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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의 첫문장이었을 때 - 7인 7색 연작 에세이 <책장 위 고양이> 1집 ㅣ 책장 위 고양이 1
김민섭 외 지음, 북크루 기획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7월
평점 :
구독 서비스가 인기라고 한다. 이 책도 <책장위고양이>라는 구독 서비스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김민섭, 김혼비, 남궁인, 문보영, 오은, 이은정, 정지우 - 이렇게 7명의 작가들이 돌아가면서 1편의 에세이를 매일 배달하는 서비스라고 한다. 주제는 매주 바뀐다. 고양이, 작가, 친구, 방, 비, 결혼, 커피 등 다양하다. '나의 친구 뿌팟퐁커리', '그 쓸데없는'처럼 하나의 명사로 완성되지 않거나 형용사로 된 주제들도 있다. 기발하고 독특한 주제에 대한 작가들의 해석(?) 차이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이 책에 실린 63편의 글 중에 가장 마음에 와닿았던 글은 김혼비 작가의 <문 앞에서 이제는>이다. 초등학교 5학년부터 고등학교 2학년까지 내리 반장을 했던 저자는, 특출난 리더십은 없어도 내가 속한 반에서만큼은 겉돌거나 따돌림당하는 사람이 없게 하겠다는 나름의 원칙을 고수했다. M도 그렇게 해서 친해진 친구였다. M은 하버마스 같은 독일 철학자들의 책을 수시로 읽는, 독특하고 해박한 아이였다. 아이들은 M이 '유난스럽다'며 피했지만 저자는 M과 친하게 지냈다. 그렇게 1년을 보내고 반이 바뀌면서 소식이 끊겼는데, 어느 날 M이 전학을 갔다는 소식과 함께 M이 쓴 편지 한 통을 받았다. 편지를 읽는 내내 가슴이 미어졌다는 저자의 말처럼, 나 또한 가슴이 먹먹하고 눈물이 차올라 혼났다. 나에게도 이런 친구가 있었다. 이 글을 읽으니 그 친구가 너무 그립다. 부디 좋은 곳에서 편안하기를.
오은 시인의 <언젠가 비, 언제나 비>라는 글도 좋았다. 저자는 살면서 두 번의 교통사고를 당했다. 2009년에는 두 대의 차에 연속으로 치이는 끔찍한 사고를 당했다. 택시에 치여 쓰러져 있는데 승용차 한 대가 또 치고 뺑소니를 쳤다. 이런 말을 하면 사람들은 대체로 이렇게 반응한다. "그래도 그만하길 천만다행이에요." 또는 "보험은 들어 놓으셨던 거죠?" 사고 당사자에게는 사고가 천만다'행'일 리 없다. 보험은 다음 문제다. 이런 말들은 사고 당사자와 그렇지 않은 사람의 거리를 확인하는 말 밖에 안 된다. 공교롭게도 저자가 교통사고를 당한 날 모두 비가 내렸다. 지금도 비가 내리면 무섭다는 저자의 심정을, 교통사고를 당한 적 없는 나로서는 알 수 없다. 그저 가만히, 나아지기를 바랄 뿐이다.
이 책은 읽는 방식에 따라 색다른 재미와 감동을 느낄 수 있다. 나의 경우에는 순서대로 한 번 읽고, 작가별로 한 번 더 읽었다. '접시에 덜어놓은 디저트를 집어먹듯' 읽게 되는 책이라는 김겨울 작가의 표현이 참 적확하다. 이렇게 먹어도 맛있고, 저렇게 먹어도 맛있는 디저트 한 상 차림 같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