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동네
손보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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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강사이고 간간이 번역 일을 하는 '나'의 남편은 연예기획사에서 일한다. 신문 스크랩을 즐겨 하는 남편은 연말마다 회사에서 주최하는 모임에 '나'를 데려간다. 모임에는 주로 회사 임직원들과 그들의 배우자들이 참석하고 소속 연예인은 참석하지 않는데, 배우 윤이소는 드물게 해마다 참석했다. 올해도 윤이소를 보겠구나 생각하고 모임에 나간 '나'는 윤이소가 불참했다는 사실과 함께 그가 가까운 사람들에게도 알리지 않고 잠적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나'는 남편에게 윤이소의 행방에 대해 묻지만, 남편은 신경 쓰지 말라고 한다. 


남편의 바람과 달리 '나'는 점점 더 윤이소의 실종에 집착하는데, 이는 과거에 '나'가 겪은 어떤 사건과 관련이 있다. '나'는 어릴 때 부모님과 함께 경기도 화성의 한 '작은 동네'에서 살았다. '나'의 아버지는 그 동네 사람들 중 유일하게 양복을 입고 출퇴근했고, '나'의 어머니는 '나'가 동네 아이들과 어울리는 걸 경계하며 직접 등하교를 시켰다. 동네 사람들은 '나'의 가족을 은근히 따돌렸고, '나' 또한 부모의 양육 방식을 '과보호'로 여기며 불만을 품었다. 하지만 '과보호'로 보기 힘든 부분도 있었는데, '나'는 그 이유를 부모에게 묻지 못한 채 부모와 헤어졌다. 


손보미 작가가 2020년에 발표한 소설 <작은 동네>는 주인공이자 화자인 '나'가 자신의 과거를 복기하며 찾아낸 단서들로 자신의 삶에서 빠져 있었던 부분을 채워나간다는 점에서 미스터리물에 가깝다. '나'가 지금의 남편과 결혼한다고 했을 때 '나'의 어머니는 한시름 놓는다는 듯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이제 좀 안심이 된다. 너의 인생이." 그때 '나'는 그 말이 딸을 시집보내는 어머니들이 으레 하는 말인 줄 알면서도 묘하게 불편하고 신경이 쓰였는데, 나중에 어머니가 그 말을 한 '진의'가 드러나는 대목을 읽고 나면 '나'도 꽤 민감하다는(둔감한 건가?) 사실과 함께 어머니가 그 말을 통해 표현한 해방감을 짐작할 수 있게 된다. 


여자아이의 시점으로 어른들의 세상을 관찰하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손보미 작가의 최근작인 소설집 <사랑의 꿈>이 생각났고, 실종된 사람들을 찾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사라진 숲의 아이들>, 현재의 '나'가 과거의 '나'가 겪은 일들을 복기하면서 현재의 문제를 해결할 단서를 찾아가는 내용이라는 점에서 <디어 랄프 로렌>이 떠오르기도 했다. 이렇게 보니 손보미 작가가 천착하는 주제나 소재는 비슷비슷한데(여자아이, 실종, 추리, 숲 등) 그것들을 조합하고 풀어내는 방식이 작품마다 상당히 다른 것 같다. 다음 작품도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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