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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은 만큼 복수하는 소녀 ㅣ 밀레니엄 (문학동네) 5
다비드 라게르크란츠 지음, 임호경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10월
평점 :
2010년경에 열광하며 읽었던 <밀레니엄> 시리즈를 올해 안으로 완독하는 것이 목표다. 원작자 스티그 라르손이 집필한 1권부터 3권까지는 진작에 다 읽었으나, 스티그 라르손이 심장마비로 사망한 후 다비드 라게르크란츠가 대신 집필한 이후의 이야기는 좀처럼 읽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러다 얼마 전 문득 <밀레니엄> 시리즈의 결말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4권을 읽고 바로 이어서 5권을 읽었다. 다비드 라게르크란츠가 생전에 스티그 라르손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진 그의 아버지와 형이 고용한 작가라는 사실은 께름칙하지만, 필력이 워낙 좋아 술술 읽히고(번역이 좋다고 봐야겠지) 기존의 <밀레니엄> 시리즈에서 다뤄졌던 이슈들에 작가 본인이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 이슈들을 추가해 풀어내는 솜씨가 탁월해 계속 읽게 된다. (다비드 라게르크란츠의 대표작 <앨런 튜링, 최후의 방정식>도 주문했다. 절판이라 중고책 주문.)
5권에서 리스베트는 감옥에 들어가 있는 상태다. 타인의 재산을 침해하고 타인의 생명을 위험에 빠뜨렸다는 죄목으로 2개월 금고형을 선고받고 복역하게 된 리스베트. 지난 4권을 읽은 사람이라면 리스베트가 위기에 빠진 아이를 구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그러한 행동을 했다는 걸 알겠지만, 소설에 나오는 스웨덴 법원은 오로지 법 조항에만 근거해 리스베트를 처벌한다. 리스베트는 감옥에서 악명 높은 베니토 패거리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파리아를 구해주게 되고, 파리아가 이슬람교 집안의 억압을 견디다 못해 오빠를 죽인 죄로 수감 중인 사실을 알게 된다. 리스베트는 미카엘에게 파리아의 가족과 연인에 대해 조사해 달라고 부탁하는 한편, 리스베트 자신의 어린 시절과 관련이 있는 인물인 것으로 보이는 '레오'라는 인물에 대해 알아봐 달라고 요청한다.
5권에서 중점적으로 다뤄지는 이슈는 '쌍둥이 실험'이다. 유전과 환경 중에 무엇이 인간을 형성하는 데 있어 영향력이 더 큰지를 알아보기 위한 쌍둥이 실험을 실제로 스웨덴 정부가 시행했는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이 소설의 내용으로 미루어 봤을 때 스웨덴에서도 한동안 '유전이냐, 환경이냐'를 두고 치열한 논쟁이 이루어졌고 이에 따라 일련의 실험 또는 연구가 시행되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스웨덴에도 인종 차별이 존재하고, 실험의 대상이 주로 피차별 대상인 '유랑민(집시 또는 로마라고도 불린다)'이었다는 사실이다. 소설에는 리스베트의 어머니 앙네타가 유랑민 출신이라 리스베트와 쌍둥이 카밀라가 실험의 대상이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내게 더욱 인상적이었던 내용은 유전과 환경보다도 '같은 배에서 난 형제자매와도 공유하지 않는 자신만의 환경'이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인간의 운명을 결정짓는 요소로서 힐다가 '유일무이한 환경'이라고 지목한 것은, 같은 배에서 난 형제자매와도 공유하지 않는 자신만의 환경이었다. 가령 자신이 즐거움이나 매력을 느끼거나 특정 방향으로 이끌리는 무언가를 발견했을 때 스스로 추구하고 창조해내는 환경 말이다. (243쪽)
인간은 자신의 유전자를 자극하는 사건과 활동에 이끌리며 두렵거나 불안한 요소들은 회피한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일반적인 환경 이상으로 인간의 인격을 만들어나간다. (중략) 무엇보다도 인간을 형성하는 건 그 누구와도 공유하지 않는 자신의 경험들이다. 그런 경험들은 우리를 삶 속으로 한 걸음씩 나아가게 하면서 눈에 보이지 않지만 결국 깊은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244쪽)
5권에서 중점적으로 다뤄지는 또 다른 이슈는 스톡홀름 대성당에 있는 기사 성 게오르기우스(또는 성 조지)와 용 동상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동상을 보고 성 게오르기우스가 용을 죽이고 옆에 있는 여인을 구출한 장면으로 해석하는데, 작가는 이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제시한다. 성 게오르기우스-용-여인이 살라첸코(리스베트의 아버지)-리스베트-앙니타(리스베트의 어머니)라는 것이다. 리스베트의 시그니처인 용 문신을 보고 이런 이야기를 생각해낸 걸까. 아들이 어머니를 구하는 이야기는 많이 봤지만, 딸이 어머니를 구하는 이야기는 많이 못 봐서 신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