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당시의 일본의 출판자본과 일본/ 식민지 조선의 독자와의 관계를 다른 흥미로운 책입니다.
일제강점기 식민지 조선의 독자들 중 실제 일본어를 읽을 수 있는 독자는 매우 소수였고, 국민 대부분이 문맹인 상태에서 일본의 거대 출판자본이 자국과 식민지 조선에 어떤 기획과 광고로 자신의 ‘상품’을 선전하고 시장을 확장해 왔는지 다룹니다.
일본의 출판사 사장이나 편집자 입장에서는 1910년대 후반 ‘러시아혁명’을 기점으로 일본과 조선의 지식인들 사이에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열풍이 이는 것을 지켜보고 지식 상품으로서 ‘사회주의’저작을 판매할 전략을 세웁니다.
더구나 일제의 사상통제와 검열정책에 맞서 사회주의 사상관련 책들을 어떻게 배본할 것인가를 고민하게 됩니다. 그리고 당국의 ‘탄압’을 마케팅의 전략으로 이용해 독자들의 소장욕구를 부추기는 방식으로 책 판매전략을 수립하고 이행합니다.
조선의 경우 소수의 엘리트들이 일본어책을 읽고 토론할수 있는 이들이었고, 조선어로 쓰여진 책들도 나오는 상황이었으나 일제강점기 내내 그리고 해방후에도 상당수 지식인들은 여전히 일본어책을 읽으며 지적 호기심을 채우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일제강점기 일본의 출판자본은 번역을 통하지 않더라도 일본어로 쓰여진 책의 소비층이 있다는 걸 알고 이들을 공략하기 위해 조선어 신문인 <동아일보>,<조선일보>에 광고를 내고, 강연회와 간담회를 진행하고, 검열을 피해 독자에게 직접 책을 발송했습니다.
1930년대 만주사변이후 만주국이 성립하자 대표적인 사회주의 서적 출판사인 <개조사> 사장은 출판시장 개척을 위해 조선과 만주국을 시찰하기도 했습니다.
일본 출판자본의 조선시장 공략은 당시 조선의 지식인들이 사실상 이중언어사용상태( bilingual) 였다는 사실과 무관치 않은 것입니다.
일제의 조선에 대한 불공정한 교육정책때문에 1925년 이전까지 조선에는 제대로된 대학과 도서관도 없었으며, 공부를 더하기 위해서는 일본에서 중고등과정과 대학과정을 유학하지 않으면 안되는 구조였습니다.
이런 교육환경은 지식인들이 ‘일본친화적’으로 만들었고, 상당수가 ‘친일’을 하게 되는 배경이 됩니다.
일제의 탄압으로 조선어 연구도 조선어 문학도 체계가 잡히지 않은 상태에서 일본에서 번역된 서구의 학문을 받아들이는 면도 있습니다.
이책의 마지막 두개의 장은 일본 여성소설가의 중일전쟁 종군기와 식민지 조선 독자들의 반응을 살폈고, 내선일체 정책이 일본과 조선의 인텔리 여성들을 통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보여주었으며 한국전쟁 발발이후 일본은 미군과 연합국의 보급기지로서 역할을 하며 구 일본제국의 군수시설을 재가동하게 되며 경제발전의 기틀을 다지게 되면서 일본 지식인들이 한국전쟁의 전황을 전하면서 ‘점령자’미국이 ‘식민지 일본’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보여줍니다.
일제강점기 식민지 조선인의 입장을 짐작하지 못했던 일본 지식인들이 패전 후 미국에 ‘점령’당하면서 미국이 일본을 영구점령하는 것이 아닌지 두려워하면서 미국의 식민지 ‘일본’을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제일 마지막 장이 눈길을 끈 것은 한국전쟁기 일본의 상황에 대한 매우 드믄 기록이기 때문입니다. 해방이후 미국과 연합국이 한국을 신탁통치한다고 결정해서 대한민국 정부수립 전 혼란이 일어난 건 잘알려져 있지만 당시 남한에 주둔하던 점령군 미군이 일본에 주둔하고 일본에서 전후헌법을 제정하면서 일본을 사실상 통치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같이 언급되지 않습니다. 의도적이든 아니든 해방과 한국전쟁이후의 상황은 미군의 일본 한국주둔과 같이 고려되어야 합니다. 맥아더 사령부가 도쿄에 사령부를 차리고 일본에서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맥락상 모두 고려해서 상황에 대한 서술을 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끝으로 이 책에 흥미를 가진 이유는 저자께서 오랜시간 일본 도쿄에서 일본문학을 가르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문학연구자분들이 훌륭한 역사연구서를 쓰시기도 하고, 일본현지에서 일본인들이 식민지 조선의 출판시장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사상의 관점이 아니라 ‘시장’의 관점에서 본 점도 참신했다고 봅니다.
이 책과 관련해서 몇가지 생각나는 책 몇권 더 소개합니다.
일제시대 한국지식인들에 대한 지식사회학으로는
정종현, 제국대학의 조센징 (휴머니스트,2019)
근대의 책읽기 전반에 대해서는
천정환, 근대의 책읽기 (푸른역사,2014)
을 같이 읽어보면 좋습니다.
끝으로 일제강점기에 대한 애증을 말하고 싶습니다. 현재 서울의 가로체계는 일제시대의 것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해방이후 수많은 일제시대 건축물들이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일제가 한국땅에 남긴 흔적을 없앤다고 아직도 일본을 추종하는 파워엘리트들이 있는 한 일제의 망령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일본이 조선을 차별적으로 대하고 만주사변 이후 병참기지로 삼은 사실을 기억하면 ‘식민지근대화론’이라는 ‘일본친화적’주장을 할 수 없을텐데 안타깝습니다.
오히려 일본의 과거와 현재를 정확하게 알아야 일본으로부터 전쟁배상금도 받을 수 있고, 새로운 관계 정립도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해방이후 한국의 독재자들과 전범이거나 그 후손들이던 일본 자민당 정치인들과의 관계는 반드시 되짚어 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해방이후에도 수십년간 일본어를 읽고 쓸줄 알았던 지식인/ 파워엘리트들이 최소 1980년대까지는 한국에서 지대한 영향을 미쳤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