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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몰의 저편 ㅣ 이판사판
기리노 나쓰오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21년 9월
평점 :
중견 소설가 마쓰는 어느 날 문예윤리위원회라는 조직으로부터 소환장을 받고 그곳으로 향한다. 조직에서 보내준 차를 타고 도착한 곳은 지명도 알기 힘든 어느 바닷가 마을의 격리된 건물. 어떤 조직인지, 무슨 이유로 이곳에 소환된 건지 영문도 모른 채 마쓰는 휴대전화를 빼앗기고 건물에 수감된다. 알고 보니 이곳에 수감된 사람들은 모두 현업 작가. 누구나 공감할 만한 아름다운 이야기, 아무도 불편하게 만들지 않는 소설을 쓰지 않지 않고, 성, 폭력에 대한 과도한 묘사와 혐오, 차별 표현 등으로 대중의 심기를 거슬렀다는 이유로 불려온 것이었다.
자신이 소환된 이유를 알게 된 마쓰는 위원회를 비난하며 구속을 거부하지만, 점차 이것이 현실임을 받아들이고 빠르게 상황에 적응한다. 그러나 그곳에서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면서 마쓰는 조금씩 자신이 바라는 대로 상황이 흘러가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살기 위해 쓰고 싶지 않은 글을 쓰는 것은 옳은 일일까. 처음에는 이 질문이 위원회로 상징되는 검열 당국(정부)에 대한 것으로 읽혔으나,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판매 부수를 높이기 위해 대중성에 영합할 것을 요구하는 출판사와 자신들의 구미에 맞는 글만 찾는 대중에 대한 비판으로 읽혔다.
위원회는 계속해서 마쓰의 소설을 헤이트 스피치와 비교하는데, 이게 과연 옳은 일일까. 내 생각에 소설이나 만화, 영화 등은 이용료를 지불한 사람만이 제한적으로 볼 수 있는 미디어인 반면, 헤이트 스피치나 무료 웹툰, 공중파 방송 등은 불특정 다수가 제한 없이 볼 수 있는 미디어라는 점에서 더욱 엄격한 윤리적 기준이 적용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위원회가 마쓰의 소설을 헤이트 스피치와 같은 선상에서 비교하는 건 타당하지 않고, 마쓰는 자유롭게 소설을 써도 괜찮다. 하지만 그렇게 쓴 소설이 안 팔리면, 그때는 정말 쓰고 싶어도 못 쓰게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더욱더 마쓰가 진정으로 두려워하는 건 정치권력이 아니라 자본 권력이라는 생각이 든다. 더 자세히 말하면, 과거에는 성에 대한 묘사가 지나치든 폭력에 대한 묘사가 과하든 잘 팔리기만 하면 된다고 여겼던 출판사들이, 이제는 독자들을 방패 삼아 작가들에게 '자체적으로' 수위 조절을 요구하는 현실... 팬이라는 명분으로 작가에게 이런저런 간섭을 하는 독자에 대한 묘사도 나온다. 출판사가 작가에게 SNS 계정을 만들기를 요구하고, 독자가 작가에게 SNS 계정으로 직접 메시지를 보낼 수 있는 요즘에는 얼마든지 있을 법한 일이라 너무나 끔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