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약성과 약점weakness이 같은 것이라는 인식은 취약성에 관해 가장 널리 퍼져 있는 오해이다. -25쪽
취약성은 좋거나 나쁜 게 아니다. 흔히 말하는 어두운 감정도 아니고 그렇다고 늘 밝고 긍정적인 경험도 아니다. 취약성은 모든 감정과 느낌의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다. ‘느끼는 것’자체가 취약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취약성이 약점이라 믿는 것은‘느낌’을‘약점’과 동일시하는 것과 다름없다. 그러나 삶의 정서적 측면을 차단해 버리면 삶에 목적과 의미를 부여하는 본질과 멀어지게 된다.-25-26쪽
취약성을 두려움, 수치심, 비애, 슬픔, 실망 등의 다른 어두운 감정과 동일시하면 그것을 버리고 싶어진다. 우리는 이런 감정들을(우리의 삶과 사랑, 일, 리더십에 지대한 영향을 미침에도) 입에 담기조차 싫어한다. 많은 이들이 취약성이 우리가 갈망하는 감정과 경험의 요람이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고, 나 또한 이를 깨닫는 데 10년이 넘는 시간이 필요했다. 취약성은 사랑, 소속감, 기쁨, 용기, 공감, 창의성의 모태이다. 희망, 공감, 책임감, 진정성의 원천이기도 하다. 취약성이 목적의식을 선명하게 만들고 의미 있는 삶의 길을 열어 줄 수 있다는 뜻이다.-26쪽
난 취약성을 불확실성과 리스크, 감정 노출로 정의한다. 사랑에 대해 한번 살펴보자.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할 때, 그(녀)는 날 사랑할 수도, 사랑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녀)는 평생 나와 함께할 수도, 아니면 홀연히 떠나 버릴 수도 있다. 또 죽는 날까지 나밖에 모르거나 반대로 한눈을 팔 수도 있다. 이것이 취약성의 본질이다. 사랑은 불확실하다. 믿기지 않을 정도로 위험하다. 게다가 누군가를 사랑하면 감정을 노출하게 된다. 그로 인해 한없이 두렵고, 한없이 상처받기 쉬운 상태에 놓인다. 그렇다고 사랑하지 않거나 사랑받지 못하는 삶을 선택할 수 있겠는가? -26-27쪽
앞서 지적했듯이 우리가 감정을 약점으로 여기면 몹시 힘든 상황이 닥친다. 분노 외에는 감정을 용납하지 못하고, 이에 따라 취약성도 끌어안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분노는 2차적인 감정으로, 우리가 밑바닥에서 느끼는 여러 까다로운 감정을 감추기 위한 가면에 불과하다.-27쪽
감정feeling을 흠failing과 혼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만 비로소 우리가 취약성을 약점으로 치부해 버리는 까닭을 이해할 수 있다. 삶의 정서적인 측면을 되찾고 열정과 목적의식에 다시금 불을 지피고 싶으면, 취약성을 인정하고 끌어안는 방법과 그에 수반되는 감정을 느끼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이것은 취약성을 정의ㆍ인식ㆍ이해하는 데서 출발한다. -27쪽
사람들에게 다음 빈칸을 채워 보라고 했다.
‘나는 할 때 취약성을 느낀다.’
그들의 답변만 봐도 취약성인 무엇인지 피부로 느낄 수 있다.
ㆍ 나는 남들이 달가워하지 않는 의견을 공유할 때 취약성을 느낀다.
ㆍ 나는 홀로 서야 할 때 취약성을 느낀다.
ㆍ 나는 도움을 청해야 할 때 취약성을 느낀다.
ㆍ 나는 누군가에게 아니라고 말할 때 취약성을 느낀다.
ㆍ 나는 나만의 사업을 시작할 때 취약성을 느낀다.
ㆍ 나는 유방암 4기인 서른일곱 살 아내의 유서 작성을 도울 때 취약성을 느낀다.
ㆍ 나는 아내와(남편과) 섹스를 하려 할 때 취약성을 느낀다.-27-28쪽
ㆍ 나는 불가능에 가깝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오케스트라 수석 단원이 되길 간절히 바라는 아들을 격려할 때 취약성을 느낀다.
ㆍ 나는 방금 아이를 잃은 친구에게 전화를 걸 때 취약성을 느낀다.
ㆍ 나는 엄마를 양로원에 보낼 때 취약성을 느낀다.
ㆍ 나는 이혼 뒤 첫 데이트에 나설 때 취약성을 느낀다.
ㆍ 나는 상대 또한 날 사랑해 줄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처음으로 먼저 "사랑해"라고 말할 때 취약성을 느낀다.
ㆍ 나는 써 놓은 글이나 만든 작품을 발표할 때 취약성을 느낀다.
ㆍ 나는 승진했지만 잘 해낼지 모를 때 취약성을 느낀다.
ㆍ 나는 해고당할 때 취약성을 느낀다.
ㆍ 나는 사랑에 빠질 때 취약성을 느낀다.-28쪽
ㆍ 나는 새로운 무언가를 시도할 때 취약성을 느낀다.
ㆍ 나는 새 남자 친구를 집에 데려올 때 취약성을 느낀다.
ㆍ 나는 세 차례 유산 뒤에 다시 임신을 시도할 때 취약성을 느낀다.
ㆍ 나는 건강 검진 결과를 기다릴 때 취약성을 느낀다.
ㆍ 나는 이혼으로 힘들어하는 아들에게 손을 내밀 때 취약성을 느낀다.
ㆍ 나는 엉망인 몸매를 드러내며 사람들 앞에서 운동할 때 취약성을 느낀다.
ㆍ 나는 겁이 난다고 시인할 때 취약성을 느낀다.
ㆍ 나는 거푸 삼진을 당한 후에 다시 타석에 나설 때 취약성을 느낀다.
ㆍ 나는 최고경영자에게 다음 달 직원 임금이 부족하다고 보고할 때 취약성을 느낀다.-28-29쪽
ㆍ 나는 직원을 해고할 때 취약성을 느낀다.
ㆍ 나는 제품을 세상에 내놓았는데 전혀 호응이 없을 때 취약성을 느낀다.
ㆍ 나는 책임을 져야 할 때 취약성을 느낀다.
ㆍ 나는 용서를 구할 때 취약성을 느낀다.
이것들이 약점으로 보이는가? 하늘이 무너진 것 같은 시련을 겪고 있는 누군가의 곁을 지켜 주고 싶은 것이 과연 약점일까? 책임을 끌어안으려 하는 것이 약한 면을 드러내는 것일까? 삼진을 당한 뒤에 다시 타석에 오르는 게 약하다는 증거일까? 아니다. 취약성은 진정성이고, 또 용기이다. 그것들이 불편하게 여겨질 때도 있는 법이지만, 절대‘약점’은 아니다. -29쪽
물론 취약성을 느낄 때 우린 완전히 벌거숭이가 된다. 이른바 불확실성이라는 감옥에 갇혀 버리는 것이다. 취약성을 받아들이는 순간 어마어마한 감정적 리스크를 감수하게 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리스크를 감수하고, 불확실성에 용감히 맞서며, 마음을 열어 감정적 노출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을 곧 약점이라 말할 수는 없다.
‘취약성은 어떤 느낌인가요?’라는 질문을 다시 던졌을 때,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답했다.
ㆍ 취약성은 내 진짜 모습이 너무 실망스럽지 않기를 바라며 가면을 벗는 것입니다.
ㆍ 취약성은 더 이상 속에 담아 두고 참지 않는 것입니다.
ㆍ 취약성은 용기와 두려움이 만나는 지점입니다.
ㆍ 취약성은 줄타기를 하며 반쯤 왔는데 전진해도, 후진해도 무섭기는 마찬가지인 상황입니다.
ㆍ 취약성은 손바닥이 흥건하게 젖고 가슴은 방망이질하는 것입니다.
-29-30쪽
ㆍ 취약성은 무서우면서도 흥분되는 것, 그러니까 끔찍하면서도 희망을 품게 되는 것입니다.
ㆍ 취약성은 굴레를 벗어 던지는 것입니다.
ㆍ 취약성은 가장 높은 곳에 홀로 남겨지는 것입니다.
ㆍ 취약성은 자신이 제일 두려워하는 무언가를 향해 첫걸음을 내딛는 것입니다.
ㆍ 취약성은 나의 전부를 쏟아붓는 것입니다.
ㆍ 취약성은 너무 두렵지만, 그러면서도 살아 있다고 느끼게 해 주는 것입니다.
ㆍ 취약성은 울컥하면서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입니다.
ㆍ 취약성은 곤두박질치기 직전의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는 느낌입니다.
ㆍ 취약성은 자유와 해방입니다.-30쪽
ㆍ 취약성은 공포, 불안감, 두려움을 견디고 나면 자유, 자긍심, 놀라움이 뒤따르는 것입니다.
ㆍ 취약성은 나의 가장 약한 부분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ㆍ 취약성은 총소리를 듣고 혹시 내가 맞은 건 아닌지 확인하는 것입니다.
ㆍ 취약성은 통제권을 놓아 버리는 것입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답은, 취약성은 벌거벗은 기분이라는 것이었다.
ㆍ 취약성은 비웃음이 아닌 박수갈채를 기대하며 벌거숭이로 무대에 오르는 것입니다.
ㆍ 취약성은 남들은 모두 옷을 차려입었는데 혼자만 벌거벗은 것입니다.
ㆍ 취약성은 북적대는 공항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서 있는 꿈입니다.
취약성에 관해 제대로 살펴보려면 ‘취약하다vulnerable’라는 단어의 정의와 어원을 아는 게 필요하다. 메리엄-웹스터 사전Merriam-Webster Dictionary에-30-31쪽
따르면 취약성이라는 단어는 ‘상처를 입히다’라는 뜻의 라틴어 ‘vulnerare’에서 유래했다. 이 단어에는 ‘상처를 입기 쉬운capable of being wounded’, ‘공격이나 피해에 노출돼 있는open to attack or damage’ 등의 뜻이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같은 사전에서 약점은 ‘공격이나 상처를 이겨 낼 능력이 없는 것inability to withstand attack or wounding’으로 정의돼 있다. 언어적인 관점에서만 봐도 취약성과 약점은 사뭇 다른 개념이다. 아닌 게 아니라, 약점이라는 건 오히려 ‘무언가에 제대로 취약하지 못해서’ 비롯되는 것일 수도 있다. 본인의 어떤 면이 어떻게 연약한지 인정하지 못하면 그만큼 더 다치기 쉽다. -31쪽
건강 심리학에 대한 연구들에 따르면 취약성을 인지하면 바람직한 식생활을 유지할 가능성이 한층 높아진다. 좋은 식습관을 가지려면 먼저 취약성을 인지해야 하는 것이다.
사회 심리학자들은 광고와 마케팅의 영향력을 파헤치고 있는데, 이 분야에서도 취약성에 관한 연구 결과가 잇달아 발표되고 있다. 연구에 따르면 자신은 현혹될 리 없다고 생각하고 있을수록 허위 광고에 속기 쉬운 것으로 나타났다. 다음과 같은 설명이 정곡을 찌른다. "취약하지 않다는 환상은 방어막 구실을 하기는커녕 자신을 보호해 줄 수 있는 방어 기제를 무력화시킨다."-31-32쪽
수치심에 빠진 남자는 이렇게 말한다. "이 사람들을 해고할 때 감정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
수치심 회복 탄력성을 실천하는 남자는 이렇게 대응한다. "난 이 말 안 믿어. 이 친구들이랑 5년을 함께 일했어. 이들의 가족도 알고. 그러니 마음이 쓰이는 게 당연하지."-105쪽
수치심은 일 때문에 집을 떠나 있는 여자의 귀에 대고 이렇게 속삭인다. "넌 좋은 엄마가 아니야. 아들 학예회에도 빠지고 말이야."
수치심 회복 탄력성을 기른 여자는 이렇게 반박한다. "학예회 한 번 빠진다고 내가 엄마 노릇을 못하는 건 아니야!"
수치심 기폭제가 강화되는 가장 강력한 방법 중 하나는 이런 성별 족쇄를 채워 사회 계약을 맺는 것이다. 남자와 여자가 "난 내 역할을 다 할 테니, 넌 네 역할에 충실해"라고 말할 때 관계는 틀에 갇혀 버린다. 연구를 통해 밝혀진 패턴 중 하나는 중년기에 접어들 무렵 이런 역할 분담이 거의 버티기 어려운 수준에 도달한다는 사실이다. -106쪽
남자는 갈소록 단절감과 함께 실패에 대한 두려움으로 온몸이 마비되는 느낌을 받는다. 여자는 진이 빠지고 난생처음으로 자신이 부응하려는 기대치가 도달 불가능하다는 엄연한 사실을 깨닫기 시작한다. 이런 사회 계약에 따른 삶의 달콤한 유혹인 성취감과 찬사, 성과 등이 악마에게 영혼을 파는 파우스트적 거래Faustian bargain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느껴진다. -10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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