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고백
김려령 지음 / 비룡소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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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부터 기온이 오를 거라고 했는데, 아침부터 흐리기만 하고 기온도 오르지 않은 것 같다. 우중충한 날씨 탓에 춥게 느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올 겨울에는 눈도 적어서 심심하다. 아이들은 신발에 모래가 가득 차도록 마른 모래 운동장에서 축구공을 굴리고 있다.

뜨끈한 칼국수 한 그릇씩 먹여 내보냈으니 추워지면 들어오라지. 나는 김려령의 신작 <가시 고백>을 마저 읽었다.

 

대한민국 고2 교실을 무대로 앞뒤로 짝을 맞춰 앉은 해일, 진오, 지란, 다영이 중심을 이룬다. 학교임을 알게 해주는 담임은 짧은 말에 힘이 있으나 뒤 끝에 힘이 없는 인간적인 선생이다. 이간질과 고자질로 자발적 미운털이 되고도 제 잘못을 모르는 미연도 있음직한 인물이다.

네 명의 아이들은 나쁜 쪽으로 남과 다르다고 생각하며 살아온 천재적인 도둑 해일과 이혼한 아빠를 미워하는 지란의 가시가 뽑혀가는 과정을 다룬다. 진오와 다영은 이성과 감성을 갖춘 괜찮은 아이로 등장하여 해일과 지란을 돕는다. 넷이 뭉치니 막강한 드림팀이 만들어지고 나는 이 대목에서 그만 감동하고 말았다.

 

완득이 만큼 사랑스러운 인물인 해일이는 어려서 혼자지내야 했던 일이 상처로 남은 아이다. 습득하지 않아도 물건을 귀신 같이 훔치고 돈으로 바꾸지만 쓰지는 못하는데 잘 생긴 얼굴에 미소까지 보기 좋다. 그런 아이가 학교에서는 지란의 전자수첩을 훔치고 집에서는 유정란을 사다가 병아리를 부화시키는 데 성공한다. ‘같기도’의 대표적 인물이다. 나쁜 놈 같기도 하고 착한 놈 같기도 하고. 그래도 엄마와 머리를 맞대고 앉아 고구마 줄기를 까는 모습은 정말 아름다워서 아들 키우는 입장에서 해일이 엄마가 부럽기만 하다.

 

해일이 엄마 얘기가 나왔으니 짚고 넘어가는 데, 해일이네 가족 모습은 그간 책에서 보아왔던 가족 모습 가운데 가장 보기 좋은 가족이다. 감정설계를 하겠다는 해일이 형 해철이는담임과 닮았다. 그런 가족이 실재로 있던 없던 나는 이 가족의 모습에서 큰 위안을 받았다. 지란이 해일이네 집에서 느낀 그 따뜻함은 유정란이 병아리로 부화할 만큼 따뜻하고 적당했다.

 

친아버지를 용서하지 못해 힘들어하는 지란이는 해일과 진오의 도움으로 친아버지 집에 몰래 들어가 낙서를 하면서 극단적으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다. 그 와중에 해일이 또다시 지란 아빠의 넷북을 훔친 일이 진오에게 들키면서 해일의 가시가 드러난다.

거울에 비친 해일은 도둑이고, 진오가 해일을 본 것도 거울을 통해서다. 더 짜릿한 것은 반장 다영이는 이미 전자 수첩이 사라졌을 때부터 거울로 해일이를 지켜보았다. 이런 장치로 반전의 묘미를 즐기며 소설은 그만큼 재미있어 진다.

 

고2 아이들이 생각보다 보드랍고 순수한 모습으로 등장해서 따뜻하게 읽힌다. 도둑임이 밝혀진 해일이를 단칼에 잘라버리지 않았고 오히려 더 단단하게 맺어질 이들의 우정이 나는 고마워서 눈물이 나왔다.

 

학교 현장이 쑥대밭이 되고 살벌한 전쟁터가 되었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더 떨어질 간이며 심장이 어디 있다고 그때마다 쿵쿵 떨어지는지. 그래서 이 소설이 더욱 위로가 되었나보다.

사건을 극단으로 몰고 가지 않으면서 등장 인물의 마음을 잘 따라가 주고 그들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 갈 기회를 준 것 같아 뒷끝도 깔끔하다.

 

현실의 세계로 돌아와서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감정을 살펴보는 일이다. 누구에게나 잊고 싶지만 잊을 수 없는 후회스러운 순간이 있다는 말에 공감한다. 원해서 했다기 보다는 내 손이 나도 모르게 물건에 닿는 해일이처럼 판단 이전에 벌어진 행동이다. 원하지 않았던 그 마음을 알아봐주고 믿어주는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 머리와 행동 사이에 벌어진 그 일을 살펴보고 설계하는 일이 그래서 꼭 필요해 보인다.

 

담임과 아이들이 상담 뒤풀이로 주고 받는 말들이나, 상담의 현장, 해철이가 행동하는 방식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이 많다. 담임과 해철에 대해 더 말을 해야하는 이유는 학교 안과 학교 밖 혹은 가정에서 그들과 같은 사람이 있어야 할 필요에 대해 깨닫게 하기 때문이다.

장을 따로 두지 않고 주제 안에서 화자를 눈에 띄지 않게 슬쩍 슬쩍 넘기는 것은 자연스러움을 막지 않으면서 신선했다.

 

그나 저나 수정란 검사를 하는 장면. 달을 품은 달걀과 병아리를 품은 달걀의 이미지가 굉장히 인상적이어서 이미 냉장고에 넣은 유정란은 어쩔 수 없고 나도 다음에 한번 하는 욕구가 생겼다. 나의 연약한 인내와 무딘 손끝으로는 어림없는 일이라는 게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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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잘라 2012-02-28 1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정란을 냉장고에 넣기 전에 어쩌시게요. 설마 품으시게요? 그러다 정말 병아리 되면 그건 도 어쩌시게요. 병아리 되면 왠지 겁날듯.. ㅡ.ㅡ;;;

수수꽃다리 2012-02-29 1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그러니 망상이지요. 망상이어서 다행이고. 생명있는 것을 거둔다는 것이 저는 굉장히 어렵더라구요. 잘 안되구요. 으, 아이 탓으로 돌리지만 제가 보낸 이러저러한 애완용 생명들이... 화분도 꽃피는 것은 없으니. 그래도 해일이네가 부럽기는 했다는...
 
믿는다는 것 - 이찬수 선생님의 종교 이야기 너머학교 열린교실 6
이찬수 지음, 노석미 그림 / 너머학교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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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믿는다는 것에는, 지금은 완전하게 알 수 없는 부분도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비추어 보건대 긍정적으로 기대하고 있다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어떤 사실이나 가치가 긍정적으로 전개되리라 예측하면서 그 예측에 몸과 마음을 용감하게 맡기는 자세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14)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비추어 보건대, 너머 학교에서 발간된 책에 실망한 적이 한 번도 없다. 특히 너머학교 열린교실 시리즈를 빼놓지 않고 읽은 독자로서 이 책에 대한 믿음은 읽지 않았을 때는 98%의 믿음이었고, 읽으면서 의심했던 2%가 채워졌다.

 

 

나는 이 책이 믿음을 주제로 하지만 종교에 대한 것만이 아닐 것으로 기대했다. 위키 백과는 ‘믿음’은 어떠한 가치관, 종교, 사람, 사실 등에 대해 다른 사람의 동의와 관계없이 확고한 진리로서 받아들이는 개인적인 심리 상태“로 정의했다.

 

이 책은 종교 뿐만이 아니라 사람, 가치관, 사실에 대한 믿음의 얘기를 하고 있다. 만약 종교‘만’ 얘기했더라면 내 예측은 빗나갔고 2%가 채워지지 못하였을 것이다.

다만 믿어지니까 믿었을 뿐인데, 그 믿음이 틀리지 않아서 나는 고맙고 즐겁다.

 

그 중에서도 내가 가장 눈여겨 살펴보고 내적 사유를 많이 한 것은 사람에 대한 믿음이다. 믿음의 주체는 ‘너’(나의 경우 나의 아들!)다. 나는 너(아들)를 믿고 있는가.

내가 ‘너’를 믿는 것은 네가 나에게 왔기 때문이다. 대상(너)이 없으면 나는 믿는 행위를 할 수 없다. 나를 믿는다고 할 때 조차 나는 대상이 된다. 그러니 내 믿음의 원천이 되는 대상, 너(희)는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

 

내가 너를 믿고 싶을 때, 내게 필요한 것은 “지난 경험들에 담긴 의미 혹은 의미 있는 관계를 구체화하려는 의지와 지난 경험에 비추어 2%의 불확실성을 용기있게 받아들이는 결단이“었다. 그리고 ”경험, 의지, 용기는 믿음의 주요 구성요소“다.

 

 

최근에 와서야 나는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무척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아주 조금 짐작하기 시작했다. 의무와 책임을 전혀 이행하지 못하는 아이에게 조바심으로 야단을 치면서 어느 순간, 내가 아이를 믿지 못하고 있음을 알았다. 그동안 내 입은 ‘나는 너를 믿’는다고 말했을 터. 나는 내 아이와 살아온 지난 경험을 구체화 시키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니 ‘저 아이가 커서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불안했던 것이다.

지금까지 살아온 아이의 삶을 바탕으로 그 아이의 앞 날도 긍정적것이라고 믿을 용기와 의지가 부족했던 것이다.

 

온전히 믿기까지 아직은 부족은 2%를 그 용기가 채워 줍니다. 그 순간 믿음의 내용이 단순히 내 밖의 어떤 대상으로 남지 않고 나 자신의 것이 됩니다.“(50)

 

믿음의 대상과 내가 하나가 되는 순간을 경험해 보지 못했기에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저자는 나같은 사람이 많을 것을 알고, 용감하게 결단하라고 충고한다. 가려고 하지 않으면 갈 수 없다는 말은 옳다. 수학 시험을 50점을 맞아놓고도 자기는 최선을 다했노라고, 자기를 믿으라고 너스레를 떠는 아이를 믿겠노라 결단을 못내린다면 나와 그 아이는 싸움 밖에 할 일이 없을 것이다. 그렇다한들, 아직도 내 마음은 갈등 상태다. 한겨울에도 온종일 운동장에 나가 사는 아이를 감사히 받아들일 것이냐, 끌어다 책상 앞에 앉혀 놓고 그 날 그 날 해야할 수학 문제집을 들이밀 것이냐.

 

그런데 내가 대상과 하나가 되는 순간을 경험하려면 즉 내 아이와 내가 하나가 되는 순간을 경험하려면 나는 내 아이를 그 아이 생긴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 과정이 쉽지 않기에 용기와 의지가 필요하다고 하는 것이고. 이 과정은 수도승이 그러하듯 나 또한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깨닫고자 노력해야 하는 부분이다.

 

이러한 과정은 신을 받아들이는 과정도 마찬가지다.

 

“신을 믿는다는 말은 그 신이 내 안에 들어와 있어서 나의 모든 것이 그와의 관계 속에서, 그와 어울리게 움직이고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 신이 나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그렇게 살게 하고, 인류를 나아가 온 생명을 그렇게 살게 하는 분이라고 여기며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65)

 

저자의 말에 의하면 근대 이전 서양 세계에서 신을 믿는 것은 자신과 이웃과 사회, 나아가 우주 전반에 어울리는 ‘삶’으로서 교리를 머리로 인정하는 행위가 아니라 사랑, 헌신, 경외 등 전인격적인 자세이자 행위였다. 그러던 것이 오늘날, 믿음은 대체로 종교를 떠올리며 결단을 통해 이루어야 하는 부담스러운 행위로 여겨진다고 말한다.

 

저자는 믿는다는 것을 자연법칙 안에서 이해해야 하는 것으로 본다. 초자연적인 어떤 너머의 존재에 의해 살아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자연법칙 안에서 살 때 너도 소중하고 나도 소중하며 만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사는 것이 멋진 믿음의 세계라는 말이 나는 마음에 든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열린 교실 기획이지만 먼저 나온 책들도 그렇고 이 책 또한 일반 독자들도 읽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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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찬수 2012-03-22 2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책의 내용을 아드님과의 관계에 적용해 해석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제 글이 '수수꽃다리'님의 삶을 통해 몸을 입는 느낌이 듭니다. 글은 역시 삶을 담아내야 한다는 생각이 새삼 더 들었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수수꽃다리 2012-03-23 1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찬수 선생님!
어쩌면 이 글을 읽지 못하실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반갑고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어 글을 드립니다.(마음은 더 크게 소리지르고 있답니다, 하악,하악 이럴수가. 책의 저자께서 이렇게 글을 남겨주시다니. 제게도 이런 일이^^)
그때 함께 구입한 선생님의 다른 책들은 곧 읽게 되겠지요? 어느 한때에, 제가 선생님의 글을 통해 위로와 용기를 얻었음을 말씀드립니다. 좋은 글(말씀)을 책으로 만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봄비가 제법 내립니다. 오늘만큼은 어디에 계신지 모르지만 선생님을 생각하면서 보낼 것 같습니다. 내내 건강하시길.

이찬수 2023-12-20 15:41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기쁜 마음으로 진작에 읽었는데 인사가 너무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좋게 읽어주신 다른 글도 있으시다니 글쓴이로서는 기운이 나면서도 어깨도 무거워집니다. 아드님이 벌써 성인이겠습니다. 더 잘 지내고 계시겠지요. 수수꽃다리님의 삶을 응원하며 댓글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갑신년의 세 친구 창비청소년문고 3
안소영 지음 / 창비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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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한 역사적 사건을 다루는 것은 그 실패가 잉태하고 있는 희망의 씨앗 때문일 것이다.

<갑신년의 세 친구>는 김옥균, 홍영식, 박영효 등 갑신정변 주요 인물 셋을 다루기는 하지만 갑신정변 자체에 주목하지 않는다. 정변을 일으키고 삼일 만에 막을 내린 젊은 개혁가들의 좌절을 절정에 두되 당대 시대 상황을 면밀하게 그려냄으로서 짤막한 역사적 사건에 살과 근육을 입혔다. 그래서 독자는 빈약한 역사적 사실의 행간에서 살아있는 실체로서의 역사적 당대 현실을 체험하게 되었다. 새삼 안소영의 작가적 능력에 감탄하였다.

 

김탁환은 <김탁환의 쉐이크>에서 이야기를 만드는 자세로 100권의 책을 준비하라 했다. 이야기 하나를 ‘머뭇거리며’ 준비하는 동안 100권의 책을 준비하여 도움을 받는다고 하였다.

단 몇 줄 기록으로 남은 역사를 재현하고 구현하기 위해 필요한 작업인데, 안소영이 <갑신년의 세 친구>를 역사적 공간에 재현시키기 위해 참고한 도서 목록은 책 뒤에서 확인할 수있다. 나는 이 아직까지 이야기책 하나를 내기 위해 이토록 많은 자료를 읽고 공부하였다는 기록을 보지 못하였다. 참고 자료를 보면 이 작품의 진정성을 가늠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이 책이 가치 있고 재미가 있는 까닭은 표정과 목소리와 몸짓으로 살아나는 시간 저편의 인물들이다. 이름 석자로 남은 김옥균은 마치 지금 내 옆에 그러한 모습으로 살아 있는 것처럼 그릴 수 있는 것은 온전히 작가의 수고 덕택이다. 그녀가 참고하고 만들어낸 김옥균은 ‘카랑카랑한 목소리를 가졌으며 호리호리하게 큰 키에 갸름한 얼굴이다. 얼굴빛은 백송 줄기만큼이나 희었고, 가늘고 긴 눈매는 젊은이다운 자신감과 단호함이 어려있다. 책 끄트머리에 실려있는 김옥균은 사실 별 표정이 없다. 하지만 작가의 손끝에서 태어난 김옥균은 이토록 생생한 젊은이다.

 

18세기 말부터 19세기 초까지 조선의 모습을 풍전등화라 하였다. 이 책은 풍전등화의 조선을 글로써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역사적 사실을 암기로 받아들이는 청소년 독자들에게 이 책이 필요한 것은 체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갑신년의 그 청년들이 세상을 개혁하지 못했다 하나, 거슬러 박지원의 사랑에 몰려들어 나라를 걱정하고 백성을 걱정하던 이덕무, 박제가 그들 또한 실패한 인물들이었다.

완전한 실패란 없기 때문에 실패한 역사 속에서 또 누군가는 희망의 흔적을 발견하는 것이다. 박지원의 손자 박규수의 사랑에서 갑신년의 세 친구들의 운명이 시작되었던 것처럼 말이다.

 

안소영의 전작 <책만보는 바보>와 함께 읽어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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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리스 우즈의 그림들 (문고판) 네버엔딩스토리 9
패트리샤 레일리 기프 지음, 원지인 옮김 / 네버엔딩스토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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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한 생명이 태어났고 아이는 살아가야한다. 출생의 근원을 따지는 일조차 의미가 없다. 이미 그 생명은 태어나는 순간 의미를 잃어버렸다. 태어난 곳(홀리스우즈)에서 아이는 버려졌다.  

이금이의 <주머니 속의 고래>를 읽다가 공개 입양된 준희를 만나고, 김려령의 <내 가슴에는 해마가 산다>를 통해 공개 입양된 하늘이와 한강이를 만나다가 <홀리스 우즈>까지 만나게 되었다. <고래>에서 준희는 세 인물 중 한 인물로 등장하기 때문에 본격적인 공개입양에 대해 생각꺼리만 제공했다. <해마>는 선천성심장병 수술을 한 뒤 생긴 수술 자국이 해마와 닮았다는 이미지에 공개 입양된 하늘이가 입양아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자라는 상태에서 가족의 일원이 되는 과정을 담고 있다.   

<고래>와 <해마>는 공개 입양 제도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두 작품 모두 공개입양의 양면을 다루지만 결국 가족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으로 끝난다. 가슴으로 낳은 자식이라는 지극히 한국적인 정서를 말로 한다는 점에서 독자는 이미 결말을 알고 있다. 문제는 '어떻게' 가족이 되어가는 지일텐데, 둘 다 입양된 아이의 눈과 입을 통해 말하되 가족이 될 사람들과의 상호 관계가 조금 부족해 보인다. 가족이 되는 것으로 결말이 나지만 어떻게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받는지 그 과정이 궁금한 독자들은 아쉬운 마음을 어쩔 수 없다.  

<홀리스 우즈>가 두 작품과 조금 다른 것은 주인공이 '위탁'의 과정을 겪는다는 것이다. 공개입양이 당사자의 의지와 전혀 상관없이 진행된다면 '위탁'은 입양 될 사람이나 할 사람의 의지, 확신이 크게 작용한다는 것이다. 물론 위탁되었다가 기간이 지나서 다시 입양기관에 돌아오는 과정은 버림이 반복되는 것이다. <홀리스>도 위탁되고 돌아오는 과정에서 쉽게 적응하지 못하고 매번 상처받는다. 그러면서 아이는 마음의 문을 닫게 되고 결국은 자기가 먼저 도망을 치게 되는 것이다. 자존감은 없고, 사랑받지 못하는 아이라는 생각으로 홀리스는 스스로 고립되는 것이다.  

내가 이 작품에 주목하는 것은 위탁의 과정이 공개입양을 하게되는 과정에서 필요하겠다는 생각 때문이다. 첫 눈에 이 아이가 내 아이라는 것을 알아채고 가족이 되기도 하지만 버려진 아이들 모두가 가슴으로 만나 가족이 되지는 않는다. 때문에 위탁 기간이 끝나고도 가족을 못 만나는 아이들도 있지만 이 작품은 그 위탁 기간 동안 서로를 알아보고 가족이 되어가는 과정을 자세하게 풀어내고 있어서 좋았다. 무엇보다 <고래>나 <해마>가 주로 주인공의 생각으로 이야기가 진행되거나 가족의 구체적인 행동, 상황이 부족해서 중간 과정이 생략된 느낌이라면 <홀리스>는 위탁된 가정의 가족들과 위탁된 홀리스 사이에 여러가지 상황들이 전개된다는 것이다. 어떻게 해서 가족이라는 형태가 만들어지는지 그 상황들, 행동들, 구체적인 말들을 통해 독자는 쉽게 몰입한다.  

그러다 보니 독자는 홀리스가 스티븐과 가족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된다. 피해의식과 상실감으로 쉽게 마음의 문을 열지 못하는 홀리스를 이해할 수 있는 것, 스티브와 엄마, 아빠가 평소에 어떤 행동, 어떤 말을 하는지는 중요하다. 이야기에서 주인공과 등장 인물이 겪는 과정은 매우 중요한 요소다. 그게 빠진 채 하나의 사건(물론 결정적인 사건), 혹은 주인공의 내면을 말로만 풀어놓은 이야기는 감동도 적고 재미도 없다. 결정적인 사건이 효과를 내려면 작은 사건들이 끊임없이 결정적인 사건을 키워가야 한다.  

가족이 되는 것은 누가 해 주는 것이 아니다. 서로가 해야하는 것이다. 입양 기관이 위탁 가정을 만들어 줄 수는 있어도 결국은 입양을 원하는 쪽과 입양 될 아이가 서로를 알아봐 줘야하는 것이다. 부부로 사는 일은 연애기간이라는 위탁의 과정을 겪고 비로소 가족이 되기로 결정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문득 해 보았다. 억지스러운 비교지만 굳이 이렇게 생각을 해 본 것은 입양이 별스러운 과정이나 대단한 비밀, 혹은 희생이나 봉사라는 인류애적인 의미로 커진다면 너무 어려운 일이 되어버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홀리스를 입양하는 과정에서 스티븐과 리건 가족이 보여준 모습은 있는 그대로였다. 특별한 것이 없었고 무엇보다 홀리스를 불쌍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홀리스가 그린 그림을 제대로 봐주었고 있는 그대로의 홀리스를 인정하고 받아들였다. 구제를 한다거나 보살펴야 할 불쌍한 아이가 아니라 진정으로 홀리스와 함께 사는 것이 행복했다. 세상에 버려지고 여기저기 위탁 가정을 찾아 헤매야 하는 것은 홀리스의 잘못이 아니다. 홀리스는 그게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순간 스티븐과 남매가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스티븐의 말처럼 홀리스는 가족이 뭔지 모르고 있었다. 가족은 나때문에 네가 피해를 본다는 생각 같은 것은 하지 않는다. 내가 제일 잘났어라고 말 할 수 있고, 그게 인정받는 곳이 가정이고 네가 제일 잘났다고 추켜세워주는 사람들이 가족이다.  

홀리스는 아마 타고난 화가일 것 같다. 치매를 앓고 있는 조시 아줌마를 보살피는 열 두살 여자아이는 누군가의 아픔을 감당할 수도 있다. 얼굴도 예쁘다. 누군가는 그런 홀리스를 거칠다고 버리고 누군가는 그런 홀리스를 알아본다.  

나는 나의 가족들을 얼마만큼 알아볼 수 있을까? 다만 그들이 지금, 내 옆에서 나를 귀찮게도하고 열받게도 하지만 목젖이 보일 만큼 웃게도 만드는 그들이  지금 여기 있다는 사실의 소중함을 나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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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청춘, 시속 370㎞ - 제9회 사계절문학상 대상 수상작 사계절 1318 문고 72
이송현 지음 / 사계절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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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 마지막으로 치달으면서 나는 끝내 콧물이 흐르고 눈이 아파오고 가슴이 저리고 몸이 뻐근해지는 증상에 빠져들고 말았다. 처음 시작은 대충 마무리가 머리에 그려질 정도로 담담했다.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하던 아들이 아버지와 함께 매를 길들이는 일을 하면서 조금씩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는 과정, 문제는 그 과정의 설득력일 것이다. 매잡이라는 소재가 신선했다. 대개의 청소년 소설을 읽으면서 내가 느끼는 감정은 가슴 졸이다가 웃는 것으로 끝나는데, 가을 단풍이 내가 사는 아파트까지 찾아와 주어서 온통 감동 무드여서 그랬나? 

돈 안되는 것을 하려는 아빠와 이혼까지 하려고 마음 먹으면서 말리는 엄마, 그 사이에서 엄마를 힘들게 하는 아빠를 이해하지 못하는 동준, 이 세 식구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의 몫을 하지 못하는 사내를 엄마는 이해하지 못한다. 오로지 전통을 이어야한다는 신념으로 아내와 아들을 마음 아프게 해야하는 현실을 아들 또한 이해 못한다. 아버지는 이해를 받으려는 노력 조차 하지 않는 외골수다. 그러니 갈등은 심해지고 마음의 상처는 커져간다.  

이런 뻔한 과정을 거치면서 동준은 마음에 변화가 생기는 것을 느낀다. 닭대가리 보라매를 길들이면서 매잡이라는 일 자체를 즐기게 되는데, 흡사 미운정과 같다. 이혼 통보를 하고 떠나는 엄마를 잡으려다 사고를 당하면서 동준은 아버지의 고운정을 알게 된다.  미운정과 고운정이 뒤섞여 자신들조차 그 마음이 무엇인지 모르는 동준의 어머니 아버지는 비로소 조금씩 양보하게 되는데, 동준이 엄마에게 가고, 아버지는 아들에게 매잡이를 강요하지 않는다.  

다시, 그렇다면 나는 이 소설의 어느 대목에서 흔들렸을까?  사실 사람살이든 소설 속 사람이든 꺼내보이지 못하는 마음이라고 없는 마음이 아니리라. 몰랐든, 알았든 다만 그 마음이 속엣것으로만 있을 때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 뜨뜻하고 진한 마음들이 서로를 알아볼 때, 그리고 그 마음의 주인에게 전달 될 때 그걸 지켜보는 독자는 감동한다.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독자가 소설 속 사람들에게 그 마음을 전해 줄 수는 없지 않은가. 독자가 짐작한 마음, 혹은 예상하지 못한 마음이 소설 속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장면을 보면서 나는 감동한다. 그리고 사랑과 이해, 혹은 용서의 마음에 감동한다. 그런 감동을 주는 게 예술, 문학의 힘이다.  

아내와 자식한테조차 이해 받지 못하던 한 고독한 응사가 그의 아들에게 인정받기 시작하는 과정은 충분히 감동적이다. 차마 대를 이어 응사의 삶을 살아달라고 못하는 아버지에게 아들은 "아버지보다 더 멋진 아들이 되겠다"고 말하면서 적어도 아버지의 삶을 인정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성장하는 동준이의 모습도 충분히 멋지다.   

결혼을 하고 한 십 년쯤 살아본 사람은 안다. 죽을 만큼 힘든 결혼의 삶을 그만두고 싶을 때도 있지만 정말 그만두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삶은 또 그렇게 하루를 뒤척이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동준의 엄마가 여태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지않은 것, 우리는 모두 끝을 보고싶지는 않을지 모르겠다. 늘 그 삶이 지속되기를 바라고, 혹은 나아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엄마는 혹은 여자는 남자보다 힘이 쎌 때가 많다.  

응사의 삶을 사는 아버지와 그를 힘들게 지켜보는 가족의 얘기이기도 하지만 이 소설에는 똠양꿍이라는 소년이 산다. 나는 그 소년이 이 땅에서 얼마나 힘들게 살아갈 지 알것같으면서도 '똥준'이 있어서 둘 다 안심이 된다.  

이해한다는 것은 어렵다. 그리고 서로를 이해하게 되었을 때, 이해할 수있는 사람이 생겼을 때 아마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이 사는 일이 수월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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