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의 정신현상학 - 자유의지, 절대정신에 이르는 길 EBS 오늘 읽는 클래식
이병창 지음, 한국철학사상연구회 기획 / EBS BOOKS / 2022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전통철학의 완성이자 현대철학의 출발점

자유의지의 철학자 헤겔의 철학 세계

내가 철학을 전공한 것도 아닌데 헤겔이라니 하물며 정신현상학이라니 언제 읽어봤겠는가? 아니 읽어볼 엄두초자 내 봤겠는가? 하지만 EBS books의 오늘 읽는 클래식 시리즈라면 이 어마무지한 철학의 세계를 조금이나마 맛볼 수 있다. 그것도 짧고 굵게. 역시 멋진 시리즈다.

헤겔의 [정신현상학]은 참으로 어려운 책이다. 문장의 앞뒤를 맞추어보는 것조차 어려울 지경이며, 어떤 식으로 구성되었는가를 말하기도 곤란하다. 부분적인 이해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아직 아무도 이 책이 전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를 분면하게 말하지 못한다. 나는 대학원 시절부터 지금까지 무려 50년간이나 이책을 읽고 또 읽었으나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는 말들이 많이 남아 있다. (p. 6)-서문 中-

고전 관련 책은 저자가 참 중요하다. 특히나 번역서를 바탕으로 할 경우 번역서도 중요하다. 철학은 해석이 중요한 학문이므로 당연히 그 분야의 전공자 책을 읽음이 옳다. 이 책의 저자는 헤겔의 책을 50년간 읽어왔다니 그러고도 어렵다니 그 오랜 세월 고민해왔기에 그렇기에 이 짧고 굵은 책 한권으로 요약해줄 수 있었던게 아니겠는가, 무엇보다도 헤겔의 책 원전을 번역한 본인이므로 더욱 믿을 수 있다.

나는 이 글에서 헤겔이 [정신현상학]에서 제시한 자유의지의 개념을 밝혀보려 한다. 헤겔에게서 자유의지는 역사적으로 형성되는 것이다. 즉 머릿속에서 판단해 출현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에서 생사를 다투는 투쟁을 통해 형성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헤겔의 자유의지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유의지의 역사적 발전 과정을 충실하게 따라가야 한다. (p. 8)-서문 中-

'독일의 근대화 초기에 살았던 헤겔에게서 자유는 그의 시대를 끌고 가는 지도 이념이었다. 그에게서 역사는 자유의 역사이며, 국가는 자유의지의 산물이다. 헤겔이야말로 사르트르 이상으로 자유의 철학자라 할 수 있는데, 그렇다면 그 이전에 먼저 자유가 무엇인지 밝혀야 하지 않았을까? (p. 7)' 철학자들의 사상은 본인들이 살았던 그 시대를 떠나서 해석할 수 없다. 따라서 역사를 바탕으로 그들의 사상을 이해해야 한다. 헤겔하면 절대정신이니 세계정신이니 하는 뭔가 거대하고 범접할 수 없는 철학을 한 사람이 아닌가 싶었는데 헤겔 철학의 핵심중 하나는 '자유의지'였다. 하긴 인간을 탐구하는 철학에서 인간의 의지를 파고들지 않을 수 없는 건지도...

이 작고 얇은 책을 통해 헤겔의 [정신현상학]을 조금이나마 쉽게 설명하려면 핵심포인트를 잡는게 중요했을 터, 저자는 역사와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한 분석을 통해 헤겔 철학을 풀어주는데, 쉽게 설명해주는 것 같음에도 불구하고 읽기에 마냥 쉬웠던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지덕지한 마음으로 읽었다. 조금이나마 이해한 문장이 있는게 어디냐 하면서.ㅎ

어떤 규범을 발견하더라도, 규범을 실천하는 의지는 또 다른 문제인데도, 철학은 이런 의지의 문제를 거의 다루지 않았다. (p. 15) 베를린대학 입구 계단에는 이렇게 쓰여있다. '철학은 다만 여러 가지로 세계를 해석해왔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화하는 것이다.' 이 말은 마르크스의 말이지만, 헤겔의 철학을 가장 잘 표현한다. 철학은 이제 이 의미에서 실천적 의지의 문제를 다룰 필요가 있다. (p. 18)

헤겔 철학이 실천의지를 중요시 여겼구나... 고리타분한 철학일 줄 알았더니 은근 역동적이었네...

헤겔은 [정신현상학]에서도 낭만주의 철학과 더불어 낭만주의가 제시한 양심 개념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헤겔이 낭만주의 비판에 나선 것은 그 시대 독일의 역사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독일은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30년간에 걸친 종교전쟁을 끝냈다. 이 종교 전쟁은 신교와 구교 간의 전쟁이었지만 유럽의 모든 국가가 참여한 세계 전쟁이었다. 전쟁 결과, 독일은 수십 개의 작은 국가로 분열했다. 1517년 루터의 종교개혁에서 보듯이, 독일은 유럽에서도 선진 국가여쓰나 베스트팔렌 조약 이후 근대 사회로의 발전이 중단되고 오히려 봉건 체제로 거슬러올라가게 되었다. 19세기 초 영국과 프랑스는 경제적으로 자본주의가 발전하고, 정치적으로 민족 통일국가와 민주주의가 확립되며, 사회적으로도 종교의 자유가 허용되었다. 반면 독일은 분열 속에서 여전히 중세의 봉건적 반동과 민족적 분열, 종교적 압박에 시달리고 있었다. 여기서 독일의 발전을 위한 새로운 길, 다시 말해 독일을 통일하고 개혁할 새로운 정신이 필요했다. (p. 29)

새로운 정신의 필요성은 항상 불운한 시대에서 탄생하기 마련인가 보다. 어떻게든 돌파구를 마련하고자 하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라서인가... 여하튼, 헤겔은 낙후된 독일을 일으킬 새로운 정신을 찾아내려 애썼다. 자본주의적 발전으로 선진사회로 나아가고 있는 영국과 프랑스에 비해 독일은 역사를 발전시킬 원동력이 없는 상황이라고 판단한 헤겔이 개인의 실천의지에 주목하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생각의 흐름이었다. 시대의 역사성이 발전을 못하고 있다면 개인의 실천의지가 더 중요해졌다고나 할까.

새로운 정신은 자아의 힘과 실체의 객관적 힘을 결합, 통일해야 한다. 새로운 공동체는 억압적인 체제가 아니라 개인의 자아를 인정하는 자유의 체제여야 했다. 그러면서도 고립적인 개인으로 분산된 사회가 아니라 개인의 상호작용을 통해 형성되는 공동체여야 했다. 이런 공동체를 형성하기 위해 개인이 자발적으로 공동체에 복종하는 자유의지가 있어야 했다. 헤겔의 길은 곧 공동체적 자유의지라는 정신에 있다. (p. 32) [정신현상학]의 전체 구성을 본다면 헤겔이 추구했던 핵심이 곧 자유의지이고 헤겔이 도달하려 했던 최종 목적은 곧 공동체적 자유의지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신현상학]은 형식적 자유의지에서 실질적 자유의지를 거쳐 공동체적 자유의지에 이르는 거대한 역사적 드라마이다. 그러나 이 책은 자유의지만을 다루지는 않는다. (중략) [정신현상학] 이 책은 포괄적인 사상사라는 형태를 취하고 있으나, 헤겔이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은 전체적으로 자유의지라는 실천적 문제이다. (p. 33)

헤겔의 철학은 몰라도 헤겔이 말을 나폴레옹을 보고 '저기 세계정신이 온다' 라고 말했다는 에피소드는 꽤 유명하다. 사실 나는 이 에피소드에서의 세계정신을 절대정신과 구분하지도 못했고, 베토벤은 나폴레옹을 생각하며 만든 교향곡 [영웅] 악보를 찢어버렸다는데 헤겔은 나폴레옹을 세계사적 영웅으로 간주했다고 하니 헤겔철학은 좀 문제있는거 아닌가 라는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헤겔이 나폴레옹을 '마상(馬上)의 세계정신(p. 224)'이라고 평가했다고 해서 그것이 칭송이나 찬양의 표현이 아니었다는 것을 이제 좀 알겠다. 그러니 혁명의 주인공을 우러르기 위해 만든 교향곡을 황제가 된 사람에게 줄 순 없어서 찢어 버렸을지라도, 그 사람이 역사의 흐름에서 '세계정신'일 수는 있는 거였다. 하지만 세계정신이라 할지라도 아직은 그저 '개인'일 뿐이었다.

지금까지 정신은 개인의 정신이었다. 그런 정신은 역사적으로 발전하면서 앞의 정신보다 더 포괄적으로 완성되었다. 그런데 절대정신은 더이상 개인이 지닌 어떤 정신은 아니다. 절대정신은 하나의 공동체이다. (p. 232) 절대지는 [정신현상학]이 추구해왔던 자유의지가 실현된 결과 즉 진정한 공동체이다. 헤겔은 진정한 공동체는 이 자유의지의 실현을 통해 역사적으로 형성되는 것으로 보았다. 절대지는 정신이 발전한 최종형태다. 그런데 헤겔은 이 절대지에서 학문이 출현한다고 한다. (p. 247)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정신 형태의 역사적 발전을 현재의 스크린에 투영하면서 이루어진 것이 논리적 체계가 된다. 이 논리적 체계를 다시 역사적 시간 위에 투영하면 정신 형태의 역사적 발전이 ㅊ생긴다. 이 같은 형태의 발전에서 최종적인 형태가 절대지다. 절대지는 가장 포괄적이며 일반적인 정신의 형태다. 이 절대지에 이르면 이전의 정신의 형태는 모두 그 속에 내적 계기로 포함된다. 이 내적 계기가 이루는 논리적 체계가 곧 학문이다. 학문의 출발점은 논리학의 가장 추상적인 개념인 존재인데, 절대지가 바로 이 추상적 존재에 해당한다. (p. 248)

역시 어렵긴 어렵다;;; 개인의 실천의지가 역사 속에서 발현되는 과정에 따라 세계정신이 되고 그러한 세계정신들이 하나의 공동체적 절대정신으로 나아가는 과정이 또한 역사적 발전 과정인데 이 공동체적 절대정신이 발현된 것이 절대지이고 이 절대지에서 학문이 출현하는데 그 학문일 철학이 추구하는 것은 다시 공동체적 절대정신이이라는 딱이 원이 아닌 순환고리가 머리속에서 빙글빙글 도는 것 같다. 하긴 어려운게 당연한 것 아니겠나? 이 작고 얇은 책으로 헤겔의 철학을 어찌 이해하겠는가 ㅎㅎ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왠지 또 아예 모르겠는 기분도 아니게 하는 것이 이 책의 미덕이다. 뭐 조금은 알겠고 하지만 뭐 여전히 어려운 그러나 왠지 지적 세계가 풍족해진 것 같은 그런 기분?! ㅎㅎ 이 시리즈의 구성이 다 비슷하듯이 이 책또한 책 말미에 '철학의 이정표'라고 참고도서를 안내해주고 있으니 더 깊이 이해하고 싶다면 이 참고서들을 읽어보면 될 것이다. EBS books 오늘 읽는 클래식 헤겔편! 이번에도 역시 만족스러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