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 반쪽사 - 과학은 어떻게 패권을 움직이고 불편한 역사를 만들었는가
제임스 포스켓 지음, 김아림 옮김 / 블랙피쉬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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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은 어떻게 패권을 움직이고 불편한 역사를 만들었는가

완전히 새로운 관점으로 다시 쓴 세상에 없던 과학 세계사

예전에 학교에서 세계사를 배울 땐 유럽사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세계사가 당연한 건줄 알았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이런저런 책을 읽으며 이제는 유럽사가 곧 세계사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 세상도 조금씩 변해와서 이제 세간의 인식 속에서도 조금씩 그런 깨달음이 꽤 많이 퍼지고 있는 것 같다. 문화도 역사도 과학도 그 기원을 전부 유럽에서 찾아왔었던 과거의 인식엔 문제가 있다고,다양한 분야의 다양한 학문의 기원이 유럽에서만 있던 게 아니라는 것 말이다. 이 책도 그러한 종류의 책이다. 이 책은 말한다. 과학 천재는 유럽에만 있었냐고? 아니라고, 우리가 아는 과학의 역사는 반쪽짜리 였다고!

전통적으로 주장되어온 바에 따르면 근대과학의 역사는 자연도태에 의한 진화론을 발전시킨 19세기의 영국 박물학자 찰스 다윈과 특수상대성이론을 제안한 20세기 독일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같은 인물들에게만 초점을 맞춰 진행되는 이야기다. 여기에 따르면 19세기의 진화론에서 20세기의 우주 물리학에 이르기까지, 근대과학은 유럽에만 국한되어 발달한 산물이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는 잘못되었다. 이 책에서 나는 근대과학의 기원에 대해 아주 다른 이야기를 풀어놓고자 한다. 과학은 유럽만의 특별한 문화적 산물이 아니었다. (p. 13) -시작하는 글 中-

근대과학이 유럽에서 태동했다는 주장은 단순히 기원의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 바탕엔 착취와 왜곡의 역사가 깔려 있었고, 경제와 정치가 늘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전 세계 모든 나라의 과학적 발견을 낱낱이 살피는 것은 아니지만, 세계사가 근대과학을 어떤 방식으로 형성했는지 보여줌으로써 그동안의 과학사에 대한 잘못된 믿음을 깨뜨리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더 잘 이해하고 몇 명의 천재가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의 노고로 과학이 발달해 왔다는 것을 전달하려 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유명한 천재들의 일화에 감춰진 진실들을 제대로 볼 수 있게 된다.

코페르니쿠스는 <알마게스트의 요약>에서 직접적인 영감을 받았다. 알리 쿠시지의 결과를 인용해 레기오몬타누스는 모든 행성 궤도의 중심이 지구가 아니 다른 곳에 있다고 상상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코페르니쿠스는 이 '다른 지점'이 사실 태양이라고 주장하며 최종 단계에 들어섰다. (p. 90)

갈릴레오에게 영감을 주었다는 코페르니쿠스의 책도 사실은 그 이전 이슬람 학자들의 자료와 연구를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18세기까지의 대항해 시대에 천문학과 수학이 유럽에서만 발달했던 것은 아니었다. 대항해는 그야말로 지구상의 모든 바다를 휘젓고 다녔고 모든 교류는 상호적이지 일방적일 수 없었다. 유럽은 세계의 모든 자원뿐만 아니라 모든 지식도 빨아들였다. 그들의 발견은 그들만의 발견이 아니었다는 점을 우리는 그동안 너무 쉽게 간과해왔던 것이다.

뉴턴은 잉글랜드은행을 비롯해 아시아와의 무역에 대한 독점권을 지닌 영국 동인도회사의 주식을 관리했다. 또 런던에서 왕립 조폐국장으로 일하면서 금과 은에 대한 해외 무역을 감독하며 생애 마지막 30년을 보냈다. 이렇듯 뉴턴이 금융업에 종사했다는 사실은 종종 간과되는 18세기 과학의 한 측면을 암시한다. (p. 134)

과학자로만 알려진 뉴턴은 외톨이 천재로 묘사되곤 하지만 사실 뉴턴은 돈에 관심이 많았던 사람이기도 했다. 노예무역이 절정에 이르렀던 18세기 뉴턴의 투자는 그 핵심을 향해 있었다. 뉴턴은 순박하고 고립된 괴짜 과학자가 아니라 경제에 눈밝은 금융맨이기도 했다.

중요한 사실은 이 무역의 대부분이 자연 세계에서 가져온 상품을 대상으로 했다는 점이었다. 무역 회사는 그들이 취급하고 있는 상품을 분류하고 평가해야 했기 때문에, 자연사에 대해 보다 상세하게 연구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p. 184)

린네는 이렇게 말했다. "자연은 각 나라에서 특별히 유용한 것을 생산하도록 배열되어 있으며 경제학의 과제는 다른 곳에서 재배하려 하지 않는 작물을 경작하고 모으는 것이다" 린네는 이것이야말로 자연학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여겼다. 단지 전 세계 동식물 목록을 만드는 데 지나지 않고 유럽에 유리한 방식으로 무역의 균형을 맞추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p. 185)

자연학의 발달이 순수한 호기심에서 비롯된 것이고 새로운 발견으로 발달한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착각이라는 점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자연과학의 발달은 무역과 경제와 유럽이 벌어들일 수익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전 세계 어디를 보더라도 이 시기에 발전한 자연사 지식은 제국의 무역 산업과 분리할 수 없다. (p. 194)' 어디 자연사만 그랬을까. 저자는 말한다. '근대과학의 역사를 이해하는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전 세계 역사의 중요한 순간들을 살펴보는 것이다. (p. 225)' 라고. 뉴턴의 발견도 린네의 분류도 모두 무역과 관련이 있었기에 과학사를 과학적 발견으로만 보는 것은 그야말로 반쪽만 아는 것이 될 것이다. 다른 시대의 과학들도 마찬가지다.

사실 다윈은 유럽에서조차 진화론을 주장한 최초의 사상가가 아니었다. (p. 235)

다른 많은 나라가 그랬듯 다윈주의는 메이지 시대 일본의 근대화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다. '생존을 위한 투쟁'이라는 관념은 생물학자들뿐 아니라 정치 사상가들에게도 호소력이 있었다. 이 관념은 산업화와 군사적 확장의 필요성을 정당화하는 것처럼 보였다. (p. 264)

다윈이 처음 깨달은 것도 아닌 진화론이 시대의 사상으로 떠오르게 된 데에는 그 시대를 흐르는 역사적 흐름 때문이었다. 진화론은 생물학에서보다 오히려 다른 분야에서 더 맹위를 떨치게 된 것이다. 모든 것엔 다 때가 있는 법이다. 심지어 과학에 있어서도 말이다. '19세기 후반에 유럽이 과학계의 중심이었다는 점은 사실이지만, 이는 앞에서 살폈다시피 제국주의의 확장으로 얻은 경제적 이득에 힘입은 결과가 대부분이었으며, 유럽 이외 지역 출신의 과학자들도 일정 부분 공헌을 했다. (p. 282)' 그런데 우리는 몇몇의 천재들에 가려진 다수의 공헌과 노력에 너무 무심해 왔다. 무엇보다 그 시대의 역사와 너무 떨어뜨려 생각해왔다. 하지만 과학은 시대의 정치경제와 너무나 밀접한 관련을 맺어 왔던 것이다.

19세기 물리학과 화학의 역사는 고립된 유럽 출신 개척자들을 통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민족주의, 전쟁, 산업의 전 세계적인 흐름을 통해서 궁극적으로 가장 잘 설명된다. (p. 286)

파시스트, 사회주의자, 민족주의자, 참정권 운동가, 반식민지 운동가는 모두 1900년 이후 수십 년 동안 정치를 변화시키는 데 한몫을 했다. 그리고 정치는 과학계에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 (p. 345)

20세기의 물리학과 국제정치의 연관성도 앞선 시대에서 과학과 정치경제와의 관계에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인슈타인도 물리학만 연구하고 있던 학자는 아니었고.

과학에 한 획을 그었다면 그었다고 할 수 있을 코페르니쿠스, 뉴턴, 린네, 다윈, 아인슈타인등 그들의 과학적 업적은 유명해도 그들이 살던 시대와 역사를 연결지어서 생각하지 못했던 것은 왜일까? 의도적으로 역사와 떼어놓고 생각하게끔 우리를 만들었던게 아닐까? 그렇다면 누가 왜 그랬을까? '우리는 이러한 역사의 유산을 단순히 무시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뛰어들어 살펴야 한다. 과학의 미래는 결국 그것이 전 세계적으로 발전했던 과거에 대한 더 나은 이해에 달려 있다. (p. 472)'는 저자의 마지막 당부를 유념해야 할 것이다. 반쪽만 아는 것은 결코 전체를 다 안다고 할 수 없다. 우리는 이제라도 반쪽짜리 과학사의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 책이 그 시작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리뷰어스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만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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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우 없는 세계
백온유 지음 / 창비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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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기 위해 더없이 악독해질 때마다 거짓말처럼 '경우'가 있었다

누구나 한번쯤은 지독할 수밖에 없었던, 그 시절의 우리에게 바치는 편지

<유원>이라는 작품을 통해 백온유 작가를 알았다. 청소년문학의 새로운 샛별 백온유 작가의 등단작은 앞으로의 활동이 궁금해지게 만드는 확실한 눈도장을 찍은 작품이었다. 그러니 이번에 새로 출간된 신작, <경우 없는 세계>가 궁금해지지 않을 수가 있을까.

미리 스포?를 살짝 하자면 이번 작품도 상처를 가진 청소년 시절의 이야기이다.

정말 이번 겨울은 포근한가. 하기야 이번 겨울에는 수돗물이 얼까봐 싱크대와 세면대 물을 조금씩 틀어놓고 출근한 적이 없었다. 지난주에 눈이 오긴 했지만 옥탑에 쌓이지도 않았고, 모두가 따뜻하다고 하니 그런 거겠지. 그렇다면 내 살갗을 에는 듯한 이 한파는 어디서부터 시작되었고 언제 긑나는 걸까. (p. 7)

인수는 서른을 넘긴 어른나이이고 착실하게 공장에 다니며 성실한 삶에 노력중인 청년이다. 하지만 인수에게는 남모르는 고통이 있었다. 사시사철 파고드는 추위, 겨울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한여름에도 곧잘 시퍼렇게 입술이 질릴 정도로 몸이 차갑게 얼어붙곤 했다. 히터를 틀고 전기장판을 켜고 온수에 몸을 녹이려해봐도 잦아들지 않는 추위... 언제부터였을까... 아마도...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집을 나와 가출팸을 떠돌던 열일곱 그때 그 일이 있고 난 후...

"일단 전화를... 보험사에, 아니면 병원부터 가는 게 나을지... 부모님을 불러야 될 텐데"

"아니요, 안 하셔도 된다고요"

나는 아이를 바라보다가 다시 귓속말로 말했다.

"저번에도 이랬잖아. 지금 신고할까, 아니면 그냥 조용히 따라올래"

그제야 눈치를 챈 운전자가 아이를 아래위로 훑은 후 순식간에 표정을 바꾸고 노발대발했다.

"일부러 그런 거니? 설마 자해공갈 뭐 그런 거야? 뭐 이런 애가 다 있어? 사기를 치려고 해, 감히? 그냥 이렇게는 못 넘어가지" (p. 16)

여느날 처럼 옥탑방에서 나와 햇살에 몸을 쬐이던 어느날 이었다. 인수는 무심히 골목길을 보다가 한 아이의 행동을 보았다. 그리고 얼마후 같은 행동을 하려는 아이 앞을 자신도 모르게 막아서게 된다. 자신의 명함을 건네주면서까지 운전자를 달래고 양해를 구한뒤 아이를 데리고 왔다. 그렇게 열일곱 이호를 만났다.

사람 속이는게 쉬운 줄 알아? 특히 나 같은 애는 웬만해서는 안 믿어주거든.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겠어. 상대방이 납득할 만큼 내가 아파줘야겠지? 그쪽에서 의심할 수도 없고 반박할 수도 없게 내가 망가져야 되는 거야. 제대로 부러지고 제대로 찢기면 사람들은 '내가 사고를 냈구나' 겁먹고 내가 해달라는 대로 해주거든. 그래서 솔직히 나는 죄책감 같은 거 별로 안 들어. 나는 사람 속이려고 아픈 척 연기하지 않거든. 그 순간에 나는 진짜로 아파. 존나 아파서 죽을 것 같아. (p. 25)

이호를 보며 인수는 열일곱때 만났던 A를 떠올렸다. 그때 그시절 자신의 모습도...

'제대로 부러지고 제대로 찢기면' 사람들은 미안해한다. 하지만 얼마나 부러지고 찢겨야 제대로 다친 것일까? 인수도 아픈 척 연기한 적 없이 진짜로 아팠는데 인수의 부모는 인수의 고통을 알지 못했다. 끝까지... 사고를 낸 사람들이 항상 미안해하는 건 아니었다. 뺑소니도 있었고 적반하장도 있었다...

인수는 이호에게 아무때나 편히 와서 자신의 옥탑방에서 자고 가라고 했다. 잘곳이 없어 헤매는 거리의 아이들 상황을 인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처음에는 가출을 하고서도 내가 한 게 가출이라는 생각을 못했다. 그저 아버지와 부딪치지 않기 위해 자리를 피하는 것, 나를 바라보는 시선에 깃든 경멸과 혐오를 참지 못해서 잠시 24시 카페나 패스트푸드점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에 불과했다. 가출이라는 단어에는 투쟁심이나 반항심 같은, 결연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하는 것은 회피나 은신이라고 불러야 할 것 같았다. (p. 32)

인수의 아버지는 자수성가한 사업가였고 그런 자신을 자랑스러워했지만 인수의 어머니에게 수시로 주먹을 휘둘렀고 인수의 아둔함에 화를 냈다. 인수의 어머니는 남편의 폭력을 묵묵히 견녀냈고 남편이 기분좋을 땐 사이좋은 부부처럼 지냈으며 인수가 그저 좀 느린거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남편에겐 너무나 쉽게 하던 용서를 인수에겐 하지 않았다. 아버지에겐 공포와 분노를 어머니에겐 서운함을 넘어 배신감을 느끼며 인수는 코앞에 있는 집임에도 점점 더 들어갈 수 없게 되어갔다.

무료급식소에서 경우를 만났을 때, 경우는 중학생 남자아이 두 명과 함께였다. 나는 사실 경우가 자원봉사자인 줄 알았다. (p. 61) 나와 비슷한 또래의 아이가 조금 어려 보이는 아이들에게 반찬을 덜어주는 모습을 유심히 관찰한 건 경우에게서 배어 나오는 친절함과 여유가 부러워서였다. 경우는 거의 마지막 차례에 배식을 받았다. (p. 62)

문득 깨달은 것은 경우와 다니는 동안은 사람들이 나에게 함부로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성연과 함께 다닐 때 받는 대우와는 사뭇 달랐다. (p. 93)

인수는 조용하고 말귀가 어둡고 이해력이 떨어져서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는 학생이었기에 선생님들은 인수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곤 했고 친구들은 인수의 존재를 깨닫지 못하곤 했다. 왕따를 당한 적은 없지만 그렇다고 친구가 있던 적도 없었다. 가출을 한 후 알게 된 성연을 따라다니며 인수는 성연의 활발하고 당차며 거침없는 성격이 부러웠다. 하지만 성연을 따라하려던 인수의 '노력과 상관없이 아이들은 금방 나를 파악했다. 학교를 다닐 때처럼 투명인간 취급을 받은 건 아니지만 아이들은 나를 자신들보다 조금 급이 낮은 인간으로 여기는 것 같았다. (p. 78)'

나는 이호에게 어떠한 간섭도 충고도 하지 않겠다는 나와의 약속을 꽤 오래 지켰다. 매일매일 잠자리를 찾아 헤매는 것이 얼마나 고역인지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이호가 머무르고 싶어할 때 잘 곳을 제공하는 것으로 이호를 위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이호와 가까워질수록 (가까워진다고 느낄수록) 이호를 마냥 두고 볼 수는 없었다. (p. 82)

인수는 이호의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수 있었지만 여지껏 자신의 처세를 생각해봤을때 이호를 집으로 데려온 것만 해도 대단한 용기였다. 그런 능동성은 여태 가져본 적 없던 인수였다. 하지만 인수는 점점 깨닫게 됐다. 자신이 이호를 돕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호가 자신에게 도움이 되고 있다는 것을... 그럴수록 인수는 경우가 생각났다....

경우는 성연과 달랐다. 부지런했고 예의발랐으며 구김살없이 사람을 대했기에 알바를 하는 어른들로부터 존중받았다. 가출팸이었어도 함께 머무는 공간을 앞장서 청소했고 무리 사이에 불화가 생기지 않도록 나름의 규칙들을 준수하려고 노력했다. '나는 경우 곁에서 나쁜 짓을 하지 않고도 살아갈 방법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p. 94)' 하지만 동시에 경우의 성격이 이해되지 않았다.

특유의 신중함과 타인을 향한 예의를 과연 누구에게서 배운 것일까. 스스로 터득했다기에 그 태도는 너무도 복잡하고 정교한 기술이었다. 사랑을 받은 만큼 고결한 사람이 되는 것이라면 나는 납득할 수 있었다. 내가 이 모양이 된 이유가 명백해지는 것이니까. 하지만 경우 같은 존재는 왜인지 불공평하게 느껴졌다. 경우는 자신이 일곱살 때부터 보육원에서 살았다는 것을 어느 날 내게 말해주었다. 함께 지내던 쌍둥이들도 그곳 출신이라고 했다. 경우는 살면서 단 한번도 아버지를 보지 못했고, 중학교에 입학한 이후로는 어머니와도 연락이 끊겼다고 했다. (p. 99)

인수는 가출팸 아이들을 통해 지금껏 알지 못했던 세상을 알아갔다. 다양한 아이들은 다양한 사연을 품고 있었지만 문득 이해가 되다가도 그렇다해도 그 아이들의 행동이 다 용납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인수는 여기서도 뒤쳐졌지만 그래도 여기선 적어도 쫓겨나진 않았다. 오히려 인수보다도 경우가 더 독특한 존재였다. 그 밝음은 어디서 온 것이었을까... 그런 경우게게 자신이 한 행동은... 지금의 이 추위는 어쩌면...

"우리는 안 미쳤는데, 사람들이 우리보고 미쳤다고 하잖아" (p. 176)

나는 절박했다. 그때는 무작정 경우의 행동을 말려야 한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무서웠고, 너무 무서워서 이성적인 판단이 되지 않았다. (p. 177)

"아무도 우리 안 믿어줄걸. 우리가 이렇게 만든 거라고 생각할 걸" (p. 178)

그게 최선인지, 그것만으로 충분한지 그 순간 아무도 판단하지 않았다. 깊게 생각하고 의문을 가지길 포기했다. '우리집'에 모여든 아이들은 자신들에 대한 세간의 평가를 증명하기라도 하듯 상식적이지 않은 결정을 내렸다. 아이들의 불안에 불을 지핀 것은 나지만 그런 나조차 아이들을 경멸했다. 우리는 증오를 받아 마땅한 존재들이었다. 억울해해서는 안 되는 존재들이었다. (p. 188)

억울했다. 억울한 일을 당했고 억울해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었다. 아무짓도 하지 않았지만 증오어린 시선을 받아야 했고 아무 피해도 주지 않았지만 경멸어린 태도를 견뎌야 했다. 불안했지만 주변에 안전하고 안정한 어른은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쉽게 보고 이용하고 버리고 의심하고 심지어 미쳤다고들 했다. 이 아이들이 목격한 생애 첫 죽음 앞에서 이 아이들이 한 선택을 과연 누가 뭐라고 할 수 있을까....

나쁜 일을 하지 않고 다들 어떻게 사는 걸까. 반복되는 일상을 저버리지 않고 평화를 일구는 법은 누가 알려주는 걸까. 그런 게 체득이 되는 인간들은 다른 유전자를 갖고 태어나는 걸까. 동이 틀 무렵 창가에 어른거리는 고양이 그림자를 눈으로 좇으며 우리는 망했다고 홀로 중얼거렸다. (p. 196)

사람이 사람을 사랑할때 꼭 쓸모를 따져야 할까.. 심지어 부모자식간에 말이다...

사람이 삶을 살아갈때 꼭 의미있고 가치있는 시간인지를 따져야 할까... 심지어 내삶이고 내시간인데 말이다...

태어남만으로 사랑받고 살아감만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디선가 따듯한 바람이 불어왔다. 나의 심연에서 바람이 휘돌며 서서히 내 몸을 녹였다. 이런 온기를 오래전부터 꿈꿔왔지만 막상 따스함을 느끼니 내게는 이런 온기를 누릴 자격이 없는 것 같아 괴로워졌다. 하지만 익숙해지기를 바랐다. 부디 한번 더 기회가 주어지기를. 햇볕을 쬐면 정화되기를. 경우 없는 세상에서도. (p. 258)

다행히 이 소설은 해피엔딩이다. 대개의 청소년문학이 그러하듯이.

가제본으로 읽은 터라 '작가의 말'을 읽지 못해 아쉬웠지만, 이 시대 어른나이의 사람들이 꼭 읽어봐야 할 청소년문학이었다. 세상의 온기가 1도라도 올라가길 바라는 어른나이의 사람이라면 말이다.

ps. 소설의 제목을 보며 <허구의 삶>이라는 이금이 작가의 청소년소설이 생각났다. 그 작품에서도 '허구'라는 이름과 단어로서의 의미는 중첩되며 작가가 부러 그런 것 같았는데... <경우 없는 세계>에서의 '경우'도 작가가 부러 중첩적으로 이름을 지은 것일까. 그런 연장선에서 보자면 A라는 이름?!과 이호 라는 이름 또한 그리고 마지막으로 '인수'라는 이름또한 그런 중의적 이름으로 이해되어 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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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현대지성 클래식 48
알베르 카뮈 지음, 유기환 옮김 / 현대지성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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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 카뮈의 대표작이자 20세기 최고의 부조리 소설

사르트르·바르트가 극찬한 문체를 생생히 살린, 가장 카뮈다운 번역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은 굉장히 유명한 소설이다. 나도 아마 언젠가 읽었었고 길지 않은 작품이기에 줄거리도 대충 기억하고 있는 몇 안되는 세계문학 중 하나일 정도로.

'국내최초 컬러 일러스트 수록' 이라는 문구에 기대가 없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리 큰 기대를 안했던게 다행이었다. 일러스트보다는 '가장 카뮈다운 번역' 이라는 문구에 끌렸었고, 그래서인지 과거에 읽은 <이방인>과는 너무나 다른 느낌을 받았다. 예전엔 냉정하게 읽었다면 이번엔 인간적으로 읽혔달까. 왜였을까...

<이방인>을 번역한 지 6년 만에 출판사를 옮겨 개정판을 내면서 몇 가지를 보완했다. 무엇보다 번역문 자체를 꼼꼼하게 다시 읽으며 정확성을 더하고자 애썼고, 특히 카위의 문체를 더욱 온전하게 전하고자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이방인>에 대한 독자의 이해를 심화하기 위해, 초판본에 실린 옮긴이의 <해제>외에 <이방인>에 대한 카뮈 자신의 글을 번역하여 실었다. (p. 16) - 옮긴이의 말 中

비교적 짦은 작품이지만 한 권의 책으로 나오면서 현대지성 클래식 시리즈 답게 작품 이해를 돕는 알찬 정보들이 앞뒤로 꽉 들어차 있다. <이방인>을 오랫동안 연구해온 역자의 말이 초판본과 개정판본 모두 실려 있어서 번역에 있어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두었는지 알 수 있고, 카뮈 자신의 미국판 서문과 작가노트를 통해 작가의 생각도 알 수 있으며, 충실한 해제를 통해 작품의 의미를 좀더 고찰해 볼 수 있다.

역자는 [<이방인>의 읽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주제에 맞추어 형식이 선택되었다는 사실, 그 간단한 사실을 기억 (p. 19)]하는 것이라 했고, 카뮈는 [<이방인>에서 아무런 영웅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으면서도 진실을 위해 죽음을 불사하는 한 인간의 이야기를 읽는다면, 그것은 크게 틀린 독법은 아니리라 (p. 22)]라고 했다.

'뫼르소는 표류물이 아니라 어둠을 남기지 않는 태양을 사랑하는 인간, 가난하지만 가식 없이 솔직한 인간이다. 그리고 그에게 일체의 감수성이 부재하기는커녕 집요하고도 깊은 열정, 절대와 진실에 대한 열정이 그에게 활력을 불어넣는다. 중요한 것은 아직은 소극적인 진실, 존재하고 느낀다는 진실, 하지만 그것 없이는 자아와 세계에 대한 어떤 정복도 가능하지 않다는 진실이다. (p. 21)' 라는 카뮈의 설명을 읽으며 <이방인>이라는 작품을 읽기전부터 그동안 내가 기억해온 '이방인'의 이미지는 깨져가고 있었다. 냉정과 냉소가 아니라 문장의 형식 그리고 뫼르소의 진실 이라...

나는 그렇기는 하지만, 실은 이러나저러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는 삶의 변화에 관심이 없느냐고 내게 물었다. 나는 그 누구도 결코 삶을 바꿀 수 없고, 결국 이런 삶이나 저런 삶이나 똑같은 가치를 지니며, 지금 여기의 내 삶이 전혀 싫지 않다고 대답했다. (p. 73)

나는 이러나저러나 마찬가지이고, 그녀가 원한다면 그렇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녀는 내가 자기를 사랑하는지 알고 싶어 했다. 나는 이미 한 번 대답한 대로, 그런 건 아무런 의미가 없지만 아마도 사랑하지 않는 것 같다고 대답했다. "그렇다면 왜 나와 결혼을 하죠?" 하고 그녀가 말했다. 나는 그 문제가 전혀 중요하지 않지만 그녀가 원한다면 우리가 결혼할 수 있으리라고 말했다. (p. 74)

뫼르소는 직장사장이 파리지사 근무를 제안했을 때 이러나저라나 마찬가지라고 했고, 마리가 자신을 사랑하는지 물었을 때 사랑한다는 말은 하지 않으면서도 마리가 원할때 언제든지 결혼하자고 말했다. 뫼르소는 그런 사람이었다. '여기에 서 있거나 어디론가 떠나거나 결국 마찬가지였다. (p. 91)' 그런 그가 해빛을 넘치게 받으며 열기에 취했을 때 방아쇠는 당겨졌다.

내 모든 존재가 팽팽히 긴장했고, 나는 권총을 꽉 쥐었다. 방아쇠가 놀았고, 총자루의 미끈한 배가 느껴졌다. 그리고 메마른 동시에 귀청을 찢는 듯한 소리와 함께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나는 땀과 태양을 떨쳐버렸다. 나는 한낮의 균형을, 내가 그토록 행복해했던 바닷가의 기이한 침묵을 깨뜨렸음을 알았다. 그때 나는 움직이지 않는 몸에 다시 네 방을 쏘았는데, 총알은 그런 것 같지도 않게 깊이 박혔다. 그것은 마치 불행의 문을 두드린 네 번의 짧은 노크 소리와도 같았다. (p. 95)

뫼르소가 아랍인을 행해 총을 쏘는 것을 기점으로 이 소설은 1부와 2부로 나누어진다. 1부는 뫼르소의 일상이라면 2부는 뫼르소의 재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런들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로 살아온 뫼르소는 한낮의 열기에 약했다. 어머니의 장례식때도 바닷가에서 적대적인 아랍인을 맞다닦드렸을 때도 뜨거운 한낮이었고 뫼르소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때의 그의 태도로 인해 벌어진 일들로 인해 그는 죄인인 것인가?

나는 천성적으로 육체적 욕구가 감정을 방해하는 일이 종종 있다고 그에게 설명했다.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던 날 나는 몹시 피곤했고, 졸렸다. 그래서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제대로 알 수 없었다. 내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어머니가 돌아가시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사실었다. (p. 103)

나는 내가 다른 사람들과 똑같다는 것, 다른 사람들과 절대적으로 똑같다는 것을 설명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사실상 쓸모없는 일이었고, 귀찮기도 해서 그러기를 단념했다. (p. 104)

어찌되었든 뫼르소는 사람을 향해 총을 쏘았고 그로 인해 한 사람이 죽었으니 살인범이다. 하지만 예심판사는 그에게 '하느님을 믿느냐' 고 물었고, 검사는 그의 행위에 대해 '어머니의 장례식 이튿날 더없이 수치스러운 정사에 탐닉했던 자가 하찮은 이유로,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치정 사건을 결말짓기 위해 사람을 죽인 것입니다. (p. 138)' 라면서 '범죄자의 가슴으로 어머니를 매장했기 때문에 유죄를 주장하는 바입니다. (p. 139)' 라는 결론으로 뫼르소에게 사형을 구형했다. 뫼르소가 장례식에서 눈물이 보이지 않았다는 것에 집착하는 사람들에게 '모든 것이 사실인 동시에 아무것도 사실이 아닙니다. (p. 132)' 라는 '도대체 피고인은 어머니를 매장했기 때문에 기소된 겁니까, 사람을 죽였기 때문에 기소된 겁니까? (p. 139)' 라는 변호인의 말은 방청객들을 웃게했지만 배심원단은 사형을 결정했다. 뫼르소는 '어떻게 한 평범한 인간의 장점이 죄인에게는 결정적으로 불리한 조건이 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p. 143)' 사람을 총으로 쏴 죽였고 재판 중 한번도 반성이나 후회의 기미를 보이지 않아 거의 무감정으로 보이는 뫼르소도 하지만 모두와 똑같은 인간이었다. 죽음의 공포 앞에 한없이 흔들리는 그저 인간.

나는 그들이 새벽에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요컨대 나는 그 새벽을 기다리며 밤을 지새웠다. 나는 갑자기 놀라운 일을 당하는 것을 싫어했다. 내게 무슨 일이 생길 때, 나는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이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나는 낮에 잠시 잠을 자두었고, 밤에는 천창에 빛이 비칠 때까지 계속 끈기 있게 기다렸다. 가장 힘들었던 시간은 보통 그들이 그 일을 실행하는 때라고 내가 알고 있었던 모호한 시간이었다. 자정이 지나면, 나는 기다렸고, 동정을 살폈다. 내 귀가 그토록 많은 소리를 감지하고, 그토록 작은 소리를 분간한 적은 결코 없었다. 그럼에도 발걸음 소리가 단 한 번도 들리지 않았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나는 그 무렵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다. 엄마는 종종 누구라도 완전히 불행해지는 법은 없다고 말하곤 했었다. 하늘이 유색으로 물들고 새로운 하루의 햇살이 내 감방으로 미끄러져 들어왔을 때, 나는 엄마의 말이 옳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어쩌면 발걸음 소리를 들을 수도 있었고, 그리하여 내 심장이 터질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비록 아주 작은 소리만 들려도 문가로 달려가곤 했찌만, 비록 문짝에 귀를 댄 채 정신없이 기다리다 보면 나 자신의 거친 숨소리가 들리고 그것이 개의 헐떡거림을 닮아 있어 화들짝 놀라곤 했지만, 결국 내 심장은 터지지 않았고, 나는 다시 24시간을 벌었다. (p. 158)

그러나 뫼르소는 감옥에서 똑같은 매일매일을 보내며 결국 그러한 감옥의 생활이 일상이 되면서 본연의 뫼르소식 생각으로 안정을 찾아간다. 하지만 면회를 계속 거절했음에도 찾아온 부속 사제와의 대화로 인해 (신을 믿지 않는다는 뫼르소를 설득하려는 부속 사제에게) 분노가 폭발하고 새로운 마음의 평화를 맞이하게 된다. 이또한 뫼르소만의 방식으로.

마치 그 커다란 분노가 내게서 고뇌를 씻어주고 희망을 비워준 듯, 신호와 별들이 가득한 밤의 어둠 앞에서 나는 처음으로 세계의 다정한 무관심에 가슴을 열었다. 세계가 그토록 나와 닮았고 그토록 형제 같으매 나는 전에도 행복했고, 지금도 행복하다고 느꼈다. 모든 것이 완결되도록, 내가 외로움을 덜 느끼도록, 내게 남은 처형일에 모쪼록 많은 구경꾼이 와서 증오의 함성으로 나를 맞이해주기를 소망하는 것뿐이었다. (p. 171)

뫼르소는 이제 유일하게 공포를 느꼈던 자신의 죽음 즉 사형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이런들어떠하리 저런들어떠하리라는 평온을 찾았다. 삶의 선택에 있어서 이러나저러나 마찬가지 라고 말하던 뫼르소는 이제 삶과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이러나저라나 마찬가지가 되어버렸달까.

책의 의미는 정확하게 말해 1부와 2부의 평행관계에 존재한다. 결론적으로 사회는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을 필요로 한다. 또한 우리는 결코 우리가 짐작하는 범죄 때문에 유죄를 선고받지 않는다. (p. 174)

세 인물이 <이방인> 속에 들어 있다. 두 남자(그중의 하나는 나)와 한 여자. (p. 179)

알베르 카뮈가 남긴 노트에는 저런 문장이 쓰여 있었다. 슬픔을 느끼고 표현하는 것은 각자 다를테지만 사회에서 통용되는 슬픔의 형식이 있고 법은 죄를 벌하는 것 같지만 죄인은 범죄때문에 유죄를 선고받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생각했을 때 두 남자와 한 여자는 누구일까? 뫼르소가 주인공이라고 해서 카뮈라고 할 수 있을까?

역자는 [해제]에서 '카뮈의 작품 세계는 부조리, 반항, 사랑이라는 세 개의 주제로 요약되며, 각각의 주제는 에세이, 소설, 희곡으로 형상화된다. (p. 184)' 라며 카뮈의 일생과 그의 작품을 엮어 문학적 특징을 설명해 준다. 그는 살면서 부조리한 사회에서 반항을 시도하게 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새로운 사랑도 했다. 하지만 어디서든 그는 이방인 같은 존재였다. 그의 사고방식이 그런 존재감을 만든 것인지 그의 존재위치가 그런 사고방식을 갖게 한건지 구분지을 순 없을 것 같다.

결론적으로 <이방인>은 이해해달라는 책이 아니라 의심해달라는 책이다. 늘 익숙하고 안정된 세계가 돌연 나의 고향, 나의 왕국이 아니라는 느낌, 이 느낌을 얻는 자가 바로 카뮈가 말하는 '부조리 인간' 즉 '부조리를 의식하는 인간'일 것이다. <이방인>을 읽은 후 확신이 아니라 의심 속에서, 안정이 아니라 동요 속에서 자신의 근원적 이미지를 찾아 조용한 성찰의 여행을 떠나는 것, 그것은 곧 <이방인>을 정독했다는 뜻임이 틀림없다. (p. 197) -해제 中

거의 쌍둥이 아니 요샛말로 연관검색어 처럼 붙어 다니는 '이방인- 부조리'

나의 기억속에서도 이 작품은 그러한 이미지였는데, 지금 오랜만에 새 번역으로 다시 읽은 나는 왠지 뫼르소의 무심함에 공감이 되고 슬퍼지면서 인간적으로까지 여겨지는데... 의심이 아니라 이해를 얻은, 동요가 아니라 안정을 느낀 이번의 독서가 <이방인>의 정독에 대한 역자와 견해와는 좀 다를 테지만 개인적으론 만족스러웠다. 성찰을 하며 살기엔 아무래도 내 삶이 좀 팍팍한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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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관의 국보 - 우리가 모르고 있었던 숨은 명작 문화재
배한철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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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보물로 지정되지 않은 걸작 문화재 35점!

'얼굴 없는 국보'의 예술적 의미와 역사적 가치를 밝힌다

역사읽기를 좋아하다보니 문화재라던가 유물유산에 관심이 생기는 건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그렇게 읽은 책들은 고궁을 더 재밌게 느끼게 했고 박물관 가는 것을 더 즐겁게 만들어주곤 했다. 그렇게 조금씩 알아가다보면 매번 놀라게 되는 것이 세상엔 어쩜 그리도 보물이 많던지 ㅎㅎ

하지만 많은 이야기들이 본 스토리보다 뒷이야기가 더 흥미롭지 않나, 유물유산 이야기도 뒷이야기를 알고 나면 세상이 이런 일이 하면서 별것 아닌것처럼 보이던 것이 괜히 특별해 보이게 된다. 더구나 '지금 당장 국보·보물로 지정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는 숨은 문화재 이야기라니 어떤 보물들 이려나 어떤 뒷이야기들이려나 궁금하지 않을 수가.ㅎ

사실 국보로 지정하느냐 마느냐의 여부는 주관적이라 하겠다. 현행 '문화재보호법'은 역사적·예술적 가치가 큰 것, 제작 연대가 오래되고 그 시대를 대표하는 것, 제작 기법이 우수해 그 유례가 적은 것, 형태·품질·용도가 현저히 특이한 것, 저명한 인물과 관련이 깊거나 그가 제작한 것 등 모호한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 보니 국보·보물 지정 권한을 가진 문화재위원의 영향력이 절대적일 수밖에 없다. (서문 中)

저자는 역사나 문화재와 전혀 상관없는 학문을 전공했지만 한국사와 문화재에 빠져들어 공부하고 관련 일들에 참여하다보니 이렇게 역사관련 교양서도 쓰고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으로도 활동하게 되었다고 한다. 뒷표지에서 '문화재 기자가 들려주는 비지정 국보의 흥미진진한 이야기' 라는 문구를 보니 아마도 기자로 활동하다가 문화재 칼럼까지 쓰게 된 것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기자가 쓴 글이니 가독성은 담보된 책이 아닐까 기대가 되기도 했고. 하지만 문장표현방식이 굉장히 옛스러워서 퇴직한 기자분이 개인적으로 역사공부하면서 취미로 쓰신 건가 싶어졌다는;;;

여하튼 저자 왈, '예술사적, 역사적 의미를 고려할 때 진작 국보·보물로 지정돼야 마땅하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그러지 못한 유물이 무수하다. 필자는 국보, 보물이라는 타이틀이 없다는 의미에서 이런 문화재를 '무관의 국보'라고 부르고 있다. (서문 中)' 라면서 35점의 문화재를 소개하고 있다. 전체 내용을 8챕터로 나누고 있지만 사실 챕터구분은 큰 의미가 없어 보여서 관심가는 보물 이야기를 골라 읽어도 상관없을 것 같다.

'무관의 국보' 라는 멋진 제목에 맞추어 35점의 보물 이야기들이 하나하나 아쉽고 안타까운 뒷이야기들이 있지 않을까 기대했더랬다. 아니 이런 문화재가 왜 국보나 보물 선정이 안되었지? 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새로운 보물들을 발견하게 될 책이기를 바랬다. 하지만 뭔가 좀 아쉬웠다. 국보나 보물로 지정되지 않은 문화재들을 소개하고 있긴 한데, 왜 국보나 보물로서의 가치가 있는지 그런데 왜 선정이 안되었는지 그런 핵심이 빠져있는 것 같았다. 문화재 소개는 하고 있는데 그래서 뭐? 라는 기분이 든달까.

그나마 흥미로웠던 문화재는 쓰러져 있는 '열암곡 마애불' ,

그리고 김명국의 그림과 신사임당의 그림 그리고 각종 현판들은 하나도 국보나 보물로 지정되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가장 '무관의 국보'에 어울리는 이야기였다.

때론 이 문화재가 국보나 보물로 지정이 됬다는건지 안됬다는 건지 내용상 언급이 좀 불명확한 부분도 있었는데, 특히나 '화성능행도 8폭 병풍' 은 나름 자세히 그림들을 소개하고 있으면서도 그래서 이 문화재가 어떤 가치를 인정받았다는 건지 아닌건지 알수가 없었다. 하나의 에피소로 글이 써진걸 보면 '무관의 국보'인것 같기는 한데;;;

여하튼 표지도 멋지도 제목도 멋지고 숨은 보물을 발굴한다는 취지도 좋은 책이긴 했는데, 내용이 그에 못미치는 것 같아서 좀 아쉬웠다.

하지만 우리 문화재 관련한 이런 책들이 많이 나오고 널리 읽히길 늘 응원한다. 기왕이면 좀더 재밌고 좀더 흥미진진하게 쓰여지면 더 좋겠고.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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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의 정신현상학 - 자유의지, 절대정신에 이르는 길 EBS 오늘 읽는 클래식
이병창 지음, 한국철학사상연구회 기획 / EBS BOOKS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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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철학의 완성이자 현대철학의 출발점

자유의지의 철학자 헤겔의 철학 세계

내가 철학을 전공한 것도 아닌데 헤겔이라니 하물며 정신현상학이라니 언제 읽어봤겠는가? 아니 읽어볼 엄두초자 내 봤겠는가? 하지만 EBS books의 오늘 읽는 클래식 시리즈라면 이 어마무지한 철학의 세계를 조금이나마 맛볼 수 있다. 그것도 짧고 굵게. 역시 멋진 시리즈다.

헤겔의 [정신현상학]은 참으로 어려운 책이다. 문장의 앞뒤를 맞추어보는 것조차 어려울 지경이며, 어떤 식으로 구성되었는가를 말하기도 곤란하다. 부분적인 이해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아직 아무도 이 책이 전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를 분면하게 말하지 못한다. 나는 대학원 시절부터 지금까지 무려 50년간이나 이책을 읽고 또 읽었으나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는 말들이 많이 남아 있다. (p. 6)-서문 中-

고전 관련 책은 저자가 참 중요하다. 특히나 번역서를 바탕으로 할 경우 번역서도 중요하다. 철학은 해석이 중요한 학문이므로 당연히 그 분야의 전공자 책을 읽음이 옳다. 이 책의 저자는 헤겔의 책을 50년간 읽어왔다니 그러고도 어렵다니 그 오랜 세월 고민해왔기에 그렇기에 이 짧고 굵은 책 한권으로 요약해줄 수 있었던게 아니겠는가, 무엇보다도 헤겔의 책 원전을 번역한 본인이므로 더욱 믿을 수 있다.

나는 이 글에서 헤겔이 [정신현상학]에서 제시한 자유의지의 개념을 밝혀보려 한다. 헤겔에게서 자유의지는 역사적으로 형성되는 것이다. 즉 머릿속에서 판단해 출현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에서 생사를 다투는 투쟁을 통해 형성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헤겔의 자유의지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유의지의 역사적 발전 과정을 충실하게 따라가야 한다. (p. 8)-서문 中-

'독일의 근대화 초기에 살았던 헤겔에게서 자유는 그의 시대를 끌고 가는 지도 이념이었다. 그에게서 역사는 자유의 역사이며, 국가는 자유의지의 산물이다. 헤겔이야말로 사르트르 이상으로 자유의 철학자라 할 수 있는데, 그렇다면 그 이전에 먼저 자유가 무엇인지 밝혀야 하지 않았을까? (p. 7)' 철학자들의 사상은 본인들이 살았던 그 시대를 떠나서 해석할 수 없다. 따라서 역사를 바탕으로 그들의 사상을 이해해야 한다. 헤겔하면 절대정신이니 세계정신이니 하는 뭔가 거대하고 범접할 수 없는 철학을 한 사람이 아닌가 싶었는데 헤겔 철학의 핵심중 하나는 '자유의지'였다. 하긴 인간을 탐구하는 철학에서 인간의 의지를 파고들지 않을 수 없는 건지도...

이 작고 얇은 책을 통해 헤겔의 [정신현상학]을 조금이나마 쉽게 설명하려면 핵심포인트를 잡는게 중요했을 터, 저자는 역사와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한 분석을 통해 헤겔 철학을 풀어주는데, 쉽게 설명해주는 것 같음에도 불구하고 읽기에 마냥 쉬웠던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지덕지한 마음으로 읽었다. 조금이나마 이해한 문장이 있는게 어디냐 하면서.ㅎ

어떤 규범을 발견하더라도, 규범을 실천하는 의지는 또 다른 문제인데도, 철학은 이런 의지의 문제를 거의 다루지 않았다. (p. 15) 베를린대학 입구 계단에는 이렇게 쓰여있다. '철학은 다만 여러 가지로 세계를 해석해왔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화하는 것이다.' 이 말은 마르크스의 말이지만, 헤겔의 철학을 가장 잘 표현한다. 철학은 이제 이 의미에서 실천적 의지의 문제를 다룰 필요가 있다. (p. 18)

헤겔 철학이 실천의지를 중요시 여겼구나... 고리타분한 철학일 줄 알았더니 은근 역동적이었네...

헤겔은 [정신현상학]에서도 낭만주의 철학과 더불어 낭만주의가 제시한 양심 개념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헤겔이 낭만주의 비판에 나선 것은 그 시대 독일의 역사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독일은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30년간에 걸친 종교전쟁을 끝냈다. 이 종교 전쟁은 신교와 구교 간의 전쟁이었지만 유럽의 모든 국가가 참여한 세계 전쟁이었다. 전쟁 결과, 독일은 수십 개의 작은 국가로 분열했다. 1517년 루터의 종교개혁에서 보듯이, 독일은 유럽에서도 선진 국가여쓰나 베스트팔렌 조약 이후 근대 사회로의 발전이 중단되고 오히려 봉건 체제로 거슬러올라가게 되었다. 19세기 초 영국과 프랑스는 경제적으로 자본주의가 발전하고, 정치적으로 민족 통일국가와 민주주의가 확립되며, 사회적으로도 종교의 자유가 허용되었다. 반면 독일은 분열 속에서 여전히 중세의 봉건적 반동과 민족적 분열, 종교적 압박에 시달리고 있었다. 여기서 독일의 발전을 위한 새로운 길, 다시 말해 독일을 통일하고 개혁할 새로운 정신이 필요했다. (p. 29)

새로운 정신의 필요성은 항상 불운한 시대에서 탄생하기 마련인가 보다. 어떻게든 돌파구를 마련하고자 하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라서인가... 여하튼, 헤겔은 낙후된 독일을 일으킬 새로운 정신을 찾아내려 애썼다. 자본주의적 발전으로 선진사회로 나아가고 있는 영국과 프랑스에 비해 독일은 역사를 발전시킬 원동력이 없는 상황이라고 판단한 헤겔이 개인의 실천의지에 주목하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생각의 흐름이었다. 시대의 역사성이 발전을 못하고 있다면 개인의 실천의지가 더 중요해졌다고나 할까.

새로운 정신은 자아의 힘과 실체의 객관적 힘을 결합, 통일해야 한다. 새로운 공동체는 억압적인 체제가 아니라 개인의 자아를 인정하는 자유의 체제여야 했다. 그러면서도 고립적인 개인으로 분산된 사회가 아니라 개인의 상호작용을 통해 형성되는 공동체여야 했다. 이런 공동체를 형성하기 위해 개인이 자발적으로 공동체에 복종하는 자유의지가 있어야 했다. 헤겔의 길은 곧 공동체적 자유의지라는 정신에 있다. (p. 32) [정신현상학]의 전체 구성을 본다면 헤겔이 추구했던 핵심이 곧 자유의지이고 헤겔이 도달하려 했던 최종 목적은 곧 공동체적 자유의지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신현상학]은 형식적 자유의지에서 실질적 자유의지를 거쳐 공동체적 자유의지에 이르는 거대한 역사적 드라마이다. 그러나 이 책은 자유의지만을 다루지는 않는다. (중략) [정신현상학] 이 책은 포괄적인 사상사라는 형태를 취하고 있으나, 헤겔이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은 전체적으로 자유의지라는 실천적 문제이다. (p. 33)

헤겔의 철학은 몰라도 헤겔이 말을 나폴레옹을 보고 '저기 세계정신이 온다' 라고 말했다는 에피소드는 꽤 유명하다. 사실 나는 이 에피소드에서의 세계정신을 절대정신과 구분하지도 못했고, 베토벤은 나폴레옹을 생각하며 만든 교향곡 [영웅] 악보를 찢어버렸다는데 헤겔은 나폴레옹을 세계사적 영웅으로 간주했다고 하니 헤겔철학은 좀 문제있는거 아닌가 라는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헤겔이 나폴레옹을 '마상(馬上)의 세계정신(p. 224)'이라고 평가했다고 해서 그것이 칭송이나 찬양의 표현이 아니었다는 것을 이제 좀 알겠다. 그러니 혁명의 주인공을 우러르기 위해 만든 교향곡을 황제가 된 사람에게 줄 순 없어서 찢어 버렸을지라도, 그 사람이 역사의 흐름에서 '세계정신'일 수는 있는 거였다. 하지만 세계정신이라 할지라도 아직은 그저 '개인'일 뿐이었다.

지금까지 정신은 개인의 정신이었다. 그런 정신은 역사적으로 발전하면서 앞의 정신보다 더 포괄적으로 완성되었다. 그런데 절대정신은 더이상 개인이 지닌 어떤 정신은 아니다. 절대정신은 하나의 공동체이다. (p. 232) 절대지는 [정신현상학]이 추구해왔던 자유의지가 실현된 결과 즉 진정한 공동체이다. 헤겔은 진정한 공동체는 이 자유의지의 실현을 통해 역사적으로 형성되는 것으로 보았다. 절대지는 정신이 발전한 최종형태다. 그런데 헤겔은 이 절대지에서 학문이 출현한다고 한다. (p. 247)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정신 형태의 역사적 발전을 현재의 스크린에 투영하면서 이루어진 것이 논리적 체계가 된다. 이 논리적 체계를 다시 역사적 시간 위에 투영하면 정신 형태의 역사적 발전이 ㅊ생긴다. 이 같은 형태의 발전에서 최종적인 형태가 절대지다. 절대지는 가장 포괄적이며 일반적인 정신의 형태다. 이 절대지에 이르면 이전의 정신의 형태는 모두 그 속에 내적 계기로 포함된다. 이 내적 계기가 이루는 논리적 체계가 곧 학문이다. 학문의 출발점은 논리학의 가장 추상적인 개념인 존재인데, 절대지가 바로 이 추상적 존재에 해당한다. (p. 248)

역시 어렵긴 어렵다;;; 개인의 실천의지가 역사 속에서 발현되는 과정에 따라 세계정신이 되고 그러한 세계정신들이 하나의 공동체적 절대정신으로 나아가는 과정이 또한 역사적 발전 과정인데 이 공동체적 절대정신이 발현된 것이 절대지이고 이 절대지에서 학문이 출현하는데 그 학문일 철학이 추구하는 것은 다시 공동체적 절대정신이이라는 딱이 원이 아닌 순환고리가 머리속에서 빙글빙글 도는 것 같다. 하긴 어려운게 당연한 것 아니겠나? 이 작고 얇은 책으로 헤겔의 철학을 어찌 이해하겠는가 ㅎㅎ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왠지 또 아예 모르겠는 기분도 아니게 하는 것이 이 책의 미덕이다. 뭐 조금은 알겠고 하지만 뭐 여전히 어려운 그러나 왠지 지적 세계가 풍족해진 것 같은 그런 기분?! ㅎㅎ 이 시리즈의 구성이 다 비슷하듯이 이 책또한 책 말미에 '철학의 이정표'라고 참고도서를 안내해주고 있으니 더 깊이 이해하고 싶다면 이 참고서들을 읽어보면 될 것이다. EBS books 오늘 읽는 클래식 헤겔편! 이번에도 역시 만족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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