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책들 편집 매뉴얼 2014 - 편집자가 알아야 할 편집의 모든 것
열린책들 편집부 엮음 / 열린책들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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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편집자가 알아야 할 편집의 모든 것을 담았다고 한다. 그래서 한글 맞춤법부터 표준어 규정, 외래어 표기법, 열린책들 편집 및 판면 디자인 원칙, 편집자가 알아야 할 제작의 기초 등에 대한 내용을 자세히 다루고 있는데, 사실 책을 쓱 훑어보기만 해도 다들 알 수 있다. 편집자 뿐만 아니라 일반 독자들에게도 필수 매뉴얼이라는 것을 말이다. 2008년에 시작된 편집 매뉴얼 집은 해를 거듭하면서 수정, 보완이 되었고, 이는 출판계에 종사하는 신입 편집자 뿐만 아니라 일반 독자들에게도 어문 규정의 얼개를 전달해주는 교본 역할을 해오고 있다. 스티븐 킹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저술은 인간이, 편집은 신이 한다: 라고. 그만큼 편집이란 언제나 100퍼센트의 완성도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는 말일 것이다. 한글 맞춤법, 외래어 표기, 문장 부호 사용법, 편집 실무와 제작, 납본에 이르기까지.. 물론 이런 과정을 거쳐서 출간된 책에도 가끔 오자나 탈자가 눈에 띄는데, 사람이 하는 일이니 어쩔 수 없겠지만 말이다.

 

틀리기 쉬운 철자 용례를 보자면, 우리가 흔히 일상에서 문서를 작성하거나, 회사 업무 관련 이메일을 쓰거나, 혹은 블로그에 포스팅을 하거나 리뷰를 올릴 때 헷갈리기 쉬운 철자들을 꽤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실제로 나는 <돼요> <되요> 또는 <결제> <결재> 아직도 가끔 헷갈릴 때가 있으니 말이다. 맞춤법이 틀린 게 아니라 해석이 달라지는 경우도 있고, 발음에 따라 사용법이 다른 것도 있어 새삼 한글의 위대함을 깨닫게 되기도 한다. 참 쉽고 간단한 원리지만, 올바르게 사용하려면 이렇게나 과학적인 규칙을 알아야 하니 말이다.

 

교열 시 순화해야 할 표기 용례를 보면, 국립 국어 원에서 광복 60주년이 되었던 2005년에 일상 언어생활에서 빈번하게 쓰이는 일본어 투 용어를 순화한 자료집을 발간한 적이 있다. 하지만 아직도 일상에서 우리가 무심코 사용하는 순화 해야 하는 단어들이 생각보다 많다. 순 일본어를 사용하거나, 일본어와 한글이 결합되어 있거나, 외래어를 일본식으로 읽거나, 일본어투는 아니지만 순화 해야 하는 단어까지 말이다.

 

붙여쓰기와 띄어쓰기의 경우는 더 어려워진다. 성과 이름, 성과 호 등은 붙여 쓰고, 이에 덧붙는 호칭어, 관직명 등은 띄어 쓰고, 지명이나 그에 준하는 고유 명사는 외래어에 붙을 경우 띄어 쓰고, 한자어나 고유어에 붙을 경우에는 붙여 쓴다. 컴퓨터에서 문서 작성 시에 자동 띄어쓰기 검열을 하기도 하지만, 우리가 흔히들 웹 상에 바로 글을 올릴 때 가장 많이 틀리는 경우가 바로 붙여쓰기와 띄어쓰기일 것이다.

 

맞춤법, 표준어 규정, 외래어 표기 법 등등 외에도 실제 편집자들이 알아야 할 제작의 기초가 함께 수록되어 있어, 책을 사랑하는 독자들의 흥미를 자극한다. 책의 판형, 본문 편집과 판 굽기, 인쇄 제작비에 이르기까지 세세한 내용들이 있어 책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궁금했던 이들이라면 매우 재미있을 만한 대목이다. 이 책은 마치 사전처럼 세세한 내용들과 색인 구분이 바로 되어 있어 찾아보기도 쉽게 만들어져 있다. 하지만 사전에 비해 일반 소설처럼 글자 크기가 크고 알아보기 쉽게 정리가 되어 있어, 틈날 때마다 들춰보면 여러모로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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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플 패키지 - 성공의 세 가지 유전자
에이미 추아.제드 러벤펠드 지음, 이영아 옮김 / 와이즈베리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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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의 세가지 유전자라는 부제만큼 이 작품은 특정 집단이 성공을 거두게 되는 원인을 낱낱이 분석하고 있다. 저자는 부모의 경제력, 교육 수준, 지능, 제도 등과 무관하게 높은 학업성취와 물질적 성공을 거두는 그룹들을 분석하여 트리플 패키지를 아래와 같이 추출한다.

우월 콤플렉스 SUPERIORITY COMPLEX 우수한 집단과 전통에 속한다는 자부심

불안감 INSECURITY 아웃사이더의 불안한 정체성/과도한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압박감

충동 조절 IMPULSE CONTROL 미래를 위한 부단한 노력과 인내

우선 "우월 콤플렉스"는 집단의 특별함, 비범함, 혹은 우월성에 대한 깊이 내면화된 믿음을 의미한다. 이는 종교적인 이유나 역사와 문명에서 비롯된 믿음, 혹은 사회적 신분 제도에 근거한 것일 수도 있다. "불안감"은 사회에서 자신이 어떤 가치를 지니고 어떤 위치에 있는지 확신하지 못하는 초조함과 불안, 근심을 말한다. 불안감은 우월감 콤플렉스와 팽팽한 긴장 관계를 이루는데, 이 긴장되고 불안정한 조합은 "내 능력을 보여주고야 말겠다"는 강한 성공 욕구를 낳는다. 충동 조절 능력은 시련이나 어려운 과제 앞에서 포기하고픈 유혹을 이겨내는 능력으로, 온갖 난관을 뚫고 나갈 강력한 추진력을 제공한다 

평등을 강조하는 미국에서 우월 콤플렉스를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소수민족들은 편경과 차별까지 견뎌내야 한다. 하지만 가장 성공한 집단들은 주변의 압박 속에서도 자신의 우월함을 계속 믿을 수 있는 방법을 어떻게든 찾아낸다고 한다. 대중심리학에서 불안감은 제거해야 할 병균이다. 한편, 가슴을 후벼 파는 결핍의 느낌은 성공의 욕구를 부채질한다. 사회적 멸시와 부모의 압박이 만들어낸 불안과 집단적 우월 콤플렉스는 강한 불만, '모두에게 보여주고 말겠다'는 승부욕, 그리고 결국엔 엄청난 성공으로 이어진다. 성공하는 사람들과 성공하지 못하는 사람들 사이의 결정적인 차이는 실패에 대응하는 방식에서 나타난다. 동기 부여, 뜨거운 출세욕만 가기고는 성공할 수 없다. 불운이 닥쳤을 때 의지를 잃지 않고 참을성있게 버티는 것 역시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그래서 가장 성공한 집단들은 후손들에게 충동 조절에 관한 이런 메세지를 전한다. "너희는 우수한 집단에 속하지만, 너희들 각자는 그리 훌륭하지 않다. 자제하고 유혹을 이겨내고 너의 능력을 증명해라."

스티브 잡스는 말할 것도 없고 게이츠와 저커버그는 동종업계 사람들 중 가장 열심히 일하고 가장 의욕적인 인물들이었다. 분명 창의성을 키우려면, 권위에 이의를 제기하고 도전할 수 있는 자유 (이런 자유가 부족한 중국은 이제껐 창의력에서 미국에 뒤져 있었다), 호기심을 갖고 자유롭게 연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여지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기초 지식을 습득하지 않는다면, 오랜 시간을 투자할 의지가 없다면, 실패를 딛고 일어서지 못한다면, 구글이든 페이스북이든 아이팟이든 발명할 수 없다.

 소설가이자 의사인 할레드 호세이니는 의과대학을 무사히 졸업하려면 어떤 자질이 필요하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자제력, 인내심. 끈기. 밤샘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의지... 믿음과 자신감이 흔들리는 시기를 잘 헤쳐나가는 능력. 극도의 피로를 피할 수 없는 현실로 받아들이기." 라고. 결국 획기적인 혁신과 기업가 정신을 위한 진정한 처방 또한 트리플 패키지라고 볼 수 있다. 성공을 위해서라면 어느 정도 행복을 포기해야하고, 더 높은 수준으로 스스로를 힘겹게 밀어붙일 때 희열과 자부심을 얻을 수 있으니 말이다. 트리플 패키지가 의미있는 인생을 약속해주지는 못하지만, 그런 인생을 가능하게 해준다는데 의의가 있다. 트리플 패키지를 갖춘 사람은 시간을 잘 통제하면서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까지 생각하고, 소박하게든 거창하게든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하며, 모든 능력을 총동원하여 그 변화를 이루어낼 수 있으니 말이다. 주석이 무려 책의 3분의 1에 해당될만큼 두터운 것만큼이나, 두 저자가 20년간의 연구로 밝혀낸 성공의 결정적 비밀에 대한 이 책은 그럴듯 하다. 성공하고 싶다는 욕망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반드시 이 책을 읽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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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겐슈타인의 조카]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비트겐슈타인의 조카
토마스 베른하르트 지음, 배수아 옮김 / 필로소픽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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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의 조카인 파울에 대해 저자인 토마스 베른하르트는 이렇게 말한다. 자신에게 큰 도움이 되었고, 어떤 경우에도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에게 유용한 방식으로 향상시켜준 사람, 그의 삶 자체가 가능하도록 빈번하게 자신을 지탱시켜준 사람이라고 말이다. 이 작품은 베른하르트의 친구인 '파울 비트겐슈타인에 대한 그의 인상을 옮기는 것이 전부'라고 스스로 말하듯이, 그것이 다이다. 그들의 기이한 우정과 친구가 죽고 나서도 베른하르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그것이 삶의 방향을 어떻게 가르쳐주었는지 말이다.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사랑이 있고, 그것만큼이나 다양한 종류의 우정이 있다. 이 작품은 그 중에서도 가장 독특하고, 유별나고, 기이한 어떤 우정에 대한 기록이 될 것이다. 단락 나누기 없이 길게 이어지는 단조로운 모놀로그가 다소 지루할 수도 있지만, 조금만 그의 내면을 따라가다 보면 이들의 평범하지 않은 우정에 귀를 기울이게 될 수 있다.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비트겐슈타인이란 이름은 높은, 아니 최고의 수준을 보장했다. 미치광이로서 파울의 수준은 철학자로서 루트비히의 수준을 분명 따라잡았다. 우리가 철학을 철학이라 부르고 정신을 정신이라 부르며, 그런 어휘들이 지칭하는 것, 즉 도착된 역사 개념을 광기라고 부른다면, 그러면 한 명은 전적으로 철학과 정신의 역사에서 최고봉에 도달했고 다른 한 명은 전적으로 광기의 역사에서 최고봉에 도달한 것이다.

 

베른하르트의 기존 작품들은 사생아라는 축복받지 못한 탄생부터, 어머니로부터 버림받았다는 것과 아버지의 부재로 인한 어두운 그늘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그래서 작가, 문화계 인사들에 대해 지독하게 냉소했고, 실제 그가 수상을 할 때 수상소감으로 크게 사회적인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결코 평범하지 않게 시작된 그의 생은 고스란히 작품 세계에도 이어졌고, 그런 그의 삶이 반영된 자전적인 작품들은 곧 그라는 인물에 대한 보고서와도 같다. 누구나 자신의 생에 '결정적인 인물'이라고 생각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부모님이 될 수도 있고, 배우자나 연인이 될 수도, 혹은 친구나 형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숱한 사랑을 만나고, 헤어지고, 더 많은 이들과 관계를 맺으며 우정을 나누고, 결별을 한다. 잠시 스쳐 지나간 인연이라도 소중하지 않을 리 없겠지만, 대부분은 기나긴 삶 속에서 그저 흘러가거나 잊혀지게 마련이다. 하지만 그 중 몇몇은 죽는 그 날까지 영향을 미치고, 마음 속에 남아있게 된다.

 

우리들 스스로가 잘 알고 있듯이 사람은 나이 들어 갈수록 나날이 더욱더 노련한 술책으로 있는 묘안 없는 묘안을 짜내서 적당히 견딜 만한 삶의 상태를 스스로 조성해야 한다. 그런 병적인 추가 부담이 없이도 이미 한계치에 다다를 만큼 지쳐 버린 머리를 더욱 혹사해서 말이다. 그런 견딜 만한 상태에 이른 다음 간혹 우리는 남다른 의미를 지닌 서너 명의 사람을 떠올리게 된다. 우리가 완전히 포기하지 않도록 장기간 도움의 손길을 베풀었을 뿐 아니라 우리에게 매우 큰 영향력을 미친 사람들, 우리 존재의 결정적인 순간과 시기에 모든 것을 의미했으며 그리고 실제로 전부이기도 했던 사람을 말이다.

 

폐병으로 늘 병원을 들락거려야 했던 베른하르트는 질병과 고립으로 자살 충동에 시달렸고, 이유를 알 수 없는 광기로 정신 병원을 들락거려야 했던 파울 비트겐슈타인을 만나면서 독특한 우정을 쌓아갔다. 그들이 만났을 때 파울은 이미 죽어가는 시점이었지만, 그들의 우정으로 인해 베른하르트는 살아갈 힘을 회복한다. 12년간 죽음에 하루하루 가까워져 가는 한 친구와 그 친구가 죽어 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다른 친구의 기이한 우정은 어떻게 보면 그로테스크하고, 어떻게 보면 매우 독특한 재미를 찾을 수 있기도 하다. 독백하는 듯한 베른하르트 특유의 문체는 문단 구분도 없고, 플롯도 없이 반복적으로 서술되고 있어, 초반에 집중하기가 좀 어렵긴 하지만, 이것이 베른하르트의 작품 가운데 가장 부드럽고 인간적이며 유머러스 한 작품으로 꼽힌다고 하니, 그의 세계에 입문하기에는 딱 좋은 작품이 아닌가 싶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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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
김중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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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죽는다면 뭘 남기고 뭘 버려야 할까? 다른 사람들에게 절대 보여주고 싶지 않은 것. 내일 바로 곧바로 죽게 된다면 문제가 생길 것들,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만한 것들, 사람들이 오해할 만한 것들, 내 이름을 더럽힐 수도 있는 것들..."

주인공 구동치 탐정은 누군가 자신이 죽고 나서 없애달라고 의뢰한 것들을 없애주는 '딜리팅'이라는 일을 한다. 그가 하는 일이란 죽은 사람들의 휴대전화기를 찾아 없애주고, 죽은 사람의 컴퓨터를 망가뜨리고, 죽은 사람의 일기장을 찾아서 갈기갈기 찢고 불태우는 것이다. 사람들은 많은 걸 없애려고 한다. 자신의 평판 때문에, 비밀이 알려지는 걸 두려워해서, 누군가를 보호하기 위해서, 수많은 이유 때문에 많은 걸 없애려고 한다. 그리고 그런 이들은 딜리팅 일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다음에 구동치를 찾게 된다. 딜리팅이란 의뢰인이 죽고 난 다음에 없앨 물건을 정하고, 기본 가입으로 세 품목까지 가능하다. 한도시간은 5. 구동치는 그 안에 계약서에 명시된 물건을 모두 없애야 한다. 세상에 비밀 하나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누구에게나 숨기고 싶은 비밀이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우리 모두 불완전한 사람이기에 누구라도 실수를 저지를 수 있고,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타인에게 해를 가할 수도 있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후회할 일들 투성이인 게 우리네 인생 아닌가. 죽고 나면 뭐 다 그만 아니냐고? 삶이 어디 그리 녹록한가. 나는 죽지만 나의 가족들, 친구들, 회사 동료들, 지인들.. 나를 기억하는 수많은 이들에게 내가 남겨놓은 무언가로 인해 피해를 주거나, 내 이름을 더럽힐 수도 있는 것들이 있다면 편치 않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미리 죽기 전에, 딜리팅을 의뢰하는 것이다. 내가 죽게 되면 이런 것들을 없애주세요. 마누라 몰래, 혹은 사업 동업자 몰래, 친구 몰래, 연인 몰래 숨겨놓았던 것들, 그들이 알게 되면 상처 받을 만한 것들을 말이다.

김중혁 작가의 책은 항상 기발한 소재와 재기발랄한 필체로 기억되곤 하는데, 이번 작품 역시 단박에 나를 사로잡은 제목부터 페이지가 술술 넘어가는 이야기이다. 누군가의 비밀을 들어주고, 그걸 묻어주는 일을 하는 탐정이라는 캐릭터부터,  딜리터deleter’ 혹은딜리팅deleting’이라는 설정까지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야기꺼리는 자유로운 상상력의 작가 답게 서두를 화려하게 열어준다. 음식물 쓰레기, 곰팡이와 사람 냄새가 뒤섞여 독특한 냄새가 나는 어둑한 4층짜리 건물 악어빌딩에 있는 탐정 사무실이 그 배경이다.

"당신은 그토록 무미건조한 월요일에 나를 찾아왔군요. 이 세상의 덧없음을 아는 사람이여, 나에게 비밀을 말해주세요. 비밀의 그림자는 국경을 넘고 바다를 건넙니다. 우리의 사랑만이 덧없는 세상을 이겨낼 수 있는 힘, 나에게 비밀을 말해주세요. 비밀의 그림자는 월요일처럼 길고 길어요."

이 작품은 무엇보다 악어빌딩의 사람들이 각각의 개성으로 이야기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준다. 철물점 백기현, 합기도장 차철호, 레스토랑 쉐프 박찬일, 피씨방 알바 이빈일, 드라마 보조작가 오윤정.. 그리고 선배 형사인 김인천과 원수도장 사람들까지. 투박하고 정겨운 우리네 이웃처럼 평범하다가도, 뭐 저런 인간이 다 있어 싶게 독특한 색깔을 가지고 있는 이들 캐릭터야말로 딜리팅이라는 소재의 가치를 훨씬 뛰어넘는 이 작품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구동치가 본격적으로 딜리팅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인 소설가와 그가 딜리팅 일을 결국 그만두게 만드는 결정적인 사건의 선배 형사 김인천은 특히 기억에 많이 남는 인물이다. 하루에도 수십 수백 개의 문장을 썼다가 지워야 하는 소설가는 자신의 작품 외에 수많은 습작과 일기 등을 모두 없애버리길 원했다. 그렇게 썼다가 지우는 그 작업을 통해 새로운 걸 또 쓸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지우다 지우다 마지막에 남는 것들만이 살아남을 가치가 있기 때문에, 그런 것들은 대중에게 공개되어서도 안 되고 태워 없애 버려야 한다고. 그렇게 지우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고 말이다. 구동치의 선배 형사 김인천 또한 다른 종류의 글이지만, 틈만 나면 쓰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어떤 정보가 생기면 무조건 수첩에 적었던 것이다. 스쳐 지나간 자동차 번호, 용의자의 인상 착의, 가방의 색깔, 가방을 드는 모습, 가방 끈의 길이, 티셔츠의 그림, 바지의 색깔, 안경의 모양 같은 것들 말이다. 그런 그가 다른 사람들 몰래 소설을 쓰고 있었다. 틀린 맞춤법에, 묘사도 어색하고, 대사도 이상한 수준 미달의 작품이었지만, 그에게는 그것이 일상에 감추고 있던 뜨거운 심장이었던 것이다. 현실에서는 잡히지 않았던 범인이 죽도록 두들겨 맞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지만 실제로 일어나기도 했던 이야기, 아무도 모르는 이야기를 그는 그렇게 소설로 풀어내었고, 구동치는 선배와 자신만 아는 그 비밀의 이야기들을 읽으며 기묘한 흥분을 느끼곤 했다고 추억한다.

살아 있으면서 더 많은 사람에게 사랑 받으려는 마음이 삶을 붙잡으려는 손짓이라면, 죽고 난 후에 좋은 사람으로 남아 있으려는 마음은, 어쩌면 삶을 더 세게 거머쥐려는 추한 욕망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죽으면 그만 다 끝이라는 생각보다는 죽어서도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다는 마음을 그 누군들 가지고 싶지 않겠는가.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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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야기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알레산드로 바리코 지음, 이세욱 옮김 / 비채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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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너를 사랑하는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절대로 그의 꿈을 망가뜨리지 말아야 해"

꿈을 향해 전력을 다하고 싶어도 좀처럼 그럴만한 여유를 내어주지 않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다. 특별히 우리의 능력이 뒤떨어지거나, 우리가 무언가를 잘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세상이란 원래 그렇게 생겨먹은 거라는 걸 다들 알 것이다. 죽기살기로 매달리는 누군가의 꿈에는 그만한 대가가 필요하며, 그들 인생에는 대부분 고통과 좌절, 비난과 조롱이 가득하게 마련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소중한 꿈을 결국 포기하고 만다. 왜냐하면 세상은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고, 아무리 혼자 미친 놈 소리 듣는 게 상관없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가족, 친구들을 힘들게 만들면서까지 얻어내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에 휩싸이기 때문이다. 어렵게 말을 꺼내는 누군가가 사실 내 꿈은 이런 거야. 나는 언젠가 이런 일을 해 볼 거야. 라고 자신의 꿈을 내보이면, 주변 사람들은 건성으로 열심히 해보라고 대꾸는 하지만, 대부분 아직도 저런 허황된 생각을 하다니 언제 철이 들래나 하는 표정을 숨기지 못한다. 물론 그런 주변 사람들이 나쁘다고만은 볼 수 없다. 현실에서 벗어난 꿈이란 의심스러운 게 당연한 것이고, 그들 또한 매일매일 열심히 살기 위해서 노력하는 이들이니 말이다. 그래서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믿어 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무모해 보이더라도 그것을 시간 낭비라고 탓하지 않고, 그리는 꿈을 단 한 번도 의심하지 않고, 변함없이 격려해주는 사람 말이다. 믿어주는 사람이 단 한 명만 있어도 꿈은 이어지니까 말이다.

 

몇 해 동안 다른 것은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죠. 무엇을 보든 내 눈에는 그것이 길로, 자동차가 달리는 길로 보였어요. 그건 내 아버지가 주신 선물이었고 오로지 우리 머릿속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이었어요...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 길을 보았고 상상 속에서 그 길들을 달렸습니다. 믿기지 않으실지 모르지만, 나는 소년 시절에 머릿속에 숱한 길을 그리고 그 길들 위로 자동차를 몰고 다니면서 시간을 보냈어요. 나는 그런 방식으로 나만의 세계를 만들었어요. 그 시절에 나는 이런 식으로 미래를 그렸어요. 세상엔 수많은 길들이 있을 것이고, 우리는 엔진의 힘을 이용해서, 그리고 우리의 상상력과 용기를 또 다른 동력으로 삼아 그 길들을 주파하게 되리라고 말이에요.

 

알레산드로 바리코의 '이런 이야기'에서 바로 그렇게 끝까지 꿈을 포기하지 않고 기어이 도달하려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 이 작품은자동차로 상징되는 물질문명을 처음으로 맞이한 20세기 초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마을에서 처음으로 자동차 정비소를 차린 아버지 리베로와 그의 곁에서 자동차가 질주하는 길에 매혹을 느끼게 되는 어린 소년. 그리고 자동차 경주에 열광하는 담브로시오 백작이 울티모네 가족과 만나게 되면서 리베로와 담브로시오는 랠리 경기에서 엄청난 스타가 되기도 한다. 울티모가 꿈꾸는 길은 아무도 상상해본 적 없는 길, 시작하는 곳에서 끝나는 길, 세상 어디로도 통하지 않고 자기 자신에게로 통하는 길, 지상의 모든 길을 하나로 아우르는 길, 길 떠난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다르고 싶은 자동차 서킷이다. 모두가 자동차에 열광하고 랠리에 빠져들던 그 시절, 울티모는 자동차가 아니라 ''에 매혹된 것이다. 그런 그의 눈에 몇 해 동안 다른 것은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는 언제 어디서든 길을 보았고, 상상 속에서 그 길들을 달린다. 그렇게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 가던 울티모는 세상엔 수많은 길들이 있을 거라고 믿고, 엔진의 힘과 더불어 상상력과 용기를 또 다른 동력으로 삼아 그 길들을 주파하게 될 거라고 꿈을 꾼다.

이 작품은 여러 화자가 이야기를 이어가는 서사 기법을 보여주는데, 이는 형식적인 면에서 독특한 것은 물론 아니다. 예를 들어 오쿠다 히데오의 '소문의 여자' 혹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올리브 키터리지'를 떠올리면 될 것이다. 단편집처럼 제 각각의 스토리가 이어지는데, 각각 스토리의 화자 혹은 주요 인물이 매번 바뀌면서 전개되는 형식이다. 물론 주인공은 매번 스토리에 등장하며, 어떤 때는 주요 사건의 키로, 어디서는 배경으로, 다른 곳에서는 조연이나 단역으로 종종 이야기를 함께 꾸려나가는 것이다. 알레산드로 바리코의 이야기에서는 울티모가 아버지 리베로와 함께 자동차와 길에 대한 꿈을 키워가는 스토리에 이어, 울티모가 전쟁터에서 만난 두 전우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그가 사랑했던 엘리자베타와 함께 피아노가 실린 유개트럭을 타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던 시절, 활주로를 함께 걷던 울티모 형제, 고향마을 술집의 여주인과의 만남 등등으로 전개된다. 언어로 만들어진 음악이라는 평을 듣는 바리코의 작품답게 언어는 매우 아름답고, 스토리는 유기적으로 짜여 마치 오케스트라의 연주처럼 삶을 펼쳐낸다.

 

내가 보기엔 사람들이 오래 사는 것 같아도 사실은 안 그래. 사람들이 진정으로 사는 시간은 그 긴 세월의 작은 부분일 뿐이야. 다시 말해서 자기가 무엇을 위해 태어났는지를 알고 그것을 성공적으로 해내는 시기에만 진정으로 살았다 할 수 있어. 그런 시기에 사람들은 행복해. 나머지 세월은 기다리거나 추억하는 시간이야. 기다리거나 추억하는 때에는 슬프지도 행복하지도 않아. 슬퍼 보이기는 하지. 하지만 그건 그저 기다리고 있거나 추억하고 있기 때문이야. 기다리는 사람들은 슬프지 않아. 추억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야. 그들은 그냥 멀리 있는 것뿐이야. 나는 기다리고 있어.

 

울티모는 자신이 하나의 서킷을 건설하기 위해 태어났다고 생각한다. 오로지 경주용 자동차들만 달리는 길 말이다. 아무데로도 통하지 않고 닫혀 있는 길, 돌고 또 돌지만 어디에도 이르지 않는 길.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자기만의 길을 만들어보려고 하는 것이 바로 그의 꿈이다.

"나는 무언가를 하기 위해서 태어났어. 그 일을 하는 때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지."

울티모가 어린 시절 겪은 아버지의 사고와 인간성을 말살하는 전쟁 통에 겪은 친구의 배신, 그리고 어설프고 어긋났던 사랑은 그의 인생에 굽이굽이 길을 만들어낸다. 아버지 리베로와 아들 울티모는 20년 가까운 시차를 두고 엘리자베타에게 똑같은 말을 하는 걸 보면 그들 부자가 서로에게 어떤 존재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들 두 부자는 어떤 계기를 통해 자기가 무엇을 하기 위해 태어났는지를 깨닫고 그 운명을 끝까지 밀고 가려는 사람들 인 것이다. 아주 먼 세월이 흐른 뒤 엘리자베타는 울티모가 만든 서킷을 찾아낸다. 수 십 년의 시간에 걸쳐 그의 꿈이 현실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울티모가 서킷을 만들어내려는 것이 어느 젊은이의 덧없는 꿈이 아니라 한 어른의 차분한 결심에서 비롯된 거라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그녀 또한 그처럼 인내심을 잃지 않고 해마다 계절의 어김없는 순환을 믿는 사람들처럼, 터무니없는 상상을 실제 눈에 보이는 결과물로 만들어낸 것이다. 오로지 하나만 바라보고, 그것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노력하고 포기하지 않는 이들의 눈부신 이야기는 누구라도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꿈을 이룰 수 있다는 믿음을 주게 하기에 충분하다. 어디선가 꿈꾸는 자가 나타나면 다른 곳에서는 그것을 비웃는 자가 등장하게 마련이다. 꿈을 향해 달려간다는 것은 굉장히 외로운 일이다. 그러나 의심하지 말자. 나를 믿어주는 사람이 세상에 단 한 명만 있어도 그 꿈은 이루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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