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우리는 '상식'이라는 모자를 가볍게 눌러쓴 채 생활합니다. 우리의 삶에서 크고 작은 욕심의 바람이 불어오지만 그때마다 상식의 모자가 벗겨지지 않도록 단단히 붙잡아 주는 것은 '양심'이라는 턱끈입니다. 말하자면 양심이 없는 사람은 아주 작은 욕심에도 상식의 모자를 쉽게 벗어던진다는 사실입니다. 양심의 영역에 속하는 많은 것들 - 이른바 정의, 연민, 배려 등 -은 우리들 각자가 쓴 상식의 모자를 통해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평가되거나 드러나게 됩니다.


'공정과 상식'을 캐치 프레이즈로 내걸었던 현 정부의 지난 몇 개월을 곰곰 되짚어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가족 구성원 모두가 정직한 집안에서는 굳이 '정직'을 가훈으로 내세우지 않는 것처럼 현 정부는 태생적으로 '공정과 상식'은 전혀 없거나 많이 부족한 상태였던 까닭에 그와 같은 캐치 프레이즈를 내걸었음이 점점 명확해지는 요즘입니다. 말하자면 공정이니 상식이니 하는 것들은 소나 줘버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현 정부를 구성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앞에서 말했던 것처럼 상식의 모자는 양심의 턱끈에 의해 지켜지는 까닭에 현 정부의 구성원들은 양심이 없다고 보아도 무방할 듯합니다. 그와 같은 사실을 대선 전에는 국민들 대부분이 모르고 있었거나 알면서도 눈 감아 준 것일 테지요.


현 정부의 과오를 지적하자면 한도 끝도 없는 일이기에 첨언하자면 이렇습니다. 양심이 없는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그들 자신의 욕심이 만천하에 드러나는 것이며, 그것을 숨기기 위해 거짓과 변명으로 일관한다는 것입니다. 뭔 일만 터지면 거짓말 일색으로 언론에 궁색한 변명을 하는 정부의 태도가 이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는 법이지요. 언젠가 진실은 드러나게 마련이고 그들의 악행은 그에 걸맞은 방식으로 처벌을 받고야 말 것입니다.


바쁘고 번잡했던 명절 연휴 이후에 맞는 조용한 주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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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저녁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아침에 산을 찾는 사람도 제법 늘었다. 물론 그 사람들 중 대부분은 겨울이 되기 전에, 혹은 짧은 가을의 한두 주를 즐기다가 산으로부터 영영 멀어지곤 하지만 그래도 그게 어딘가. 쏟아지는 졸음을 쫓아가며 어두컴컴한 새벽 산길을 오르는 일이 어디 쉬운가 말이지. 아무튼 나는 그 대견한 사람들의 산행을 마음속으로 조용히 응원하며 습관적으로 산을 오른다.


매일 아침 산을 오르기 전에 늘 지나치게 되는 공터가 하나 있다. 공터 건너편에는 초등학교가 있고, 공터를 끼고 흐르는 편도 1차선의 이면도로를 따라 오래된 아파트들이 줄 지어 서 있다. 공터에 있던 가건물의 마트를 부수고 넓은 택지로 정비를 한 게 몇 년 전. 땅의 소유주는 아마도 자신의 땅을 택지로 조성하여 팔면 큰돈을 벌 수 있겠거니 생각했던 모양인데 그동안 땅을 사겠다고 나서는 마땅한 적임자가 없었던 것인지 줄곧 공터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땅의 주인은 공터에 택지를 구획하여 비워 두고 택지를 제외한 통행로는 이미 아스팔트 포장까지 다 마쳤다. 그러나 새로운 주인을 찾지 못하고 몇 년째 방치된 공터에는 포장도로를 따라 버스며 대형 화물 트럭이 빼곡히 주차되었고, 아침이면 산을 오르기 힘겨워하는 노인분들의 산책 코스가 된 지 오래였다. 포장이 되지 않은 공간에는 껑충하게 자란 강아지풀과 듬성듬성 솟아 있는 달맞이꽃과 이제는 씨앗이 영근 개망초며 인진쑥의 무리들이 마치 자신들이 주인입네 주장하는 듯하다. 아, 그리고 여뀌! 생명력 질긴 여뀌도 공간을 메우고 있다.


제삼자인 나야 이렇듯 무심하게 바라볼 수 있지만 주인 입장에서는 보면 볼수록 복장 터질 일이 아니겠는가. 사람 일이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끝을 모르고 오르기만 하던 부동산 시세가 이렇듯 곤두박질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말이다. 땅을 판다는 문구와 전화번호가 적힌 팻말이 주인의 허탈한 심정을 대변하고 있는 것만 같다. 모르긴 몰라도 주인 역시 답답한 미래를 앉아서만 기다리지는 않았을 터 용하다는 점쟁이를 수없이 찾아다녔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용한 점쟁이가 한 명 있다. 그녀가 작년에 했던 예언 역시 적중률 100%를 자랑한다. <서울의 소리> 이 모 기자와의 통화에서 그녀는 "권력이라는 게 잡으면 우리가 안 시켜도 경찰들이 알아서 입건해요. 그게 무서운 거지"라는 말을 했다. 한마디로 알아서 길 거라는 얘기였다. 작금의 상황은 그녀의 예언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은 채 그대로 진행되고 있다. 그녀의 범죄 의혹은 줄줄이 무혐의 처분을 받았거나 받을 예정이고, 그녀에 대한 기사를 쏟아냈던 언론사는 압수수색과 함께 기소를 당하고 있다. 평소에 도사들을 만나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논한다는 그녀의 신통력이 이 정도로 대단할 줄은 미처 몰랐다. 나조차도 복채를 내고 점을 보고 싶은 심정이다. 내가 매일 아침 지나치는 공터의 주인에게도 소개하고 싶은 여인. 그녀에게는 앞날을 내다보는 신통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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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집 2022-09-03 1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권력의 사냥개들이 알아서 척척 꼬리 흔들며 물어주네요. 다시 청계천 나가야 할까 봐요!!!

꼼쥐 2022-09-07 16:21   좋아요 0 | URL
날씨도 선선해졌으니 다시 광장에 나가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저들은 어쩌면 눈도 깜짝 안 할지도 모르지만.
 

8월 20일 0시 기준 코로나 위중증 환자는 511명, 하루 새 숨진 환자는 84명으로 113일 만에 최다를 기록했다고 한다. 8월 21일 0시 기준으로는 위중증 531명, 사망 64명으로 점점 악화되는 모습이다. 이처럼 정부는 노인의 복지비와 의료비 지출을 억제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듯하다. 고령층의 위중증 환자 수를 최대한 늘리기 위해 노인들의 자유로운 집회를 유도하고, 노인들이 쉽게 모일 만한 장소를 제공하기 위해 용산공원의 임시 개방에 속도를 내고 있다는 것은 국민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향후 대책으로는 수명이 다한 원전의 재가동을 하기에 앞서 안전은 신경 쓰지 말라는 대통령의 엄명도 있었다. 원전 주변에 사는 주민은 상대적으로 고령층이 많으니 그들을 자연스럽게 보내드리기 위한 방법을 강구하는 것이다.


이러한 정부 정책을 효과적으로 집행하기 위해서는 곳곳에 프락치를 심는 게 비용이나 효율성 면에서 최선일 터, 초대 경잘국장으로 프락치 유경험자를 앉힌 것도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고령층의 인구를 줄이기 위한 정부의 적극적인 노력은 사실 군부독재 시절에도 보기 어려웠던 반인륜적인 정책이다. 그럼에도 정부가 이토록 앞장서서 실천하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 경제가 그만큼 위태롭다는 반증이기도 한데, 아무튼 우리는 재정건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노인 인구의 획기적인 감소를 추구하고 있는 정부의 노력을 비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런 구차한 행위가 짠한 느낌마저 드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성숙되면서 '프락치'의 필요성은 점점 사라지는 듯했는데 현 정권이 출범하면서부터 프락치 활동의 유경험자를 적극 물색하여 중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사실 학생운동이 활발하던 1980년대만 하더라도 정부는 '프락치'를 곳곳에 심어 정보를 수집하고, 학생운동이나 노동운동의 현장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인물들을 색출하는 것은 물론 그들을 조기에 검거함으로써 조직 전체를 와해하려는 시도를 끝없이 자행했다. 그러나 동료와 선후배를 밀고하여 자신의 영달을 꾀하는 '프락치'는 자신의 신분이 노출되는 순간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았던 까닭에 '프락치'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물론 그와 같은 유혹에 쉽게 넘어갔던 김 모 국장과 같은 인물도 간혹 있었지만 말이다.


행안부에서 초대 경찰국장을 임명함에 있어 그의 '프락치' 전력을 몰랐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전력이 있었기 때문에 경찰국장으로 임명되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흠결이 많은 사람일수록 상부로부터의 명령을 잘 따르고, 자신의 흠을 덮기 위해 아랫사람을 심하게 다루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경찰을 손안에 쥐고자 했던 현 정부의 의도에 부합하는 인물로 김 모 국장은 적격이라고 하겠다. '프락치'는 정부와 반대 입장에 있던 조직의 상황만 밀고했던 게 아니라 정부의 입장에 동조하는 인물들을 규합하고 선동하는 역할도 했다. 대통령의 지지율이 바닥인 상황에서는 '프락치'의 역할 중 후자가 더 중요한 듯 보인다. 그런 까닭인지 정부는 노인들을 규합하여 대규모 행사를 진행하려 했다. 비난 여론이 심해서 실행은 되지 않았지만 말이다.


암튼 21세기 대한민국에서 '프락치' 이야기를 다시 할 수 있게 되어서 감회가 새롭다. 그게 다 김 모 국장의 화려한 전력 덕분이다. 사실 그런 활동을 했던 사람이 백주대낮에 얼굴을 들고 다니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인데 이 분 역시 이종오의 <후흑학>을 열심히 읽고 실천하는 듯하다. 존경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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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2-08-21 12: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런 후진적인 작태들은 결코 자연도태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번 정부에서 확실히 보여주네요. ‘물에 빠진 개는 다시는 뭍에 발을 올리지 못하도록 과감히 몽둥이로 때리라‘는 루쉰의 외침이 새삼 떠오르네요.

꼼쥐 2022-08-22 21:30   좋아요 0 | URL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항상 합리적이고 옳은 일만 일어나는 건 아닌 듯합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세상에 대해 조금씩 배워가는 것일 테지요. 이런 말도 안 되는 대통령을 경험함으로써 우리나라 국민들도 많은 생각을 했을 듯합니다. 아직도 정신 못 차리는 사람도 더러 있기는 하지만.
 

희망이 없어져 포기하고 체념한 상태를 우리는 '절망'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절망'은 그와 같은 상태에 처하게 된 주요 원인, 말하자면 원인 제공자가 누구냐에 따라 다음 상황이 달라지게 됩니다. 본인의 잘못된 판단과 처신으로 희망이 없는 암울한 상태에 빠졌을 때 개인이 취할 수 있는 행동은 단 두 가지뿐입니다. 좌절하거나 절망을 딛고 새로운 희망을 품거나. 물론 좌절을 선택한 개인 역시 자신의 목숨이 붙어 있는 한 생존을 위해 무엇인가 버들쩍거릴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절망감의 원인 제공자가 타인이라면 얘기는 달라집니다. 예컨대 미성년자인 자신을 돌보는 보호자(부모가 대부분이겠지만)의 무능과 방치가 계속하여 이어진다거나 자신이 속한 국가 또는 기업의 대표가 무능하여 도무지 회생의 가능성이 엿보이지 않을 때, 타인의 부작위로 인한 개인은 절망은 단지 수용하는 입장에 처하게 됩니다. 여기에서 개인은 어떤 희망도 품을 수가 없습니다. 이와 같은 절망의 결과는 원망과 분노로 귀결됩니다.


며칠 전 UPI뉴스와 KBC광주방송이 넥스트위크리서치에 의뢰하여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절망'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사실 '절망'은 상태를 지칭하는 단어일 뿐이고, 그에 대한 감정은 분노나 원망 혹은 암울한 미래에 대한 공포와 불안이라고 말할 수 있을 듯합니다. 대통령이 무능하여 국가의 미래가 암흑으로 변한다고 할지라도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거나 있다고 하더라도 국가의 운명을 바꿀 만큼 큰 힘을 발휘하지는 못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박근혜 전 대통령처럼 명백한 불법행위가 드러나 대다수 국민들의 요구에 의해 탄핵에 이르는 경우가 있기는 합니다만 취임 후 겨우 100일이 지난 대통령이 이렇다 하게 한 일도 없을 뿐만 아니라 설사 있다 하더라도 탄핵을 주장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많은 어려움이 있을 듯합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국민 대다수가 어찌할 수 없는 '절망'을 가슴에 품은 채 앞으로의 5년을 견뎌야 하는가? 하는 문제만 남습니다. 정말 그렇게 된다면 국민 대다수가 '화병'에 걸리고 말 텐데 말입니다. 덴마크 출신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에 따르면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했습니다. 인간은 희망을 먹고사는 존재라지만 대한민국 국민 대다수가 오늘날 '절망'이라는 죽음의 늪에 빠지고 보니 배에 구멍이 뚫린 '대한민국호'의 미래가 자못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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찻물이 끓고 있다. 또다시 많은 비가 예보된 바깥의 소란을 잠재우려는 듯 길게 뽑은 작은 주둥이로부터 파르르 솟구쳐 오르는 하얀 김의 행렬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찻장에 담긴 녹차 티백 위로 찻물을 붓는다. 연녹색 찻물이 농도를 더하고 나는 뜨거운 차를 후후 불어 입 안 가득 한 모금 들이켰다. 짙게 퍼지는 쌉싸름한 녹차향과 후끈한 열기. 어쩌면 우리는 하나의 생각에 이르기 위해 겉치레에 불과한 많은 행위들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마치 중요한 의식을 치르듯 그렇게.


코로나 확진자의 증가세가 가파르지는 않다지만 위중증 환자의 증가세는 가히 폭발적인 듯 보여진다. 15일 0시 기준 위중증 환자 수가 521명으로 집계되었다고 하니 6월 25일 50명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10배 이상 증가한 셈이다. 중환자가 이렇게 늘면 병상은 곧 포화상태를 맞을 수 있다. 물론 지금도 지방에서는 중증의 코로나 환자가 입원하여 안심하고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병원을 찾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이런 추세라면 전국적으로 코로나 위중증 환자를 받을 수 병상은 모두 소진되고 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 도심에서는 77주년 광복절을 맞아 보수단체의 집회가 열리고 있다. 우리는 지난해에도 경험한 바 있지만 이와 같은 대규모 집회 뒤에는 코로나의 급격한 확산세가 뒤따른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다. 그러나 정부와 지자체는 이를 허용하고 지켜볼 뿐 거리두기나 해산과 같은 적극적인 방역 대책은 세우지 않고 있다. 어쩌면 정부는 '옳다구나!' 하고 반색을 할지도 모른다. 보수단체의 참가자들 대부분이 노인들이고, 그들에게 코로나 확산은 위중증으로 이어질 공산이 큰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위중증 환자를 치료할 병원과 병상 모두 포화상태로 가고 있는데 집회 이후 위중증 환자의 폭증세라도 발생한다면 정부는 대책이 없게 되는 것이다. 가뜩이나 재정이 열악한 마당에 노인들의 자발적인 죽음은 정부가 바라고 바라던 바가 아니었던가. 용산공원의 임시개방에 속도를 내는 까닭도 그런 연장선에 있다고 보여진다. 마땅히 할 일도 없고, 소일거리도 없는 노인들이 발암물질 범벅인 용산공원에 모여 온종일 거닐고 돌아간다면 정부가 원하는 결과는 반쯤 달성한 셈일 테니까 말이다.


현 정부의 이와 같은 재정 및 인구 대책은 '사람이 곧 경제의 한 부품'으로 인식하는 데서 출발한다. 교육부가 미래 인재 양성을 담당하는 사회부처이자 경제부처라고 강조하면서 교육의 목적 또한 경제 발전을 위한 미래 인재 양성이라고 하지 않던가. 그러니 일은 하지 않고 밥만 축내는 노인들은 그들의 관점에서 폐기대상이라고 여길 만도 하다. 세금은 내지 않으면서 의료비와 복지비 등을 통하여 국가 재정만 탕진하는 것은 국가 전체로 볼 때 얼마나 불합리한 일인가. 그러니 이재민의 코로나 확산을 부추기는 것도, 보수단체의 대규모 집회를 반기는 것도, 용산공원에 모이는 노인들의 긴 행렬을 보는 것도 그들은 그저 기쁘기만 할 터, 이제는 다른 어떤 방법이 동원될지 자못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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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2-08-15 21: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새롭게 단장한 광화문 광장 걷는데 광화문사거리에서 집회가 있더군요.
🤔

꼼쥐 2022-08-19 19:16   좋아요 1 | URL
아~~그레이스 님은 직접 보셨군요.
그 막무가내의 현장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