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가 불확실할 때, 관계를 잘 맺지 못할 때가 많다. 낯선 사람을 만날 때가 그렇다. 그런 낯섬에서 익숙함으로 갈 때, 징검다리가 있었으면 좀 수월하게 익숙함으로 갈 수가 있다.

 

  그 징검다리 역할을 무엇이 할까? 많은 관계들을 맺어가면서 살아가는데, 그 전에 맺었던 관계들이 징검다리 역할을 하기도 하고, 자신이 맺어지고 싶어하는 마음이 징검다리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렇게 우리 인간은 낯선 타자와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가야 한다. 그런데, 요즘 관계 맺기가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학교에서는 온갖 따돌림들이 나타나고, 그래서 따돌림을 당하지 않으려고, 관계를 계속 유지하려고 옳지 않은 일도 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친구들 모임에서 떨어져 나오면 다른 친구들 사이로 들어가기가 힘들다고 한다. (이 때는 익숙함이 좋음이 아니다. 이때 익숙함은 옳지 않음이다. 그러니 낯섬에서 익숙함으로 갈 때는 좋음이라는 가치가 개입되어야 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벽을 쌓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벽이 쌓이고 관계 맺기가 힘들어지는 데는 소통이 안 되는 이유도 있다. 소통이란 자신의 마음을 열고 다른 사람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는데, 내 말뿐이 아니라 다른 말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는데, 그래서 말과 말들이 얽혀서 다른 말들을 만들어내어 튼튼한 관계를 맺게 해야 하는데, 내 말을 옳고 다른 사람의 말은 그르다는 식의 태도가 많아지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한다.

 

직장에서도 괴롭힘이 일어나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는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소통을 잘할 수 있나 하는 고민을 하게 된다.

 

[빅이슈] 262호에서는 그런 소통의 방편으로, 즉 서로가 익숙한 관계 맺기로 나아가는 징검다리로 MBTI를 소개하고 있다. 성격유형이라고 할 수 있는, 많은 사람들이 검사해서 16가지 유형 중에 자신은 어떤 유형이라고 이야기하는.

 

그런 유형이 지니는 특성들을 이해하면 그 사람과의 관계 맺기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하는데... 그렇다. 오랫동안 만나서 그 사람의 말투, 행동, 생각 등을 추측할 수 있어서 이해 범위가 넓어지기 전에, 그 사람이 지닌 성격을 알고 그에 대해서 받아들인다면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MBTI는 유용하다. 다만, MBTI를 그 사람을 규정하는 방편으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MBTI로 성격 유형이 나오더라도 그것이 그 사람 전부를 설명해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또한 사람은 의식적으로 자신의 부족한 면을 고치려고 하기도 하기 때문에, 그 사람은 이런 유형이니 이것에는 안돼, 우리하고는 안 어울려 하면서 또다른 배제의 수단으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결국 아무리 좋은 도구라도 잘못 쓰면 해로울 수밖에 없다. 그러니 좋은 관계, 익숙한 관계 맺기를 위해서 MBTI를 활용할 수는 있지만, 그것을 맹신하는 일은 삼가야 한다. [빅이슈] 262호에서도 그 점을 이야기해주고 있다.

 

[빅이슈] 자체가 바로 이런 좋은 관계 맺기를 하는 잡지 아닌가. 관계 맺기에서 떨어져 나온 사람들을 다시 관계 맺기의 장으로 들어오게 하는 잡지.

 

이런 빅이슈를 보며 빅이슈도 좋은 관계 맺기를 하게 하는데 징검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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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을 위해 정치를 하겠다고, 국민들을 행복하게 해주겠다고 외치는 사람들이 대통령이 되기 위해 여러 말들을 쏟아내고 있는 요즘.


  기가막힌 말들의 잔치. 이 말들이 실현이 되었다면, 공허한 울림만 남기지 않고 현실에 자리를 잡았다면 지금 우리가 두려움에 싸여 있지 않았을텐데.


  사회적 재난을 개인이 책임져야 하는 시대, 이런 시대에 사람들은 움츠러들 수밖에 없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중무장을 하고, 남들로부터 보호하려 장벽을 쌓는다.


  함께라는 말, 더불어라는 말이 말로만 존재하고, 생활에서는 분리, 보호, 방어가 자리를 잡게 된다.


선진국에 들어섰다고 하지만, 선진국이 의미하는 바를 실제 생활에서 체감하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몇몇 사람들은 우린 선진국이다라고 즐길 수 있겠지만, 더더 많은 사람들은 선진국은 말로만 존재할 뿐. 하루 벌어 하루 먹기 힘든 삶을 살아가고 있다.


먼 미래를 계획하지 못하고, 직장에서 언제 해고될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삶. 해고는 죽음이라고, 해고된 이후에 사회에서 삶을 유지하게 하기보다는 개인이 제 삶을 유지하게 만든 사회. 그런 사회에서는 온몸에 가시가 돋고 남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 할 뿐이다.


최승호 시집을 읽으며 자연을 파괴하는 사람들의 모습(부르도자 부르조아)을 발견하기도 하지만, 사람이 사람을 힘들게 하는 장면(늦게 도착해 본 광경)을 발견하기도 한다. 씁쓸한 마음이 든다. 


그러다 '마을'이란 시에서 우리 사회의 모습을 본다. 지금 우리는 이렇게 고슴도치처럼 온몸에 가시를 달고 살고 있지 않은지.


마을


나비처럼 소풍 가고 싶다

나비처럼 소풍 가고 싶다

그렇게 시를 쓰는 아이와 평화로운 사람은 소풍을 가고

큰 공을 굴리는 운동회 날

코방아를 찧고 다시 뛰어가는 아이에게

평화로운 사람은 박수 갈채를 보낼 것이다


산사태는 왜 한밤중에

골짜기 집들을 뭉개버리는가

곰은 왜 마을을 습격하고

산불은 왜 마을 가까운 산들까지 번져오는가

한밤중에 횃불을 드는 마을의 소리

한밤중에 웅성거리는 마을의 소리


우리들은 고슴도치의 마을에서

온몸에 가시바늘을 키운다

평화로운 사람은 문을 걸고

잠속에서도 곰에게 쫓길 것이다


우리들은 고슴도치의 집에서

돌담을 높이 쌓는다

평화로운 사람은 한숨을 쉬고

문풍지 우는 긴 겨울 밤엔 장자를 읽으리라


최승호, 고슴도치의 마을, 문학과지성사. 2011년 재판 6쇄. 81-82쪽


평화로운 사람이 '문을 걸고', 평화로운 사람은 '한숨을 쉬고'... 과연 평화로운가? 이 평화는 언제 위협을 당할지 모르는 불안함을 포함하고 있다. 그래서 문을 걸고, 돌담을 높이 쌓고, 한숨을 쉴 수밖에 없다.


이때 평화로운 사람은 힘이 없어 다른 사람을 괴롭힐 수 없는 존재다. 다른 존재와 함께 살아가야 하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또는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힘든 상황에 처하는 사람이다. 그러니 이들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행동할 수밖에 없다.


정말로 평화로운 사람이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 달릴 수 있게 하는 사회, 문을 걸지 않고, 돌담을 높이 쌓지 않고 한숨을 쉬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사회, 그런 마을.


말로만 그런 사회를 만들겠다고 하지 말고, 실제로 그런 사회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사회, 그런 사람들이 정치인으로 인정받는 사회였으면 하는 생각. 


최승호 시집 '고슴도치의 마을'을 읽으면서 한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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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빅판 인터뷰 기사가 마음에 들어와 박혔다. 이 박힌 돌, 쉽게 빠지지 못할 듯하다.

 

  "...추석 전에 역무원이 단속을 나왔어요. 민원이 들어왔다고 나가라는 거예요. 책을 빼서 진열하는 데는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지만, 다시 집어넣으려면 시간이 엄청 걸리거든요. 전동차에 앉아 있으니까 어쩔 수가 없어요. 그래서 책 집어넣는 것 좀 도와주면 안 되느냐고 하니까 한마디로 기분 나쁘게 "우리가 도와줘야 할 의무는 없잖아요.' 하는 거예요." (87쪽)

 

  "빅이슈 판매원의 자립활동을 위해 서울특별시, 서울교통공사, 한국철도공사와의 협조 공문이 있어요." (코디의 말. 87쪽)

 

"예전에 인천에서 판매할 때는 상황이 굉장히 안 좋았죠. 한번은 구청에 책을 전부 뺏긴 적도 있어요." (88쪽)

 

빅판을 인터뷰한 내용에서 발췌했는데... 이들이 자립하기 위해서 잡지를 판매하는데, 그 잡지를 판매하기조차도 힘든 상황이다. 물론 역사 내에서 장사를 금지한 규정이 있다고는 하지만, 살기 위해서 애면글면 애쓰는 사람을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쫓아내거나 물건을 빼앗은 경우가 있다니...

 

역무원들이 형편을 봐주는 경우가 있고, 협조 공문도 있다고 하는데 민원이 들어오면 어쩔 수가 없다고 한다. 민원... 내 불편을 감수하지 않기로 하고, 고치라고 요구하는 일. 그런데 내 편안함이 다른 사람의 생계를 위험에 빠뜨린다면... 조금 내가 불편해도 되지 않을까? 내게는 그들로 인한 불편이 생계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테니까.

 

또 민원이 들어왔다고 해도, 의무가 아니라고 해도, 몸이 불편한 사람을 도와줄 수는 있지 않은가. 휠체어를 타고 있는 모습을 뻔히 보면서도 '의무'가 아니라니... 법적인 의무는 없지만 윤리적인 면에서 보면 일종의 의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법으로만 사람이 살 수는 없는 노릇이고, 법보다는 윤리, 도덕이 먼저 작동하는 사회가, 인간에 대한 공감이 먼저 작동하는 사회가 좋은 사회 아닐까.

 

이렇게 우리 함께 살아갈 방법을 생각하면 안 될까? 내 눈에 조금 거슬리더라도 그 사람의 처지에서 생각해줄 수는 없을까? 내가 조금 불편하면 남이 조금 더 편해진다고 생각하면 안될까? 이런 생각을 했다.

 

갈수록 정이 없어져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깔끔하게 정돈된 모습, 조금이라도 흐트러진 모습을 참지 못하는 모습. 자기 일이 아니라면 상관없다고 모르쇠로 일관하는 모습.

 

그러나 사람이 살아가는 사회에서 어떻게 규정대로만 살 수 있는가? 어떻게 보기 좋은 대로만 살 수 있을까? 내 불편을, 내가 보기싫어함을 잠시 참으면 누군가의 삶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든 이번 호다. 마음이 좋지 않은데, 이번 호에서 앞부분 글, 식물에 관한 글을 통해 마음이 좀 편해졌었는데... 그렇게 식물처럼 우리에게 위안을 주는 삶을 살아야 하는데... 나서지 않지만 남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들도 많은데..

 

내가 가진 것이 많으면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을 위해 조금은 양보할 수도 있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 사회이면 좋겠다는 생각.

 

유튜브 채널에 <하이머스타드>가 있다고 이번 호에서 소개하고 있는데, 이 유튜브 채널은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를 보여주고 있단 생각이 든다.

 

식물들처럼, 우리에게 위안을 주고, 나서지 않아도 우리 삶에 도움이 되듯이 이러한 사람들은 유튜브를 통해 우리 사회를 좀더 밝은 쪽으로 나아가게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빅판 인터뷰를 통해 마음에 박힌 못들이 이런 사람들, 이런 활동들(특히 빅이슈 텍스트란에는 이런 글들이 많다)로 인해 조금씩 빠져나오게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자립하려 애쓰는 빅판들에 대한 일들이 많이 알려지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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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과 미래 세대. 자연은 과거부터 미래까지 존재할 거의 영속적인 존재라면, 미래 세대는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을 살아갈, 즉 우리가 사라진 다음에도 살아가면서 우리의 영속성을 유지시켜 줄 존재다.


  이렇게 자연과 미래 세대는 통한다고 할 수 있는데, 이들이 바로 우리 인간의 존재 조건이기 때문이다. 자연이 없다면 인간도 존재하기 힘들고, 미래 세대가 없다면 우리 인간은 지구에서 사라질 수밖에 없다.


  우리를 영원히 존재하게 할 두 존재인데, 과연 우리는 그들을 제대로 대우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하면 답은 부정적이다. 마치 현재가 전부인양 행동하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보게 된다.


  누군가는 지구의 절반을 자연의 영역으로 남겨두자고 했는데, 지금 우리는 그나마 남아 있던 자연의 영역까지도 우리의 영역으로 만들고 있다. 그래서 미래 세대가 향유할 수 있는 자연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뿐만 아니라 미래 세대가 살아갈 다른 사회적 영역도 남겨두기는 커녕, 그들의 영역도 우리가 끌어쓰고 있지는 않은지도 생각해 봐야 한다.


김명인의 시집 [꽃차례]를 읽다가 '리프트'라는 시와 '꽃밥 가까이'라는 시를 만나 자연과 미래 세대가 따로가 아니라 함께임을 생각하게 됐다. 자연이 파괴될수록 미래 세대도 살아가기 힘들어질텐데...


우리를 영속되게 해줄 존재들에게 우리가 어떤 자세로 다가가야 하는지를 이 시들을 통해서 생각해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리프트


산꼭대기로 산꼭대기로 밀치며 밀고 오던 인파들이

쉼 없이 퍼올리던 눈의 함성들

슬로프를 굴리던 힘찬 발들 어디로 갔나

정적을 태우고 허공 중에 멈춰 선 리프트 아래로는

이 빠진 줄 몰랐을 잔디밭 비탈이

붉은 잇몸을 드러낸 채 가파르게 흘러내린다

나는 여기서 봄을 보낸 적이 없으니

지난겨울을 전생처럼 들춰보는 것

저 속살은 그러니까 오리털 파카나 방한 바지로

겨우내 가려놓았던 설원의 상처거나

이별의 흉터리라, 넘어지면

벼랑까지 굴러갈 것만 같았던

눈사람의 자취 아직도 오리무중이다

산줄기가 닳도록 왕왕대던 스피커 아예 입 다물었다

녹음의 계절이 여기선 사막 같다

삭막한 꽃들을 활짝 피웠거나

리프트 기둥 타고 칡넝쿨 바짝 치켜들었다 해도

한 철에만 열리는 축제의 깃발 저들이 어떻게 대신할까

추위를 불 지피던 화창한 웃음소리 어느새

따가운 햇살 속으로 잦아들었다


김명인, 꽃차례. 문학과지성사. 2009년. 70-71쪽.


봄이나 여름에 스키장 근처를 지나가 보면 황량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겨울에 북적이던 사람들로, 하얗게 쌓인 눈으로 가려졌던 상처가 훤히 드러나 보인다. 마치 학창시절 머리가 길다고 이발기계(일명 바리깡)로 한줄로 깎였던 머리처럼.


보기에도 좋지 않지만, 자연으로 보면 자신의 신체 일부가 뭉텅 잘려나간, 또는 깎여나가는 일. 그런 상처를 다른 풀들, 꽃들로 애써 감춰보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어떻게 겨울에 인간들이 채운 그곳을 대신할 수 있을까?


자, 겨울이 한 철이라 슬픈가? 아니면 나머지 세 계절을 황량한 상태로 지내야 하는 자연이라 슬픈가? 우리가 자연과 함께 하는 방법이 어떤 일일까? 그들의 영역을 그대로 놓아둘 수는 없지만, 자연과 우리가 영원토록 함께 할 수 있는 방법. 생각해 봐야 한다.


    꽃밥 가까이


세상 모든 밥벌레들은

한 끼니 제 밥상 가까이 다가앉기 위해

얼마만큼 수고 속으로 내몰리는가

제 힘으로 밥상 한번 차려보려고

새벽같이 일어나 이 꽃 저 꽃 기웃대는 벌들도

예 아니다 싶으면 한참 동안 허공 맴도는데

서른세번째 회사에 이력서 바치고 축 처져

고시 방으로 돌아가는 길,

나도 일 막(幕) 내리기 전

서둘러 밥그릇 생(生)에 나를 알선시켜야 한다

생계라고 사로잡는 게 눈먼 일당이라면

허방에 거미줄 쳐놓고 빈 손금이나 더듬는

이 애벌의 시간도 간절하게 절절하게

씨앗을 품고 파종의 때 기다리는 중,

모래는 눈물 따윈 간직하지 않으니

낮잠 늘어지게 재워둔

깔깔한 햣바닥이나 깨워 하늘 사막까지

핥으며 가볼까, 온몸에 가시 세운

선인장 깔고 앉아 거기서라도 터 잡아야지

나비의 일터가 꽃이라면

쑥밭이라도 좋으니 내게도 꽃 이울 터전을 다오

일생일대의 호접무(胡蝶舞) 펼쳐보일

무대에서 자꾸만 밀쳐내는 건

이 환한 봄날이 뉘게나 꽃 시절 아니므로!


김명인, 꽃차례, 문학과지성사. 2009년. 84-85쪽.


자연의 일부를 우리 축제의 장으로 만들어 놓은 '리프트'라는 시와 이번에는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찾지 못해, 꽃밭에서 먹을거리를 찾지 못해, 쑥밭이라도 좋다고 절규하는 젊은이들의 모습이 드러난 이 시에서 어떤 공통점이 느껴진다.


바로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미래를 살아갈 존재들의 영역을 많이 침범하고 있다는 것. 그들과 함께할 영역을 만들어가야 하는데, 아직까지 그렇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


하여 화창한 봄날에 꽃을 즐기지 못하는 젊은이들이 '온몸에 가시 세운/ 선인장 깔고 앉아' 거기서라도 자리를 잡아야겠다고 절규하고 있는 현실이라면 이대로 가서는 안 된다. 바꿔야 한다. 우리들 생활을. 


우리는 영속할 존재이기 때문에, 영속하기 위해서는 현재에서 마치 미래는 없다는 듯이 모두 써버리면 안 된다. 이 시들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기후위기와 더불어 미래 세대들의 절망이 함께 하고 있다는 생각.


우리가 그들을 어루만져주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 아직 늦지 않았다고, 이제부터라도 해야 한다고 자연과 미래 세대들이 계속 신호를 주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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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1-10-24 13: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평창, 올림픽 지난지 4년 후 지금은 어떠한지 kinye님 글 읽으며, 훼손은 빠르고 복구는 느리다가 생각나네요..

kinye91 2021-10-24 14: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훼손은 빠르고 복구는 느리다는 말에 동의합니다. 자연을 훼손하는 일은 순식간에 벌어지지만, 그 자연이 회복되는 데는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드는데요, 자연과 인간이 공생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요즘같은 감염병 시대도 자연훼손으로 인한 결과이기도 할테니까요.

2021-10-24 14: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10-24 15: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음식만화다. 특별한 맛집을 소개하는 만화가 아니라 집에서 직접 만들 수 있는 음식이야기다.

 

  특히 할머니가 등장해서 집에서 만든다. 건강한 식재료로 건강하고 맛있는 음식을.

 

  주인공 이름이 별이다. 음식만들기를 좋아하는 아이.

 

  할머니가 해주는 음식을 맛있게 감탄하면서 먹는 아이.

 

1권에 나오는 음식들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크리스마스 케이크, 막걸리빵, 수정과, 봄동 겉절이, 단호박 죽, 떡볶이, 부추전, 비빔밥, 송편, 감자 샌드위치, 미역국, 호떡, 초콜릿, 딸기 쉐이크, 국화차, 화전

 

이 중에 초콜릿은 예외다. 발렌타인데이라고 초콜릿을  선물하는 날에 나오는데, 이 음식과 관련해서는 '사랑'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동성애를 다루기도 하지만, 사랑을 이루는 바탕은 바로 이해와 배려 아닌가 한다.

 

동성애에 관해서는 아직도 우리 사회는 여러 관점이 갈등하고 있는데, 무엇보다도 그 사람을, 그 사랑을 그 자체로 인정해주는, 다름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작가의 말에 이런 말이 나온다.

 

언젠가 이 만화를 읽은 한 아이가 저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별맛일기에 나오는 사람들은 왜 다 착해요? 너무 착한 것 같아요. 작가님도 이렇게 착한가요?" (4쪽)

 

작가가 착하다 착하지 않다 이야기하지 않아도 이 만화를 읽은 이 아이가 이렇게 이야기했다는 사실에서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느낄 수 있어서 안타까웠다.

 

다름을 인정하고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서 이 만화에 나오는 사람들의 모습은 착하다고 이야기 하기 전에 사람으로서 당연히 지니고 살아가야 할 태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초콜릿 부분을 보면 마음이 찡해진다. 이렇게 서로를 이해하면서 자란다면 다르다고 차별받는 사람들이 없는 사회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니 말이다.

 

여기에 미역국 부분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많이 생각하게 하는 대사를 만나게 되었다. 미역국에 고기를 넣지 않자 그것을 의아해 하는 아이들에게 할머니가 한 말,

 

'생명이 태어난 걸 축하하면서, 다른 생명이 죽은 걸 먹는다는 게 할머니 생각엔 별로 좋지 않은 것 같아. 많은 사람들이 생일이면 일부러 고기를 더 먹는데, 우리 집은 생일날 만큼은 고기를 안 먹어.' (1권. 152-153쪽)

 

고기를 먹지 말자고 채식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생명탄생의 날에 가능하면 육식은 삼간다는 말인데... 식물도 생명이 있는 존재라고 이야기하면 뭐라 하기 힘들지만, 생명은 다른 생명의 목숨으로 생명을 이어가기 때문에, 최소한 그 생명에 대한 고마움은 간직하고 먹어야 한다는 생각은 한다.

 

그것이 생명을 살리기 위해 죽은 생명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이렇게 만화는 음식을 통해서 여러 생각을 하게 한다.

 

2권에 나오는 음식을 보자.

 

오미자, 김치말이 국수, 미숫가루, 약식, 주먹밥, 찹쌀케이크, 잔치국수, 매생이떡국, 봄나물, 두부버거, 수박화채, 팥빙수, 사과 토스트, 숙주라면, 카레

 

역시 집음식이다. 사 먹는 음식이 아니라.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하는 음식. 이 만화는 단지 음식 이야기로 그치지 않는다. 사람들 이야기가 곁들여진다. 그래서 음식과 삶이 잘 어우러져 있다. 마치 비빔밥처럼.

 

등장인물도 다양하다. 한부모, 다문화 가족이 등장하고, 그러면서 서로 어우러지면서 결합하는 내용으로 이어진다. 음식공동체.

 

함께 음식을 먹으며 서로를 알아가고, 마음을 열어가며, 함께 살아가는 모습들이 따스하게 펼쳐진다. 그래서 한 아이가 착한 사람들만 나온다고 했나 보다. 그만큼 이 만화는 읽으면서 마음이 따뜻해진다. 만화 속 음식이 내 몸 안으로 들어와 나를 건강하게 해주는 느낌을 받는다.

 

바로 우리들에게 필요한 음식은 비싸고 화려하며 특별한 음식이 아니라 집에서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이런 음식들임을 깨닫게 해주고 있다.

 

이 만화를 보면서 공광규 시, '별국'이 떠올랐다. 이 만화 주인공 이름이 별 아니던가... 음식의 소중함, 사랑이 담긴 음식... 이렇게 만화와 시는 서로 통한다.

 

 별국

           - 공광규

 

가난한 어머니는

항상 멀덕국을 끓이셨다

 

학교에서 돌아온 나를

손님처럼 마루에 앉히시고

 

흰 사기그릇들이 앉아 있는 밥상을

조심조심 받들고 부엌에서 나오셨다

 

국물 속에 떠 있던 별들

 

어떤 때는 숟가락에 달이 건져 올라와

배가 불렀다

 

숟가락과 별이 부딪치는

맑은 국그릇 소리가 가슴을 울렸는지

 

어머니 눈에서

별빛 사리가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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