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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충돌 - ‘차이메리카’에서 ‘신냉전’으로
훙호펑 지음, 하남석 옮김 / 글항아리 / 2022년 10월
평점 :
국가주의적 관점과 경제학적 관점을 넘어, 국가 간 경쟁과 기업 조직 간의 경쟁 혹은 초국적 연결을 세계질서와 갈등의 형성에 있어 상호작용하는 두 개의 자율적 영역으로 보는 더 섬세한 국제정치 이론들이 있다. 이러한 이론들의 통찰에 기반해 이 책에서 나는 국가 간 지정학적 경쟁과 기업 사이의 자본 간 관계를 연결시켜 1990년대와 2000년대 미국과 중국의 공생관계 및 2010년대 그 공생관계가 경쟁으로 변화한 원인들을 검토할 것이다. 그리고 지구정치경제의 거시적인 구조 변화를 배경으로 미국과 중국 사이의 기업 및 국가 간의 중간 수준의 상호작용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p.16
미국과 중국은 세계 1위와 2위 경제 대국으로 둘을 합칠 때 GDP에서는 세계 전체의 거의 40퍼센트, 국방비에서는 5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니 미중 관계의 변화는 세계 정치에서 가장 중대한 변화이며, 21세기 미래의 세계질서 혹은 혼돈을 결정짓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중국 정치경제 분야의 선도적 전문가인 훙호펑 존스홉킨스대 교수는 이 책에서 모든 부분에서 '신냉전'으로 치닫고 있는 미중 관계의 역학을 분석한다.
냉전이 종식된 후 1990년대와 2000년대의 미국과 중국의 공생관계는 안정적으로 유지되었다. 하지만 2010년대에 들어 세계 2위 경제대국이 된 중국이 미국에 도전하는 공세적 외교를 시작했고, 미국도 중국을 강력히 견제하기 시작해 이들은 갑자기 경쟁관계로 변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현재, 한중 경제관계 역시 보완관계에서 경쟁관계로 변해버렸다. 애초에 한국은 한반도문제에서 중국의 긍정적인 역할을 기대했지만 중국은 그럴 의사가 없었고, 한국을 미국에서 떼어내려 하는 중국의 기대 역시 이루어질 리 만무했으니 말이다. 한국과 중국의 관계가 멀어졌으니, 급변하고 있는 미중관계 역시 우리가 제대로 짚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냉전이 끝난 후, 일각에서는 세계가 기존 서구 강대국들과 중화권 및 이슬람권의 경제가 점차 성장하고 있는 인구 대국들 사이의 '문명의 충돌'로 향하고 있다고 봤다. 반면 또 다른 일각에서는 세계가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 아래 통합되어 더 큰 보편적 평화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봤다. 또 다른 학자들은 보편적인 글로벌 자본주의 제국이 떠오르고 있다고 판단했으며, 이 질서 안에서 주요 자본주의 강대국들이 연합해 세계를 지배하며 분할한다고 봤다. 그러나 이 논쟁은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자본주의의 역사는 전쟁과 갈등으로 가득 차 있었다. p.133
저자에 따르면, 미국과 중국이 ‘신냉전’으로 치닫고 있는 현 상황의 원인은 이데올로기 대립에 있지 않다. 이는 명확히 자본 간 경쟁에서 비롯됐고, 그것이 지정학적 충돌을 부추기고 있다. 이 책에서 그는 미국과 중국 기업들 사이의 변화가 두 나라의 정치적 관계 변화의 기저에 있다는 것을 논증한다. 중국 시장에서 미국 기업이 맞닥뜨린 압박이 커지면서 전반적으로 중국에서 사업 확장이 위축되었고, 불공정한 대우를 받았다고 알려진 일부 기업들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법적 조치에 의지하게 된다. 거기다 중국이 기술 자립을 위해 노골적인 경제 스파이 행위를 포함해 불법적인 도용이 벌어졌고, 그 결과 미국 기업들이 지식재산권 문제로 소송을 제기하는 사례도 늘었다. 그리고 광범위한 중국산 제품에 대해 높은 관세를 매겨 중국과 무역 전쟁에 돌입했던 트럼프 이후 새로 선출된 바이든 행정부조차 관세를 철회하지 않고 중국에 대한 대립적 정책을 계속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냉전 종식 이후 1990년대 미국과 중국 사이의 공생관계가 부상했다가 최근 몇 년간 이 관계가 미중의 경쟁관계로 대체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두 강대국이 전쟁을 향해 가고 있는지 아니면 더 조화로운 관계로 돌아갈 것인지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 책을 통해서 미중 경쟁의 경제적, 지정학적 기원을 살펴보고, 합법적인 글로벌 통치 기구의 중재와 중국과 미국 경제의 재조정이라는 갈등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두 가지 접근법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지면 좋을 것 같다. 저자는 미중 간의 관계는 악화될 게 분명하지만, 직접적인 군사 충돌보다는 WHO, WTO, UN과 같은 글로벌 통치 기구에서의 경쟁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하고 있지만, 앞으로의 어떻게 될지는 오직 시간만이 말해줄 것이다. 분량이 많지 않은 책임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수월하게 읽히는 책은 아니었다. 저자의 전작인 <차이나 붐>과 함께 읽으면 더 심층적으로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문제에 대해 접근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이 책의 한국어판에는 저자와 직접 상의해 책 본문에 포함되지 않았던 두 편의 대담과 한 편의 논문을 부록으로 수록해 책의 내용을 좀더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으니, 세계 정치 경제의 변화에 관심이 있다면 꼭 읽어 보길 추천해주고 싶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