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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미트리오스의 가면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248
에릭 앰블러 지음, 최용준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3월
평점 :
이 소설을 읽게 된 계기.
아마 이 문구를 보게된 사람이라면 누구나 관심이 가고 읽어보고 싶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스파이 소설의 최고 걸작>으로 평가받는
현대 스파이 소설의 아버지 에릭 앰블러의 대표작
○○의 '아버지'라하면 믿고 읽게 되기에, 그리고 무기력에 빠진 나에게 그 무엇보다도 신선한 자극으로 다가올 것이 분명하기에 소설을 읽게 되었습니다.
저 베일에 가려진 그의 실체는 어떨지......
『디미트리오스의 가면』
소설의 시작은 이러했습니다.
뭔가 잘 모르는 샹포르라는 프랑스 사람이, 우연이란 신의 섭리라고 말한 적이 있다. - page 11
정말 우연이었을까, 아님 인연이었을까......
영국의 작은 대학 정치경제학과 조교수인 그 '찰스 래티머'.
그는 강의를 하는 틈틈이 책을 써 벌써 세 번째 책을 출간하게 됩니다.
그가 쓰는 책은 다름아닌 추리 소설.
여가 시간에 소설을 쓰던 그는 머지않아 명실공히 전업 작가가 되리라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렇게 그는 책 집필을 마친 뒤 그리스인 친구의 권유로 이스탄불로 향하게 됩니다.
이스탄불에 도착한 래티머.
이제부터 그의 '우연'처럼 다가온 사건에 '집착'을 하기 시작합니다.
소개장으로 찾아간 차베스 부인의 저택에서 나흘 동안 열리는 파티 초대장을 받은 래티머.
살짝 마음이 내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그 초대를 받아들이기로 합니다.
여러 손님들 중 유독 눈에 띤 그 남자.
큰 키에 홀쭉하게 여윈 볼이며 햇볕에 그을린 살빛이 프로이센식으로 짧게 깎은 회색 머리와 대조를 이루지만 멋지게 재단된 장교복을 입은 그는 다름아닌 하키 대령이었습니다.
하키 대령은 손님들이 차츰 춤추는 데 흥미를 잃고 남녀 혼성 스트립포커에 관심을 쏟기 시작할 무렵 래티머의 팔을 잡고 테라스로 데려갑니다.
하키 대령은 래티머의 소설을 좋아한다며 넌지시 건넨 말.
「선생님, 혹시 이번 주 안에 저와 점심 식사 한 번 하실 수 있을까요?」 그러고는 아리송한 말을 덧붙였다. 「어쩌면 제가 선생님에게 도움이 될지도 모릅니다.」- page 19
어떤 면에서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래티머는 기꺼이 하키 대령에게 점심을 같이하겠다고 대답하고 만나게 됩니다.
식사를 하는 동안 하키 대령은 자신이 읽은 추리 소설과 작품에서 받은 인상, 등장인물에 관한 의견, 사람을 죽일 때 총으로 죽이는 살인범을 좋아한다는 등의 말을 하며 래티머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합니다.
「플롯은 이미 짜놓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선생님에게 드리고 싶습니다.」- page 22
하키 대령은 자신의 사무실에 래티머와 함께 가게 됩니다.
그리고는 이 소설을 이끌어갈 사건을 만나게 됩니다.
「있잖습니까, 래티머 선생님」대령이 말했다. 「저는 진짜 살인자보다 추리소설의 살인자에게 훨씬 더 공감이 갑니다. 추리 소설 속에는 시체 한 구, 용의자 몇 명, 탐정 한 명, 교수대 하나가 있지요. 예술적입니다. 하지만 진짜 살인범은 전혀 예술적이지 않습니다. 일종의 경찰관인 제가 단언할 수 있습니다.」하키 대령은 책상 위의 폴더를 톡톡 두드렸다. 「여기에 진짜 살인범이 있습니다. 우리는 거의 20년 전부터 그 존재를 알고 있었지요. 이건 그자에 관한 기록입니다. 우리는 그자가 저질렀을 것으로 짐작되는 살인을 하나 압니다. 그리고 그자가 저질렀지만 우리가 전혀 모르는 살인들도 분명히 있을 겁니다. 전형적인 악당입니다. 교활하고 속되고 비겁한 인간쓰레기지요. 살인, 스파이질, 마약 밀매 전력이 있습니다. 암살도 두 건이나 있고요.」 - page 28 ~ 29
그 자는 바로 '디미트리오스'였습니다.
그런데......
「그렇습니다, 그자는 죽었습니다.」하키 대령은 경멸하듯이 얇은 입술을 일그러뜨렸다. 「어젯밤 어떤 어부가 보스포루스 해협에서 그자의 시체를 끌어 올렸습니다. 배에서 칼에 찔린 뒤 바다로 던져진 듯합니다. 쓰레기에 걸맞게 바다에 떠 있었지요.」 - page 29 ~ 30
하키 대령이 이야기하는 '디미트리오스'란 자에 작가로써의 흥미뿐만 아니라 자신의 호기심으로 그에 대해 너무나 궁금하고 알고 싶어졌습니다.
래티머는 디미트리오스의 흔적을 쫓기 시작합니다.
솔직히 래티머를 따라 디미트리오스의 흔적을 쫓는 과정에서 그 시대의 배경에서 어렴풋하게 그려졌기에 몰입감은 높지 않았습니다.
또한 래티머도 '형사'와 같은 박진감을 가지고 조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라는 입장이기엔 한 발치 떨어져서 바라보는 입장이기에, 그 또한 소설 속에서도 디미트리오스를 쫓는 것은 소설을 쓰기 위함이 아니라 자신의 호기심으로 그를 조사한다고 하였기에 조금은 아쉬운 듯한 느낌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그에 반해 소설의 흐름은 유럽 곳곳을 오가며 그 시대의 배경이 그려지기에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소설보다 더 짜릿하고도 박진감 넘치게 몰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실제 이 소설의 영화도 있었습니다.)
이 소설에서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바.
가려진 '얼굴'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인간은 악마의 가면처럼 얼굴을 사용한다. 얼굴은 자기감정을 보충해 주는 감정을 타인의 가슴속에 불러일으키기 위한 도구다. 자신이 공포를 느끼면 타인도 자신에게서 공포를 느끼게 해야 한다. 자신이 욕망을 가지면 타인도 자신에게 욕망을 갖게 해야 한다. 얼굴은 마음의 적나라한 모습을 감추는 가림막이다. 오직 소수만이, 화가만이 얼굴을 통해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다. 그 밖의 사람들은 판단할 때 눈앞의 가면을 설명하기 위해 말과 행동에서 근거를 구하려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가면이 그 배후의 인간일 수 없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면서도, 그 사실이 입증되면 대개 충격을 받는다. 사람들은 자신의 이중성에 대해서는 알아차리지 못하면서도 타인의 이중성에 대해서는 늘 충격을 받는다. - page 343 ~ 344
인간의 이중성에 대해, 아니 지금의 나는 어떤 가면일지......
또 왠지 모르게 민낯을 들킨 것 같은 느낌마저 들어 참으로 아이러니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소설 속에서 인상적인 대목이 있었습니다.
죽어 가는 문명에서 정치적 명성이라는 것은 뛰어난 전문의가 아닌, 병자의 비위를 잘 맞추는 이에게 주어지는 포상이다. 무지한 인간들이 평범한 인간에게 주는 훈장인 것이다. 하지만 애처로운 위엄이 함께하는 정치적인 명성이 단 한 가지 남아 있다. 서로 극단적으로 다른 신념을 지니고 다투어대는 당원들을 한데 품은 당의 도량 넓은 지도자에게 주어지는 명성이다. 그런 지도자의 위엄은, 무릇 저주받은 운명의 인간들이 지닌 위엄, 바로 그것이다. 왜냐하면 상극인 두 과격파가 함께 무너지든 한쪽이 승리를 거두든 그 지도자의 운명은 이미 정해여 있어, 국민의 증오 대상이 되든지 아니면 순교자로 죽는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 page 97 ~ 98
처음엔 가벼운 마음으로, 짜릿한 스릴과 긴장감을 맛보기 위해 읽기 시작하였지만 굵직굵직한 사회의 문제점에 대해, 인간의 본성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독자들에게 넌지시 던지는 질문 속에 큰 울림을 전한 소설이었습니다.
읽고 난 뒤 왜 이 작품이 '최고 걸작'이란 수식어가 붙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