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정, 거절당한 정부
이해영 지음 / 글항아리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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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모든 것을 말해주는 이 책을 읽는 것은 사실 매우 슬픕니다.

제목대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국제사회, 특히 미 중 영 소 4대 열강으로 부터 정부로서의 ‘ 승인 ‘ 을 거절당했습니다.

중국 상해(上海)와 충칭 (重慶)에 주재해 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19년부터 1945년 해방 당시까지 오랜기간 망명정부로서의 주체성을 가지고 있었고 특히 임시정부 외교부장 조소앙 (趙素昻) 선생이 백방으로 노력을 했음에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망명정부로서 열강으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하고 결국에는 제2차 세계대전의 ‘처리대상’으로 취급되었습니다.

이는 대외적인 요인과 대내적 요인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대내적으로 한국독립운동 진영이 열강이 생각과는 반대로 분열되어 있었습니다. 대표적으로 연해주를 기반으로 하는 무장독립 운동 진영은 사회주의적 색채를 가지고 있었고 상해 중심의 임시정부 쪽은 망명정부의 승인을 위한 외교적 노력에 주력한 것입니다.

이런 상황을 열강들은 독립운동진영이 ‘분열’되었다고 보았고 그래서 대한민국의 대표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본 것입니다. 미국, 영국, 중국의 국민당 정부는 모두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정부’로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독립운동의 한 세력으로만 보려고 한 것입니다.

소련은 연해주 중심으로 사회주의 독립운동세력이 향후 한반도에서의 영향력을 고려해 볼때 더 선호되기 때문에 상해와 충칭에 있었던 임시정부를 외교적으로 승인할 이유가 더더욱 없었습니다.

대외적으로 보았을 때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승인 문제는 결국 절대적 패권을 거머쥔 미국의 대외정책으로 결정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미국은 제2차세계대전 이후 식민지 통치를 겪은 나라들에서 ‘신탁통치(信託統治)’를 실시하는 것을 기본 방향으로 잡았고 한국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미국이 보기에 한국은 대표성을 가진 망명 정부도 존재하지 않았고 한국의 국민 통치 능력에 의문을 제기하여 이런 정책 방향을 잡게 됩니다.

임시정부는 제2차세계대전의 질서를 구축하는 샌프란시스코 강화회의에 참석을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이 회의에서 미국은 일본을 중심으로 중국과 러시아를 방어하는 현재의 미국 대 아시아 전략의 기본 틀을 잡습니다.

한국은 그저 전후 처리 대상으로서 일본에 종속된 체 처리되었습니다.

안타깝지만 역사적 사실은 그러합니다.

하지만 국제법적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승인을 못받았다는 것과 임시정부의 외교활동과 무장독립운동이 정통성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독립을 위한 이런 정치활동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고 기억해야 할 사실입니다.

이 책은 2018년 개최된 망명정부에 대한 학술회의에서 발표된 결과물로 소품과 같은 글입니다.

짧은 글임에도 공식 외교문서를 통해 임시정부의 활동 상황을 잘 보여줍니다.

또한 이 책도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출판된 여러 책 중 하나로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임시정부의 외교활동에 대해 나름 간략한 소개는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끝으로 프랑스의 망명정부였던 자유프랑스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런던에 망명해 있던 자유 프랑스는 힘과 실력을 바탕으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 땅을 연합군보다 먼저 밟았고 이런 행위는 프랑스를 신탁 통치하려던 미국의 프랑스 정책을 바꾼 계기가 되었습니다. 자유 프랑스의 지도자 드골 (Charles De Gaulle)은 연합군과 미국이 꺼려했음에도 전후 프랑스 정치를 이끄는 정치가가 됩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바라던 일이 프랑스에서는 일어났으나 한반도에는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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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미국에서 서브프라임 모기지( Sub Prime Mortgage) 대출회사의 파산으로 시작된 대공황( The Great Depression)이후 최악의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어떻게 대처했는지 서술한 책입니다.

특히 이 책이 흥미로운 점은 필자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의장으로서 경제위기를 대처하는 미국의 정책라인의 제일선에서 일했기 때문에 제3자가 해석이 아닌 직접적 증언 ( first hand account)을 들을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미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000년대 초반 전임 앨런 그린스펀( Alan Greenspan) 연준 의장 재임시 유지된 저금리 정책과 그로인해 촉발된 부동산 가격 의 폭등이 2007년 부동산 가격의 하락과 더불어 부동산을 담보 (collateral)로 설정되어 있던 모기지 대출이 부실화되면서 시작된 경제위기 입니다.

특히 신용상태가 좋지 않았던 저소득자들은 부동산 버블시기 생애 처음 서브 프라임 모기지를 아용해 주택을 구입했으나 주택가격이 폭락함에 따라 대출 원리금이 상승하고 이에 따라 상환불능 상태에 빠지고 서브 프라임 모기지 대출이 부실화되어 모기지 대출회사는 파산을 신청하게 됩니다.

이에 더해 서브 프라임 모기지를 포함해 다른 여러 대출을 섞어 증권화(securitization)시켜 자본시장에 팔던 거대 은행들도 자산이 부실화되면서 유동성위기에 처하게 되어 1929년 대공황이후 사상 최악의 경제위기( economic crisis)에 처하게 됩니다. 이 2007-2009년 세계경제위기는 2008년 9월 미국 투자은행 리먼 브러더스(Lehman Brothers)가 파산한 것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습니다.


지금도 전설적인 마이스트로 ( the legendary maestro)로 알려져 있는 앨런 그리스펀 전 연준 의장의 저금리 정책이 부동산 버블을 촉발시켜 그가 이 경제위기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비판이 존재합니다.

앨런 그린스펀의 통화정책과 그의 연준 재임 시절의 이야기는 그의 회고록, The Age of Turbulence (Penguin, 2007)에 자세하게 나와 있습니다.

저도 밴 버냉키 ( Ben S. Bernanke) 의장의 책은 처음 보는데 이분은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2007-2009년 세계경제위기를 극복하는데 어쩌면 최선의 선택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연방준비제도이사회 (The Federal Reserve Board)에 위원으로 임명되기 전에 이 분은 프린스턴 대학(Princeton University)에서 대공황 (the Great Depression)을 연구하고 가르치던 경제학자였습니다.

그러니 경제위기가 닥친 이후 과거의 역사적 경험에 비추어 해야 할일과 하면 안되는 일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적어도 제가 보기에는요.

책의 초반에 이 분의 가족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의 조부는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출신이고 조모는 폴란드 출신으로 1940년대 초 뉴욕을 거쳐 사우스캐롤라이나의 딜런 ( Dillon, South Carolina)에 정착했습니다. 유태인으로 1960년대 흑백분리정책이 시행되던 남부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분이시지요. 이후 하버드와 MIT에서 경제학을 공부한 후 스탠퍼드대학에서 교수생활을 시작합니다. 1960-70년대 수리적 경제학을 완성시킨 폴 사무엘슨 (Paul Samuelson)의 영향을 몸소 체험하며 주류경제학계에 몸담아 온 인물입니다.


이책은 세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그 핵심은 2부와 3부로 각각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발발 이후의 경제 위기 대처 과정을 담은 부분과 그 영향력에 대한 부분입니다.

이책에는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에 대한 전통적인 정책 결정방식과 미국 의회에서의 정치 과정이 상세하게 나오지만 그보다 더 주목을 받는 것은 2007-2009 세계경제위기를 계기로 고안된 새로운 정책 수단입니다.

이 책에는 두가지가 나옵니다.

첫번째는 양적완화 (Quantitative Easing: QE)입니다.
이 글의 처음에서 언급했듯이 미국의 단기금리는 부동산 버블 당시 이미 낮은 상태였지만 미국의 경기 침체로 인해 지속적으로 금리인하를 할 수 밖에 없었고 결국 미국의 단기금리는 거의 0에 가깝게 유지되게 됩니다.

전통적인 통화정책인 이자율 조정을 통한 정책을 더이상 사용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연준은 양적완화라는 새로운 정책수단을 고안해 냅니다. 연준은 미국의 TB (Treasury Bill) 뿐만 아니라 정부보증의 모기지 채권 등을 매수함으로서 경제 전체의 통화량을 늘려갑니다. 정식명칭은 대량 자산 매수 ( Large Scale Asset Purchase)라고 알려져 있지만 당시 언론에서 ‘양적완화’라는 용어로 사용되어 정착된 말입니다.

처음으로 이루어진 정책이고 전례가 없어 미 의회는 이 정책이 미국인들의 세금을 낭비하는 것이 아니냐고 비판을 했습니다.

미국은 이런 예외적인 통화정책을 통해 경기불황 ( Recession)과 디플레이션 ( Deflation) 위협에서 서서히 벗어났으나 문제는 경기 회복이 실업률 감소를 동반하지 않고 일어나는 고용없는 성장( Jobless Recovery) 의 경향을 보여 상당기간 초저금리 정책을 유지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부시 정권에서 연준 의장으로 지명된 저자는 이후 오바마 정권에서 다시 지명을 받아 두차례 연준 의장을 역임합니다.
오바마 정권 초기 미국의 상하원은 모두 공화당이 장악합니다. 민주당 정권인 오바마 행정부와 미 의회가 정치적으로 대립하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연준은 양적완화 (Quantitative Easing)라는 예외적인 통화정책을 통해 경제 위기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공화당이 장악한 미 의회가 균형재정 정책을 고수하며 재정정책의 확장을 거부하여 상당 기간 미국의 경기 회복이 늦어집니다.

연준의 두가지 정책적 목표는 인플레이션을 억제하여 경제를 안정적으로 운영하며 ( Financial Stability), 동시에 최대 고용 유지 (Maximum Employment)을 유지하는 것이었으나 2007-2009년 경제 위기를 거치며 약간의 수정을 거칩니다. 두가지 서로 모순적인 두 정책을 같이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둘 중 하나를 우선적으로 선택하는 것입니다( Balanced Approach).

화폐경제학자(Monetary Ecomonist)로서 정체성을 고백한 저자는 하지만 디플레이션 위협에 처한 미국과 세계 경제는 단순히 연준과 같은 중앙은행의 통화정책만으로 정상궤도에 되돌아갈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합니다. 정부의 자정확장을 통해 교육과 의료 보험등 복지 분야에 대한 투자가 뒤따라야 국민들의 복지가 향상될 수 있다는 지적은 공감이 됩니다.

두번째 양적완화를 조정하기 위한 정책으로 양적완화의 축소 (Tapering)가 소개됩니다.

이 말은 이제까지 연준이 모기지 채권을 비롯한 채권을 사들여 통화량을 인위적으로 증가시키고 이를 통해 장기금리의 낮게 유지해왔던 기조를 서서히 바꾸어 점진적으로 연준의 채권매수 규모를 줄이는 것을 말합니다.

경제위기 이후 고용없는 경기 회복기조를 이어가자 양적완화기조는 2009년 이후 거의 5년간 지속됩니다.

지속된 양적완화가 금융시장에 지속적인 저금리 기조를 암시할 수 있는 위험성이 있었고 , 이 기조 아래에서 금융기관이 또 다시 고수익은 위해 위험 자산에 투자할 요인이 생길 수 있었고, 경제 안정성 확보를 위해 인플레이션에 대처해야 하는 연준 입장에서 테이퍼링 (Tapering)은 반드시 시행해야 할 필요가 있는 정책이었습니다.

책은 하지만 저자가 연준에서 퇴임하고 후임 자넷 엘렌 ( Janet Yellen) 의장이 자리를 이어가 양적완화의 축소는 후임 의장이 완결지어야 하는 정책으로 결론 짓습니다.

본문이 총 579 페이지의 책으로 중앙은행의 통화정책과 정책결정 과정을 서술한 책이라 최소 거시경제에 대한 이해를 동반하지 않는 한 이해가 쉬운 책은 아닙니다.

하지만 1929년 대공황 이래 최악으로 평가된 2007-2009년의 경제위기 이후 주류 경제학 , 특히 시카고 학파 위주의 신자유주의 경제학 ( Neoliberal Economics) 이 제대로 된 유용한 경제학이 맞는지, 이들의 경제학이 너무 수리 모형에 치중하고 이론에만 치중하고 실제 경제를 도외시 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바로 경제학계에서 나오기 때문에 그 원인을 제공한 이 경제위기는 분명 다시 한 번 복기하고 들여다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책의 모든 면이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닙니다. 저자가 최고위 상류층에 속해있다는 것을 명시적으로 보여주는 언급이 군데군데 나옵니다. 예를 들자면 본인이 세계 중앙은행장들의 모임에 멤버로 나가고 일종의 멤버십 클럽같다는 표현이 나올 때 저자가 미국 사회의 주류라는 본인의 사회적 지위를 상당히 인식하는 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책에서눈 미국의 주류( Mainstream) 에서 통화정책과 경제위기에 대응하는의사결정이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는지를 지켜보는 과정도 흥미롭습니다. 이들이 말하는 친구( Friends)와 동료 (Colleagues) 의 의미가 무엇인지 이들 관계의 맥락에서 살펴보는 것도 의미 있습니다.

책의 중간 중간 대공황을 전공한 학자답게 과거 미국이 겪었던 경제 위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특히 미국의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1907년의 경제 위기 이후 1913년에야 설립되었고 연준은 미국의 정부기관으로 민관 양쪽에 걸쳐 있는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미국의 초기 금융계는 JP Morgan 이라는 카리스마 있는 은행가 한명에게 좌우되었고 1907년 경제 위기를 구출한 이도 사실 중앙은행이 아니라 JP Morgan이라는 금융업자라는 사실은 사실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더구나 JP Morgan 의 후계자 중 한명인 Benjamin Strong 은 초기 연방준비은행의 설립에 관여해 현재의 Wall Street의 현재를 만든 인물이기도 합니다.

영미권에서는 2009년 영국 여왕이 유명한 경제학 대학인 런던경제대학 (London School of Economics)에 방문해서 명망있는 경제학자들이 어떻게 경기침체 ( Recession) 을 예측하지 못했는지 질책했다는 뉴스가 있었습니다. 어떻게 똑똑한 경제학자들이 곧 닥칠 경기침체와 신용경색 ( credit crunch)를 예측하지 못했냐고 말입니다. 여왕이 특정 이슈에 대해 콕 찝어 발언하는 경우가 굉장히 드문 경우이고 질문은 경제학이 왜 존재하는지를 묻는 핵심이었기 때문에 이후에도 학계에서 여러번 인용되었습니다. 경제학의 이제까지의 방법론에 회의가 든 것입니다.

http://www.theguardian.com/uk/2009/jul/26/monarchy-credit-crunch

재무쪽에서 오랜기간 일해 오면서 또 경제학을 공부해 왔고 경제에 관련된 여러 책을 읽어 오면서 많은 이들이 경제가 숫자를 다룬다고 수학과 유사한 어떤 체계로 착각하는 것입니다.

경제는 숫자가 아니고 매일 매일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물질적인 기반입니다. 그 뒤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잊으면 안되는 것이죠. 이 책에서 보이듯 모든 경제정책과 돈을 쓰는 모든 일은 또한 그 자체로 정치적입니다.

따라서 현재 경제학이라고 불리는 학문체계는 사실 ‘정치경제학 ‘ 이라고 불리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고 최초에는 또 그렇게 불리기도 했습니다.

경제학 커리큘럼에 따라서 경제체계의 역사적 시각을 보강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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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Dennis Kim > 대공황을 촉발시킨 서구의 중앙은행장들

일년 전에 읽었던 이 책은 1920년대, 즉 1918년 끝난 제1차 세계대전의 여파가 미국과 유럽,특히 영국, 독일, 프랑스에 어떤 영향력을 미쳤는지 그 와중에 서구 제국의 중앙은행들이 세계경제의 회복을 위해 헤게모니를 잡기 위해 어떤 결정을 했는지 자세하게 추적 관찰합니다.

이전에 소개했던 ‘조선공산당 평전( 서해문집, 2017)’ 이 1919년이후 길게는 1930년대 초까지 일제하 조선의 공산주의 독립운동가를 다룬 것이지만 이런 역사적 사건이 일어나게된 지구적 영향에 있어 ‘Lords of Finance’의 내용은 배경으로서 일독의 가치가 있습니다.

1910년대는 제1차 세계대전과 그 전후처리를 위한 파리강화조약( Paris Peace Conference)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없었고 독일의 하이퍼인플레이션과 미국의 유럽헤게모니 장악도 이때부터 시작되었고 1920년대까지 금융의 기반으로 작동하던 금본위제( Gold Standard)가 붕괴하고 미국은 당시까지 최악의 대공황 ( The Great Depression)을 겪게 됩니다.

미국을 위시한 서구의 관점에서 일제하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한국인의 입장에서도 1910년대와 이후의 여파가 세계 정치 경제를 결정지어 버렸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당시 조선에서도 파리강화회의에 대표를 파견해 조선의 독립을 외교적으로 알라고 돌파구를 찿으려 했지만 안타깝게 뜻을 이루지는 못했습니다.

공산주의를 통해 독립운동을 하던 운동가들은 그들의 상대인 소비에트러시아를 상대로 한국의 독립을 달성하기 위한 작업에 매진합니다.

수많은 운동가들이 블라디보스토크와 모스크바로 러시아 공산당과 코민테른을 찿아갔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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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말에 발행된 한국 공산주의 독립운동사 책입니다. 40여년전 ‘해방전후사의 인식 (한길사)’이라는 현대사 책이 발행되기 이전 한국 근현대사에서 ‘공산주의’ 독립운동사는 지워져야 할 금기의 대상이었습니다.

학자들과 국민들은 이 주제를 토론할 수 없었고 연구하고 기록할 수 없었습니다. 이런 기막힌 상황으로 ‘조선 공산주의 운동사’ 는 후대의 기억에서 지워져야 했고 그 상태로 60여년이 지났습니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역사의 ‘비극’이지요

특히 자신을 ‘자유민주주의’의 신봉자로 여기고 이승만 전 대통령을 ‘국부’로 생각하는 분들에게는 이 책은 불편하고 불온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분들이 설령 불편할지라도 마주서야 할 역사적 사실은 마주서야 합니다. 과거의 기록은 과거의 삶의 흔적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으며 부인한다고 없어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국민을 어리석다고 여기는 오만한 극우 정치인들은 역사적 사실을 주장으로 호도시키며 역사를 왜곡하기를 마다하지 않습니다.
한심한 일이지요.

아무튼 뒤에서 이책의 내용을 차차 살펴보기로 합니다.

우선 책의 내용과 장점을 말하기에 앞서 단점을 먼저 지적하고자 합니다:

첫째, 책의 내용이 여러 차례 중복되어서 서술됩니다. 공산주의 독립운동의 여러 인물들을 인물 개개인 별로 추적하는데 중점을 두다보니 거의 동일한 내용의 문장이 여러번 단어도 바뀌지 않은 상태로 나열됩니다. ‘평전’이라는 장르가 한 인물을 집중적으로 조명해야 함에도 주요 인물들이 너무 많아 이런 산만한 결과물이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책의 마지막 장은 거의 급조의 인상을 줍니다. 한국 공산주의 독립운동사의 초반부를 설명했다고 기획의도를 설명했지만 책의 완결성이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둘째, 책을 쉽게 쓰려 한 의도인것 같지만 주석도 참고도서 목록도 전혀 없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엄연히 국제 공산주의 운동 관점에서 바라본 한국의 독립운동사이기 때문에 이전의 선행연구나 일본, 러시아, 미국 , 중국 등 각국의 외교문서 혹은 책에서 설명하는 팜플렛에 대한 출처가 나와야 함에도 모든 것이 빠져 있습니다. 이는 책의 가치를 반감시키는 출판 형태라고 생각합니다.


다음으로 책의 내용을 간략하게 아래와 같이 정리합니다.

공산주의 운동의 인적 구성을 먼저 살펴봅니다.

구한말이후 생계를 위해 간도와 연해주와 이주한 한인 사회가 최초의 한인 사회주의자들의 터전이 됩니다. 지리상 함경도와 평안도 서북 지방 출신들이 이 지역에 많이 자리잡게 된 것입니다. 즉 처음부터 독립운동은 조선을 떠나 망명한 정객은 물론 중국 만주와 연해주 지역의 한인 1-2세대가 관여되어 있었습니다.

이들은 러시아가 혁명에 의해 공산화되기 이전부터 연해주에 자리잡아 향후 러시아 한인 2세와 한반도 출신 러시아 유학생들을 중심으로 일제하의 조선에 공산당을 뿌리내리기 위해 20세기의 전반기 내내 전력합니다.

또한 세계의 공산당 조직을 지도하는 러시아 코민테른의 지지와 승인을 얻기위해 한인들을 기반으로 한 여러 공산주의 운동 분파들이 경쟁하고 반목하고 결전을 벌입니다.

운동의 분파성을 그대로 인정하고 들어가는 운동가 출신 저자의 태도는 하지만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습니다. 공산주의 실현을 위해 공산당이라는 정치집단을 만들기 위해 같은 편끼리 전쟁을 불사하는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 용인되는 것이 맞는가? 라는 의문이죠. 거대 담론이 목숨보다 중요할 수 있는가? 라는 기본적 질문입니다.

코민테른 집행부는 기본적으로 자국 영토내에서 러시아 한인 2세들 위주로 결성된 조선 공산당 분파인 이르쿠츠크 중심으로 조선 공산당을 결성하고 승인하려 했지만 중국과 간도의 조선 망명정객 이동휘를 중심으로 결성된 고려공산당 상해파와 순수 국내 자생적 사회주의 운동조직인 김사국의 서울파의 반발과 경쟁에 밀려 조선 공산당의 성립 자체가 표류하게 됩니다.

코민테른을 주도하는 러시아 공산당은 자신들의 직접 영향력이 있는 이르쿠츠크파를 중심으로 내세워 사실상 코민테른의 한국지부를 조선에 세우려 주도면밀하게 움직였으며, 망명 정객으로 한인 최초로 사회주의 단체 (한인 사회당)를 만든 상해파의 이동휘는 자신이 선점한 위치를 놓지 않으려 했고 코민테른 집행부도 초기 한인사회당에 자금 지원을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공작자금의 유용으로 코민테른의 신뢰를 잃은 이후 소수파로 전락합니다

김사국을 중심으로 한 순수 국내 공산주의 세력인 서울파는 해외의 이르쿠츠크파와 상해파가 엘리트 중심의 ‘먹물’조직으로 보았고 민초들 사이에서 뿌리내리지 않는 조직으로 보아 심한 불신을 드러냅니다.

이르쿠츠크파의 지원을 받은 김재봉을 중심으로 조선공산당의 창당이 이어지지만 일본 유학파 출신의 흑룡회의 반대로 강령의 미비로 조선 공산당 승인이 미뤄집니다.

서울파는 이 첫번재 조선 공산당 창당 논의에서 제외됩니다.

김재영의 체포로 붕괴된 제1차 조선공산당은 이르쿠르츠 국내파인 화요회의 강달영에게 책임을 넘기지만 이후 공산주의자들과 민족주의자들의 합작을 논의하게 됩니다.

상해파인 김철수를 중심으로 한 제3차 조선공산당은 서울파와의 통합을 추구하지만 역시 이르쿠츠크파의 방해 공작에도 코민테른의 승인을 받는데 성공합니다.

하지만 경성제대를 중심으로 한 엘리트 공산주의자 그룹 중에도 엘리트 중심의 공산당 전위조직들이 민초들을 기반으로 밑에서 부터 조직되지 않고 이론적으로 공허한 논쟁만을 알삼는 것을 비판하며 사회 각 부문 , 즉 학교, 공장, 지방 농민조직 등으로 운동가를 침투시켜 공산당 조직의 하부를 완성하는데 주력하게 됩니다.
이 부분의 서술은 1980년대 학생 운동권에서 구로공단 등 노동현장에 직접 침투했던 사실과 너무도 닮아 있습니다.

총력동원체제를 만들던 1920년대말-1930년대 중반의 일본 제국주의는 이러한 공산주의자들의 조직 침투를 심각하게 보았고 많은 운동가들이 고문 후유증에 시달리거나 목숨을 잃었습니다.

책을 읽으며 좀더 자세하게 알고 싶었던 몇명이 있습니다.

이상설, 여운형, 이동휘, 김재봉, 김약수, 김사국, 박헌영 등입니다.

냉전이 있기 전에 이들은 조선의 독립을 위해 넓게 보면 사회주의 그리고 공산주의를 독립의 수단으로 택했습니다.
20세기 초의 격변기는 러시아 혁명과 중국의 공산혁명 뿐만 아니라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낸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 지금현재의 세계를 만든 시기이기도 합니다.

다른 책을 더 보아야 하겠지만 친일의 경계를 넘나들던 민족주의 독립운동 세력도 있었고 상해 임시정부를 중심으로 미국 등 서구의 영향력을 발판으로 조선의 독립을 외교적으로 이루자는 흐름도 있었습니다. 이동휘와 김원봉 등 철저히 무력으로 일제를 제압해야 한다는 세력도 존재했습니다.

하지만 이책에 나온 인물들은 ‘공산주의’를 독립의 수단으로 삼아 공산주의종주국 러시아의 영향력으로 일제에 저항했다는 사실로 인해 역사에서 지워졌습니다.

과거 친일을 했으나 자신을 친미 자유민주주의자라고 칭하는 자들에 의해서 말이죠.

그 자체가 ‘폭력적’인 한국의 현대사를 반증합니다.
이것이 이미 몰락해버렸다고 하는 ‘공산주의’의 지나간 거의 한세기 전의 역사를 되짚어야 하는 이유일 겁니다.

더구나 지난 20여년을 지배해온 신자유주의 (neo -liberalism)가 더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지적이 여러 주류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나오는 시점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끝으로 이책의 장점 하나 소개합니다.

책의 앞머리에 나오는 일제하 공산주의 운동의 계보가 아마 가장 큰 미덕이라고 생각합니다. 국내와 러시아 연해주, 간도, 상해와 일본 도쿄를 아우르는 초기 공산주의 운동의 계보가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큰 줄기를 잡아가는데 도움이 되는 표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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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08-06 1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다 말았는데 다시 읽어야지 싶습니다.
 
Before European Hegemony: The World System A.D. 1250-1350 (Paperback)
Abu-Lughod, Janet L. / Oxford Univ Pr / 199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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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유럽과 서구가 세계를 장악하기 이전의 세계를 다룬 이 책은 1250- 1350년간의 100여년 간의 세계를 다룹니다.

왈러슈타인 (Wallerstein)의 세계체제론(The World System)을 이론적 틀로서 분석했으며 프랑스/벨지움에서 시작해 이탈리아 제노아((Genoa)/베니스(Venice)를 거쳐 이라크/시리아/이집트를 거쳐 인디아 북부, 인도네시아 그리고 말라카 해협을 지나 중국에 이르는 13세기의 전세계를 다룹니다.

13세기의 세계체제는 전형적인 다극체제로 세 군데의 중심지역이 존재했습니다.

이태리 제노아/베니스를 거점으로 하는 유럽 중심, 수에즈/호르무즈 해협을 통제하는 중동의 이집트 등 이슬람 중심 그리고 실크로드의 끝으로 송/원/명을 아우르는 중국 중심입니다.

세계체제는 13세기에 다극체제로 재편 (restructuring)되었으며 이 체제는 몽골의 원의 확장으로 유목민족의 영향력이 러시아/서유럽에 까지 미쳤던 시기이기도 합니다.

원의 유라시아 통합으로 육상 실크로드의 통합도 완성되었으나 12세기에 있었던 유럽의 십자군 전쟁(The Crusade)의 여파로 13세기 이후 육상을 통한 유럽과 아시아간의 거래는 완전히 이슬람쪽으로 넘어갔습니다. 이슬람의 영향은 14세기 원의 유라시아 지배력이 약화되고 이후 명이 헤게모니를 장악하며 더 확실해졌습니다.

마르코 폴로로 대표되는 이태리 상인 세력은 아나톨리아에 거점을 마련하고 육상 실크로드를 통해 원과 직접거래를 해 부를 축적했으나 원의 세력 약화와 이슬람의 영향력 확대로 더이상 육상으로 접근하지 못하고 해상을 통해 아라비아 반도와 북인도를 통한 경로로 중국대륙으로 접근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동쪽의 중국은 명나라 때가지 동중국해와 말레이 반도 그리고 멀리 아라비아와 동아프리카까지 영향력을 넓혀 재해권을 장악했으나 저자가 보기에는 미스터리한 이유로 그 영향력을 포기하고 내부로 침잠하고 이후 해게모니를 잃게 됩니다.

16세기 포르투갈이 바스크 다 가마의 세계일주 항로를 일주한 이후 인도양 및 말라카 해협의 재해권은 이들의 손아귀에 들어갑니다.

명이 주자학을 국교로 정하고 원나라와 다르게 국내정치와 제후국들간의 조공무역만 허용함으로서 인도양과 남중국해에 힘의 공백이 생겼고 포르투갈은 그 공백을 치고 들어온 것입니다.

16세기 이후 근대세계 (the Modern World)는 소위 ‘서구의 부상(The Rise of the West)’으로 이루어졌으나 이는 서구 자체의 산물 (invention)이 아니라 이미 13세기 유럽이 헤게모니를 장악하기 이전의 다극 체제의 유산이 그대로 작동했기 때문입니다.
아래 결론의 문장을 그대로 소개합니다:

“ Europe did not invent the system, since basic groundwork was already in place in the thirteenth century when Europe was still only a peripheral and recent participant. In this sense, the rise of the west was facilitated by the preexisting world economy that it restructured. “ (p 361)

14세기 말 다극화된 세계체제가 흔들리게 된 요인은 몽골과 중국에서 전파된 흑사병 (the Black Death)이 주요인으로 논의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유럽의 인구가 감소하고 경제력이 약해졌으며 이는 이태리를 중심으로 하던 유럽의 해상세력이 포르투갈로 또 17세기 이후 영국으로 이동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여기에 14세기까지 최고의 선진기술을 자랑하던 국제적 위상을 가졌던 중국이 지배 이데올로기가 주자학으로 바뀌면서 중화주의를 추구하게 되고 여진과 몽골을 비롯한 북방 기마민족의 침략을 방어하는데 총력을 기울이게 됨으로서 그동안 누려왔던 남중국해와 인도양에서의 힘의 우위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저자는 그 이유를 몰라 알 수 없는 이유로 명이 세계체제에서 물러났다고 언급합니다. 서구 학자의 인식의 한계이겠죠).

이 책이 출간된 시기는 1989년으로 소비에트 공산블럭이 붕괴된 직후로 이후 발생하게 될 발칸반도의 인종청소(Ethnic Cleansing)도 미국이 장악하게 될 일극체제도 이슬람의 미국본토 침공도 모두 발생되기 이전입니다.

물론 신자유주의가 지배했던 지난 20년의 영향으로 불평등이 심화되는 것도 예측할 수 없었던 조금의 희망은 있었던 시기이기도 합니다.

세계체제론의 이론적 타당성을 둘째로 치더라도 아직 이 책에 대한 서평은 본 적이 없네요.
영어권에서는 꽤 알려진 클래식 텍스트인 것 같은데 한글 번역본이 있는지 확인해 보아야 할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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