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라는 말이 있다. 특정 직위에 부여되는 권위로 인해 그 자리에 오른 사람이 누구든 직위에 어울리는 사람으로 변하게 마련이라는 뜻일 게다. 말하자면 '지위가 매너를 바꾼다'(Office changes manners)는 의미일 텐데 이와 같은 사례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막내 사원일 때는 그렇게 촌스럽고 속된 말로 찌질해 보이기까지 했던 사람도 짬밥이 쌓여 승진을 거듭하다 보면 어느새 그에게도 한 부서를 책임질 수 있는 노련함과 경륜에서 오는 권위가 몸 곳곳에서 폴폴 풍겨오는 것이다.

 

'세대교체 주역'으로 화려하게 취임한 지 두 달이 지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를 보면 확실히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을 실감하게 된다. 국회의원을 경험하지 못한 찌질한 정치인이었던 그는 웬만한 방송사의 패널로 초청되는 걸 큰 영광으로 여기고 이슈가 있을 때마다 방송사 곳곳에 등장하여 얼굴 알리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랬던 그가 제1야당의 당대표가 되자 그는 이제 미리 약속된 방송 출연마저 제멋대로 펑크를 내는 안하무인의 캐릭터로 완벽하게 변신하고야 말았다. 그것도 녹화방송이 아닌 생방송을 말이다. MBC <100분 토론>에 참석하기로 했던 그는 생방송을 단 40여 분 앞둔 시점에 출연 거부를 최종 통보했고, 방송 공백에 대해 '동물의 왕국'이나 틀면 된다고 답했다고 하니 그의 놀라운 변화에 혀를 내두를 정도다.

 

사람은 특정 지위에 주어지는 권위에 의해 달라지기도 하지만 그 사람의 내면 깊숙이 자리한 본심이 어떤 권위가 주어짐으로써 자유롭게 표출되기도 한다. 말하자면 권한이 주어지지 않아 꾹꾹 누를 수밖에 없었던 자신의 본심이 특정 지위에 오름으로써 자유롭게 분출되는 것이다. 이를테면 사람 자체가 변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의 본모습이 나온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그러므로 한 국가의 최고지도자를 뽑는 대통령 선거는 신중해야만 한다. 그 사람의 내면을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주 120시간에 달하는 노동과 불량식품 섭취 발언 등 자신의 본심을 가감없이 표출한 어느 후보의 모습은 순진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자신의 본모습을 감추지 않고 미리 보여주었으니 말이다. 대선까지 남은 시간은 이제 약 6개월, 누가 대통령이 될지 알 수 없지만 철저한 검증을 통해 후보자의 내면까지 들여다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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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거짓 눈물을 비유적으로 일컬어 '악어의 눈물(crocodile tears)'이라는 말을 종종 사용하곤 합니다. 악어는 사실 장기간 물 밖에 나와 있을 때 눈이 건조해져 상하지 않도록 눈물을 흘리며, 눈물샘을 관장하는 신경과 턱의 저작행위를 관장하는 신경이 동일하기 때문에 먹이를 씹어 삼킬 때에도 눈물을 흘린다고 합니다. 14세기 초 존 맨더빌의 여행기에 의하여 처음으로 소개되었다는 이 말은 셰익스피어에 의하여 널리 사용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물론 애먼 악어는 억울한 면이 있겠습니다만 말이죠.


얼마 전에도 우리나라 굴지의 우유 업체 회장 한 분이 '악어의 눈물'을 흘린 적이 있습니다. 여러 불미스러운 일들로 인하여 회사의 주가가 바닥을 치던 시기였습니다. 자신의 회사를 모 사모펀드에게 매각하고 자신은 즉시 회장직에서 물러남은 물론 아들들에게도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는 약속이었습니다. 그 발표 이후 주가는 수직 상승했습니다. 회장의 눈물 어린 호소를 투자자들은 진심으로 받아들였던 것이지요. 그러나 회사의 매각은 물론 회장직에서 사퇴하는 것도 없었던 일이 되었고, 같은 회사에서 근무하는 아들들 역시 승진까지 했다고 하니 그는 어쩌면 '악어의 눈물'을 흘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그 회장은 정계에 많은 인맥을 형성하고 있는 걸로 유명한 인물이었습니다. 그것을 입증이라도 하려는 듯 회사의 고문으로 있는 그의 부인이 자택에서 단체 모임을 가졌다고 합니다. 열네 명이나 모였다고 하더군요. 물론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인물들이었겠지요. 그중에는 부산 시장도 있었다고 하니 참으로 대단한 분입니다. 5인 이상의 모임이 금지된 방역 4단계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은 권력의 상층부에 있었던 예전의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게다가 방역 4단계에도 불구하고 정무에 바쁜(?) 부산 시장이 불원천리하고 달려왔으니 말입니다. 그들은 아마도 방역은 개나 돼지만 지키는 것이지 자신들은 방역 단계를 결정하고 지도하는 특별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나 봅니다.


부산 시장과 같은 당에 있는 윤 모 의원이 최근에 또 '악어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언론사의 카메라 앞에서 젊은 당 대표와 손을 잡고 제대로 폼을 잡고 말입니다. 아마도 그 의원님은 자신의 비리가 영영 들키지 않을 줄 알았는데 너무도 빨리 밝혀진 것이 분해서 눈물을 흘렸는지도 모르지만 당 대표의 눈물은 좀 볼썽사나웠던 게 사실입니다. 물론 당 대표도 머쓱했겠지요. 야당 탄압이라고 주장하며 '악어의 눈물'을 흘리는 그 의원과 동조하자니 그도 역시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는지도 모릅니다. 정황상 말입니다. 단지 정황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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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무스 2021-08-26 21: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모든 정황이 악어의 눈물이라는 팩트를 지목합니다! 그러면 악어의 눈물이 맞다고 해야할 것 같아요!ㅎ

꼼쥐 2021-08-28 18:16   좋아요 1 | URL
막시무스 님을 포함한 다수의 분들이 팩트라고 믿으신다면 아마도 그렇겠지요. ㅎ
 

계절이 바뀌려나 봅니다. 계절의 변화를 처음 목격한 돌쟁이 간난 아가도 아닌데 계절의 변화가 뭐 그리 새삼스러울 게 있을까마는 비도 한 방울 내리지 않고 한동안 강더위가 이어지던 지난날들을 생각하면 오늘처럼 서늘바람이 부는 날씨가 새삼 반가웠던 것입니다. 물론 계절이 바뀌고 선뜻한 냉기가 도는 만추를 기약하기에는 여전히 많은 날들이 흘러야 하겠지만 말입니다. 


오늘은 더위가 물러간다는 처서(處暑). 모기도 처서가 지나면 입이 삐뚤어진다거나 풀도 울며 돌아간다는 속담이 있습니다만 나날이 더워지는 날씨 탓인지 그 정도는 기대하기 어려울 듯합니다. 온종일 비가 내렸고 12호 태풍 '오마이스'의 상륙마저 예보된 처서의 풍경은 위기를 앞둔 팽팽한 긴장감이 넘쳤던 것 같지는 않습니다. '처서에 비가 오면 독 안에 곡식이 준다.'는 속담이 있는 것처럼 이맘때의 비는 그닥 반가운 게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나와 같은 도시내기들은 에어컨 없이 밖에서 부는 바람만으로도 견딜 수 있는 이런 변화가 마냥 반가울 따름입니다.


이렇게 맥락도 없는 비가 그칠 줄 모르고 내리는 것은 계절을 오가는 불필요한 소모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처서에 내린 비로 한결 차분해진 나는 왠지 전에는 없던 기운이 불끈 솟아난 듯 퇴근하는 발걸음에 힘이 들어갔던 것입니다. 처서에 비가 내리면 독 안에 곡식이 준다는 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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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더위가 잔불처럼 남아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불에 덴 듯 뜨거워진 열기를 선선한 바람이 불어 식혀준다는 것이랄까. 때 늦은 가을장마가 예보된 주말. 여전한 한낮 더위에 화덕 위의 솥뚜껑처럼 달궈진 인도를 걷는 게 마냥 힘들기만 했다. 정치권은 대선 열기로 후끈 달아올랐고, 서민들은 식지 않는 부동산 열기에 너도나도 청약 경쟁에 뛰어들고...

 

탈레반에 의해 점령당한 아프가니스탄의 비극을 보면서 국가 지도자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게 된다. 우리나라 정치인들의 가장 고질적인 병폐는 케케묵은 이념 논쟁과 지독한 엘리트주의에 있다. 자신보다 학벌이 낮은 사람은 지도자로 인정하지도 않고, 심지어 자신의 하인이나 머슴쯤으로 생각하는 자들도 허다하다. 그러다 보니 국민이 선택한 대통령에게 조롱과 멸시로 일관하였던 것은 물론 없는 죄도 덮어 씌워 급기야 불행한 사태를 초래하지 않았던가. 이와 같은 엘리트주의는 공직 사회, 특히 법조계에서 유독 심하다. 판, 검사의 엘리트주의는 가히 망국병에 가깝다. 그렇다면 그들을 지금과 같은 학벌 괴물로 만든 배경은 무엇일까. 뭐니 뭐니 해도 그들 모두가 견제받지 않는 권력이라는 데 있다.

 

대한민국의 언론 역시 무소불위의 권력인 검찰에 기생하면서 동급으로 성장한 게 사실이다. 어떤 악의적인 보도로 사람이 죽어 나자빠진들 그들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다. 책임을 지지 않기 때문이다. 언론사에 '징벌적 손해배상'을 적용하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하였다는 소식에 조중동을 비롯한 보수 언론 및 야당 정치인들이 거품을 물고 반기를 드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그들도 이제 자신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엄한 사람을 간첩으로 몰아도, 청렴결백한 사람을 뇌물을 밝히는 파렴치범으로 몰아도 누구 하나 책임을 지지 않던 언론인들이 이제는 그와 같은 허튼소리를 하다가는 무거운 책임을 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다는 전제 하에 말이다. 언론 신뢰도 세계 꼴찌 수준인 대한민국이 더 떨어질 신뢰도도 없건만 언론사에선 그들의 신뢰도 후퇴를 걱정한다. 참으로 웃기는 작태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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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1-08-20 16:4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적어 주신 내용에 대해 격렬하게
동의하는 바입니다.

아침에 라디오에서 새로운 언론
중재법 개정안에 대해 숙의가 더
필요하다는 의견을 개진하는 언론
인의 말을 들었는데...

아니 그렇게 시간이 많았는데
그동안 숙의를 하지 않고 있다가
이제 법안을 통과시키겠다고 하니
숙의를 하겠다고 하는 건지.

전형적인 시간끌기 전법으로 밖
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서구를 능가하는 언론의 자유를
만끽하면서 서구에서는 통용되는
징벌적 손해배상에는 게거품을
물면서 반대하는 것에도 1도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꼼쥐 2021-08-22 20:39   좋아요 0 | URL
언론이 제3의 권력으로 수십 년 동안 소비자인 일반 시민을 무시하면서 제멋대로 행사해왔는데 이제는 그것마저 못하게 생겼으니 속이 타겠지요. 가뜩이나 유튜브와 같은 개인 미디어의 인기가 날로 높아지는 추세이니 자신들의 권력도 차츰 낮아지고 있는 마당에 이와 같은 법률 제정은 더욱 맘에 안 들겠지요.
 

입추, 말복도 지난 요즘도 말매미의 소음은 여전하다. 마치 거대한 모래바람의 소음이 한꺼번에 몰아치는 듯한 공원 한켠의 벤치에 앉아 오르한 파묵의 소설 <새로운 인생>을 읽었다. 지난 수요일부터 이어진 휴가. 고3 수험생 아들을 둔 나로서는 코로나 확산 국면이 오히려 반갑다. 핑계 김에 쉬어간다고 코로나를 핑계로 집안에 눌러앉은 나는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거나, 시도 때도 없이 잠을 자거나 하면서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은 채 한껏 게으름을 피울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삶에 다만 하나의 나쁜 점이 있다면 이따금 시간의 경과를 잊는다는 것이다.

 

"책의 심연에 내려갈 수 없었고 자난의 진지함에 다다를 수 없었던 나는, 밤의 늦은 시간에 무엇인가를 말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해서 나는 자난에게 시간이 가장 끔찍한 거라고 말했다. 우리가 시간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이 여행을 나섰지만 이 사실을 알지는 못했다. 이 때문에 우리는 출발했었고, 이 때문에 전혀 움직이지 않는 순간을 찾고 있었다. 그 어떤 것에도 비유할 수 없는 순간은 이 충만함이었다. 그것에 우리가 접근했을 때 어떤 탈출구가 있을 거라고 느꼈고, 이 믿을 수 없는 지역의 기적을 죽은 사람과 죽어가는 사람들과 함께 우리 눈으로 충분히 목격했었다. 아침에 우리가 뒤적이던 어린이 잡지에서, 책에 나오는 지혜가 온전한 상태로 가장 어린애 같은 형태로 존재했고 우리는 이제 머리를 사용하여 그것을 파악했어야 했다. 저편에는, 저 먼 곳에는 그 아무것도 없었다."  (P.210)

 

'어느 날 한 권의 책을 읽었다. 그리고 나의 모든 인생이 바뀌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이 소설은 우리의 내면을 건드리는 오르한 파묵의 장난기, 혹은 알쏭달쏭한 말장난으로 인해 한낮에도 잠이 솔솔 오게 만드는 신비한 힘을 지녔다. 이럴 때 파인만의 <강의>를 읽는다면 수학적 논리의 명쾌함에 눈이 번쩍 뜨일지도 모른다. 한 발 더 나아가서 '수학이 가장 쉬웠어요.'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다만 생각으로 그칠 뿐 실수로나마 입 밖으로 내뱉어서는 곤란한 지경에 처할지도 모른다.

 

바람이 불고, 한낮의 더위도 견딜 만한 수준으로 떨어진 요즘. 사람들은 갑작스러운 변화에 어리둥절 놀라는 눈치. 책에서 눈을 떼면 말매미의 소음이 귀를 먹먹하게 한다. 비가 내리려는지 두터운 습기가 온몸에 척척 감겨온다. 모공을 뚷고 들어오는 습기의 틈새로 앚었던 그리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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