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사이 차가운 날이야 그러든말든 부지런해진 해는 그 환한 빛을 마음껏 펼치고 있다. 무겁게 내리 앉은 서리도 논 가운데 얼음도 이내 사라질 모습이기에 한번이라도 더 붙잡아두고자 욕심낸 마음으로 서둘러 나선 길에 다소 긴 눈맞춤 한다.

다시, 알싸한 아침 공기의 맛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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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다지'
산골 그것도 오지나 다름없는 곳에서 만났다. 밭이랑 사이에 노랗게 핀 자그마한 꽃이 이뻐서 한참을 들여다 본다. 먼산에 피는 꽂이나 보기 어려운 꽃에 관심을 갖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겠으나 기본은 내 삶의 반경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꽃에 더 주목한다. 그런 의미에서 몇가지 식물이 있다.


'꽃다지1' (김애영 작사)
그리워도 뒤돌아 보지말자/작업장 언덕길에 핀 꽃다지/나 오늘밤 캄캄한 창살아래/몸 뒤척일 힘조차 없어라/진정 그리움이 무언지/사랑이 무언지 알 수 없어도/쾡한 눈 올려다본 흐린천장에/흔들려 다시피는 언덕길 꽃다지


이 노래에 나오는 꽃다지도 그 중 하나로 내 젊은날의 가슴에 담겼던 노래들 중에 "빨간 꽃 노란 꽃 꽃밭 가득 피어도~따스한 봄바람이 불고 또 불어도"로 시작되는 '사계'와 더불어 노찾사의 노래 '꽃다지'에 등장한다.


꽃다지는 우리나라 곳곳의 들에서 자라는 2년생 풀로 꽃은 3월부터 5월까지 피며, 원줄기나 가지 끝에 여러 송이의 꽃이 어긋나게 달리며 옆으로 퍼진다. 열매는 7~8월경에 편평하고 긴 타원형으로 달린다.


꽃다지 이름은 '따지'에서 왔다. 꽃차례가 아래에서부터 위로 향해 꽃이 피고, 열매 맺으면서 올라가며, 차례로 하나씩 피고 닫아가는 모양에서 붙여진 이름일 것으로 추정한다.


겨울을 이겨낸 봄나물들 사이에서 피어나지만 주목받지 못해서일까? '무관심'이라는 꽃말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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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 사람'

"'차거此居'는 이 사람이 이곳에 산다는 말이다. 이곳은 바로 이 나라 이 고을 이 마을이고, 이 사람은 나이가 젊으나 식견이 높으며 고문古文을 좋아하는 기이한 선비이다. 만약 그를 찾고 싶으면 마땅히 이 기문記文 안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무쇠 신발이 다 닳도록 대지를 두루 다니더라도 결국 찾지 못할 것이다."

*혜환 이용휴의 산문이다. 이곳에 사는 이 사람은 누구일까. 이용휴는 이 사람에 대해 더이상의 다른 말이 없다.

궁금증에 결국 '이 사람'의 자리에 '나'를 대입해 본다. 어렴풋이 짐작되는 바가 없지는 않으나 이 또한 확실치 않으니 역시 아는 바가 미진한 까닭이리라.

비웠다. 무엇인가로 가득 채우기 위해 온 정성을 다했을 꽃의 진 자리다. 허망하거나 아쉬움이 아닌 뿌듯한 자부심의 자리로 읽힌다. 삶의 시간이 이와같아야 하는건 아닐까.

이 사람의 자리에 나를 대입해알고자 하는 것이 나라면 우선 이처럼 비워야하지 않을까. 스스로 젊다고 여기며 채우기에 급급했던 지나시간을 돌아본다. 나이를 든다는 것은 이렇게 스스로를 비워내는 일이고 대상과 조금 거리를 둘 수 있어야 하는 것임을 비로소 안다.

볕 좋은 봄날 오후, 짧은 글을 길게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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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꽃나들이
볕 좋은 봄날, 가벼운 마음으로 길을 나섰다. 낯선 곳을 찾아가는 생소함을 어쩌지 못하면서도 선듯 길을 나선 것은 꽃 때문이다. 안내판이 없는 것은 당연하고 특별히 물어볼 사람도 없을 땐 그저 발품을 파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피고 지고를 반복하는 숲 속 복수초는 온 계곡을 노랗게 물들이고 씨를 맺는 개체까지 있다. 복수초의 계곡이라 칭해도 무방하리만큼 지천으로 피었다. 노오란 등불을 밝힌 하나하나에 눈맞춤하자니 엄두가 나지 않는다.


모든 들꽃이 언제 어느 곳에서 만나더라도 반가운 선두에 노루귀가 있다. 흰색, 분홍색에 청색까지 한자리에 피어 햇살을 받고 있다.


오늘 낯선 길을 작정하고 나선 것은 바람꽃들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피는 변산바람꽃에 이어 너도바람꽃, 만주바람꽃에 꿩의바람꽃, 남방바람꽃 등 바람꽃이라는 이름을 가진 다양한 종류를 다 볼 수는 없을지라도 하나씩 만나면서 눈맞춤해가고 있다. 변산바람꽃은 이미 봤으니 다음으로 너도바람꽃을 보고 싶었다. 여기저기 옮겨다니며 찾느라 한동안 숲에서 벗어나지 못하다가 그만 포기하고 돌아서려는 순간 눈에 들어온다. 제자리에 서서 주변을 여러개체가 눈에 띈다. 너도바람꽃, 만주바람꽃에 꿩의바람꽃까지 한자리에서 세 종류의 꽃을 한꺼번에 만나는 특별한 경험을 했다.


활짝 열어젖힌 꽃봉우리 가운에 노오란 꽃술이 둥근원을 만들어 독특함을 보여주는 너도바람꽃과 많은 꽃잎을 일사분란하게 펼치면서도 대칭을 이루는 꿩의바람꽃을 처음으로 만났다. 지난해 추위 속에서 핀 모습을 보여주지 않아서 밉상이었던 만주바람꽃이 노오란 꽃술을 가득 품고 빙그레 웃고 있다.


제법 긴 시간을 숲에서 보냈다. 여느 꽃나들이와는 달리 북적대는 사람도 만나지 않고 편안하고 행복한 꽃과의 눈맞춤을 했다.


복수초

복수초

노루귀

노루귀

너도바람꽃

꿩의바람꽃

만주바람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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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사이 내린 봄이 버들개지 고운 털에 붙잡혔다. 봄으로 자리를 내주는 것이 내키지 않은듯 이제는 겨울닮은 찬바람이 불지만 버들개지 털이나 겨우 붙잡히는 정도고, 먼산 높은 봉우리에 날리는 눈발은 땅으로 내려오지도 못한다.


어쩌면 춘설春雪을 만질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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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2017-03-12 10: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꼭 털이 복실한 양같네요~~

무진無盡 2017-03-12 23:16   좋아요 0 | URL
우연한 결과물이지만 제가 봐도 닮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