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귀한 때, 나무나 여러해살이풀의 겨울눈을 보는 맛이 제법이다. 크기나 모양, 털이 있고 없는 것들을 보며 나무나 풀의 잎과 꽃을 상상하는 재미가 보통이 아니다. 

봄이 오는 길목에서 참나무 종류로 보이는 나무의 겨울눈과 눈맞춤한다. 두 눈에 입술까지 메뚜기 얼굴을 닮은 녀석이 참으로 씩씩하게도 보인다. 월동아越冬芽라고도 하는 이 겨울눈은 나무나 여러해살이풀이 여름부터 가을에 걸쳐 겨울을 지내기 위해 만드는 눈으로, 봄에 새싹이 나올 수 있도록 겨울내내 보호된다. 이 겨울눈이 열리면 새싹이 돋아나는 봄이다. 

세상 무엇하나 같은 것이 없다. 차갑고 긴 겨울 견디며 봄을 준비하는 모든 생명들 또한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 다름으로 인해 나와 네가 공존하는 근거가 된다. 이 다름을 틀림으로 보거나 다르다는 그 자체를 인정하지 못하면서부터 공존은 무너진다. 무너진 공존은 다름의 한 축만을 제거시키는 것이 아니라 양자 모두를 소멸시킨다.

만물의 영장이라 자처하는 사람만이 이 차이를 틀림으로 구분하여 서로 공존할 근거를 소멸시키고 있다. 겨울눈과 눈맞춤하는 이 시간 볕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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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이슬'
밤사이 살포시 내린 눈이 겨울숲의 색조를 특별하게 한다. 이 특유의 빛으로 겨울을 기억하는 한 함께 떠오를 이미지다. 눈과 적당한 그늘과 숲의 서늘함까지 고스란히 담는다.


꽃이 진 후 열매로 만났으니 이제 때를 놓치지 않고 꽃을 볼 수 있어야 열매의 특별한 이유를 더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마치 수많은 다리로 살아야하는 생명을 보듯 경외감으로 다가온다. 동물들의 털에 붙어 서식지를 넓혀야 하는 생존의 문제가 여기에 있었을 것이다.


'털이슬'은 이슬처럼 매달린 열매에 털이 잔뜩 난 모습에서 유래한 이름이라고 한다. 꽃은 8월에 흰색으로 줄기 끝이나 잎겨드랑이에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며 여러 개씩 달린다. 꽃받침 잎은 녹색으로 2개이고, 흰색의 꽃잎도 2개이며 끝이 2갈래로 갈라진다.


그늘진 숲에서 새싹을 돋아 꽃피고 열매 맺기까지 작고 작은 생명이 겪어야 하는 과정은 기다림의 연속이 아니었을까. '기다림'이라는 꽃말이 이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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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매探梅' 4
촉촉하게 비가 내린다. 입춘 지났으니 봄비라 우겨도 될 것이지만 차가움은 여전하다. 언 땅 녹이며 파고들고 나무 가지마다 물 오르는 소리 들리는 듯도 하다.

춘우春雨

春雨細不滴춘우세부적
夜中微有聲야중미유성
雪盡南溪漲설진남계창
草芽多小生초아다소생

봄비 가늘게 내려 방울지지 않더니
밤 되니 희미한 빗소리 들리네
눈 녹아 남쪽 시냇물이 불어나니
봄풀의 싹이 얼마나 많이 돋아 났을까

*고려 사람 정몽주의 시 '춘우春雨'다. 봄비는 약비라 했다. 잠자던 모든 생명을 깨우고 힘차게 펼쳐질 봄날의 향연을 준비하는 봄비다.

뜰 가운데 꽃망울 머금은 매화가지에 물오른듯 생기가 돈다. 봄 기운 전하는 빗방울 품고 더 짙어질 향기를 건낼 꽃피는 그날을 기다린다.

비가 전하는 생명의 뜻을 품은 땅의 기운이 마음에 꽃으로 피어날 그때가 봄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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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나무'
굵은 가시로 무장하고서도 스스로를 지킬 수 없다. 하여 빨리 키을 키워 높이 올라가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억센가시와 연녹색의 새순으로 기억되는 나무다. 유독 빨리 자란다. 억센 가시로 자신을 더 돋보이게 한다. 자구지책이지만 새순을 지키기 위한 몸부림이다.


이른봄 넓고 푸른 잎이 주는 알싸한 맛에 봄이면 나무 곁을 서성이며 틈을 노리다가 어느순간 툭 꺾인다. 특유의 맛과 향으로 식도락가들이 아니라도 좋아한다. 음나무는 올해도 키을 키우기는 틀렸나 보다.


험상궂은 가시가 돋아 있는 음나무 가지는 시각적으로 귀신이 싫어한다고 생각한 옛사람들은 음나무를 대문 옆에 심어두거나, 가시 많은 가지를 특별히 골라 문설주나 대문 위에 가로로 걸쳐 두어 잡귀를 쫓아내고자 했다.


꽃은 더운 여름날 가지 끝마다 모여 연노랑 꽃이 무리를 이루어 핀다. 가을 단풍이 드는 커다란 잎도 볼만하다.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신방리 음나무는 천연기념물 제164호,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의 음나무는 천연기념물 제306호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가시가 엄嚴하게 생겨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엄나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국가식물표준목록에는 음나무로 등록되어 있어 음나무로 불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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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그곳에 갔다. 뽀송뽀송한 솜털을 세우고 세상구경 나올 그 녀석을 보기 위함이다.


계곡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길마가지 나무는 여전히 피고지기를 반복하며 반긴다. 어제밤 흩날리던 눈이 그대로 쌓여있고 그 흔한 동물발자국 하나 보이지 않는다. 목적지에 당도하여 앉아 가만히 눈이 겨울숲에 익숙하도록 기다리며 반가운 녀석이 보일까 두리번거리지만 아직 때가 아니라는듯 하나도 볼 수가 없다. 노루귀하고 숨바꼭질하는 것이 이번이 여섯번째다.


잔설이 남아 겨울 숲의 운치를 더한다. 요즘 보여주지 않으면 볼 수 없는 것임을 여실히 체험하는 때라서 기대는 하지 않았다. 숲을 나오는 길 그래도 허전함은 숨길 수 없다. 보여줄 때까지 다시 오면 되지 뭐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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