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퇴'가 마치 직업인 듯 굳어진 사람이 있다. 이런 상황을 미리 예견이라도 한 듯 그의 부모님은 그에게 절대 '철수'하지 말라는 의미의 '안철수'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는 투철한 청개구리 정신을 타고 태어났던 까닭에 부모님의 바람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삶의 방향을 정하고 말았다. 자신은 평생 '사퇴'를 직업으로 삼겠노라고 말이다. 그래서인지 그는 여러 번의 선거에 출마하였지만 출마는 단지 '사퇴'를 위한 초석일 뿐 당선이 목적은 아니었다.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사퇴'를 표명하지 않고 있는 그에게 이제껏 보여왔던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고 '또 철수'가 아닌 진정한 '안 철수'로 돌아왔다며 반겼었다. 그러나 직업의식에 투철했던 그는 모든 이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프로 사퇴러로서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던 모양이다. 사전투표일을 하루 앞둔 오늘, 그는 전격적인 사퇴 발표를 했던 것이다. 이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 역시 제각각이었다. '진작에 그럴 줄 알았다'는 사람들도 있었고, '천성은 변하지 않는구나' 한탄하는 사람도 있었고, '이번에는 완주하는 모습을 볼 수 있으려나 내심 기대가 컸었는데 안타깝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대체적인 의견은 그럴 줄 알았다는, 사람의 천성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는 이제 대한민국의 제1호 '프로 사퇴러'라는 직업인으로서 남은 여생을 살아갈 듯하다. 곧 있을 지방자치단체 선거 혹은 2년 후에 있을 총선거에 출마하여 멋지게 사퇴하는 모습을 보여줄지도 모른다. 그것이 곧 '프로 사퇴러'의 임무이자 가야 할 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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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2-03-04 1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 글에서 탁월함이 뿜뿜 느껴집니다. ^^

꼼쥐 2022-03-06 18:46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감정을 배제하려고 쓴 글인데 다시 읽어보니 모든 문장에 감정이 뒤섞인 듯하네요. ㅎ
 

22학번 새내기가 된 아들은 개강을 며칠 앞두고 일견 설레고, 일견 긴장하고 있는 듯하다. 그도 그럴 것이 아들이 입학하는 연세대학교는 학교 방침에 의해 1학년 새내기들의 송도 캠퍼스 기숙사 입사가 예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단 한 번도 집을 떠나 생활해 본 적 없는 아들이 처음 보는 룸메이트와 방을 공유한다는 게 결코 쉽지만은 않을 터, 룸을 배정받은 날부터 룸메이트 찾기에 나섰던 것으로 알고 있다. 아들에 의하면 같이 방을 쓸 친구는 아들보다 한 살 어린 응용통계학과 새내기라고 했다. 기계공학부인 아들은 룸메이트가 될 친구가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검정고시를 통해 입학한, 자기 절제력이 뛰어난 친구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낯선 곳에서 새로운 친구와의 생활을 위해 아들은 이번 주 일요일 송도로 떠난다. 캠퍼스에서 이동할 때 입겠다며 '과잠'도 사두었고, 청자켓 등 필요한 물건을 캐리어에 담아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군에 입대하는 것도 아닌데 아비로서 걱정 반, 기대 반 미묘한 감정이다. 언제 이렇게 컸나 싶기도 하고...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아들 역시 군 입대에 대한 걱정이 컸던지 지난주 일요일 갑자기 토익 시험을 보겠다며 나갔었다. 아들은 카투사에 입대하고 싶어서 토익 점수가 필요했었나 보았다. 고등학교에 다닐 때는 연습 삼아서라도 토익 시험을 보는 게 어떻겠느냐 여러 번 권했으나 귓등으로도 듣지 않더니 막상 대학생이 되자 발등의 불로 느껴졌던가 보다. 처음 본 토익 시험이 어땠어? 물었더니 걱정했던 RC는 오히려 시간도 남고 쉬웠는데 LC에서 잠깐 집중을 못해 몇 문제를 놓친 것 같다며 그래도 900점 이상은 나올 테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카투사 입대에 필요한 토익 점수는 760점 이상이면 된다고.

 

집을 떠나 기숙사 생활을 하게 되는 아들에게 나는 몇몇 당부의 말을 잊지 않았다. 친구들과 잘 지내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대학 생활은 또 어떻게 하는 게 현명한 것인지 등등 많은 이야기가 있었지만 그런 말들도 결국 스스로의 경험에 의해 무시되거나 적절한 형태로 바뀔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나는 부모 된 자의 걱정이 앞선 까닭에 불필요한 잔소리를 늘어놓았던 것이다. 성깔 사나운 꼰대가 된 기분이었다.

 

'모든 출발에 따르는 가벼운 불안이 지나갔다.'고 썼던 알베르 카뮈의 여행일지 중 한 구절이 생각났다. 내색은 하지 않지만 아들도 역시 가벼운 불안이 지나갔을 터, 대학 생활이란 어쩌면 겪어 봐야 깨닫게 되는 것일 뿐 타인의 조언이나 잔소리에 의해 그 향배가 달라지는 건 아닐지도 모른다. 계절이 바뀌려는지 바람이 몹시 거세다.

 

바람이 인다!…… 살려고 애써야 한다!

세찬 마파람은 내 책을 펼치고 또한 닫으며,

물결은 분말로 부서져 바위로부터 굳세게 뛰쳐나온다!

날아가라, 온통 눈부신 책장들이여!

부숴라, 파도여! 뛰노는 물살로 부숴 버려라

돛배가 먹이를 쪼고 있던 이 조용한 지붕을!

 

-폴 발레리의 시 「해변의 묘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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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이 시작된 것도 마치 엊그제의 일인 양 생생한데 벌써 두 달이 지나고 있다. 시간의 흐름이 무서운 게 현재는 이렇듯 느긋하지만 지난 시간을 되짚어보면 그 속도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빠르다는 점이다. 가뜩이나 짧은 2월에 날씨마저 꽁꽁 얼어붙어서인지 그날이 그날 같은 하루하루가 어찌 흘러가는지 도무지 그 속도를 체감하기 어렵다. 코로나19를 핑계로 다들 대면 접촉을 꺼리는 까닭에 나날이 현실감이 떨어지는 것도 시간의 흐름을 실감하지 못하게 하는 한 원인이지 싶기도 하고... 오늘도 바깥 날씨는 여전히 쌀쌀하고 사람들의 왕래가 뜸한 도로에는 오후의 께느른한 햇살이 한껏 여유롭다.

 

어제는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가 주관한 여야 대선 후보 4명의 첫 TV 토론회가 있었다. 어느 한 사람을 콕 집어 지지하는 건 아닌 까닭에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토론의 주제 또한 우리의 생활과 밀접한 분야인 경제라고 하지 않던가. 사실 경제는 생활밀착형 주제인 동시에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분야이기도 하다. 나 역시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기는 했으나 경제는 여전히 어렵기만 하다. 여담이지만 내 주변에는 경제학 전공자들이 유난히 많다. 경제학 교수로 있는 분도 있고, 경제학을 전공한 조카만도 2명이나 된다. 그렇지만 명절이나 가족 행사에서 만나는 자리에서도 경제를 대화의 주제로 삼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일부러 피하는 건 아니지만...

 

암튼 어제의 대선 후보 토론회를 보면서 들었던 생각은 대선후보로서의 자격이 갖추어졌다고 여겨지는 세 명과 함량 미달의 후보 한 명이 토론회에 있었다는 점이었다. 제1야당의 대선 후보라는 자가 그 정도의 실력으로 후보 자리에 올랐다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지만 한국어 실력도 달리는지 질문도 파악하지 못한 채 엉뚱한 답변을 내놓기 일쑤여서 보는 내가 얼굴이 뜨거워질 정도였다. 일례로 빅데이터 기업과 플랫폼 기업에 대한 기본 상식선의 이해조차 없어서 안철수 후보의 질문에 엉뚱한 답변을 보란 듯이 내놓았던 건 그의 무식을 만천하에 드러낸 하나의 증거였다. 아무리 상식이 없어도 그렇지 대선 후보로 나선 자가 그 정도의 지식도 없다면 도대체 뭘 하겠다는 건지... 그의 무식을 내세운 답변은 이것 말고도 많았지만 다른 나라 사람들이 본다면 대한민국의 국격이 떨어지는 문제일 테니 이쯤 해두기로 하자.

 

어디에서 보니까 부동시로 군 면제를 받았으면서 당구 실력은 500이라던데 당구나 폭탄주에만 진심으로 달려들 게 아니라 대선 후보로서 제발 공부 좀 했으면 좋겠다.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창피하기 그지없다. 다음 토론회에서는 어떤 무식함을 보여줄지 내가 다 걱정스럽다. 놀지 말고 제발 공부 좀 해서 격조 높은 토론회를 만들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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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공정과 상식을 바로 세우라고 절망의 오늘을 희망의 내일로 바꾸라고 국민은 윤석열을 불러냈고 국민은 윤석열을 키워냈습니다."는 광고 문구를 듣는 국민들은 과연 무슨 생각을 하였을까요? 정치인의 광고라는 게 뭐 다 거기서 거기이겠습니다만 대선이라는 빅 이벤트는 어쩌면 조금 다르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를 지지하는 누군가는 맞는 말이라며 고개를 끄덕였을 테고 그를 지지하지 않는 또 다른 누군가는 말도 안 되는 광고라며 눈을 질끈 감거나 채널을 돌렸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의 광고가 합당했다고 생각하는 일인입니다. 그를 지지하는 건 아니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의 광고 속 멘트를 합당하다고 인정할 수 있느냐고요? 그렇습니다. 그의 삶을 속속들이 아는 건 아니지만 그가 재직했던 검찰 조직 내에서도, 혹은 그가 사랑하는 그의 가족에 대해서도 그는 철저히 불공정과 몰상식을 실천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측근이었던 한 모 검사 혹은 손 모 검사의 비리에 대해서도, 장모를 비롯한 처가의 비리에 대해서도 그는 못 본 척 눈곱만치도 파헤치지 않고 무조건적으로 덮음으로써 몸소 '불공정과 몰상식은 이런 것이다' 하는 모습을 국민 모두에게 알렸던 것이지요. 게다가 그는 모든 보수 언론(대한민국 전체 언론일 수도 있겠지만)을 장악함으로써 자신과 자신의 측근 혹은 가족의 비리는 일체 드러나지 않도록 조처하여 국민들로 하여금 절망의 오늘을 살게 하였습니다. 말하자면 그는 불공정과 몰상식의 화신인 셈이지요. 불공정과 몰상식으로만 따진다면 대한민국에서 그보다 더 뛰어난 인물은 아마도 찾기 어려울 듯합니다. 국민들의 분노가 그를 키웠고 종국에는 그를 대선판으로 불러내기에 이른 셈이지요.


그는 국민의 분노를 밑거름으로 측근들의 영달과 가족의 부와 자신의 체중을 키웠습니다. 그 모든 게 국민들의 덕분이었습니다. 그와 같은 고마움을 그는 자신의 대선 광고에서 명시적으로 드러낸 듯합니다. 피둥피둥 살이 쪄서 쩍벌을 일상화하게 만든 것도, 부정한 돈이 넘쳐나는 까닭에 주택청약은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것도 모두 대한민국 국민이 질끈 눈을 감아준 덕분이었습니다. 광고 속 멘트는 전적으로 옳고 합당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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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국격이 높아지고 민주주의 선도 국가로 부상하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촛불 혁명 이후가 아닐까 싶다. 그런 측면에서 현 정부는 높아진 시민의식을 바탕으로 한국인의 문화적 역량과 친절한 국민성 및 수준 높은 공동체 의식을 세계만방에 알릴 수 있었다. 물론 이러한 결과물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과거 대한민국의 국민의 공동체 의식이라는 게 아주 보잘것없었던 시절이 있었다. 차례를 기다리면서 하는 한 줄 서기는 끼어들기와 편법으로 무너지기 일쑤였고, 시내버스는 물론 고속버스와 시외버스에서도 자유롭게 담배를 피우는가 하면 뒷사람은 생각도 않고 과도하게 의자를 눕히는 일도 빈번하였다. 게다가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열차 안에서도 흡연에 대한 제재는 일체 없었다. 술집은 물론 식당과 커피숍에서도 흡연은 지극히 익숙한 풍경이었다. 그러다 보니 비좁고 환기가 용이하지 않은 공공 화장실과 같은 곳에서는 담배 연기로 가득 찬 '너구리 굴'이 되는 게 일상이었다. 말하자면 대한민국은 흡연자들의 천국이었다.


그러나 흡연에 대한 규제가 시작되면서 거의 모든 게 달라졌다. 담배를 물고 길거리를 활보하는 이도 많이 줄었고, 아파트를 비롯한 식당이나 커피숍 등 실내에서의 흡연도 완전히(?) 사라졌으며, 지하철 안에서의 '쩍벌'이나 고속버스 좌석의 과도한 눕힘도 보기 힘들어졌다. 공중도덕을 잘 지키는 것이 서로에 대한 배려이자 우리 사회를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 지름길이라는 걸 국민 대다수가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흡연자의 권리가 그만큼 축소된 것도 사실이고 그들에 대한 사회적 배려가 없다는 게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말이다.


높아진 시민의식에도 불구하고 시대를 역행하려는 자는 어느 곳에서도 있게 마련, 내가 사는 아파트인데 담배 좀 피운다고 뭐가 잘못됐냐? 따지는 이도 있고, 지하철에서의 '쩍벌' 행위 및 흡연 등 반사회적 행위도 서슴지 않는 사회 부적응자들을 종종 목격하게도 된다. 물론 인터뷰 도중의 도리도리는 반사회적 행위는 아니다. 그러나 무궁화호 열차 안에서 맞은편 의자에 구둣발을 올린 이가 지금도 존재한다면 그는 사회 부적응자 혹은 작금의 대한민국 시민의식을 따라가지 못하는 구시대적 인물임에 분명하다. 한마디로 '진상' 승객인 셈이다. 아무리 제 돈을 내고 승차한 승객이라 할지라도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그런 손님이 있을 수 있겠어? 의아해하는 분이 있겠지만 진짜로 있다. 그것도 제1야당의 대선 후보란다. 믿을 수 없겠지만 말이다. 우리는 이렇듯 대선을 기회로 양분된 대한민국을 경험하고 있다. 평생 동안 대접만 받으며 귀족처럼 살았던 '쭉뻗족'과 달라진 시민의식을 하루도 잊지 않는 평범한 시민들. 그들에게 과연 공동체 의식이란 게 조금이라도 남아 있는지 물어볼 수는 없지만 공동체 의식을 강요하기에는 예순이 넘은 그의 나이가 왠지 걸린다. 공중도덕을 가르치고 그것을 하나하나 연습하도록 하기엔 너무 늦은 게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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