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덟 살 이덕무
이덕무 지음, 정민 옮김 / 민음사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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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으로 내 삶의 거울을 삼아야 할까

옛사람들의 글을 읽다가 내가 사는 이 시대와는 사뭇 다른 삶을 살아간 모습에 보면서 종종 놀라는 일이 있다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상상을 초월하는 삶의 태도를 접할 때가 그 중 하나다꽤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삶을 꾸려가는 태도를 보면 지금의 나이와는 비교가 불가할 정도로 차이가 난다무엇이 그런 차이를 만드는 것일까사람들이 삶을 영위하는 생각과 태도는 자신이 살아가는 시대를 반영하기 마련이다.그렇다면 205여 년을 사이에 둔 차이를 어떻게 이해하는 것이 맞을지 여전히 의문이다.

 

이런 의문을 갖는 까닭은 열여덟 살 이덕무가 지었다는 글을 읽으면서 드는 당혹스러움으로 시작된다이덕무의 무인편戊寅篇은 실린 짧은 문장들에 담긴 자기성찰의 내용은 현대 나이로 열여덟 살과 비교가 가능한 일일까열여덟 살이 아니라 중년의 나이에 들어선 나 스스로를 돌아봐도 쉽지 않은 내용들이다.

 

이덕무(李德懋, 1741~1793)는 18세기 조선의 문예 부흥을 주도한 문장가이자 북학파 실학자이다홍대용,박지원박제가유득공 등과 교류하였으며 사가시인(四家詩人)의 한 사람으로 청나라에도 이름을 알렸다.정조에 의해 규장각 검서관으로 발탁되어 정조의 총애를 받으며 활동하였다사후에 어명으로 유고집 아정유고(雅亭遺稿)’가 규장각에서 간행되었으며여러 저작을 묶은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가 있다.

 

이 책 열여덟 살 이덕무는 이덕무가 "열여덟 살에서스물세 살 나던 젊은 5년간의 기록들이다이를 정민 교수가 옮겨 번역하고 자신의 해설을 엮어 발간한 책이다여기에 수록된 글은 무인편戊寅篇’, ‘세정석담歲精惜譚’, ‘적언찬適言讚’, ‘매훈妹訓’ 으로 젊은 날 이덕무가 세상과 스스로를 바라본 태도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이야기 되는 글들이다.

 

여기서 관심이 가는 글은 공부하며 스스로 경계로 삼아야 할 내용을 짤막한 글로 써서 모은 무인편과 쾌적한 인생을 살기 위한 여덟 단계 적언찬이다특히무인편의 첫 번째 글인 거울과 먹줄은 길게 잡더라도 반평생을 훌쩍 넘긴 사람이 읽어도 자성하게 만드는 내용에 머리가 서늘해진다.

 

여기에 적언찬병서(適言讚幷序)에 담긴 식진(植眞), 관명(觀命), 병효(病?), 둔훼(遯毁), 이령(怡靈), 누진(?陣), 간유(簡遊), 희환(??등 여덟 가지 단서는 진실한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적언찬병서(適言讚幷序)는 이덕무가 벗인 삼소자 윤가기의 책 적언(適言)‘의 여덟 장절에 자신이 시를 지어 선물했던 내용이다.

 

나이를 무색하게 만드는 간담이 서늘해지는 내용들을 접하며 이덕무의 삶을 한층 더 가깝게 볼 수 있는 기회다무엇으로 남은 삶을 꾸려가야 할지 성찰의 시간을 제공해주는 이덕무의 젊은 날의 초상이 서늘하게 다가온다이덕무의 무인편 첫 번째 글을 다시 읽는다.

 

거울을 닦듯 마음을 닦고먹줄을 치듯 몸가짐을 곧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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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칼 - 소설 동성왕
김현빈 지음 / 주류성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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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처럼 굳어라내 도우리라

한반도 역사에서 삼국시대의 주역으로 한 나라를 이뤄 역사 속에 당당한 존재를 과시했고 그 역사적 기록이나 유물 역시 남아 있지만 고구려나 신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그 가치를 왜곡하거나 축소한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 있다.

 

잊혀진 역사 백제망한 나라는 역사의 기록도 사라진다고 했던가유독 백제의 역사만 전하는 바가 많지 않다더 나아가 있는 역사적 기록이나 유물도 그 가치만큼 주목받지 못하는 듯하다그래서 백제 관련 책이 발간되면 늘 관심을 가지게 된다그것이 소설이라도 주목하고 찾아 읽는다.

 

소설 동성왕 '백제의 칼'은 충남 공주에 있는 무령왕릉의 주인공 무령왕의 아버지 동성왕의 이야기다동성왕에 대한 역사기록을 찾아보면 다음과 같은 기록들이 현존한다.

 

"동성왕은 성은 부여(扶餘), 이름은 모대(牟大), 시호는 동성(東城)이다이름을 따서 모대왕(牟大王)이라고도 한다삼국사기에는 이름이 마모(摩牟)라고도 한다고 기록되어 있고삼국유사》 왕력편에는 마제(麻帝)나 여대(餘大)라고도 한다고 되어 있다."

 

"동성왕은 신라와의 동맹을 기초로 국방체제를 정비하여 고구려의 남하를 막아냈으며웅진 천도 이후의 정치적 혼란을 수습하여 왕권을 강화했다."

 

"동성왕은 대규모 토목사업과 거듭된 자연재해로 점차 민심을 잃었다자객에 의해 동성왕이 죽은 뒤 둘째아들인 무령왕이 왕위를 이었다."

 

백제가 한성백제에서 고구려의 남진정책에 의한 전쟁에서 패배한 후 웅진백제 시대를 열고 그 중흥의 문을 열었다고 평가받는 동성왕에 대한 역사의 기록들이다이런 흔적들을 조합하더라도 한 왕에 대한 이야기를 따라가기에는 상상력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추락한 왕권귀족들의 권력다툼고구려신라와의 전쟁 등 복잡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왜에 있던 모대는 귀족들의 수장인 진로에 의해 어라하로 결정되어 본국 백제 왕에 등극한다신권이 왕권보다 강한 정치정세를 극복하고 왕권을 강화를 바탕으로 국내 정치권력의 재편과 국제적 관계에서 독립성이 획득 과정을 역사적 기록과 작가의 상상력이 더해져 동성왕의 유년기부터 죽음까지를 그린 작품이다.

 

여기에다 중국의 사서에 기록되어 있으나 논란이 되고 있는 백제와 북위의 전쟁과 이의 지역적 근거가 되는 위서 백제에 대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이야기rk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은 작가의 역사를 보는 시각에 어떤 것인지를 짐작케 한다. 아쉬운 점은 문장과 문장사이 장면의 전환이나 이야기의 흐름상 앞 뒤가 구분되어야 하는 내용이 혼재되어 있다. 이야기를 따라가기 버겁게 하는 요소다.

 

잊혀져가는 백제 역사의 한 시대를 통해 백제가 어떤 힘을 가진 나라였는지를 상상할 실마리를 얻는 기회가 된다이를 계기로 백제 역사가 더 주목받는 기회가 되길 바래본다모대의 아버지 곤지가 말했다는 산처럼 굳어라내 도우리라에 소설 동성왕 '백제의 칼'에서 하고 싶었던 작가의 본심은 아닐까 유추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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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힌 등이 다르니 비는 소원도 다르다. 그 어떤 등이든 모든 등은 어둠을 밝히는 자신의 소명에 충실하다. 무슨 등을 달든 그 속에는 간절함이 담긴다.

연등 대신, 내 마음 미망迷妄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길을 밝혀줄 등불을 켠다. 저길 끝나는 곳에 그대가 있음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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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년화'
짙노란 꽃잎이 길게 갈라져 풍성하게 보인다. 보는 이의 마음 속에 이미 풍성한 꽃이 피었다는 이야기리라. 이 만발한 꽃 모양으로 인해 풍년화라고 부른다.


풍년화는 일본이 원산이며 낙엽지는 키작은 나무다. 중부 이남에서 관상용으로 심고 있다. 잎은 어긋나고 사각상 원형 또는 도란형이다.


꽃은 3~4월에 잎보다 먼저 피고 황색이다. 꽃잎은 4개이고 다소 쭈글쭈글하다. 수술은 4개, 암술은 1개이며 암술대는 2개이다.


열매는 구형이고 짧은 면모가 밀생하며 2개로 갈라진다. 종자는 검고 탄력으로 튀어나온다.

'저주', '악령' 이라는 다소 의외의 꽃말을 가젔다.


봄비가 내린다. 모든 생명에게 약처럼 귀한 것이 봄비라고 한다. 흡족한 봄비로 올해도 풍년이 들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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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을 끓이며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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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자신의 글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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