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열화당 사진문고로 나온 사진가 김녕만님의 사진선집입니다.

전북 고창출신의 사진가께서 고향에서 찍어오신 1970년대 농촌 풍경에서부터 동아일보 사진기자로 재직하시는 동안 찍으신 1980년의 광주민주화운동 사진 그리고 1980년대의 격렬했던 가두시위 사진, 그리고 전두환 노태우 두 대통령들이 피의자복장을 하고 호송차에서 내리는 사진이 있습니다.

지금은 사라져서 볼수가 없는 전경들의 애환을 담은 사진도 있습니다.

후반부에는 남북분단에 촛점을 맞춘 판문점에서 찍은 사진들이 있습니다. 일상에서 유머러스한 장면을 잡기로 유명한 사진가답게 표지사진으로 쓰인 망원렌즈가 궁금한 북한군 사진이 여기 있습니다.

사진가 본인이 말씀하신대로 사진기자가 아니면 접근할 수 없는 대상과 장소를 카메라에 담았다는 게 사진을 하는 입장에서 부러운 대목이었습니다.

사진집에는 간간히 2000년대 이후 사진기자를 그만 두신후 찍은 사진이 나오는데, 이 사진들을 포함하여 사진이 모두 1970년대부터 일관되게 흑백으로 촬영하신게 인상적이었습니다.

사진은 ‘흑백’이어야 한다는 흑백사진에 진심인 한 사람으로서 사진집의 완성도가 엄청나다고 생각했습니다.

부드러운 그레인으로 표현된 차분한 톤의 흑백사진이 거의 모두 피사체에 근접하여 팬포커스로 촬영되었습니다.

사진의 중심 피사체가 후경과 모두 포커스가 맞는 팬포커스 사진이 사진적 이미지의 본모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정말 대단한 사진을 보았다고 느낍니다.

이 사진집에서 사진가께서는 사진을 설명해주셨고 < 사진예술> 편집장이신 부인께서 작가론을 써주셨습니다.

최근 이 사진집이 2020년 열화당에서 다시 새로운 장정으로 발매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본 사진집은 초판이라 차이가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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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를 대표하는 전쟁사진가(War Photographer) 로버트 카파(Robert Capa)를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미국의 전쟁사진가로 알려진 그가 헝가리 출신 유태인인 사실도, 그의 이름 로버트 카파가 ‘활동명’이라는 사실도 사실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카파는 헝가리 부다페스트(Budapest)에서 안드레 프리드만 (Andre Friedmann)으로 태어났습니다. 집안이 넉넉치 못했던 그는 독일 베를린(Berlin)으로 가서 대학을 다니며 사진을 처음 접했습니다. 베를린에서 암실 조수를 하면서 사진의 현상 인화과정을 배우고 사진을 익혔습니다.

하지만 독일에 나치당이 정권을 장악하고 유태인들을 탄압하자 그는 거점을 다시 파리(Paris)로 옮깁니다. 여기서 본격적으로 보도사진가들을 만나면서 프로 사진가의 길로 접어듭니다.

프랑스에 있으면서 그는 처음 스페인내전( The Spanish Civil War)에 종군합니다. 프랑코 독재정권에 반대하는 스페인 민병대편에 선 카파는 이 전쟁에서 처음 전쟁사진가로서 명성을 얻습니다.

하지만 전쟁에서 돌아온 그는 평상시에는 파티에 참석하고 클럽에 드나들고 도박을 하며 불안정한 생활을 합니다.

스페인 내전에서 그의 첫 연인 질다 타로(Gerda Taro)를 잃은 것이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녀는 혼자 전쟁을 취재하다 자동차 사고로 목숨을 잃은 것입니다.

첫 연인을 전쟁에서 잃은 직후 카파는 수많은 여배우, 모델 등 많은 여성을 만나도 결코 결혼을 하지 않았습니다.

나치 독일이 프랑스를 침공하자 카파는 가족들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합니다. 이후 미국 뉴욕과 영국 런던 그리고 프랑스 파리를 오가며 방랑하는 삶을 삽니다.

질다 타로 이후 카파와 가장 오래 깊은 관계를 가진 여성은 헐리우드 배우인 잉그리드 버그만(Ingrid Bergman)입니다. 남편과 사실상 쇼윈도 부부였던 버그만은 파리에서 카파를 만나 그와 사랑에 빠졌고 남편과의 이혼도 심각히 고려했으나 카파는 버그만의 결혼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또 미국 모델인 제미 하몬드 (Jemmy Hammond)와도 깊은 관계를 가졌으며 그녀의 두 아들들이 카파를 아버지처럼 생각하는 관계였습니다.

인도차이나 전쟁에서 1954년 카파가 전장에서 사망하자 제미 하몬드는 충격을 받고 무너졌다고 저자는 전합니다.

스페인 내전에 참전이후 술과 도박 그리고 여자에 빠져 지내던 카파는 제2차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아프리카 전선과 이태리 전선에 종군합니다. 그리고 1944년 6월 6일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종군하여 오마하 비치(Omaha Beach)에 첫 상륙부대와 함께 상륙의 순간을 카메라에 담습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참혹함과 치열함은 그가 찍은 흔들린 사진 한장에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카파를 모르던 사람들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1998년작 <라이언 일병 구하기(Saving Private Ryan)>을 기억할 것입니다. 이 걸작 전쟁영화의 오프닝신은 카파의 노르망디 상륙 순간의 사진을 참조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카파는 스페인 내전과 제2차 세계대전에 종군해 유명한 전쟁사진가로 이름을 날렸지만 그 댓가는 혹독했습니다.

10여년 이상 전쟁터에 나간 탓에 그는 외상후 스트레스장애( 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를 앓았습니다. 극심한 불안증세, 폭음을 일삼았고, 우울증을 앓았으며 화를 자주 내고 가만히 있지를 못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그는 유태인으로서 이스라엘 독립전쟁(1948)에 종군해서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땅에 성립되는 현장을 찍었습니다.

프랑스 파리에서 오랫동안 활동한 카파는 미국의
여러 작가들( 해밍웨이, 스타인백) 과 각별한 사이였으며 라이프(Life)지의 사진가들 그리고 여러 나라의 보도사진가들과도 잘 알고 지냈으며 함께 포커를 치거나 바에서 술을 마셨습니다.

영화감독 존휴스턴과 도박친구였으며 화가 피카소와 마티스와도 친구로 지냈습니다. 그는 남프랑스에 휴가를 즐기러 정기적으로 방문을 해서 이들 예술가/ 배우들과도 잘 지냈습니다.

잉그리드 버그만과 사귀면서 영화 <노토리어스(Notorious),1946>의 셋트장에서 버그만의 스틸사진을 찍기도 해서 히치콕 감독과도 알고 지낸 사이였습니다.

이는 아마도 카파가 전쟁사진가로서의 유명세가 이미 셀레브리티 수준으로 높아진 까닭이어서 인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렇게 화려하지만 불안정하고 경제적으로 늘 쪼달린 삶을 살던 카파는 1954년 일본에서 열린 그의 사진전에 몰린 구름인파를 보고 다시 사진작업의 열망이 생깁니다.

당시 일본의 카메라 업체들이 카파에게 새 카메라와 렌즈를 증정하며 선물 공세를 폈고 카파는 처음 가본 동양의 일본에서 꽤 고무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일본에서 카파는 바로 인도차이나 전쟁 취재를 위해 방콕으로 떠나고 이후 베트남으로 들어가 전쟁을 취재하러 가서 전쟁터에서 사망합니다.

전쟁터에서 죽은 전쟁사진가가 되었기 때문에 그는 ‘전설적인’전쟁사진가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남긴 한마디는 사진을 배우는 모든 이들에게 사진을 하는 자세를 알려주는 경구가 되었습니다:

만약 당신의 사진이 충분히 훌륭하지 못하다면, 당신이 (피사체에) 충분히 가까이 다가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If your photographs arn‘t good enough, you ‘re not close enough


끝으로 책에 관련한 몇가지 사항을 부기합니다.

이책은 본문 23장으로 구성된 총255쪽 분량의 책으로 2003년 출간되었습니다.

카파와 동시대를 살았던 가족과 주변인물들의 인터뷰와 오래된 신문과 잡지기사를 발굴해서 카파가 살았던 시대를 입체적으로 구성했습니다. 이 글을 쓴 저자가 제2차세대전 전쟁사에 대한 책을 이미 여러권 쓴 전문가인 것도 이 책에 나온 전쟁과 전투관련 서술을 더욱 신빙성있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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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mp: The Dog Who Ate a Picasso (Hardcover)
David Douglas Duncan / Thames & Hudson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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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신혼여행으로 간 프랑스 앙티베 (Antibe)의 피카소 미술관에서 산 책입니다.

피카소미술관에 온 김에 기념품으로 산 책이고 불어를 몰라 영어책을 고른 것입니다.

구입할 때는 몰랐는데 이책의 피카소 사진과 글을 쓴 데이비드 더글러스 던컨( David Douglas Duncan)은 미국출신 사진가로 프랑스에서 살았던 포토저널리스트로 라이프(Life)잡지의 사진가로 한국전쟁과 베트남 전쟁을 취재한 전설적인 사진가입니다.

17년동안 천재화가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와 가까운 친구로 지낸 이 사진가는 화가의 내밀한 사생활과 작업모습을 피카소의 자택에서 카메라로 포착합니다. 1956년부터 1957년 두해동안 집중적으로 찍은 사진들입니다.

사진가의 반려견이었던 럼프(Lump)라는 이름의 강아지는 피카소의 집안에 입양되어 새로운 가족이 되고 이 강아지는 이후 피카소와 같이 살면서 피카소의 작품에 등장하고 역사에 남게됩니다.

필연적으로 이 책은 두 사람의 인물에 집중할 수 밖에 없는데 사진가의 피사체가 된 미술가 피카소와 저자이자 피카소의 친구이며 이책을 구성하고 이야기를 들려주는 더글라스 던컨입니다.

이 책의 사진은 독일의 오래된 카메라 라이카(Leica)로 촬영되었는데 이는 데이비드 더글라스 던컨이 이 카메라 회사와 특별한 관계를 가졌기 때문입니다. 책에도 언급이 나오지만 라이카는 사진가를 위해 M3D 라는 커스텀 모델(customized model)을 제작해주었습니다.

책의 사진의 대부분이 흑백필름사진이고, 사진가 자신도 자신의 대부분의 사진을 흑백으로 촬영해왔고 컬러사진은 별로 많지 않다고 스스로 언급합니다.

흑백사진으로 찍은 남프랑스의 피카소 자택의 작업실과 일상을 가감없이 찍은 사진은 매우 인상적이고 사진 전체의 포커스가 모두 맞는 팬포커스 (Pan Focus) 사진이 거의 대부분입니다.

친밀감과 함께 밀착해서 일상을 찍은 사진이 매우 인상적입니다.

사진을 배우려면 우선 대가들의 사진을 많이 봐야 하는데 이 사진집의 기막힌 일상사진을 보면서 과연 전설적인 사진가라 순간을 기막하게 잡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사진집을 보면서 신혼여행때 가본 남프랑스의 앙티베도 다시 기억이 나고, 천재 미술가 피카소의 삶도, 아시아의 전장과 남프랑스의 휴양지를 오갔던 종군사진가이자 포토저널리스트의 삶은 어떠했을지 궁금해졌습니다.

일상의 사물과 가족들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완성하는 화가와 평범한 일상에서 비범한 찰라의 순간을 잡아내는 사진가는 사진만의 관점에서 순간을 잡는다는 면에서 매우 닮았습니다. 붓으로 표현하는가 또는 카메라로 표현하는가만 다를 뿐이죠.

캔디드(candid) 사진을 찍지 않는 예술사진가들이 마치 그림과 비슷한 사진을 촬영하는 것도 회화와 사진의 이런 유사점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끝으로 이 책을 서재를 뒤져 읽은 이유는 10여년 만에 다시 사진을 찍기로 결심해 한동안 멀어졌던 사진집을 다시 보고 워밍업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출간된지 20년 가까운 책이지만 온라인 서점에서 아직도 구할 수 있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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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작한 말들 - 차별에서 고통까지, “어쩌라고”가 삼킨 것들
오찬호 지음 / 어크로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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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사회학자이신 오찬호 작가가 본 한국사회의 ‘소통’의 문제에 대한 책입니다.

‘맥락(context)’을 고려하지 않는 용어의 ’오용(abuse)’ 이 불러온 불통과 비판부재의 상황이 현재 한국사회가 직면한 문제이고, 이 현상이 대결적 정치구도와 맞물려 한국정치의 대결구도를 더 악화시킵니다.

책제목인 ‘납작한 말들’이란 맥락이 제거된 체 잘못 사용되거나 오용된 말들을 뜻합니다.

이책에도 언급된 ‘국민저항권’이라는 말은 잘못 사용된 대표적인 경우인데 소위 ‘보수청년’들이라는 ‘윤석열 지지자’들이 서울 서부지방법원으로 몰려가 청사를 파괴하고 윤석열에게 불리한 판결을 내린 판사를 붙잡으려는 ‘난동’을 부릴때 개신교 목사인 전광훈씨가 주장했던 내용입니다(p240) 언론을 통해 이 내용을 접하고 어처구니가 없었던 생각이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국민저항권이라는 말이 사용되어온 역사맥락을 모른 체, 혹은 일부러 제거한체 오용을 부추기는 주로 보수진영 평론가나 패널들이 문제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이들이 이런 행위를 하는 이유도 자기 진영의 정치적 이익을 위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 책에는 ‘자유’라는 이름아래 추진되었던 괴랄한 정책들이 소개되는데, 그 중하나가 대선후보였던 극우 정치인 이준석의 ’지역별 최저임금제도‘입니다. ’최저임금‘이 임금으로 생활할 수 있는 최저선이라는 의미를 망각 혹은 일부러 배제한체, 지역과 업종에 따라 차등지급하겠다는 무려 ’대선공약‘입니다. 이준석이라는 자칭 엘리트 정치인은 차별이 사라져야 할 사회에 지역별 업종별로 ’더욱더 차별‘을 하겠다는 반사회적 발상을 들고 나온 점입니다.

이준석이라는 정치인은’여성혐오‘를 기반으로 정치를 시작한 이고 지금은 탄핵된 윤석열 정부의 출범에도 일정한 공이 있는 정치인인데, 차별을 당연시하는 매우 반민주적인 정책을 태연히 내놓습니다. 정치인이라면 사회의 불평등 해소 방안을 찿아야 할텐데 이 극우 정치인은 정반대의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저자는 이준석이라는 정치인이 ‘일관되게 초법적이고 반사회적이다’라고 지적을 하셨는데 동감합니다. 개인적으로 이 정치인이 지금의 청년세대를 대표할 아무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젊은 정치인이지만 정치수법이 너무 고루하고 보수정당의 악습만 배운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어처구니가 없던 ‘더 일할 자유’를 주겠다던 윤석열 대통령의 노동정책에 대한 글에 대한 것입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주120시간 노동‘발언을 해 논란을 자초했고, ’최저임금 이하의 노동자들의 일할 자유‘를 주장하며 황당함을 가중시켰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런 발상을 하고 발표할 생각을 했다는 사실이 놀랍고, 이 검사출신 대통령은 엘리트의식에 쩔어서 노동자들은 그냥 개돼지같은 버러지로 본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나올 수 없는 발언입니다. 저자는 윤 전대통령의 주120 시간 노동발언이 산업혁명초기 영국의 공장노동자들보다 더 많은 노동시간이라고 평가했으며 그의 노동정책이 ’황당하다’고 하셨습니다. 경제를 모르는 것도 알겠고 노동자들이 어떻게 사는지 모르는 것도 알겠는데 이런 황당한 정책은 윤대통령을 포함한 파워엘리트들이 세상을 얼마나 ‘그들이 사는 세상’과 ‘저 밑의 것들이 사는 세상’으로 나누어 보는지를 보여준 사례였습니다.

오찬호 작가님의 책은 처음 읽어보았는데 소통이 되지 않는 세상에서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이야기하고 정부의 사회/ 교육정책을 비판하시는데 힘드실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사회제도의 역사적 기원을 알아야 이해를 할텐데, 한국은 전반적으로 역사교육을 너무 등한시한다고 생각합니다.

역사라고 하는 것이 한국사 세계사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사, 건축사, 도시사, 물리학사, 생물학사 등 각 분과 학문별로 있을텐데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기 않아서 교육을 안하고 그래서 역사적 시각이 결여된 사람들이 맥락없이 말을 하고 말의 오용이 심화된다고 생각합니다.

지식에서 맥락은 지식의 거의 모든것과 같은 것인데 너무 안타깝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그래서 기술자가 중요한만큼 기술철학자와 기술사가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한국은 너무 기술자 위주가 아닌지 되돌아볼 때인 것 같습니다.

기술뿐만 아니라 사회현상도 지금 일어나는 현상 자체만 분석하는 건 반쪽분석이며 반드시 맥락을 고려하고, 왜 그런 현상이 생기는 지 역사적 연원을 찿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쓸데없는 사학과는 없애자는 주장을 들으면 답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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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당시의 일본의 출판자본과 일본/ 식민지 조선의 독자와의 관계를 다른 흥미로운 책입니다.

일제강점기 식민지 조선의 독자들 중 실제 일본어를 읽을 수 있는 독자는 매우 소수였고, 국민 대부분이 문맹인 상태에서 일본의 거대 출판자본이 자국과 식민지 조선에 어떤 기획과 광고로 자신의 ‘상품’을 선전하고 시장을 확장해 왔는지 다룹니다.

일본의 출판사 사장이나 편집자 입장에서는 1910년대 후반 ‘러시아혁명’을 기점으로 일본과 조선의 지식인들 사이에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열풍이 이는 것을 지켜보고 지식 상품으로서 ‘사회주의’저작을 판매할 전략을 세웁니다.

더구나 일제의 사상통제와 검열정책에 맞서 사회주의 사상관련 책들을 어떻게 배본할 것인가를 고민하게 됩니다. 그리고 당국의 ‘탄압’을 마케팅의 전략으로 이용해 독자들의 소장욕구를 부추기는 방식으로 책 판매전략을 수립하고 이행합니다.

조선의 경우 소수의 엘리트들이 일본어책을 읽고 토론할수 있는 이들이었고, 조선어로 쓰여진 책들도 나오는 상황이었으나 일제강점기 내내 그리고 해방후에도 상당수 지식인들은 여전히 일본어책을 읽으며 지적 호기심을 채우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일제강점기 일본의 출판자본은 번역을 통하지 않더라도 일본어로 쓰여진 책의 소비층이 있다는 걸 알고 이들을 공략하기 위해 조선어 신문인 <동아일보>,<조선일보>에 광고를 내고, 강연회와 간담회를 진행하고, 검열을 피해 독자에게 직접 책을 발송했습니다.

1930년대 만주사변이후 만주국이 성립하자 대표적인 사회주의 서적 출판사인 <개조사> 사장은 출판시장 개척을 위해 조선과 만주국을 시찰하기도 했습니다.

일본 출판자본의 조선시장 공략은 당시 조선의 지식인들이 사실상 이중언어사용상태( bilingual) 였다는 사실과 무관치 않은 것입니다.

일제의 조선에 대한 불공정한 교육정책때문에 1925년 이전까지 조선에는 제대로된 대학과 도서관도 없었으며, 공부를 더하기 위해서는 일본에서 중고등과정과 대학과정을 유학하지 않으면 안되는 구조였습니다.

이런 교육환경은 지식인들이 ‘일본친화적’으로 만들었고, 상당수가 ‘친일’을 하게 되는 배경이 됩니다.

일제의 탄압으로 조선어 연구도 조선어 문학도 체계가 잡히지 않은 상태에서 일본에서 번역된 서구의 학문을 받아들이는 면도 있습니다.

이책의 마지막 두개의 장은 일본 여성소설가의 중일전쟁 종군기와 식민지 조선 독자들의 반응을 살폈고, 내선일체 정책이 일본과 조선의 인텔리 여성들을 통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보여주었으며 한국전쟁 발발이후 일본은 미군과 연합국의 보급기지로서 역할을 하며 구 일본제국의 군수시설을 재가동하게 되며 경제발전의 기틀을 다지게 되면서 일본 지식인들이 한국전쟁의 전황을 전하면서 ‘점령자’미국이 ‘식민지 일본’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보여줍니다.

일제강점기 식민지 조선인의 입장을 짐작하지 못했던 일본 지식인들이 패전 후 미국에 ‘점령’당하면서 미국이 일본을 영구점령하는 것이 아닌지 두려워하면서 미국의 식민지 ‘일본’을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제일 마지막 장이 눈길을 끈 것은 한국전쟁기 일본의 상황에 대한 매우 드믄 기록이기 때문입니다. 해방이후 미국과 연합국이 한국을 신탁통치한다고 결정해서 대한민국 정부수립 전 혼란이 일어난 건 잘알려져 있지만 당시 남한에 주둔하던 점령군 미군이 일본에 주둔하고 일본에서 전후헌법을 제정하면서 일본을 사실상 통치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같이 언급되지 않습니다. 의도적이든 아니든 해방과 한국전쟁이후의 상황은 미군의 일본 한국주둔과 같이 고려되어야 합니다. 맥아더 사령부가 도쿄에 사령부를 차리고 일본에서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맥락상 모두 고려해서 상황에 대한 서술을 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끝으로 이 책에 흥미를 가진 이유는 저자께서 오랜시간 일본 도쿄에서 일본문학을 가르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문학연구자분들이 훌륭한 역사연구서를 쓰시기도 하고, 일본현지에서 일본인들이 식민지 조선의 출판시장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사상의 관점이 아니라 ‘시장’의 관점에서 본 점도 참신했다고 봅니다.

이 책과 관련해서 몇가지 생각나는 책 몇권 더 소개합니다.

일제시대 한국지식인들에 대한 지식사회학으로는

정종현, 제국대학의 조센징 (휴머니스트,2019)

근대의 책읽기 전반에 대해서는

천정환, 근대의 책읽기 (푸른역사,2014)

을 같이 읽어보면 좋습니다.

끝으로 일제강점기에 대한 애증을 말하고 싶습니다. 현재 서울의 가로체계는 일제시대의 것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해방이후 수많은 일제시대 건축물들이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일제가 한국땅에 남긴 흔적을 없앤다고 아직도 일본을 추종하는 파워엘리트들이 있는 한 일제의 망령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일본이 조선을 차별적으로 대하고 만주사변 이후 병참기지로 삼은 사실을 기억하면 ‘식민지근대화론’이라는 ‘일본친화적’주장을 할 수 없을텐데 안타깝습니다.

오히려 일본의 과거와 현재를 정확하게 알아야 일본으로부터 전쟁배상금도 받을 수 있고, 새로운 관계 정립도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해방이후 한국의 독재자들과 전범이거나 그 후손들이던 일본 자민당 정치인들과의 관계는 반드시 되짚어 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해방이후에도 수십년간 일본어를 읽고 쓸줄 알았던 지식인/ 파워엘리트들이 최소 1980년대까지는 한국에서 지대한 영향을 미쳤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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