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혼자가 아닌 시간
코너 프란타 지음, 황소연 옮김 / 오브제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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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가사가 내 이야기 같을 때......

요즘의 제 모습이 이 노래 가사와도 같았습니다.

지코의 <아무노래>.


왜들 그리 다운돼있어?
뭐가 문제야 say something
분위기가 겁나 싸해
요새는 이런 게 유행인가
왜들 그리 재미없어?
아 그건 나도 마찬가지
Tell me what I got to do
급한 대로 블루투스 켜 - 지코의 <아무노래> 중에서


그래서 주변에서도 많은 관심과 응원을 보내주곤 하지만......

공허해지는 마음과 결국은 혼자라는 느낌은 쉽게 떨칠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이 책을 집어들게 되었습니다.


지금 혼자라고 느낄 당신에게 보내는

진심의 메시지


감정을 나누는 순간,

우리는 누구도 혼자가 아니다


누구도 혼자가 아닌 시간

 


본문에 들어가기 앞서 저자의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인간이라는 조건 안에서 살아간다. 그것이 우리의 균형추이자 공통분모이며, 우리가 서로 공감할 수 있는 이유다. 우리는 완벽한 치유의 공간에서 살고 있다. 오늘날의 세상은 더욱 그렇다. 그런데도 나는 자주 행복하지 않고, 그래서 부끄럽다. 나는 비밀을 털어놓고 내 이야기를 들려줄 또 다른 너그러운 영혼을 만나기가 참 어려웠다. 지금까지는. - page 17


그래서 그는 글을 썼습니다.

솔직해지고 싶어서...

서로 공감하고 위로를 얻고 싶어서...

그렇게 작은 행복을 느끼고 싶어서 말입니다.


사람들은 '꿈'을 가지며 살아가야 한다고 하지만 막상 '꿈'을 운운하기엔 너무나도 힘겹고도 어려운 세상.

주변 사람들은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데 나만 제자리를 맴돌고, 그래서 불안하고도 우울한 나.

하지만 나만 그런 것이 아니기에 내 감정을 숨기면서 살아가지만 조금씩 한계를 느끼는 저에게 저자가 건넨 이 이야기는 그동안 참아왔던 눈물을 쏟아내게 하곤 하였습니다.


나의 몸부림, 나의 고통, 나의 슬픔, 나의 절망, 나의 눈물, 이것은 유별난 게 아니다. 공유할 수 있다. 일단 공유하면 고립될 가능성은 사라진다. 내가 겪고 있는 것을 수없이 많은 사람 역시 겪어왔고 겪고 있다는 걸 깨닫자 두려움과 부담, 외로움이 줄어든다.

요즘 나는 삶이 버겁고 어떤 감정에 압도될 때면, 나만 이런 게 아니라는 사실을 되새긴다. 그러면 내 편이 되어줄 친한 친구나 가족에게 털어놓고 손을 내밀기가 훨씬 수월하다. 아무리 큰 두려움이 덮친다 해도 누구도 혼자가 아니다. 그리고 좋은 사람들은 서로의 곁을 지킨다. 다만 이 감정과 저 감정의 차이점은 뒤에 각자 다른 이야기가 숨어 있다는 것뿐인데, 그 이야기를 털어놓으면 마음의 짐을 덜 수 있다. 그리고 장담하건대, 고통마저 줄어드는 경이로운 일이 일어난다. - page 34


저는 속마음을 털어놓지 못합니다.

내 이야기는 그들에게 별 것도 아닐 것이기에, 내가 느끼는 감정이 그들의 입장에서는 하찮게 여겨질 것 같기에, 그리고 내 자신이 초라해 보일까봐......

그래서 그의 이 이야기에 조금은 용기가 나곤 하였습니다.


약한 모습을 보인다고 해서 아무도 당신을 단죄하거나 달리 대하지 않는다. 사람들 역시 어떤 식으로든 그런 처지에 놓여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당신을 아끼는 친구라면 공감할 것이다. 당신을 사랑하는 가족도 마찬가지다. 나는 순전히 친구와 가족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내가 쓰려졌을 떄 그들이 손을 내밀어 일으켜 세웠다. 항상 효과가 있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그들은 나를 위해 애써줄 것이다. 내게 그건 크나큰 의미였고 지금까지도 크나큰 의미다. 너무 많은 사람에게 너무 많은 신세를 졌는데, 그 사실이 자랑스럽다. - page 193

 

책을 읽고나서 <김창욱쇼>를 보았습니다.

저자도 그랬고, 김창욱 씨도 그랬습니다.

괜찮아!

고마워!

수고했어!

이 한 마디 한 마디가 눈물과 함께 저를 감싸주었습니다.

더없이 큰 위로를 받아서 따스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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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의 나라 - 마의태자의 진실
이상훈 지음 / 파람북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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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진실을 마주한다는 것......

잔혹하면서도 비참해지는 사실에 때론 고개를 돌리지만 그래도 이 또한 우리의 역사라는 점에서 마주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읽게 된 이 소설.

또다시 가려졌었던 역사의 진실을 마주하게 해 주었습니다.


"마의태자는 사라진 것이 아니다.

북방의 땅에서 새로운 제국을 건설했다!"


《삼국사기》속에 나타난 마의태자의 모습은 어떤 진실 속에 가려진 것일지 역사의 현장 속으로 들어가 봅니다.

김의 나라

 

진국은 무엇에 쫓기는 듯 잠에서 깼다. 새벽 3시였다. 옆에서 작은 소리로 코를 골며 자고 있는 아내를 깨우지 않으려고 까치발로 침대를 내려왔다. 그리고 불 꺼진 거실에 앉아 머릿속에 휘날리는 생각의 파편들을 그냥 춤추게 놔두었다. - page 20

다큐멘터리 프로듀서인 그 '진국'.

그가 뒤척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

영화《마지막 황제》의 한 부분이 마치 그의 머릿속을 어지럽혔기 때문이었습니다.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 푸이. 그가 인민재판에 넘겨진 이후에 그의 이름이 호명되는 순간, 진국은 심한 전류가 몸을 타고 흐르듯 짜릿한 전율을 느꼈다. 그의 이름은 '애신각라 부의'였다. 그의 성이 애신각라였던 것이다. - page 20


애신각라.

한자를 풀이하면 '신라를 사랑하고 신라를 생각하라'는 의미로 신라 멸망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면서 시작된 마의태자에 대한 의문이 자꾸만 진국을 붙잡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마의태자에 대한 의문은 기존의 역사학자들도 자료가 없어서 포기한 상태였고 그 역시도 어느새 햇수로 10년을 넘기고 있는 상태.


그런 그에게 희망의 빛줄기와도 같은 카카오 보이스톡이 울립니다.

발신자는 중국에 피디 특바원으로 나가 있는 조명대 선배.


"야, 내가 건수 하나 올렸어. 이거 맨입으로는 안 되겠는데, 좋은 술 한 병 사 들고 중국으로 건너와." - page 23


유달리 큰소리치는 선배의 목소리에서 자신이 그토록 찾고 있던 정보를 알아냈다는 사실을 직감하게 된 진국은 다음날 당장 중국으로 떠나게 됩니다.


진국과 명대는 청나라 건륭황제의 7대손이자 현재는 베이징 수도대학에서 명예교수로 있는 김술 고수를 찾아가 마의태자에 대해 한 걸음 다가가게 됩니다.


"마의태자 김일을 아십니까?"

"우리의 성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우리의 성은 애신각라였습니다. 애신각라는 신라를 사랑하고 신라를 생각하라는 의미로 김과 같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신라를 사랑했으면 그 이름 속에서 애신각라로 각인시켰을까요?"

...

"애신각라의 시조는 신라의 마지막 태자 김일이십니다. 우리 청나라 황실 가문에서는 모두가 알고 있는 비밀입니다. 오늘날에도 비밀인 것은 청나라 황실이 신라의 후손이라면 지금 중국에서 추진하고 있는 동북공정에 역행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 page 29 ~ 30


그렇게 시작된 신라의 마지막 태자 김일의 흔적이, 그리고 그의 흔적을 좇는 진국의 모습이 그려지고 있었습니다.


점점 기울어져가는 신라.

조여오는 고려보다 신라의 무너짐을 부치긴 것은 자신의 안위를 보존하고자 했던 신하들이, 그리고 무능함과 비겁함을 지닌 지도자임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소설 속에서도 시사하는 바와 같이 천년의 신라가 무력하게 무너지는 모습은 오백 년의 조선이 싸워보지도 못하고 일본에 강제 점령당했을 때의 모습과도 닮아있었습니다.

특히나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 지배에 이용하기 위해 신라의 경순왕을 자주 언급했다는 사실에서는 분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토 히로부미는 신라가 저항 없이 고려에 제 나라를 갖다 바친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사실은 달랐다. 그 투쟁의 중심에 마의태자가 있었다. 일제강점기 수많은 의병이 일어났던 것처럼 신라의 부흥 세력도 마의태자를 중심으로 목숨을 걸고 싸웠다. 신라의 태자는 구한말 고종의 아들, 순종처럼 굴복하지는 않았다. 그는 목숨을 걸고 왕건에 저항하고 신라의 부활을 꿈꾼 인물이었다. 마의태자가 있기에 신라는 부끄러운 나라가 아니었다." - page 186 ~ 187

우리가 역사의 진실을 알아야하는 이유.

역사는 끊임없이 반복되지만 그 속엔 우리에게 '희망'의 불씨를 건네기 때문이었습니다.

최근에 우리는 대표자를 뽑기 위해 '선거'를 하였습니다.

우리의 소중한 한 표.

그로 인해 뽑힌 '지도자'들.

그들이 새겨야할, 그리고 우리가 소중히 한 표를 행사해야하는 이유를 소설 속에서도 이야기하였습니다.

  

소설의 제목인 '김의 나라'.

함보가 죽어가면서 아들 극수와 손자 고을에게 당부하던 이 이야기가 저에게도 큰 울림을 전해주었습니다.

"나의 아버지 신라 태자님이 이 먼 곳에서 이루시려 했던 꿈을 너희가 꼭 이루어주기를 바란다. 우리의 뿌리를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의 뿌리는 애신각라 김이다. '김의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우리의 조상들이 하늘에서 응원할 것이다. 나무의 뿌리가 튼튼하면 매년 새로운 잎과 열매를 맺게 한다. 우리가 그 뿌리에 달린 잎과 열매이다. 나는 이제 시들어 가지만, 내가 지고 나면, 나도 뿌리에 영양분이 되어줄 것이다. 너희도 마찬가지이다. 뿌리를 잊으면 안 된다. 그 뿌리가 우리가 함께하는 김이다. 반드시 김의 나라를 만들어서 우리 조상들이 호령했던 대제국을 다시 이루어야 할 것이다." - page 274

역사의 진실을 좇던 ​진국의 '마의태자의 진실'은 또다시 가려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언젠간 진실은 반드시 표면에 나타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최근에 <선을 넘는 녀석들 리턴즈>에서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가려질 수 있었던, 왜곡될 수 있었던 진실은 결국 드러나게 되어 오늘날의 우리가 살아가고 있음에 커다란 울림을 받곤 하였는데 이 소설을 읽고 나서도 그 울림에 한동안은 헤어나올 수 없었습니다.


저는 '대한민국'의 국민이기에 자랑스럽습니다.

이 나라를 지키기위해 선조들이 흘린 피, 땀, 눈물.

결코 잊어서는, 잊혀져서는 안 됨을 다시금 되새기며 책을 덮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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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경험 나만 해봤니?
신은영 지음 / 이노북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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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저자가 질문을 던집니다.

이런 경험 나만 해봤니?


그냥 제목만으로 호기심이 났습니다.

'어떤 경험을 이야기하는거지?'

'책 표지처럼 나도 어멋! 하고 놀랄 일인가?'

펼치기도 전에 혼자서 이 생각 저 생각을 해 봅니다.


<작가의 말>에서 저자가 우선 운을 띄웁니다.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인생을 참 지루하게 사는구나.'

한때는 호기심 대장처럼 궁금한 게 많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지나치게 평범한 일상 속에 갇혀 살고 있었다. 나는 어떻게든 일상의 무료함을 떨쳐내고 싶었다. 하지만 달리 떠오르는 방법이 없었다. - page 4


아이를 바라보면 저 역시도 이런 생각이 들었었습니다.

'참으로 사소한 것에도 저렇게 신나하고 재밌어하는데......

같은 일상인데도 나는 왜이리도 지루하고 평범하게 느끼는 것일까......'


그러다 저자는 끄적끄적 과거의 경험들을 적어보기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어느 새 조각 조각이었던 기억들은 저자가 떠올리고 글을 쓰고 사람들과 공감을 하면서 비로소 반짝이는 빛이, 삶이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저자의 조각의 한 켠에 기대어 저도 잠시나마 추억을 길어 올리며 지루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32가지의 경험이 있었습니다.

내가 경험했던 일이, 내 주변 사람이 겪었던 일이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어 '맞아! 그랬었지......'라며 아련히 기억 저편에 있던 경험들을 꺼내볼 수 있어서 한편으로 따스하였습니다.


<간식이 더 맛있어지는 소리>.

저에게도 동생이 있었습니다.

부모님이 간식을 사오시면 서로 먹겠다고 쟁탈전이 벌어지고 나눠먹고 숨겨 먹고......

좋아하는 과자 한 봉지를 사수하기 위해 숨겨서 먹을려고만 하면 어느새 옆에 나타난 동생.

참으로 많이 싸웠었습니다.

그런데......

이젠 아이와도 가끔 쟁탈전이 일어나곤 합니다.

저자의 이야기에서 제 모습이 보였었습니다.


"엄마! 한꺼번에 너무 많이 먹잖아. 이러면 내 몫이 줄어든다고."

진지한 얼굴로 아이가 항의했다. 나는 어의가 없었다. 고작 아이스크림 한 통 가지고, 이렇게 쩨쩨하게 굴다니!

"그냥 같이 먹고, 다음에 또 사 먹으면 되지."

내가 인상을 쓰며 말했다.

"안 돼!" - page 58


읽으면서 피식! 웃음이 났습니다.

그리고 아이를 불러 서로 좋아하는 과자 한 봉지를 뜯었습니다.

그러자 우리 아이.

"엄마! 엄마는 조금만 먹어. 담아줄께."

과자를 담아주고 뿌듯한 얼굴로 빠샥 과자를 먹는 아이.

저의 추억에 또 하나의 추억을 얹어봅니다.


아마 이 책에서 저자가 우리에게, 그리고 제가 에세이를 즐겨 읽는 이유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제 인생도 참 굴곡이 많았거든요. 뭐 하나 호락호락한 게 없더라고요. 열심히만 한다고 다 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열심히 안 할 수도 없는... 한 마디로 참 힘들더라고요. 그렇게 제가 살아온 이야기를 다 해드렸어요. 그리고 마지막에 제가 그랬죠. '어때요? 작가님 인생이 제 인생보다는 훨씬 낫죠?' 그랬더니 작가님 표정이 한결 편안해지더군요. 그리고 큰 위로가 되었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우와! 대표님, 대단하세요!"

그의 따뜻함에 감탄해 내가 물개박수를 쳤다.

"대단하긴요. 인생 뭐 있나요? 서로 위로하고, 위로받고 다들 그렇게 사는 거죠. 들여다보면 인생 별거 없어요. 다 거기서 거기잖아요." - page 108


'위로'가 뭘까......

막연하기만 했던 저에게도 진정한 '위로'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 역시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어주고 있나? 다들 이렇게 위로를 주고받으며 사는 거겠지?'


책을 읽으면서 나의 경험도 비춰보곤 하였습니다.

그땐 평범하다고 여겼었는데 다시금 꺼내어보니 조금씩 저마다 다른 빛을 지니고 있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최근들어 더 그 전의 일상들이 그리워지곤 합니다.

그때도 마냥 지루하다고, 맨날 똑같다며 투덜거렸었는데......

이제서야 그 소중함을 느끼게 되다니!


이 책을 덮고나서 간직하고 있던 앨범을 펼쳐들었습니다.

사진 속 어린 내 모습을 보며 아이와 함께 내 기억을 공유하며 또다른 추억을 만들어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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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미트리오스의 가면 열린책들 세계문학 248
에릭 앰블러 지음, 최용준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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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을 읽게 된 계기.

아마 이 문구를 보게된 사람이라면 누구나 관심이 가고 읽어보고 싶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스파이 소설의 최고 걸작>으로 평가받는

현대 스파이 소설의 아버지 에릭 앰블러의 대표작


○○의 '아버지'라하면 믿고 읽게 되기에, 그리고 무기력에 빠진 나에게 그 무엇보다도 신선한 자극으로 다가올 것이 분명하기에 소설을 읽게 되었습니다.

저 베일에 가려진 그의 실체는 어떨지......

디미트리오스의 가면


소설의 시작은 이러했습니다.


뭔가 잘 모르는 샹포르라는 프랑스 사람이, 우연이란 신의 섭리라고 말한 적이 있다. - page 11


정말 우연이었을까, 아님 인연이었을까......


영국의 작은 대학 정치경제학과 조교수인 그 '찰스 래티머'.

그는 강의를 하는 틈틈이 책을 써 벌써 세 번째 책을 출간하게 됩니다.

그가 쓰는 책은 다름아닌 추리 소설.

여가 시간에 소설을 쓰던 그는 머지않아 명실공히 전업 작가가 되리라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렇게 그는 책 집필을 마친 뒤 그리스인 친구의 권유로 이스탄불로 향하게 됩니다.

이스탄불에 도착한 래티머.

이제부터 그의 '우연'처럼 다가온 사건에 '집착'을 하기 시작합니다.


소개장으로 찾아간 차베스 부인의 저택에서 나흘 동안 열리는 파티 초대장을 받은 래티머.

살짝 마음이 내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그 초대를 받아들이기로 합니다.

여러 손님들 중 유독 눈에 띤 그 남자.

큰 키에 홀쭉하게 여윈 볼이며 햇볕에 그을린 살빛이 프로이센식으로 짧게 깎은 회색 머리와 대조를 이루지만 멋지게 재단된 장교복을 입은 그는 다름아닌 하키 대령이었습니다.

하키 대령은 손님들이 차츰 춤추는 데 흥미를 잃고 남녀 혼성 스트립포커에 관심을 쏟기 시작할 무렵 래티머의 팔을 잡고 테라스로 데려갑니다.

하키 대령은 래티머의 소설을 좋아한다며 넌지시 건넨 말.


「선생님, 혹시 이번 주 안에 저와 점심 식사 한 번 하실 수 있을까요?」 그러고는 아리송한 말을 덧붙였다. 「어쩌면 제가 선생님에게 도움이 될지도 모릅니다.」- page 19


어떤 면에서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래티머는 기꺼이 하키 대령에게 점심을 같이하겠다고 대답하고 만나게 됩니다.


식사를 하는 동안 하키 대령은 자신이 읽은 추리 소설과 작품에서 받은 인상, 등장인물에 관한 의견, 사람을 죽일 때 총으로 죽이는 살인범을 좋아한다는 등의 말을 하며 래티머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합니다.


「플롯은 이미 짜놓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선생님에게 드리고 싶습니다.」- page 22


하키 대령은 자신의 사무실에 래티머와 함께 가게 됩니다.

그리고는 이 소설을 이끌어갈 사건을 만나게 됩니다.


「있잖습니까, 래티머 선생님」대령이 말했다. 「저는 진짜 살인자보다 추리소설의 살인자에게 훨씬 더 공감이 갑니다. 추리 소설 속에는 시체 한 구, 용의자 몇 명, 탐정 한 명, 교수대 하나가 있지요. 예술적입니다. 하지만 진짜 살인범은 전혀 예술적이지 않습니다. 일종의 경찰관인 제가 단언할 수 있습니다.」하키 대령은 책상 위의 폴더를 톡톡 두드렸다. 「여기에 진짜 살인범이 있습니다. 우리는 거의 20년 전부터 그 존재를 알고 있었지요. 이건 그자에 관한 기록입니다. 우리는 그자가 저질렀을 것으로 짐작되는 살인을 하나 압니다. 그리고 그자가 저질렀지만 우리가 전혀 모르는 살인들도 분명히 있을 겁니다. 전형적인 악당입니다. 교활하고 속되고 비겁한 인간쓰레기지요. 살인, 스파이질, 마약 밀매 전력이 있습니다. 암살도 두 건이나 있고요.」 - page 28 ~ 29


그 자는 바로 '디미트리오스'였습니다.

그런데......


「그렇습니다, 그자는 죽었습니다.」하키 대령은 경멸하듯이 얇은 입술을 일그러뜨렸다. 「어젯밤 어떤 어부가 보스포루스 해협에서 그자의 시체를 끌어 올렸습니다. 배에서 칼에 찔린 뒤 바다로 던져진 듯합니다. 쓰레기에 걸맞게 바다에 떠 있었지요.」 - page 29 ~ 30


하키 대령이 이야기하는 '디미트리오스'란 자에 작가로써의 흥미뿐만 아니라 자신의 호기심으로​ 그에 대해 너무나 궁금하고 알고 싶어졌습니다.

래티머는 디미트리오스의 흔적을 쫓기 시작합니다.

솔직히 래티머를 따라 디미트리오스의 흔적을 쫓는 과정에서 그 시대의 배경에서 어렴풋하게 그려졌기에 몰입감은 높지 않았습니다.

또한 래티머도 '형사'와 같은 박진감을 가지고 조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라는 입장이기엔 한 발치 떨어져서 바라보는 입장이기에, 그 또한 소설 속에서도 디미트리오스를 쫓는 것은 소설을 쓰기 위함이 아니라 자신의 호기심으로 그를 조사한다고 하였기에 조금은 아쉬운 듯한 느낌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그에 반해 소설의 흐름은 유럽 곳곳을 오가며 그 시대의 배경이 그려지기에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소설보다 더 짜릿하고도 박진감 넘치게 몰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실제 이 소설의 영화도 있었습니다.)

이 소설에서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바.

가려진 '얼굴'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인간은 악마의 가면처럼 얼굴을 사용한다. 얼굴은 자기감정을 보충해 주는 감정을 타인의 가슴속에 불러일으키기 위한 도구다. 자신이 공포를 느끼면 타인도 자신에게서 공포를 느끼게 해야 한다. 자신이 욕망을 가지면 타인도 자신에게 욕망을 갖게 해야 한다. 얼굴은 마음의 적나라한 모습을 감추는 가림막이다. 오직 소수만이, 화가만이 얼굴을 통해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다. 그 밖의 사람들은 판단할 때 눈앞의 가면을 설명하기 위해 말과 행동에서 근거를 구하려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가면이 그 배후의 인간일 수 없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면서도, 그 사실이 입증되면 대개 충격을 받는다. 사람들은 자신의 이중성에 대해서는 알아차리지 못하면서도 타인의 이중성에 대해서는 늘 충격을 받는다. - page 343 ~ 344


인간의 이중성에 대해, 아니 지금의 나는 어떤 가면일지......

또 왠지 모르게 민낯을 들킨 것 같은 느낌마저 들어 참으로 아이러니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소설 속에서 인상적인 대목이 있었습니다.

죽어 가는 문명에서 정치적 명성이라는 것은 뛰어난 전문의가 아닌, 병자의 비위를 잘 맞추는 이에게 주어지는 포상이다. 무지한 인간들이 평범한 인간에게 주는 훈장인 것이다. 하지만 애처로운 위엄이 함께하는 정치적인 명성이 단 한 가지 남아 있다. 서로 극단적으로 다른 신념을 지니고 다투어대는 당원들을 한데 품은 당의 도량 넓은 지도자에게 주어지는 명성이다. 그런 지도자의 위엄은, 무릇 저주받은 운명의 인간들이 지닌 위엄, 바로 그것이다. 왜냐하면 상극인 두 과격파가 함께 무너지든 한쪽이 승리를 거두든 그 지도자의 운명은 이미 정해여 있어, 국민의 증오 대상이 되든지 아니면 순교자로 죽는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 page 97 ~ 98

처음엔 가벼운 마음으로, 짜릿한 스릴과 긴장감을 맛보기 위해 읽기 시작하였지만 굵직굵직한 사회의 문제점에 대해, 인간의 본성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독자들에게 넌지시 던지는 질문 속에 큰 울림을 전한 소설이었습니다.

읽고 난 뒤 왜 이 작품이 '최고 걸작'이란 수식어가 붙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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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눈
딘 쿤츠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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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사태를 마치 예견한 듯한 책들이 있습니다.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에서도 무서운 전염병 속에 고립되어 버린 도시 속 재앙에 대응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현재 우리의 모습과도 크게 다르지 않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소설.


40년 전 '코로나19'를 예견한 소설.


막연한 바이러스일 꺼라는 제 예상과는 달리 너무나도 소름이 돋았던 것은 바로......


"중국 우한 외곽 소재 RDNA 실험실에서 만들어진

그것을 그들은 '우한-400'이라고 불렀다."

_본문 중에서


주저할 필요없이 무조건 읽어야겠다고 느꼈습니다.

과연 그들에겐 어떤 일들이 일어났을지......

어둠의 눈

 

12월 30일 화요일.

소설의 시작이었습니다.

화요일 새벽, 자정을 6분 넘긴 시각. 새로운 공연 리허설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 티나 에번스는 낯선 이의 차에 탄 그녀의 아들, 대니를 보았다. 하지만 대니는 벌써 죽은 지 1년이 넘었다. - page 9

1년 전 의문의 버스 사고로 아들을 잃은 크리스티나 에번스.

역시나 자식을 잃은 부모의 심정이랄까......

그 남자애를 보고 있자니 대니와 닮기만 한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입 안이 바짝 마르며 쓴맛이 감돌았다. 가슴이 쿵쿵 뛰었다. 그녀는 아직도 외아들을 잃은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절대로 적응하고 싶지 않았다. 아니, 적응하려고 노력해본 적도 없었다. 대니를 닮은 소년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 채 그녀는 애초에 아들을 잃은 게 아니었다는 환상에 너무나 쉽게 빠져들어 갔다.

어쩌면......어쩌면 저 아이가 정말 대니일지도 몰라. 안 될 건 뭐야? 곰곰이 곱씹어볼수록 점점 미친 생각이 아닌 것 같았다. - page 10

그렇게 아들을 잃었지만 아직 아들의 방조차 정리하지 못한 티나.

요즘들어 그녀의 꿈 속에 나타난 대니는 살려달라는 울부짖음에 티나는 그만 잠을 설치게 됩니다.

그런데......

분명 집 안에서 무슨 소리가 들렸는데......

안절부절 못하며 집안을 살펴보는 티나.

​역시나 침입자는 찾지 못하였고 남은 곳, 대니가 쓰던 방에 들어갔습니다.

아들의 흔적......

아직도 남아있기에 힘들기만한 티나.

그러다 눈에 띈 것은 다름아닌 검은 칠판이었습니다.

칠판 표면에 적힌 서툰 글씨체 다섯 글자.


죽지 않았어

실패로 돌아간 결혼 생활과 아들의 죽음.

바닥에서 그녀는 다시금 일어서보려 노력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일에 그토록 매달렸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마침내 완성된 그녀의 쇼 「매직!」.

드디어 막이 열리고 사람들은 열렬히 환호를 합니다.

초연을 마치고 축하 파티에서 엘리엣 변호사와 첫눈에 빠져 들면서 티나는 다시 여자가 되어 볼까라는 작은 설렘도 가지게 됩니다.


하지만......

자꾸만 조여오는, 아니 뭔가 의심쩍인 아들의 죽음.


나 추워 나 다쳤어

엄마? 내 말 들려?

나 너무 추워

나 심하게 다쳤어

날 여기서 꺼내줘

제발 제발 제발

죽지 않았어 죽지 않았어


티나는 엘리엣과 함께 아들의 사건을 추적해 나가는데......

새 한 마리가 머리 위 어두운 하늘을 휙 지나갔다. 엘리엇은 새를 볼 수 없었지만 날갯짓 소리는 들을 수 있었다.

티나는 목을 가다듬고 말했다.

"있죠, 마치...... 밤 자체가 우리를 보고 있는 것 같아요...... 밤과 그림자와, 어둠의 눈이요." - page 249


그리고 겹쳐지는 또 하나의 눈.


재커라이어가 투덜댔다.

"저놈의 눈."

"꿰뚫어보는 것 같지 않소?"

"쟤가 쳐다보는 눈빛 때문에...... 전 가끔 소름이 끼쳐요. 저 눈에 뭔가 홀리는 힘이 있다고요."

돔비가 말했다.

"죄책감을 느끼고 있군."

"아뇨. 그런 느낌만이 아닙니다. 쟤 눈은 이상해요. 1년 전 여기 처음 왔을 때와는 다르다고요."

돔비가 슬픈 목소리로 대답했다.

"지금 저 눈에는 고통이 서려 있지. 아주 깊은 고통과 외로움이 있어."

"그 이상이라니까요. 저 눈에는 무언가가 있어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가요." - page 323


읽으면서 그 '눈'의 실체들을 쫓다보니 어느새 마주한 실체는 너무나도 무섭고도 잔혹하였습니다.

특히나 이 이야기.


"하지만 우리 이야기가 신문에 나면 정부는 이곳을 분명히 폐쇄할 텐데요."

티나의 말에 돔비는 고개를 저었다.

"그럴 일은 절대 없소. 이 일은 해야만 하기 때문이오. 중국 같은 전체주의 국가와 힘의 균형을 맞출 필요가 있소. 겉으로야 연구소를 닫는 척하겠지만 실제로는 그러지 않을 거요. 타마구치를 비롯한 최측근은 해고될 거요. 대대적인 개편이 시행되고, 좋은 쪽으로 변하겠지. 당신들에게 비밀을 누설한 게 재커라이어라고 내가 둘러댄다면, 그래서 내 자리를 지킬 수 있다면, 나는 승진해서 더 많은 영향력을 갖게 될 거요. 최소한 연봉은 오르겠지." - page 446


쉬이 넘어갈 수 없는 이야기였기에, 아니 우리 주변 어딘가에서는 일어나고 있을 것 같기에 더없이 분하고 또 분하였습니다.

그리고 남겨진 이의 소리 없는 울부짖음......



책을 덮으면서도 쉽게 빠져나올 수가 없었습니다.

마냥 소설이라 단정하기엔 우리의 모습과도 닮아있었기에 만감이 교차하곤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 속에 '가족'이 있었기에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이겨낼 수 있음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만약......

우리가 이와 같은 상황에 부딪히게 된다면......

우린 어떻게 해야할지......

생각에 잠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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