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토요일 기다리고 기다리던 소설 토지학교 개강을 했다. 등록하고 한 달은 기다린 것 같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데도 많은 분들이 참석을 해서 박경리 선생님의 단구동 옛집 2층이 북적였다. 40여 명이 앉아 있기에는 좁은 덕분에 다닥다닥 붙어 앉아 온기를 나누었다.


박경리 문학공원 소장이면서 소설 토지학교 교장이기도 한 고창영샘이다. 인상만큼이나 후덕한 말씀으로 신입생들을 열렬히 환영해주셨다.  

올해로 4기를 맞이했다는데 갈수록 인기를 더해가고 있어 서울, 경상도, 전라도 등에서 문의가 들어왔다고 한다. 하지만 원주시 지원으로 운영되는 만큼 원주 시민에게 우선권이 있어서 미달될 경우에만 타지역 분들에게 강의를 허락하려고 했는데 원주 분들로 마감되었다고.  


토지학교에 입학하고 싶어서 모집한다는 공고문이 올라오자마자 일등으로 등록을 하신 분이 선서를 하셨다. 무슨 선서까지 하나 싶었는데 게으름 피우지 않고 열심히 소설 <토지>를 공부하겠다는 내용이다. 세 번 이상 결석하면 가차없이 짤린다는 교장샘의 엄포도 있었다.


첫 강의는 교장샘이 단구동 집의 역사와 잘 알려지지 않은 선생님의 일화를 중심으로 들려주셨다. 단구동 토지 개발로 인해 선생님이 매지리로 떠나고, 원주시의 애물단지가 되었던 단구동 집이 공원으로 가꿔지고 일 년에 수만 명의 사람들이 찾는 보물단지로 변하게 된 이야기는 감동 그 자체였다.  

우리나라 최고의 작가가 20여 년을 살면서 숨쉬고 농사 짓으면서 글을 쓴 공간인데 선생님이 떠나고 원주시도, 원주 사람들도 모두 나 몰라라 하는 바람에 청소년들의 우범 지대가 되어갔다고 하니 어이가 없다. 5년 전 이런 기막힌 현장에 고창영샘이 소장으로 오면서 꽃도 심고 나무도 심어 오늘처럼 예쁜 공원을 만들었고,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소장님이 박경리 선생님과 원주가 가까워지게 하기 위해 한 행사 중 하나가 원주시의 높으신 분들을 초청해서 시낭송회를 하는 일이었는데 제일 먼저 초청했던 원주경찰서장님이 축사도 아닌 시낭송회 같은 걸 어찌 하냐며 거절하다가 막상 행사장에 와서는 소년처럼 떨면서 시낭송을 했고, 그후 많은 분들이 참여하면서 화젯거리가 되고, 원주와 박경리 선생님이 서로 마음을 여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그로 인해 후원자도 많이 생겼고, 가장 좋은 건 원주 시민과 박경리 선생님이 가까워졌다는 것. 

선생님이 돌아가시기 두어 해 전, 서운한 마음에 다시는 단구동 집에 가지 않겠다던 선생님을 모셔 생신 잔치를 열어 드렸다고 한다. 전국에서 선생님을 사랑하는 독자들이 각자 음식 한 가지씩을 해왔고, 박완서 등 선생님이 계실 적에 단구동 집을 자주 드나들던 지인들을 초대했는데 무슨 판을 이리 크게 벌렸냐 하면서도 그렇게 좋아하셨다고...

5년이란 세월이 얼마나 길었을까 싶다. 소장님의 열정은 자비를 들여 세계적인 대문호가 많은 러시아까지 다녀오게 만들었는데, 과연 그들은 대문호의 집을 어떻게 관리하는지 알고 싶었다고 한다. 이런 비용을 시에서 지원해주지 않다니...ㅠㅠ  그만큼 우리나라 관공서는 문학과 문학인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게 아닌가 싶다. 러시아 사람들이 대문호의 집을 보여주면서 강조하는 말은 딱 하나였단다. 이곳이 바로 도스또예프스키가 살았던 집이랍니다! 이 책상이 바로 푸시킨이 시를 쓴 책상이랍니다!   

여자로서 구구절절한 일화도 많았지만 서울 살던 박경리 선생님이 원주로 오게 된 사연이 또 가슴 아팠다. 시인 김지하와 결혼한 딸(김영주)이 원주에 살고 있었기 때문인데, 늘 감방만 들락거리는 사위 때문에 가슴 시린 딸 곁에서 울타리가 되고 싶은 마음과 한가한 곳에서 글쓰기에 몰두하고 싶은 마음이 어우러져 원주로 오셨다고.  

박경리 선생님은 매지리로 떠나면서 단구동 집의 흙을 모두 퍼가고 싶다고 하셨을 정도로 단구동 집을 사랑하셨고, 돌아가시기 전 선생은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모든 것 중 반은 원주에, 반은 태어난 통영에 주겠다고 하셨단다. 선생의 작품 속에 원주라는 지명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토지 4, 5부>의 행간 속에 깃들어 있는 생명 사상은 바로 원주의 공기와 바람과 흙에서 온 것이기에 작품의 모든 행간 속에 원주가 녹아 있는 것이라고. 그리고 외손자이자 김지하의 아들 '원보'의 '원'자가 바로 '원주'의 '원'자에서 따온 것일 정도로 원주에 대한 애정이 깊었다고 한다. 원주를 느끼며 <토지>를 다시 읽어보고 싶다.



강의가 끝나고 신입생들을 소개한 후 선배들이 마련한 다과회가 있었다. 박경리 선생님의 팬이 된 원주 지역신문 <원주 투데이> 사장님이 박경리 선생님과의 인연을 들려주고 있다. 신입생들은 첫 강의를 들으며 눈물을 짓기도 했고, 박경리 선생님을 더 사랑하게 되었고, 원주 시민으로서 뿌듯하다고들 말했다. 나 역시 박경리 선생님의 옛집이 있는 단구동에 살고 있다는 것이 정말 자랑스럽다.  



모든 행사가 끝나고 선배님들이 신입생들을 안아주는 순서. 대부분 처음 만난 사람들이었지만 참 따뜻했다. 4월 10일 다음 강의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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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0-04-02 07: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주시민이 그저 부러울 뿐....
그래도 소나무집님 덕분에 토지학교 강의를 도강할 수 있겠어요. 고마워요!!

소나무집 2010-04-03 22:00   좋아요 0 | URL
아직 원주에 마음 붙일 곳이 없는데 수업 있는 날만 기다려질 것 같아요.
계속 강의 소식 올릴게요.

세실 2010-04-02 0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래서 원주로 가신 거였군요...눈물나네요.
따듯한 글 덕분에 박경리 선생님이 가까이 계신 느낌이 납니다.
감사해요. 님!

소나무집 2010-04-03 22:01   좋아요 0 | URL
김지하 시인은 감방에 가 있고 따님이 시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었대요.

무스탕 2010-04-02 0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토지는 '감히' 읽어볼 엄두를 못내고 있어요;;;
솔직히 가볼수도 없겠지만 원주시민을 우선으로 한다니 샘도 나네요 ^^
앞으로도 계속 강의 전달해주세요~ :)

소나무집 2010-04-03 22:02   좋아요 0 | URL
저도 끝까지 못 읽고 있다가 몇 년 전 드라마 토지를 보면서 끝까지 읽어냈어요. 뿌듯하더라구요. 그런데 이번 기회에 한 번 더 읽어야 할 것 같아요.

blanca 2010-04-02 1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토지학교는 소설 토지를 공부하는 곳인가요? 같이 읽으면서 공부도 하고 그러면 너무 좋을 것 같아요. 부러워집니다.

소나무집 2010-04-03 22:04   좋아요 0 | URL
원주에 있는 박경리 문학 공원에서 하는 프로그램인데 박경리 선생과 토지에 대한 공부를 할 수 있을 듯해요. 이런 공부를 할 수 있다는 게 정말 좋아요.

꿈꾸는섬 2010-04-07 2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 읽는데 현수가 깨서 왔어요. 다음에 다시 읽어봐야겠어요.^^

소나무집 2010-04-12 08:47   좋아요 0 | URL
현수는 잘 재우셨나요?
지난 토요일 2강이 있었어요.

같은하늘 2010-04-08 0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로 이사가신 원주에서도 역시나 바쁘게 움직이시는군요.^^ 그저 부러울 뿐입니다.

소나무집 2010-04-12 08:48   좋아요 0 | URL
늘 뭘 하나라도 배우고 있어야 마음이 편해지는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