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더위가 잔불처럼 남아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불에 덴 듯 뜨거워진 열기를 선선한 바람이 불어 식혀준다는 것이랄까. 때 늦은 가을장마가 예보된 주말. 여전한 한낮 더위에 화덕 위의 솥뚜껑처럼 달궈진 인도를 걷는 게 마냥 힘들기만 했다. 정치권은 대선 열기로 후끈 달아올랐고, 서민들은 식지 않는 부동산 열기에 너도나도 청약 경쟁에 뛰어들고...

 

탈레반에 의해 점령당한 아프가니스탄의 비극을 보면서 국가 지도자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게 된다. 우리나라 정치인들의 가장 고질적인 병폐는 케케묵은 이념 논쟁과 지독한 엘리트주의에 있다. 자신보다 학벌이 낮은 사람은 지도자로 인정하지도 않고, 심지어 자신의 하인이나 머슴쯤으로 생각하는 자들도 허다하다. 그러다 보니 국민이 선택한 대통령에게 조롱과 멸시로 일관하였던 것은 물론 없는 죄도 덮어 씌워 급기야 불행한 사태를 초래하지 않았던가. 이와 같은 엘리트주의는 공직 사회, 특히 법조계에서 유독 심하다. 판, 검사의 엘리트주의는 가히 망국병에 가깝다. 그렇다면 그들을 지금과 같은 학벌 괴물로 만든 배경은 무엇일까. 뭐니 뭐니 해도 그들 모두가 견제받지 않는 권력이라는 데 있다.

 

대한민국의 언론 역시 무소불위의 권력인 검찰에 기생하면서 동급으로 성장한 게 사실이다. 어떤 악의적인 보도로 사람이 죽어 나자빠진들 그들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다. 책임을 지지 않기 때문이다. 언론사에 '징벌적 손해배상'을 적용하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하였다는 소식에 조중동을 비롯한 보수 언론 및 야당 정치인들이 거품을 물고 반기를 드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그들도 이제 자신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엄한 사람을 간첩으로 몰아도, 청렴결백한 사람을 뇌물을 밝히는 파렴치범으로 몰아도 누구 하나 책임을 지지 않던 언론인들이 이제는 그와 같은 허튼소리를 하다가는 무거운 책임을 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다는 전제 하에 말이다. 언론 신뢰도 세계 꼴찌 수준인 대한민국이 더 떨어질 신뢰도도 없건만 언론사에선 그들의 신뢰도 후퇴를 걱정한다. 참으로 웃기는 작태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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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1-08-20 16:4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적어 주신 내용에 대해 격렬하게
동의하는 바입니다.

아침에 라디오에서 새로운 언론
중재법 개정안에 대해 숙의가 더
필요하다는 의견을 개진하는 언론
인의 말을 들었는데...

아니 그렇게 시간이 많았는데
그동안 숙의를 하지 않고 있다가
이제 법안을 통과시키겠다고 하니
숙의를 하겠다고 하는 건지.

전형적인 시간끌기 전법으로 밖
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서구를 능가하는 언론의 자유를
만끽하면서 서구에서는 통용되는
징벌적 손해배상에는 게거품을
물면서 반대하는 것에도 1도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꼼쥐 2021-08-22 20:39   좋아요 0 | URL
언론이 제3의 권력으로 수십 년 동안 소비자인 일반 시민을 무시하면서 제멋대로 행사해왔는데 이제는 그것마저 못하게 생겼으니 속이 타겠지요. 가뜩이나 유튜브와 같은 개인 미디어의 인기가 날로 높아지는 추세이니 자신들의 권력도 차츰 낮아지고 있는 마당에 이와 같은 법률 제정은 더욱 맘에 안 들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