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기와 다리 7
사노 나미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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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노 나미의 만화 <미기와 다리>는 엄마를 죽인 범인을 찾아 복수하기 위해 둘이서 한 사람을 연기하는 일란성 쌍둥이 형제 미기와 다리의 이야기를 그린 코믹 미스터리 스릴러물이다. 6권에서 미기와 다리는 이치조 에이지의 어머니의 계략에 의해 오리곤 마을의 가사도우미 밋짱을 살해한 누명을 쓰고 잠시 마을을 떠났다. 결국 마을로 다시 돌아온 미기와 다리는 아키야마, 마루짱, 카렌의 협조를 얻어 이치조 에이지의 어머니 '레이코'와 마주하는 데 성공한다. 


대망의 완결편인 7권은 레이코의 고백으로 시작한다. 레이코가 들려준 이야기에 따르면, 미기와 다리가 그동안의 조사를 통해 알아낸 내용은 대부분 사실이다. 미기와 다리의 어머니인 메토리는 이치조 가의 가사도우미였고, 레이코는 젊고 아름다운 메토리를 시기해 결국 죽음에 이르게 했다. 하지만 이들이 알아내지 못했던 것도 있다. 레이코와 메토리는 사실 친자매처럼 가까운 사이였다. 머리색만 다를 뿐 외모도 거의 비슷한 두 사람은 서로를 돌보고 동경하며 지냈다. 


레이코와 메토리는 서로의 보완 관계가 지속될 수 있으리라고 여겼지만, 오래 가지 못했다. 모두가 선망하는 완벽한 가족의 모습을 구현해야 하는 이치조 가의 안주인은 어디까지나 레이코 한 사람만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치조 에이(에이지의 아버지)의 사랑을 받든, 이치조 가의 대를 이을 아이를 낳든, 신분상 이 집안의 가사도우미에 불과한 메토리는 저택을 떠나거나 영원히 사라지는 수 밖에 없었다. 그로 인해 미기와 다리, 에이지는 서로에게 지워진 운명을 감당하며 현재까지 살아온 것이었다. 


똑같이 생긴 미기와 다리의 이야기로 시작해 (머리색만 빼면) 거의 똑같이 생긴 레이코와 메토리의 이야기로 끝나는 서사 구조가 완벽하다. 레이코와 메토리의 이야기만 떼어놓고 보면 <제인 에어>, <레베카> 같은 19세기 영국 고딕 문학 느낌도 난다. 레이코와 메토리는 결국 이치조 에이라는 가부장이 통치하는 세계에서 갈등하고 파국을 맞은 것인데(미기와 다리, 에이지도 마찬가지), 그렇다면 이 모든 일들의 진짜 범인은 아버지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결말 역시 완벽하다. 엄마의 죽음 이후 오로지 복수만을 기도하며 그야말로 인간답지 않게 살았던 미기와 다리가 마침내 인간답게 살게 된 것도 기쁘고, 그동안의 고생과 노력이 헛된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사랑스럽고 자랑스러운 추억이라는 걸 깨닫게 되는 것도 좋았다. 이후 이야기도 궁금한데 작가님이 애니메이션 방영을 불과 두 달 앞두고 세상을 떠나셔서 후속편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이 너무나 아쉽다. 이런 명작을 우리에게 남겨주시고 돌아가신 작가님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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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기와 다리 6
사노 나미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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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란성 쌍둥이 미기와 다리는 엄마를 여의고 고아원에서 지내다 고베 시 키타 구에 있는 오리곤 마을에 사는 소노야마 부부에게 입양된다. 미기와 다리는 원래 이 마을에 살았는데, 엄마를 살해한 범인을 찾기 위해 의도적으로 소노야마 부부에게 접근해 한 사람인 척하고 이 마을에 왔다. 이러한 사실을 꿈에도 모르는 소노야마 부부는 '히토리(일본어로 '한 사람'이라는 뜻)'를 친자식처럼 키운다. 미기와 다리는 히토리를 연기하며 열심히 범인을 찾는다. 


5권에서 다리는 여장을 하고 이치조 에이지에게 접근해 퇴행 최면을 거는 데 성공했다. 그 결과 이치조 에이지가 엄마를 죽인 범인이라는 걸 알게 되고 복수를 결행하려고 한 그때, 미기가 다리의 여장한 모습을 보고 다리가 그동안 자신을 속여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생긴다. 결국 다리 혼자서 복수를 결행하러 이치조 가의 저택에 갔다가 위험에 빠지고, 이번에는 미기가 혼자서 이치조 가의 저택으로 향한다. 


6권에서 미기는 여장을 하고 이치조 가를 찾아가 에이지의 병문안을 하러 온 여학생인 척한다. 에이지는 미기에게 자신이 5살 되던 크리스마스 날 자신의 방에서 한 여자를 창 밖으로 밀쳐 떨어트렸다는 사실을 고백한다. 그 모든 일이 실제로 일어난 일이 아니라 꿈이라고 믿었던 건 어머니 때문이며, 에이지와 이치조 가를 지키기 위해 어머니는 무슨 일이든 할 여자라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에이지의 어머니가 나타나 미기는 위험한 상황에 놓인다. 


<미기와 다리> 원작 만화를 출간 당시에 한 번 읽고, 이번에 애니메이션을 보고 다시 한 번 읽었는데 역시 명작이다. 만화나 애니메이션이나 전체적인 내용은 동일하지만, 단행본 7권 분량을 한 시즌 짜리 애니메이션으로 압축하는 과정에서 생략된 장면과 대사가 있기 때문에, 애니메이션을 보고 좋았다면 만화로도 한 번 읽어볼 것을 권한다. 6권의 경우 오리곤 마을을 떠난 미기와 다리가 여우신을 모시는 신사에서 단둘이 지낼 때의 에피소드가 자세히 나와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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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동네
손보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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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강사이고 간간이 번역 일을 하는 '나'의 남편은 연예기획사에서 일한다. 신문 스크랩을 즐겨 하는 남편은 연말마다 회사에서 주최하는 모임에 '나'를 데려간다. 모임에는 주로 회사 임직원들과 그들의 배우자들이 참석하고 소속 연예인은 참석하지 않는데, 배우 윤이소는 드물게 해마다 참석했다. 올해도 윤이소를 보겠구나 생각하고 모임에 나간 '나'는 윤이소가 불참했다는 사실과 함께 그가 가까운 사람들에게도 알리지 않고 잠적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나'는 남편에게 윤이소의 행방에 대해 묻지만, 남편은 신경 쓰지 말라고 한다. 


남편의 바람과 달리 '나'는 점점 더 윤이소의 실종에 집착하는데, 이는 과거에 '나'가 겪은 어떤 사건과 관련이 있다. '나'는 어릴 때 부모님과 함께 경기도 화성의 한 '작은 동네'에서 살았다. '나'의 아버지는 그 동네 사람들 중 유일하게 양복을 입고 출퇴근했고, '나'의 어머니는 '나'가 동네 아이들과 어울리는 걸 경계하며 직접 등하교를 시켰다. 동네 사람들은 '나'의 가족을 은근히 따돌렸고, '나' 또한 부모의 양육 방식을 '과보호'로 여기며 불만을 품었다. 하지만 '과보호'로 보기 힘든 부분도 있었는데, '나'는 그 이유를 부모에게 묻지 못한 채 부모와 헤어졌다. 


손보미 작가가 2020년에 발표한 소설 <작은 동네>는 주인공이자 화자인 '나'가 자신의 과거를 복기하며 찾아낸 단서들로 자신의 삶에서 빠져 있었던 부분을 채워나간다는 점에서 미스터리물에 가깝다. '나'가 지금의 남편과 결혼한다고 했을 때 '나'의 어머니는 한시름 놓는다는 듯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이제 좀 안심이 된다. 너의 인생이." 그때 '나'는 그 말이 딸을 시집보내는 어머니들이 으레 하는 말인 줄 알면서도 묘하게 불편하고 신경이 쓰였는데, 나중에 어머니가 그 말을 한 '진의'가 드러나는 대목을 읽고 나면 '나'도 꽤 민감하다는(둔감한 건가?) 사실과 함께 어머니가 그 말을 통해 표현한 해방감을 짐작할 수 있게 된다. 


여자아이의 시점으로 어른들의 세상을 관찰하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손보미 작가의 최근작인 소설집 <사랑의 꿈>이 생각났고, 실종된 사람들을 찾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사라진 숲의 아이들>, 현재의 '나'가 과거의 '나'가 겪은 일들을 복기하면서 현재의 문제를 해결할 단서를 찾아가는 내용이라는 점에서 <디어 랄프 로렌>이 떠오르기도 했다. 이렇게 보니 손보미 작가가 천착하는 주제나 소재는 비슷비슷한데(여자아이, 실종, 추리, 숲 등) 그것들을 조합하고 풀어내는 방식이 작품마다 상당히 다른 것 같다. 다음 작품도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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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각의 계절
권여선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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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정원의 부고를 받은 준희는 서둘러 장례식장으로 간다. 장례식장에서 준희는 또 다른 친구인 부영과 경애의 얼굴을 찾지만, 찾지 못한다. 정원, 준희, 부영, 경애 네 사람은 삼십여 년 전 같은 대학 신입생으로 만나서 같은 하숙집에서 지내며 인생의 한 시기를 함께 보냈다. 네 사람은 성격도 다르고 관심사도 달랐고, 나중에는 사는 곳도 바뀌고 진로도 갈라졌지만 한 달에 한 번씩은 꼭 만나고 서로의 생일은 꼭 챙겼다. 그랬던 이들인데, 한 사람은 스스로 목숨을 끊고 다른 두 사람은 부고를 받고도 무시하게 되었다. 대체 이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권여선 작가의 소설집 <각각의 계절>에는 일곱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그중 첫 번째 단편 <사슴벌레식 문답>을 읽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 소설에서 준희는 자살한 친구의 부고를 받고 혼자서 장례식장에 가는데, 나도 같은 경험이 있다. 장례식장에 다녀오면서 친구 생각도 많이 났지만, 그 친구를 비롯해 인생의 한 시절을 함께 보낸 다른 친구들 생각도 많이 났다. 소설 속 친구들처럼 나와 그 친구들도 한때는 매일 얼굴을 보고 있는 이야기 없는 이야기 다 했던 사이인데, 언제 어떻게 우리는 이렇게 멀어졌나 하는 생각에 아쉽기도 하고 그립기도 했다. 


두 번째로 마음에 남은 단편은 <무구>다. 소미는 페이스북에서 우연히 대학 동창 현수의 계정을 발견하고 현수가 일하는 부동산 중개업소가 있는 U시로 간다. 그때부터 소미와 현수는 종종 만나서 함께 만둣국을 먹고 담배를 피우고 그 일대를 산책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소미는 현수가 소개해 준 U시의 땅을 빚까지 내서 사게 되고, 그후 현수와 연락이 끊긴다. 이 대목에서 나는 소미의 감정에 이입해 망했다고 생각했는데, 소설을 끝까지 읽어보면 전화위복이란 이런 것이구나 싶다. 그런데 정말 소미가 복을 '얻은' 게 맞을까... 아리송아리송. 


2021년 김유정문학상 수상작 <기억의 왈츠>도 좋았다. 정년퇴직하고 혼자 사는 '나'는 동생 부부와 함께 자동차를 타고 한참을 달려 근교에 있는 식당에 간다. 처음 가보는 곳인 줄 알았던 식당은 뜻밖에도 사십 년 전 '나'가 대학원생일 때 선배와 동기 그리고 경서와 함께 왔던 곳이었다. 경서는 모두가 이상하게 생각하는 '나'를 특별하게 여겼고, 당시 집안 문제로 불안했던 '나'는 경서의 호의에 기댔다. 하지만 이런저런 일들로 인해 두 사람은 엇갈리고 말았는데, 노년에 이르러서야 그 크기와 밀도를 깨닫게 되는 사랑의 이야기가 애틋하고 감동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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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레나 페란테 글쓰기의 고통과 즐거움
엘레나 페란테 지음, 김지우 옮김 / 한길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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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나의 눈부신 친구>, <어른들의 거짓된 삶> 등을 쓴 이탈리아의 여성 작가 엘레나 페란테의 산문집이다. 산문집이라고 해서 저자의 일상이나 개인적인 생각, 감상 등을 기록한 신변잡기적인 성격의 책을 상상했는데, 읽어보니 전혀 달랐다. 주로 어떤 책을 읽으며 작가가 되기로 결심했는지, 그 후 어떤 식으로 글쓰기를 하면서 어떤 시행착오를 겪었는지, 그 과정에서 어떤 작가와 어떤 책의 영향을 받아 현재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상세히 소개한다는 점에서, 어떻게 보면 자서전과 작법서가 혼재되어 있는 형식의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어릴 때 남성 작가들의 책을 주로 읽었던 저자는 자신은 여성이기 때문에 그들처럼 위대한 글을 쓸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베네치아의 여성 시인 가스파라 스탐파의 시를 읽고 남성 작가처럼 쓰려고 애쓸 필요 없이 여성으로서 자기 자신의 감정을 언어로 표현하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후 저자는 버지니아 울프, 거트루드 스타인, 에밀리 디킨슨 등 수많은 여성 작가, 시인들의 글을 읽으며 '여성으로 산다는 것'과 '여성으로서 글을 쓴다는 것'이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깨달았다. 특히 이탈리아의 여성주의적 관점의 사회이론가 아드리아나 카바레로가 저자의 작업에 큰 영향을 주었다. 


아드리아나 카바레로의 책 <바라보는 타자와 서술하는 타자>에는 여성인 두 친구가 등장한다. 한 친구는 끊임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다른 친구에게 들려준다. 이제까지 친구의 이야기를 열심히 들었던 친구가 어느 날 그동안 들은 이야기를 글로 써서 친구에게 선물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선물받은 친구는 기뻐한다. 저자는 이들의 관계를 보면서 여성이 필요로 하는 것은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 이야기를 다시 들려주는 친구('꼭 필요한 타자')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너에게 나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은 네가 나에게 나의 이야기를 들려주게 하기 위함이다.") 


그때까지 주로 1인칭 시점으로 글을 써왔던 저자는 이후부터는 여성인 두 친구를 중심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탄생한 작품이 레누와 릴라라는 두 여성의 오랜 우정을 그린, 저자를 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로 만든 대표작 <나의 눈부신 친구>(를 비롯한 '나폴리 4부작')이다. 저자의 초기 대표작인 '나쁜 사랑 3부작'의 창작 과정도 자세히 나오는데, 이 내용도 상당히 흥미롭다. 작품을 쓰게 된 배경과 집필하는 과정에서 겪은 시행착오 등이 주로 나오기 때문에 저자의 작품을 먼저 읽고 나서 이 책을 읽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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