찻물이 끓고 있다. 또다시 많은 비가 예보된 바깥의 소란을 잠재우려는 듯 길게 뽑은 작은 주둥이로부터 파르르 솟구쳐 오르는 하얀 김의 행렬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찻장에 담긴 녹차 티백 위로 찻물을 붓는다. 연녹색 찻물이 농도를 더하고 나는 뜨거운 차를 후후 불어 입 안 가득 한 모금 들이켰다. 짙게 퍼지는 쌉싸름한 녹차향과 후끈한 열기. 어쩌면 우리는 하나의 생각에 이르기 위해 겉치레에 불과한 많은 행위들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마치 중요한 의식을 치르듯 그렇게.


코로나 확진자의 증가세가 가파르지는 않다지만 위중증 환자의 증가세는 가히 폭발적인 듯 보여진다. 15일 0시 기준 위중증 환자 수가 521명으로 집계되었다고 하니 6월 25일 50명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10배 이상 증가한 셈이다. 중환자가 이렇게 늘면 병상은 곧 포화상태를 맞을 수 있다. 물론 지금도 지방에서는 중증의 코로나 환자가 입원하여 안심하고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병원을 찾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이런 추세라면 전국적으로 코로나 위중증 환자를 받을 수 병상은 모두 소진되고 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 도심에서는 77주년 광복절을 맞아 보수단체의 집회가 열리고 있다. 우리는 지난해에도 경험한 바 있지만 이와 같은 대규모 집회 뒤에는 코로나의 급격한 확산세가 뒤따른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다. 그러나 정부와 지자체는 이를 허용하고 지켜볼 뿐 거리두기나 해산과 같은 적극적인 방역 대책은 세우지 않고 있다. 어쩌면 정부는 '옳다구나!' 하고 반색을 할지도 모른다. 보수단체의 참가자들 대부분이 노인들이고, 그들에게 코로나 확산은 위중증으로 이어질 공산이 큰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위중증 환자를 치료할 병원과 병상 모두 포화상태로 가고 있는데 집회 이후 위중증 환자의 폭증세라도 발생한다면 정부는 대책이 없게 되는 것이다. 가뜩이나 재정이 열악한 마당에 노인들의 자발적인 죽음은 정부가 바라고 바라던 바가 아니었던가. 용산공원의 임시개방에 속도를 내는 까닭도 그런 연장선에 있다고 보여진다. 마땅히 할 일도 없고, 소일거리도 없는 노인들이 발암물질 범벅인 용산공원에 모여 온종일 거닐고 돌아간다면 정부가 원하는 결과는 반쯤 달성한 셈일 테니까 말이다.


현 정부의 이와 같은 재정 및 인구 대책은 '사람이 곧 경제의 한 부품'으로 인식하는 데서 출발한다. 교육부가 미래 인재 양성을 담당하는 사회부처이자 경제부처라고 강조하면서 교육의 목적 또한 경제 발전을 위한 미래 인재 양성이라고 하지 않던가. 그러니 일은 하지 않고 밥만 축내는 노인들은 그들의 관점에서 폐기대상이라고 여길 만도 하다. 세금은 내지 않으면서 의료비와 복지비 등을 통하여 국가 재정만 탕진하는 것은 국가 전체로 볼 때 얼마나 불합리한 일인가. 그러니 이재민의 코로나 확산을 부추기는 것도, 보수단체의 대규모 집회를 반기는 것도, 용산공원에 모이는 노인들의 긴 행렬을 보는 것도 그들은 그저 기쁘기만 할 터, 이제는 다른 어떤 방법이 동원될지 자못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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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2-08-15 21: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새롭게 단장한 광화문 광장 걷는데 광화문사거리에서 집회가 있더군요.
🤔

꼼쥐 2022-08-19 19:16   좋아요 1 | URL
아~~그레이스 님은 직접 보셨군요.
그 막무가내의 현장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