼지요. ‘너무 재지 마라. 하늘은 모든 사람의 것이다.‘ 하사관들이 나를 보며 웃음을 터뜨렸고 장교들은 나를 역겹다는 눈초리로 쳐다봤습니다. 대위가 신병 대열에 선 나를 보더니 나오라고 했습니다. 설문지를 내밀면서 물었습니다.
"뭘 쓴 거지?"
"콕토요."
"콕토, 뭐?"
"콕토가 1920년에 쓴 시입니다."
그 후 나는 군기교육대로 불려갔고 거기서 고생을 좀 했죠.(124p.) - P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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