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신이 되는 세상 - 시작하는 작가를 위한 세계관 설정 노트 내가 신이 되는 세상 1
도리이 아야네 지음, 최서희 옮김, 에노모토 아키 감수 / 영진.com(영진닷컴)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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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구의 이야기를 그럴듯하게 만들어 주는 것은 바로 탄탄한 세계관 설정이다. 책을 읽는 독자들 모두 이 이야기가 만들어진 가상이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그 세계 속으로 들어가 인물과 함께 모험하고, 감동하게 되는 것은 바로 진짜 현실처럼 생생한 세계관 구축에서 온다. 이는 만화, 게임, 소설, 드라마, 영화 등 모든 장르에서 마찬가지이다.

 

 

이야기를 만들 때는 캐릭터, 스토리, 세계관이라는 세 개의 기둥이 필요하다. 특히나 세계관은 그럴듯하게 설정이 된다면, 이야기가 저절로 만들어지는 기둥이다. 역사, 문화, 종교, 계급, 지형, 기후, 경제, 음식 등 하나의 세계를 구성하는 여러 요소들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 이야기에 직접적으로 등장하지 않는 설정이라도 그곳은 캐릭터가 사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하나의 세계관을 창작하기에 필요한 모든 것을 담고 있다. 세계를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들을 하나씩 살펴보며 모순 없이, 진짜처럼 말이 되도록, 생각하는 방안에 대해 설명해준다.

 

 

세계는, 나라는, 마을은 어떻게 생겨났고, 어떻게 발전해 지금에 이르렀는지를 알아보고, 사람들이 어떤 문화를 이루고, 어떤 종교를 믿는지, 국가의 형태는 어떠하고, 계급과 신분제도는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 하나씩 살펴본다. 특히나 계급은 실전 부대의 조직 단위와 유럽의 귀족 작위, 현대의 일반 기업의 서열에 이르기까지 디테일하게 도표로 정리되어 있어 활용하기에 좋다.

 

캐릭터가 살아가는 지형은 어떤지, 기후는 어떤지, 그리고 설정된 시대에 맞는 음식과 경제와 기술, 국가에 대해서도 정리하고 있다. 특히나 판타지 세상을 만들 때는 기술이 어떻게, 어디까지 발전했느냐에 따라 시대의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에 중요한 부분이다. 내가 만든 세계에서 과학이 어디까지 발달해 있느냐에 따라 캐릭터들의 생각이나 가치관도 달라지니, 이야기를 창작할 때 가장 재미있는 부분이기도 할 것이다.

 

 

이야기를 만든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 존재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세상을 구축하고, 내가 신이 되어보는 경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마법을 사용해도 되고, 현실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환상적인 존재를 등장시켜도 된다. 물론 그럼에도 지금까지 역사나 과학적으로 모순이 없도록 다방면으로 생각하면서 만들어야 하지만 말이다. 존재하지 않는 생물인 드래곤,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인 요정과 유령, 몬스터 등 초현실적인 존재들에게 현실성을 부여해서 겉돌지 않도록 만들어야 이야기를 읽는 독자들이 그들 캐릭터에게 감정을 이입시킬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어떤 요소를 넣더라도 '세계 전체에 얼마나 알려져 있고, 얼마나 녹아들어 있는가?'이다. 이런 작은 부분들을 소홀히 하면 세계 전체가 흔들리게 되니 주의해야 한다.

 

 

자, 세계의 요소에 관해 디테일하게 정리를 한 뒤에는 본격적으로 캐릭터들을 그 세계 속으로 뛰어들게 만들어야 한다. 이 책에는 실제 작품 만들기에 돌입해볼 수 있도록 순서대로 상상할 수 있는 5개의 템플릿이 제공된다. 이세계 판타지, 근미래 판타지, 현대 판타지, 원미래 판타지, 학원도시 판타지, 이렇게 5가지로 구성된 세계관 창작 노트이다. 마법, 초능력 등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을 등장시킬 수 있는 이세계, 현대를 기반으로 하지만 지금은 실편 불가능한 기술을 포함하기 가장 적합한 근미래, 우리가 사는 세계와 거의 다르지 않은 장소에서 벌어지는 현대 판타지, 수천 년, 나아가서 더 먼 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원미래, 그리고 아이들이 통치하는 아이들만의 사회인 학원도시 판타지를 직접 만들어 볼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전문가의 5개 템플릿 샘플을 제공해서 내가 만든 것과 비교도 해보고, 실제 프로들은 어떻게 만드는 지도 배울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알려주는 내용을 따라가며 노트에 적기만 해도 세계관이 창조되는 마법의 가이드북이 궁금하다면 이 책을 만나 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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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식당
오가와 이토 지음, 권남희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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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를 둘러싼 산의 나무들은 하루하루 색이 바뀌고, 낮 시간은 눈에 띌 정도로 점점 짧아져 갔다.
나는 새로 열 식당을 어딘가에서 본 적이 있는 것 같은, 한편으로는 난생처음 보는 것 같은 신비한 공간으로 만들고 싶었다.
사람들이 편안한 마음으로 자신을 되찾을 수 있는 비밀 동굴 같은 장소.          p.67

 

조용한 산골 마을에 위치한 달팽이 식당은 손님을 하루에 한 팀만 받는다. 전날까지 손님과 대화를 주고받아 무엇이 먹고 싶은지, 가족 구성과 예산 등은 어떤지 조사하고, 그 결과에 따라 그날의 메뉴가 정해진다. 달팽이 식당이라는 이름에 어울리게 천천히 시간을 들여서 음식을 맛보게 하는 것이 요리의 목적이다. 식당 주변에는 계단식 논과 소와 양이 있는 광대한 목장, 그리고 포도밭과 과수원, 허브 밭도 있어 좋은 식재료를 구하기에 너무 좋은 곳이다. 갓이 열리기 전에 딴 훌륭한 송이버섯, 숲에 벌레 먹어서 떨어진 나무 열매로 만든 증류주, 계절 야채로 만든 수프 등 정해진 메뉴 없이 그때그때 달라지는 요리들에는 정성이 가득 담겨 있다.

 

식당을 운영하는 여주인공 링고는 도시에서 열심히 일하며 돈을 모았지만, 남자친구로부터 배신을 당하고 한 푼도 없는 상태로 고향으로 돌아왔다. 사랑하는 사람이 사라진 것뿐만 아니라 가재도구도, 조리 기구도, 돈도, 갖고 있던 것은 모두 잃어버려 완전히 빈털털이가 되어 버린 채로 말이다. 음식점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온갖 가재도구들과 모아둔 돈까지 모조리 사라진 텅 빈 집을 보면서 링고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렇게 삼 년 치의 추억과 귀중한 재산들을 잃어버린 절망에 링고는 어느 순간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럼에도 조금 놀랐지만 슬프지는 않았다고, 담담한 태도로 그녀는 심야 고속버스를 탄다. 이상하게 어릴 때부터 '도저히 진심으로 좋아할 수가 없었던' 엄마 곁으로 향한다. 그곳은 엄마가 딸보다 더 애지중지하는 돼지 한 마리와 함께 살고 있는, 링고의 어린 시절 기억들이 겹겹이 쌓여 있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우연히 엄마의 집 창고를 빌려 작은 식당을 열게 된 것이다. 요리라면 링고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 자신 있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겨울은 바로 코앞까지 다가왔다.
마법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왔다.
십이월의 어느 아침, 커튼을 걷자 세상이 새하얗게 변해 있었다.
창밖은 끝없이 이어지는 우윳빛. 마치 엄청난 양의 머랭을 폭신폭신하게 씌운 듯했다. 화려한 코트를 걸친 첩할머니의 어깨에도 새하얀 가루눈이 쌓였을 것이다.            p.168

 

 

삶의 절벽 끝에 도달했을 때, 생각지도 못했던 링고의 꿈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것도 어쩐지 가까워질 수 없었던 엄마 곁에서, 간절히 바랬던 오랜 꿈이자 로망이었던 식당을 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조용한 산속 마을에서 링고는 자신에게 주어진 매일을 감사하며, 작은 순간에도 행복을 느끼며 식당을 운영해 나간다. 먹는 이의 마음을 생각하며 온 정성을 다해 요리를 하다 보니, 저마다의 상처를 지닌 손님들은 달팽이 식당의 특별한 요리를 먹고 나서 작은 변화들을 겪게 된다. 그리고 점점 달팽이 식당의 요리를 먹으면 사랑과 소망이 이루어진다는 소문이 퍼지게 된다. 누군가를 위해 요리를 하는 내내 너무 행복해서 가슴이 메어 온다고 생각하는 요리사의 음식이라면 상처를 치유하고, 마법 같은 기적을 일으킨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식당이 정말 현실에 존재한다면, 언젠가 꼭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 작품은 <라이온의 간식>, <츠바키 문구점> 등 국내에도 많은 작품이 소개되어 있는 오가와 이토의 데뷔작이다. 국내에는 2010년에 출간되었는데, 이번에 새로운 옷으로 갈아 입고 개정판이 나왔다. 아름다운 손편지로 누군가의 간절한 마음을 대신 전해주는 가슴 뭉클한 기적을 보여줬던 <츠바키 문구점>, 일상을 가득 채우고 있는 소소한 음식들이 풍요로운 힐링을 전해줬던 <양식당 오가와>, 경건하고 순박한 사람들이 사는 나라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동화 같은 소박한 이야기 <마리카의 장갑>, 결코 과하지 않게, 적절한 감정선을 유지하면서 봄바람처럼 살랑거리는 기분이 들게 했던 <라이온의 간식> 등 오가와 이토의 소설들은 매번 섬세하고 따뜻했다. 평범한 일상들이 차곡차곡 쌓여 만들어내는 보통날의 기적을 보여주는 이야기말로 오가와 이토만이 보여줄 수 있는 특별한 점이 아닐까 싶다. 전세계 100만 독자를 사로잡은 일본 힐링 소설의 원조, 오가와 이토의 눈부신 데뷔작을 만나 보자. 달팽이 식당에 들어서는 순간 고단한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근사한 요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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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부당합니다 - Z세대 공정의 기준에 대한 탐구
임홍택 지음 / 와이즈베리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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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에 대한 외침'을 '정당함에 대한 요구'로 바꿔서 보면, 지금까지 공정성 이슈를 제기한 젊은 세대의 주장이 단순하고 명쾌해진다. 그들은 특별한 대우나 철학적인 깨달음을 요구한 것이 아니라, 그저 살면서 DNA 안에 축적해온 '정당한 것을 요구하라'는 감정 반응을 자연스럽게 드러냈을 뿐이다. 그저 '반칙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하지만 수많은 언론들은 부당함을 거부하는 현세대의 요구를 '삐딱한 공정성을 요구하는 세대'로 포장해 여론을 이끌고 있다.         p.40

 

최근 몇 년 사이 한국 사회에서 지배적 가치로 부상한 것이 바로 '공정'이다. 하지만 공정이라는 단어는 21세기에 갑자기 등장한 신조어가 아니고, 우리나라를 비롯한 어느 사회에서나 기본 상식이자 사회를 지탱하는 근본 가치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공정이 2020년대의 시대정신으로 급부상한 이유는 뭘까. 그 이유는 공정 이슈가 젊은 세대라는 키워드와 결합해 논란이 됐기 때문이다. 정치사회적으로 공정성 논란이 불거지는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기성세대와 MZ세대, 이대남과 이대녀 등의 프레임을 씌우고, 젊은 세대들이 문제라는 식으로 세대 갈등이 있어 왔다.

 

<90년생이 온다>라는 책으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세대론'이라는 생각거리를 던져주었던 임홍택 저자는 이 책에서 공정이라는 단어 자체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다. 기존의 공정 논의에서 '지금 젊은 세대가 가지고 있는 공정의 기준이 과연 옳은 것인가'라는 관점에서 벗어나, 공정이라는 단어 자체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지금의 젊은 세대들이 요구하는 것이 진실된 공정이냐 거짓된 공정이냐를 판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공정이란 단어를 꺼내게 된 이유를 먼저 파악해야 한다고 말한다. '공정하지 않다'는 표면적 외침의 이면에는 '이것은 이치에 맞지 않고 정당하지 않다'라는 의미를 가진 '부당'에 대한 담론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세대의 변화가 아니라 그 안에 숨어 있는 시대 변화에 방점을 찍고, 특정 세대가 아닌 우리 사회 전체의 부당함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다시 말해 줄 서기는 모두에게 공평할 뿐만 아니라 방식 또한 정의롭다. 자신의 정치적 성향이 보수적이든 진보적이든 관계없이 감히 공정하다고 말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방식이다. 그래서 흔히 줄 서기를 가장 기본적인 사회 공정의 축소판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정작 우리는 줄 서기를 하면서 공정이라는 단어를 떠올리지 않는다. 그냥 줄을 서면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이처럼 당연한 줄 서기의 원칙이 훼손되면 어떻게 될까.         p.249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속에서 '권모술수 권민우'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인물이 '공정'에 대한 대사를 한 적이 있다. 그는 "우영우 변호사가 매번 우리를 앞서나가는 상황에서, 정작 우리가 우영우 변호사를 공격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고, 오히려 (약자인 우리가) 자폐인이라는 이유로 그를 배려하고 도와야 한다"면서 "이 게임은 공정하지가 않다"고 주장했다. 물론 권민우라는 캐릭터가 공정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은 캐릭터인 것은 분명하지만, 권민우에 대한 비판이 사회구조적인 문제를 권민우라는 개인에게 지우는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장애인이 취업 문제로 차별을 받는 것은 사회적 문제이지만, 극중 우영우가 특혜를 받은 것은 개인의 문제이니 말이다. 이 책에는 드라마 속 에피소드 외에도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마주하게 되는 부당함의 사례들이 수록되어 있다. 현세대에게 공무원의 인기가 떨어진 이유는 공직 생활에서 겪는 부당성에서 비롯되었고, 출산율 저하의 근본적인 원인 역시 부당함 때문이다.

 

줄 서기와 같이 가장 공정에 가까운 방식을 어떻게 시스템에 접목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로웠고, 스포츠 경기에 적용되는 기본적 수준의 ‘공정’을 우리 사회에 접목시키려 노력해야 한다는 저자의 생각도 인상적이었다. 이 책을 통해 그간 우리가 찝찝해하면서도 그러려니 지나쳐왔던 수많은 반칙들을 되짚어보고, 특정 세대가 아닌 우리 사회 전체의 부당함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젊은 세대들이 외치는 '공정하지 않다'는 '이것은 옳지 않고, 부당하다'와 같은 의미라는 것을 잊지 말고, '부당함'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해볼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 하나의 언어로 공정성을 정의하긴 어렵지만, 세상을 조금 더 공정하게 만드는 일은 가능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우리 모두 함께 세상의 부당함에 저항해야 한다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바로 그 시작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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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충돌 - ‘차이메리카’에서 ‘신냉전’으로
훙호펑 지음, 하남석 옮김 / 글항아리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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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주의적 관점과 경제학적 관점을 넘어, 국가 간 경쟁과 기업 조직 간의 경쟁 혹은 초국적 연결을 세계질서와 갈등의 형성에 있어 상호작용하는 두 개의 자율적 영역으로 보는 더 섬세한 국제정치 이론들이 있다. 이러한 이론들의 통찰에 기반해 이 책에서 나는 국가 간 지정학적 경쟁과 기업 사이의 자본 간 관계를 연결시켜 1990년대와 2000년대 미국과 중국의 공생관계 및 2010년대 그 공생관계가 경쟁으로 변화한 원인들을 검토할 것이다. 그리고 지구정치경제의 거시적인 구조 변화를 배경으로 미국과 중국 사이의 기업 및 국가 간의 중간 수준의 상호작용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p.16

 

미국과 중국은 세계 1위와 2위 경제 대국으로 둘을 합칠 때 GDP에서는 세계 전체의 거의 40퍼센트, 국방비에서는 5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니 미중 관계의 변화는 세계 정치에서 가장 중대한 변화이며, 21세기 미래의 세계질서 혹은 혼돈을 결정짓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중국 정치경제 분야의 선도적 전문가인 훙호펑 존스홉킨스대 교수는 이 책에서 모든 부분에서 '신냉전'으로 치닫고 있는 미중 관계의 역학을 분석한다.

 

냉전이 종식된 후 1990년대와 2000년대의 미국과 중국의 공생관계는 안정적으로 유지되었다. 하지만 2010년대에 들어 세계 2위 경제대국이 된 중국이 미국에 도전하는 공세적 외교를 시작했고, 미국도 중국을 강력히 견제하기 시작해 이들은 갑자기 경쟁관계로 변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현재, 한중 경제관계 역시 보완관계에서 경쟁관계로 변해버렸다. 애초에 한국은 한반도문제에서 중국의 긍정적인 역할을 기대했지만 중국은 그럴 의사가 없었고, 한국을 미국에서 떼어내려 하는 중국의 기대 역시 이루어질 리 만무했으니 말이다. 한국과 중국의 관계가 멀어졌으니, 급변하고 있는 미중관계 역시 우리가 제대로 짚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냉전이 끝난 후, 일각에서는 세계가 기존 서구 강대국들과 중화권 및 이슬람권의 경제가 점차 성장하고 있는 인구 대국들 사이의 '문명의 충돌'로 향하고 있다고 봤다. 반면 또 다른 일각에서는 세계가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 아래 통합되어 더 큰 보편적 평화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봤다. 또 다른 학자들은 보편적인 글로벌 자본주의 제국이 떠오르고 있다고 판단했으며, 이 질서 안에서 주요 자본주의 강대국들이 연합해 세계를 지배하며 분할한다고 봤다. 그러나 이 논쟁은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자본주의의 역사는 전쟁과 갈등으로 가득 차 있었다.        p.133

 

저자에 따르면, 미국과 중국이 ‘신냉전’으로 치닫고 있는 현 상황의 원인은 이데올로기 대립에 있지 않다. 이는 명확히 자본 간 경쟁에서 비롯됐고, 그것이 지정학적 충돌을 부추기고 있다. 이 책에서 그는 미국과 중국 기업들 사이의 변화가 두 나라의 정치적 관계 변화의 기저에 있다는 것을 논증한다. 중국 시장에서 미국 기업이 맞닥뜨린 압박이 커지면서 전반적으로 중국에서 사업 확장이 위축되었고, 불공정한 대우를 받았다고 알려진 일부 기업들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법적 조치에 의지하게 된다. 거기다 중국이 기술 자립을 위해 노골적인 경제 스파이 행위를 포함해 불법적인 도용이 벌어졌고, 그 결과 미국 기업들이 지식재산권 문제로 소송을 제기하는 사례도 늘었다. 그리고 광범위한 중국산 제품에 대해 높은 관세를 매겨 중국과 무역 전쟁에 돌입했던 트럼프 이후 새로 선출된 바이든 행정부조차 관세를 철회하지 않고 중국에 대한 대립적 정책을 계속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냉전 종식 이후 1990년대 미국과 중국 사이의 공생관계가 부상했다가 최근 몇 년간 이 관계가 미중의 경쟁관계로 대체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두 강대국이 전쟁을 향해 가고 있는지 아니면 더 조화로운 관계로 돌아갈 것인지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 책을 통해서 미중 경쟁의 경제적, 지정학적 기원을 살펴보고, 합법적인 글로벌 통치 기구의 중재와 중국과 미국 경제의 재조정이라는 갈등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두 가지 접근법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지면 좋을 것 같다. 저자는 미중 간의 관계는 악화될 게 분명하지만, 직접적인 군사 충돌보다는 WHO, WTO, UN과 같은 글로벌 통치 기구에서의 경쟁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하고 있지만, 앞으로의 어떻게 될지는 오직 시간만이 말해줄 것이다. 분량이 많지 않은 책임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수월하게 읽히는 책은 아니었다. 저자의 전작인 <차이나 붐>과 함께 읽으면 더 심층적으로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문제에 대해 접근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이 책의 한국어판에는 저자와 직접 상의해 책 본문에 포함되지 않았던 두 편의 대담과 한 편의 논문을 부록으로 수록해 책의 내용을 좀더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으니, 세계 정치 경제의 변화에 관심이 있다면 꼭 읽어 보길 추천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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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굴레 - 헤이안 시대에서 아베 정권까지, 타인의 눈으로 안에서 통찰해낸 일본의 빛과 그늘
R. 태가트 머피 지음, 윤영수 외 옮김 / 글항아리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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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인들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현대 일본의 수많은 모순은, 에도 시대에 존재하던 공식적인 시스템의 구조와 실제 사회의 간극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 예를 들면 20세기 말 일본은 역사상 가장 눈부신 경제적 성공을 거둔 나라인 동시에 꽉 막힌 얼굴 없는 관료주의의 대명사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은 성공한 오사카 상인 집안들과 점점 경직화되던 사무라이 계급의 선례를 생각하면 그다지 혼란스러운 일도 아니다. 한편으로는 충성과 자기 부정을 광기의 수준으로까지 가져가면서, 또 한편으로는 기괴한 비디오 게임이나 헨타이, 망가, 괴상한 패션으로 대변되는 엉뚱하고 전위적인 예술을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문화의 뿌리도 에도 시대에서 찾을 수 있다.        p.102

 

야마모토 요지와 가와쿠보 레이의 패션,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모노노케히메>와 같은 애니메이션, <링>과 같은 공포영화, 포켓몬... 이러한 모든 문화 현상 사이에 도대체 어떤 관련성이 있는 것일까. 귀여운 것에 대해 질릴 정도로 집착하는 듯한 문화가 어떻게 동시에 세계에서 가장 성적 도착을 과도하게 묘사하는 작품들을 만들어내기도 하는가, 어떻게 이 모든 것이 다 일본 문화일 수 있는가. 일본의 대중 문화와 예술은 여러 모로 흥미로운 부분이 많다. 더 재미있는 것은 지구상의 어떤 나라도 한국만큼 일본과 문화적으로 비슷한 나라는 없다는 것. 이는 정치, 경제 체제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 책은 옥스포드대학 출판사의 '누구나 알아야 하는 지식' 시리즈의 한 권으로 쓰였다. 일본 독자들을 위해 쓰인 것이 아니라 일본에 호기심을 갖고 좀더 이해하고 싶어하는 영어권 독자들을 위해 쓰인 책이라는 말이다. 저자인 태가트 머피 역시 미국인이다. 그는 국제정치경제 전문가로 40년이 넘는 세월을 일본에서 살아온 내부자이자 동시에 외부자인 셈이다. 덕분에 그의 통찰력은 상당히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하고 있다. 에도 시대 이전의 일본에서 시작되는 그의 이야기는 일본의 천황 제도, 헤이안 시대의 유산, <겐지 이야기>를 비롯해 위대한 문학작품들을 거쳐 메이지 유신과 일본의 근대화로 넘어간다. 에도 시대의 대중 문화와 도쿠가와 막부의 종말, 그리고 난징 대학살 등 일본이 천황의 이름으로 저지른 끔찍한 일들을 거쳐 전후 일본의 경제 부흥기에 도달한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나라가 불과 20여 년 만에 세계 2위의 산업 경제 대국으로 탈바꿈한 것은 당시에 존재하던 그 어떤 경제 개발 이론으로도 설명되지 않았던,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일본의 정치 문화에는 다른 곳에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모순을 참고 받아들이는 태도가 스며들어 있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때때로 이러한 태도는 실현 불가능한 공상에 가까운 목표와, 가장 냉철하고 비정한 전술의 공존을 가능케 한다. 일본이 중국에 맞설 수 있도록 과거 일본 제국 육군의 기상을 회복해야 한다는 아베의 비전은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지만, 일본이 무모한 목표를 좇느라 터무니없는 옆길로 빠졌던 일은 아베 정권이 처음은 아니다. 과거에 사용되었던 존황양이, 팔굉일우(세계 만방이 모두 천황의 지배하에 있다는 일본 천황제 파시즘의 핵심 사상), 대공아 공영권과 같은 말만 봐도 알 수 있다.          p.600

 

일본의 경제 기적에 이어 고도성장의 제도적 기틀을 이루는 요소들을 살펴보고, 교육 시스템과, 관료 제도를 거쳐 야구와 샐러리맨 문화가 등장한다. 일본 사회에 샐러리맨 문화를 퍼뜨리는 데 큰 역할을 했던 것이 미국에서 수입해온 스포츠인 야구였다는 점도 흥미로웠다. 이어 1980년대 말 일본의 버블 경제와 금융에 대한 장이 시작되는데, 여기까지가 삼백여 페이지이니 겨우 반 온 셈이다. 무려 600페이지를 훌쩍 넘는 분량이라 시작할 때는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했는데, 생각보다 술술 페이지가 잘 넘어가긴 했다. 그럼에도 담고 있는 내용이 워낙 방대해서 시간은 꽤 걸린 것 같다. 나머지 후반부의 내용에서는 비즈니스와 해외 투자, 일본 문화와 정치에 대해서 다룬다. 저자가 국제정치경제학 연구자이기 때문에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정치와 경제에 대한 이야기가 특히나 심도있게 다루어지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을까 생각해보았다. 일본에 여러 번 여행을 다녀왔고, 일본어 공부를 꽤 오랫동안 한 적도 있고, 일본의 문학 작품들은 정말 많이 읽어 왔고, 일본의 영화와 애니메이션들도 남들만큼은 본 것 같다. 하지만 여전히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 투성이였다는 것을 읽는 내내 느꼈다. 일본의 근대사와 정치, 외교관계, 경제에 대한 부분은 이 책을 통해서 처음 만나는 내용들이 더 많았으니 말이다. 태가트 머피의 <일본의 굴레>는 두툼한 페이지만큼이나 많은 내용을 담고 있다. 역사의 긴 흐름 위에서 일본의 정치, 경제, 문화를 하나로 꿰어서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있으니 말이다.  옥스퍼드대학 출판사의 제안을 받았을 때 저자는 “일본의 정치와 경제에 관한 생각을 역사 및 문화와 결합시켜 다른 종류의 글쓰기를 통해서는 불가능한 작업을 해보리라” 결심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결과물로 일본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역사를 모두 다루고 있는 이 책이 탄생한 것이다.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현대 일본의 사회 현상 뒤에 어떤 역사적 배경과 경제적 논리가 숨어 있는지 궁금하다면 이 책을 만나 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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