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길이다.

 

우리는 인생이라는 길을 가면서 많은 것들을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게 된다.

 

인생이 꼭 길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여행을 통해서 많은 것을 보고 느낀다. 그런 여행의 결과를 시로 나타낸 것이 이 시집이다.

 

기행시집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 이 시집은 우리나라 각처에서 느낀 점을 시로 표현해 내고 있다. 어렵지 않게 누구나 읽을 수 있게.

 

그래서 시적 형상화가 좀 떨어진다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고, 이렇게 직설적으로 내용을 표현해도 되나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시가 왜 어려워야 하는가.

 

시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 들어오도록 쉬워야 한다. 마음에 꽂히지도 않는 시가 어떻게 읽히겠는가. 읽히지 않는 시가 어떻게 감동을 주겠는가.

 

하여 신경림의 이 기행시집에는 여행을 통해서 느낀 점이 쉬운 언어로 표현되어 있다. 이 점을 시인은 후기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는 나의 시도 앞으로 읽는 사람이 편하게 대할 수 있고 읽을 수 있는 사람을 편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 오늘의 우리 시가 너무 크고 높은 것만 좇고 있는 것는 것은 아닌가, 그래서 자잘한 삶의 결, 삶의 얼룩은 다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점이었다.

 

... 시의 값은 오히려 본질적으로 작고 하찮은 것, 못나고 힘없는 것, 보잘 것 없는 것들을 돌보고 감싸안고, 거기에 그치지 않고 스스로 낮고 외로운 자리에 함께 서고, 나아가서 그것들 속의 하나가 되는 데 있는 것이 아닐까, 또 그것이 시의 참길이 아닐까. 그렇다면 시는 잘나고 우쭐대고 설치는 사람들의 몫이 아니라 못나고 겸허하고 착한 사람들의 몫일는지도 모를 일이다. (후기에서 116-117쪽)

 

시가 시에 대해서 공부한 사람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읽고 즐기는 문학이라는 점.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점에 동의한다.

 

그렇다.

 

시인은 늘 여행하는 사람이다. 시인은 항상 길 위에 있다. 길 위에서 시인은 우리에게 말한다. 세상을 잘 살자고, 아름답게 살자고... 함께 살자고.

 

각박한 시대. 시 읽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이미 유명해진 시도 있지만-교과서에 실린 시, 나무1, 동해바다- 지금, 내 마음에 다가온 시는 '산수도 사람 때 묻어'이다.

 

자연이 아름다운 이유는 자연 자체로만 존재하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 인간들과 함께 존재하기에 아름답다는 점. 우리 역시 자연이라는 점을 생각하게 하는 시

 

  산수도 사람 때 묻어

 

산은 켜로 쌓여

하늘과 닿은 곳 안 보이고

물은 맑은데도 깊이 알 길 없어

이곳이 사람 안 사는 곳인 줄 알았더니

무논에서는 개구리 울고

등 너머에서는 멀리 낮닭

홰치는 소리 들린다

알겠구나, 산수도

사람의 때 묻어 비로소 아름다워지는

이치를

땀과 눈물로 얼룩진 얘기 있어

깊고 그윽해지는 까닭을

 

신경림, 길, 창작과비평사, 1996년 9쇄. 81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제 봄이 시작되고 있다. 햇살도 따스하고, 세상에 연두빛들이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노란 산수유도 꽃망을 터뜨리기 시작했고.

 

남도에는 매화꽃과 동백꽃이 자신들의 자태를 자랑하리라.

 

계절은 어김없이 봄이 찾아왔는데, 아직도 우리네 생활에는 봄이 오지 않았다. 봄이 올 수 없는 사람들도 있다.

 

오히려 봄이 더한 비극으로 다가오는 사람들도 있다.

 

삶을 치열하게 살수록 봄이 다가와야 하는데, 삶이 치열할수록 이상하게 겨울이 더 길어지고 있단 느낌이 들기도 한다.

 

나희덕의 시집을 읽다. 예전에 읽었던 시집을 다시 펼쳐든 이유는 무언가 위로를 받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 봄에... 계절의 봄과 사람의 봄이 함께 가지 못함에 대한 위로라고나 할까.

 

시집을 읽다가 삶에 대한 시를 발견했다. 삶이 거스름돈이다. 삶이 여분이라는 뜻이 아니라, 우리가 무언가에 자신의 존재를 지불하고 남아 돌아오는 게 삶이라는 얘기다. 즉, 행위가 없으면 삶도 없다.

 

거스름돈을 받지 못하는 삶. 그 삶은 어쩌면 처음부터 지불하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삶에서 지불할 때 거스름돈을 받지 않기 위해 딱 맞게 지불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삶에서 항상 더 많이 지불한다. 무언가가 돌아올 수 있게.

 

그러므로 무언가를 해야 한다. 무언가를 할 때 거스름돈이 더 많아지게 하려면 누군가에게 등불이 되어야 한다. 누군가가 쉴 수 있는 안식처가 되어야 한다.

 

내 그림자가 다른 사람의 그늘이 될 수 있어야 하고, 내 행위가 다른 사람에게 아름다움으로 남을 수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다른 사람들이 내 삶을 보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해야 한다. 이 시집에 실려 있는 '산속에서'라는 시처럼.

 

그래, 그래서 나희덕의 시를 읽으며 내가 지불해야 하는 삶의 돈이 무엇인지, 그래서 나는 얼마의 거스름돈을 받을 것인지를 생각하며 조금이나마 위안을 받는다.

 

거스름돈에 대한 생각

 

삶은 왜

내가 던진 돌멩이가 아니라

그것이 일으킨 물무늬로서 오는 것이며

한줄기 빛이 아니라

그 그림자로서 오는 것일까

 

왜 거스름돈으로 주어지는 것일까

 

거슬러 받은 오늘 하루,

몇개의 동전이 주머니에서 쩔렁거린다

종소리처럼 아프게 나를 깨우며

 

삶을 받은 것은

무언가 지불했기 때문이다

 

나희덕,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 창비.1996년 5쇄.  81쪽

 

 

산속에서

 

길을 잃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리라

터덜거리며 걸어간 길 끝에

멀리서 밝혀오는 불빛의 따뜻함을

 

막무가내의 어둠속에서

누군가 맞잡을 손이 있다는 것이

인간에 대한 얼마나 새로운 발견인지

 

산속에서 밤을 맞아본 사람은 알리라

그 산에 갇힌 작은 지붕들이

거대한 산줄기보다

얼마나 큰 힘으로 어깨를 감싸주는지

 

먼 곳의 불빛은

나그네를 쉬게 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걸어갈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을

 

나희덕,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 창비.1996년 5쇄. 73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민주주의와 시민의회"

 

이게 이번 호의 제목이라고 할 수 있는 글이다. 왜 이런 글이 앞자리를 차지하게 되었을까? 그것은 지금 우리의 현실이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 아닐까?

 

민주국가라고 하지만 우리는 절차 민주주의, 대의 민주주의 속에서 살아갈 뿐 참여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다.

 

우리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일조차 우리 뜻과는 상관없이 누군가에게 지명된 사람들로 구성된 위원회에서, 또는 어떤 조직에서 결정이 되고, 그것이 최종 결정이 되어 다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힘을 발휘하고 있지 않은가.

 

여기에 우리의 권리가 어디 있는가? 우리는 우리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고, 남의 판단에만 맡기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에 선관위에서는 비례대표를 늘리고 지역구 의원을 줄이는 방안을 내놓았는데, 여기에 대해서 더 이상의 논의는 없다.

 

비례대표 역시 대의 민주주의에 불과하지만 지금의 승자독식 지역구 중심의 국회보다는 나을 것이라는 점은 자명하다.

 

하지만 녹색평론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우리는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진정한 민주주의가 무엇이고 가능하기는 하냐고 하면 옛날 '그리스 민주주의'를 예로 든다.

 

물론 그 시대는 인구도 적고 노예라는 계급도 있었지만, 그래도 그리스 민주주의는 몇 백년을 이어왔으며, 지금도 받아들일 점이 많다고 한다.

 

그들에게 받아들일 것은 '직접 민주주의' 그리고 '추첨제 민주주의'

 

바로 이것이다. 추첨을 통해서 일할 사람을 뽑으면 지금처럼 돈이 지배할 수 없게 되며, 누가 뽑힐지 모르기 때문에 그 일을 할 자질을 가지려고 노력해야 하며, 또 오랜 기간이 아니라 2-3년이라는 기간을 통하여 순환하기 때문에 독재로 흐를 일이 없다는 것.

 

이런 점을 알고 있으면서도 하지 않는 이유는, 기득권을 놓치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미 자신들이 충분히 권력의 맛을 보고, 그것을 향유하고 있는데 굳이 제도를 고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아니 제로를 고쳐서는 안된다. 그러면 그들의 이익이 줄어들거나 없어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강고하게 기득권 세력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려 한다.

 

그래서 우리는 민주주의를 표방하고 있지만, 기실 민중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제대로 행사하지 못할 뿐더러, 자신들의 의사를 대변하게 하지도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 점을 해결하는 방법을 고찰하자고, 그리스 민주주의를 이야기하고 또 시민의회를 이야기하는 글을 중심으로 삼았다고 본다.

 

내년에 총선이 있고, 내후년엔 대선이 있는데, 그냥 또 투표용지에 도장 찍는 기계로 전락할 것인지, 아니면 바로 나를 위한 정치를 하는 깨어 있는 시민이 될 것인지, 그래서 명실상부한 공화국의 국민이 될 것인지는 바로 우리에게 달려 있다고 말하는 듯하다.

 

다른 글들, 핵발전 문제를 다룬 글과 우리들 밥상에 올라오는 음식들이 어떻게 올라오게 되는지를 고찰한 글, 우리 교육에 대해서 다룬 글들...

 

지금 이 현실에서 많이 생각할 글들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폭력이 난무하고 있다. 총기 사고가 난무하고 있다. 흉악 범죄가 일어나고 있으며, 묻지마 범죄도 일어나고, 무언가에 분노한 사람들이 그 분노를 불특정 다수에게 풀고 있다.

 

연일 뉴스에서는 이러한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과연 이런 사건 사고들이 예전에는 없었을까? 특별히 요즘에 들어서 더 많아졌을까 생각해 보면 꼭 그렇지도 않는 것 같다.

 

그런데도 이렇게 많은 사건 사고들에 대해서 떠들어대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을 자꾸 중심에 놓으려는 이유가 무엇일까?

 

사회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지엽적인 곳으로 눈을 돌리려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니.

 

어린이집 폭행 사건이나 가족끼리 총으로 죽이는 사건이나, 주한 미대사를 비롯해 누군가에게 폭력을 행하는 행위들은 나무의 줄기에 상처를 내는 행위에 불과하다.

 

이런 행위들이 일어나게 만든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 그 근본 원인을 찾아 치유하려고 해야 사회가 안정된다. 그렇게 뿌리를 찾아 뿌리를 고치는 노력을 해야 하는데, 자꾸만 지엽적인 문제만 보여주고 있다.

 

우리 사회, 과연 안정적인가? 우리들 삶이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지 않은가. 아이들은 어린이집에서부터 폭력에 길들여져 있고, 학생들은 입시에 찌들리고 있으며, 대학생들은 취업난에 자신의 청춘을 바치고 있고, 어른들은 언제 짤릴지 몰라 전전긍긍하고 있으며, 노인들은 막막한 생계에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는데...

 

이것을 고칠 수 있는 사회의 근본 개혁이 필요한데... 교육부터 경제까지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한데, 그것을 외면하고 땜질 처방만 하고 있으니 이런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는 것이다.

 

그렇담 근본 해결책은 무엇일까? 그것은 사람들에 따라 다른 답이 나오겠지만, 적어도 생계가 막막한 사람이 나오지는 않게 해야 하지 않을까? 기본소득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볼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드는데...

 

각종 사건 사고에 대한 정부 입장을 보면서 나희덕의 이 시...'나무 한 그루' 얼마나 시의적절한지.

 

그의 시집 "뿌리에게"가 다 읽을 만한데... 그래도 지금은 이 시가 지금의 상황과 가장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든다.

 

제발,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하자. 그렇게 하도록 하자. 우리도 시류에 휩쓸리지 말고.

 

  나무 한 그루

 

학교 뜰에 서 있는 나무 한 그루

뿌리를 거세당한 채 기울어진다

세상에 이럴 수가,

교장선생님은 얼굴까지 붉히며 열을 올린다

잔인하게도 학생이 이런 일을 할 수가,

학교 뜰의 나무 줄기에

누군가 칼로 긁어 상처를 냈다는 것이다

그런 학생이 사회에 나가면

흉악범이나 될 게 분명하다며

누군지 밝혀내어

마땅한 처분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한다

싹수가 노란 것은 미리미리 잘라내야

선량한 나무들이 벌레먹지 않는다고 한다

쓸쓸한 마음으로 나와

시들어가는 나무 한 그루 쓰다듬으니

바람결에 우우우 소리내어 운다

퇴색해버린 이파리,

난자당한 줄기보다 더 아픈 것은

묶여진 이 뿌리, 때문이에요

울고 또 울어도 듣는 이 없어

나무 한 그루 조금씩 조금씩 기울어간다

 

나희덕, 뿌리에게, 창작과비평사, 1995년 4쇄. 46-47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청년 실업이 심각하다. 청년 실업 말고도 삼포세대라고 하는 말들이 유행한다.

그만큼 살아가기 힘든 시절이다.

 

텔레비전 광고에서 재미 있는 것을 봤다. 서류전형 통과라는 벽에서 서류를 종이비행기로 접어 날리나 비행기는 번번이 벽을 넘지 못하자, 우주복을 입은 사람이 망치를 들고 그 벽으로 돌진하여 망치로 내리치는... 그러나 벽은 꼼짝도 하지 않고 망치만 부러지고 마는.

 

아마도 예전의 애플 광고를 패러디한, 그러나 너무도 슬픈...

애플의 광고에서는 거대 권력을 박살내고 있었는데...우리나라 이 광고에서는 망치가 부러지고 마니... 현실은 그만큼 더 어려워졌다는 얘기다.

 

서류전형이라는 취업의 1단계에서도 많은 청년들이 좌절하고 만다. 그런데 우리들은 '아프니까 청춘이다'라고 하고, 젊은 시절 그런 고통쯤은 견뎌내야 한다고, 오히려 좋은 경험이라고 입에 발린 소리를 한다.

 

이미 취업의 문을 통과해 기득권을 견고하게 잡고 있는 사람들이.

 

그러면서 취업을 하지 못하고 있는 책임을 청년 개개인들에게 지운다. 너희들의 노력이 부족해서 그래, 더 노력해 봐라고.

 

하지만 이것은 청년의 책임이 아니다. 그런 사회를 만들어 놓고, 그 좁은 문을, 그 견고하고 높은 담을 통과한 사람만이 취업할 수 있게 한 우리들의 잘못이다. 우리들의 책임이다.

 

적어도 기성세대라고 한다면 지금 청년들이 이리도 고통받는 것에 대해서 미안함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게 바로 어른의 몫이고, 어른의 자세다.

 

그런 어른이 되어야 하는데... 우리나라 이 광고, 결국 책임지는 어른들은 나오지 않는다. 함께 벽을 부수겠다고 망치들고 나오는 어른은 없다. 오로지 얄팍한 취업 팁, 서류전형 팁만을 알려주려고 한다.

 

지금 청년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런 것이 아니라, 그들이 당당하게 자신들의 일할 권리를 주장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청년들이 어른들에게 당신들 도대체 뭐 했냐고, 지금 뭐 하고 있냐고... 제대로 대책을 마련하라고 외치게 해야 한다.

 

'아프니까 청춘'이라고 누구나 아프다고, 당연하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미안하다고, 너희들을 아프지 않게 하겠다고... 그렇게 함께 하자고 해야 한다.

 

그게 어른의 자세다.

 

이희중의 시집을 읽고 있었는데.. 예전에 '사냥꾼'이라는 시가 우리 인간의 모습을 너무도 잘 나타내 주었다는 생각에 감탄을 하고 있었는데... 이번엔 청년 실업의 문제와 연결되는 시를 읽고 마음이 너무 아팠다. 이렇게 청년들을 소진하게 하면 안 되는데...

 

함께 그들을 막고 있는 높고 단단한 벽을 부수는 일에 나서야 하는데... 하는 생각... 어른으로서 미안해졌다.

 

두드리면 열린다는 문, 또는 기다리면 온다는 고기

 

문이 있는가

두드리면 열리는 문이 있는가

왜 헤매며 아무 벽이나 두드려 보는가

누구는 쉽게 열리더라고 하기도 하고

아예 열려 있더라고

문이 아니라 길이더라고 하네

그런가, 저마다 찾는 문

서성거리는 발들

세상은 바다 그 변경에 낚시를 드리우고

바늘 끝에 자신의 살점을 매달아 놓았다

목숨을 달아 놓았다, 무서운 미끼여

기다리면 큰 고기가 오는가

들린다, 경첩이 녹스는 소리

미끼가 썩어 가는 소리

 

이희중, 푸른 비상구, 민음사. 1995년 1판 2쇄. 18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