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랑한 중년, 웃긴데 왜 찡하지? - 흔들리고 아픈 중년을 위한 위로와 처방
문하연 지음 / 평단(평단문화사)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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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미술관』

벌써 이름만 들어도 알고 있다며 입술을 씰룩거리는 이가 있을 것입니다.

(바로.... 제가 그랬습니다.)

다락방에서 뭔가 몰래 보는 재미를 느꼈다고 할까!

특히나 놀라웠던 점은 저자는 미술을 전공하지 않았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그림을 근 10년간 공부하면서 스스로 경험한 삶의 변화와 치유를 가급적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 이야기를 했다는 사실에 존경스러웠습니다.


그러다 이번엔 자신의 이야기로 우리 앞에 다가왔습니다.


친구들 대신 연애편지를 쓰고

이불속에서 미친 듯이 라디오에 사연을 보내던 문학소녀


40대에 문학중년으로 돌아와

삶, 사랑, 나이듦, 사람, 예술을 이야기하다!


명랑한 중년 _ 웃긴데 왜 찡하지?

 

현모양처로만(오직 저자만의 생각이라는데......) 살아온 삶에 빨간 불이 들어왔다고 합니다.

왜 내 꿈에 내가 없지? - page 5​


참으로 슬픈 말이었습니다.

왜 '내'가 없는 것인지......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키우면서 저도 종종 들었던 생각이었습니다.

내 삶에 '내'가 아닌 '다른 이'들이 가득 차 있는, 그래서 씁쓸하고도 공허함을......

그때부터 자아를 찾기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천생 '문학소녀'였던 그녀의 40대 '문학중년'이 되어 시작된 글쓰기.

'명량한 중년'의 웃픈 이야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어린 시절 언니와 오랫동안 같은 방을 썼던 그녀.

언니와 자신이 공부하는 것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으셨던 엄마의 밤늦게까지 방에 불을 켜고 있으면 전기세가 많이 나온다는 이 말을 잘 듣는 '착한 아이'인 그녀.

하지만 언니는 엄마의 말을 거역하고 책상 스탠드를 켜고 공부를 시작하는 '불효녀'였습니다.

그렇게 공부한 언니는 늘 전교 3등 안에 들었고 부모님의 자랑거리가 되어 대학 입학시험을 앞둔 시기에 그만 쓰러지게 됩니다.

2년 가까이의 병원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언니는 여전히 다시 공부를 하고 싶어 공부를 하면 언니의 등 뒤에서 미친듯이 라디오에 사연을 보내고 경품을 타면서 깨닫게 된 그녀의 운명!

바로 그녀는 글을 쓸 수 밖에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마흔 후반에서야 그녀의 글쓰기가 ​운명처럼 시작되었고 그 길이 열리게 됩니다.

그리고 지금 나는 덜컹거리고 있다. 이 덜컹거림이 한 단계 성숙으로 가는 길인지 퇴보인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유일하게 아는 것은 그러든지 말든지 계속 써야 한다는 것이다. 안 써지면 안 써지는 대로, 잘 써지면 잘 써지는 대로 말이다. 그러는 동안 내가 또 무엇이 되어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니까. - page 30

그녀의 이야기 중 가슴 찡한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93세의 사랑꾼 택규 씨가 전한 사랑의 의미.

금술이 좋았던 이 노부부에게 복덕 여사님이 간암 말기 진단을 받게 됩니다.

"할머니가 얼마 안 남은 거 같아. 평생 고생만 했는데 너무 안쓰럽고 속이 상해." - page 81


라며 눈물을 흘리신 그.

그는 한시도 쉬지 않고 굳어가는 그녀의 몸을 주물렀고 의식을 잃어가다가도 깨어날 때마다 뭐가 먹고 싶은지 물어 먹지 못하는 그녀에게 전하는 이 한 마디.


"제발 한 입만이라도 먹어봐요. 먹어야 기운을 차리지요." - page 82


정복덕 여사가 떠나고 그는 우울증과 함께 심한 불면증을 앓게 됩니다.

그녀의 오랜 설득 끝에 할아버지는 복지관에 가 강의도 듣고 사람들도 만나면서 차츰 나아지고 81세의 그에게 또 한 분과의 인연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이제 좀 인생을 제대로 사는 거 같아. 젊어서는 맨손으로 오 남매 키우느라 힘들었고 다들 출가시키고 나니 할머니가 아파서 병간호하느라 허리 한 번 펴기도 힘들었어. 이제야 좀 사람답게 사는 거 같은 기분이 들어. 아주 행복하고 좋다." 하신다.

그러면서 "돌아가신 할머니한테는 미안하지만 살아생전에 최선을 다해서 미련은 없어." 했다.

정말로 그랬다. 그는 자신의 에너지가 1도 남지 않을 만큼 복덕 여사님께 다 쏟아부었다. - page 85 ~ 86


그렇게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고 끝나면 좋을텐데......

10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어느 날.

돌연 택규 씨의 그녀가 심장마비로 숨을 거두게 됩니다.

공황 상태에 빠지게 된 그의 눈엔 눈물이 마르지 않습니다.

그런 그의 곁에 다정히 손을 내민 저자와 그의 관계는 시아버님이었습니다.

사랑이 뭔지를 보여주신 그.

'다정도 병인 택규 씨'에게서 저 역시도 사랑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두 사람이 하나가 돼서 살다 보니 그림자처럼 정이 붙고 그 정이 바로 사랑이 됐지. 사랑이 딴 게 아니고 정이야." - page 80 ~ 81


"사람은 사랑 없이는 살 수 없는거야. 어떤 형태로든 사랑이 있어야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가 있어." - page 88


나이가 숫자에 불과하다고는 하지만 사실 앞자리가 3으로 바뀔 때 저는 방황도 많이 했고 좌절과 상실감도 들곤 하였습니다.

그리고 다가올 4라는 숫자 역시도 두렵기만 합니다.

그런 저에게 그녀는 일러주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청춘이 가니 자유가 왔다. 이십 대에는 직장생활 하느라, 삼십 대에는 아이 둘을 키우며 일하느라, 사십 대 중반까지도 아내로, 엄마로, 며느리로, 딸로 사느라 정신없이 보냈다. 물론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지만 어느 순간부터 팽팽하기만 하던 삶의 장력이 느슨해졌다. - page 141


나이 듦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주름진 얼굴을 자연스럽게 생각해서 손대지 않고, 젊은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엔 물 흐리지 않도록 가지 않으며, 나이에 맞는 옷을 입고, 오십 넘어 미니스커트가 롱스커트로 바뀌고, 등산복이 일상복이 되는 것만을 의미하진 않을 것이다. 나이 듦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아마도 무리하지 않는다는 게 아닐까? 다른 사람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 page 142


그렇기에 인생은 두려운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고 즐기면 된다고, 너무 흔들리고 상처받지 말라고, 당신의 드라마는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모두가 자신이 주인공인 드라마를 살고 있다. 드라마는 갈등이다. 그러니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 갈등은 끝도 없이 이어진다. 이것만 해결되면 금세라도 올 것 같은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시절이란 애초에 없었다. 그 순간은 비 온 뒤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무지개처럼 때때로 찰나로 왔다가 사라졌다. 가슴속에 이고 지고 오느라 무거웠을 이야기들이 기어이 입 밖으로 나오고, 돌아가는 길에 흐린 미소가 지어지는 그 순간처럼 짧게. 그리고 다시 드라마 속으로. - page 166


봄이 오고 있다. 내가 주인공인 드라마 안에서 가족들과 밥을 먹고, 친구들과 차를 마시고, 내 일을 하는 그 사소한 시간이 내게 얼마나 눈이 부신 순간인지, 갈등조차도 그런 시간일 수 있음을 내가 꼭 기억하길, 내 드라마가 끝나는 그 순간까지. - page 167


책을 읽고나서 결코 늦은 나이는 없다는 것을, 지금의 순간을 즐기라는 것을, 뭐니뭐니해도 내 드리마의 주인공은 '나'라는 것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사실 저는 하고 싶은 것도 많지만 이미 늦었다고, 할 수 없다고 주저했고 포기했었는데 그런 저에게도 이 말이 울림으로 다가왔습니다.


 


그저 한 걸음만 내디딜 것.

그리고 내 노력은 절대로 쓸데없는 일이 되지 않는다는 것.


이제 내 드라마의 스토리를 만들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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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에서 여행을 만나다
동시영 지음 / 이담북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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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작품을 읽다보면 실제 그곳은 어떨지 상상하곤 합니다.

주인공들이 거닌 그 거리......

주인공들의 주무대가 된 그곳엔 그들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문학에서 느낀 감동을 직접 전해줄 것 같았습니다.


이번에 읽게 된 이 책은


문학을 따라 여행하는,

문학 속에서 '내가 되는 것'을 발견하는 값진 여정!


이라 하였기에 그와 함께 작품의 작가와 흔적을 따라가 보았습니다.


문학에서 여행을 만나다

 


여행에 가기 앞서 <서문>에서의 저자의 이야기 중 인상깊었던 문장이 있었습니다.


내게 있어 문학과 여행은 나이면서 나를 바라보게 하는 어떤 대상이다. 그 두 개의 현으로 연주되는 일상은 하프의 선율로 흐르는 음악이요, 슬픔, 우울 같은 삶의 그늘마저 태양으로 빛나게 하는 그림이다. - page 4


제 귓가에서도 하프의 선율이 잔잔히 울렸습니다.

잠시 눈을 감고 귀를 기울여 보았습니다.

그리고......

문학과 여행을 떠나봅니다.


첫 여행지는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을 낳은 영국의 하워스였습니다.

『폭풍의 언덕』끝 대목 히스클리프 무덤 근처에 피어 있었던 히스 꽃은 현지인들이 스탠버리 무어라 부르는 바람의 언덕의 들판에, 고사리과 풀들과 함께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샬럿이 12월 추위 속 벌판을 헤매어 생의 마지막에서 앓고 있는 에밀리를 위해 꺾어 주었다는 그 꽃은 여전히 다이아몬드처럼 강하게 살고 있었고 『폭풍의 언덕』을 한 페이지씩 다시 읽어주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인지 읽으면서 왠지 그곳에서 전하는 히스 꽃의 이야기가 바람을 타고 제 귓가에 속삭이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여행지 브람 스토커의 소설 『드라큘라』의 모델이 된 루마니아의 브란성.

 


드라큘라성이라 불리기엔 너무나도 동화적이고 아기자기한 아름다운 모습을 지니고 있는 브란성.

라운드 타워, 게이트 타워, 동쪽 타워 등 외양이 아름다울 뿐 아니라 내부에 있는 좁은 복도를 따라 이어지는 곡선의 난간들, 그 난간에서 내다보는 멀고 가까운 경치와 창 너머로 보이는 풍경들은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웠지만 전설과 소설, 역사적 실제 인물이 어우러져 이루어낸 스토리텔링으로 이 성이 저에겐 아름답지만 더없이 고독과 외로움이 느껴졌습니다.


저에게도 긴 여운을 남겼던 마지막 여행지 가와바타 야스나리 『설국』의 일본 유자와역.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추어섰다." - page 227 ~ 228


소설의 첫 장면.

눈 속의 역의, 신비롭고 아름다움을 간직한 역일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을 가지고 가지만 역시 세월의 흐름은 변화를 막지 못하였습니다.

그럼에도 이곳이 의미있는 것은 소설이 남긴 진한 향기의 여운이 남아있기 때문은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 봅니다.


생각에 생각의 계단을 밟고 밖으로 나왔다. 눈은 자꾸 내리고 시간은 자꾸 흐르고......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은 너무나 아름답고도 슬프고 충분히 사랑하지도 충분히 슬퍼하지도 못하면서, 모든 것들이 해체된, 희로애락의 그 너머에 별처럼 차갑게 지금도 떠 있다. 그리고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삶도 차갑게 끝났다. - page 238


한 권으로 문학을 따라 그곳에서의 문학의 짙은 향기를 맡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너무나도 짧은 여행에 조금은 아쉬움이 남곤 하였습니다.


다시 문학 작품을 찾아 이 책을 읽게 되면 또 어떤 경험을 할 수 있을까!


그곳들이 다시 그리울 때 마음으로 들르면 여행의 모든 길들은 다시, 즐거움으로 가는 새로운 길들이 되어 주고, 나를 지나간 수많은 장소들은 현재 속에서 또다시 쓰이는 역사처럼, 내 안에서 다시 태어난다. - page 4 ~ 5


앞서 그가 했던 이 말처럼 문학 속에서 '내'가 다시 태어나 '내가 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까......

잠시 호흡을 가다듬으며 나를 비롯한 문학이, 장소가, 저자가 전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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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우는 여성들의 미술사
김선지 지음 / 은행나무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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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이라 하면 '아인슈타인'.

회화라 하면 '레오나르도 다빈치'.

조각이라 하면 '미켈란젤로' 등.

어느 분야의 대표라 하는 사람을 떠올리게 되면 '남성'들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남성들만큼의 여성들의 업적은 없는 것인가!


아무래도 오랫동안 남성 중심 가부장제였기에 제아무리 훌륭한 재능을 갖고 있더라도 제대로 능력을 발휘할 수 없었습니다.


하! 지! 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별 사회에서 자신의 재능을 묵묵히 발휘하며 자신의 길을 개척한 여성 예술가들이 있었습니다.


「나는 여자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여줄 것입니다」

편견과 차별, 억압에 맞서온 스물한 명의 여성 미술가들


싸우는 여성들의 미술사

 


본문에 들어가기 앞서 <작가의 말>에서 놀라운 사실이 있었습니다.


미술 시장의 양성 불평등을 조사한 한 리포트에 따르면, 미술사의 명저로 칭송받는 H. W. 잰슨의 《서양미술사》에는 여성 화가의 이름이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러한 지적을 받고 잰슨은 훗날 몇몇 여성 화가를 개정판에 끼워 넣었을 정도로, 최근까지도 미술계 성차별은 심각했다. - page 13


누구나 갖고 있다는, <요즘책방 : 책 읽어드립니다>를 통해 많은 이들이 읽게 된 《서양미술사》마저도 이런 차별이 존재했다는 점에서 실로 놀라웠습니다.


책에서는 르네상스부터 20세기 초 현대 미술의 태동까지 여성 예술가의 삶과 예술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회화, 조각에서 패션, 공예, 디자인 분야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긴 21명의 여성 예술가들이 드디어 빛을 받기 시작하였습니다.


첫 등장은 이탈리아 볼로냐에서 태어난 르네상스 시대 최초의 여성 조각가 '프로페르치아 데 로시'였습니다.

 

15 ~​ 16세기,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 지역에서 여성들은 예술가로서의 지위를 거의 인정받지 못했던 시기.

그래서 미술 아카데미 입학은 꿈에도 못 꿀 일이었습니다.

그나마 화가를 아버지로 둔 아주 소수의 여성만이 아버지나 개인 교습을 통해 그림 훈련을 할 수 있었고, 그마저도 미술의 하위 영역에 위치하는 초상화, 수채화에 국한된 척박한 환경 속에서 여성에게 금기시된 조각가가 되기를 원했던 그녀, 데 로시.

남성들처럼 대리석이나 청동으로 정상적인 조각 기술을 익힐 수 없어 씨앗에 조각을 하기 시작하였는데 그 정교하고도 섬세한 그녀의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결국 그녀는 <요셉과 보디발의 아내>를 비롯한 역작들을 창조해 대리석 조각가로서 이탈리아 전체에 명성을 떨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바사리는 그녀의 씨앗 조각이 기적을 보여준 작품이라고 인정하면서도, 조각은 여성이 할 예술은 아니라고 단언했다. 또 <요셉과 보디발의 아내>가 젊은 귀족 안톤 갈레아조 말바시아에게 버림받은 데 로시의 자화상이라고 해석했다. 실연의 상처를 표현한, 극히 감상적인 작품이라고 폄하한 것이다.

그러나 일설에 따르면, 데 로시는 실연을 당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녀의 연인은 데 로시가 죽은 뒤에도 몇 년 동안이나 그들의 사랑을 소중히 여겨 결혼하지 않았다. 따라서 바사리의 주장은 신빙성 없는 소문에서 비롯된 것에 불과하며, 여성은 감정에 취약하다는 편견에 근거한 여성관을 피령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훌륭한 조각 작품을 두고도 작가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선입견에 빠져 작품을 공정하게 비평하지 못한 우를 범한 것이다. - page 29​


남자들은 여성 예술가들이 창의성과 천재성을 갖고 있지 못하다며 그녀를 끌어내리려고 남성 경쟁자들과의 불화, 부당한 대우를 하여 결국 명예 실추로 모든 공공 작업에서​ 손을 떼야 했었고 그녀는 무일푼에 흑사병까지 걸려 가까운 친구나 친척도 없이 비참하게 마흔 살에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그녀들의 투쟁의 길은 참으로 험난하였습니다.

아무리 뛰어나게 훌륭하게 작품을 완성하여도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왜곡된 해석에, 나아가서는 자신의 이름이 아닌 남성 화가의 작품으로 둔갑하는 사실에 분노를 일으키곤 하였습니다.

여성의 예술적 전문성이 남성보다 현저히 떨어진다고 인식됐던 시대이니 금전적 이익을 위해 여성 화가의 작품이 남성 화가의 작품으로 둔갑하는 일이 많았던 것이다. 이것이 그녀의 이름이 사망 후 미술사에서 사라졌던 결정적 이유이다. - page 60

사실 여성 화가들이 남성 화가보다 인체 묘사에 세밀하지 못한 건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여성을 배제한 미술 교육 시스템, 여성 화가가 맞닥뜨려야 할 사회적 편견과 비난에 원인이 있다. - page 80

자신의 상처를 예술로 승화시킨, 성폭력 피해자에서 불세출의 여성 화가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가 한 고객에게 보낸 편지의 문구가 참으로 인상적이었습니다.

"나는 여자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여줄 것입니다. 당신은 한 여자의 영혼에서 시저의 정신을 발견할 것입니다." - page 131


그녀의 작품 대부분은 여성을 주인공으로 그중 많은 것이 성서와 신화 속에 나오는 고통받지만 강한 여인들, 스스로 삶을 개척하는 주체적 여성들을 그렸습니다.

아마 그림을 통해 자신의 트라우마와 상처를 치유하고 극복하려 했던 것인지도 몰라도 17세기를 풍미한 그녀는 위대한 여성 화가임이 분명하였습니다.



최근에 읽은 『칼 라르손, 오늘도 행복을 그리는 이유』에서 만났던 이도 이 책에서 소개되었습니다.

북유럽 디자인의 개척자로 인정받은, 세상에서 제일 예쁜 집을 만든 여자 '카린 라르손'.

결혼 후 자신의 꿈이었던 화가의 길을 포기한 결혼 제도의 희생자였지만 예술에 대한 열정을 포기하지 않은 채 자신만의 직물 디자인이나 자수, 가구 제작을 하면서 최초의 직물 디자이너로 자리매김했음에 존경스러웠습니다.

 

책을 읽고난 뒤 아무리 척박한 땅에서도 한 줄기의 꽃은 피고 그 흔적은 남아 언젠가는 알려지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베르트 모리조'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여성을 자신과 동등하게 생각하는 남자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나 자신이 그들만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므로 동등하게 대접받기를 원한다." - page 87


그녀들이 위대했던 이유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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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만나고 엄마는 매일 자라고 있어 - 학부모가 된다는 것
이현주 지음, 김진형 그림 / 수카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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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광고에서 한 엄마가 외칩니다.

"엄마로 만들어줘서 고마워"


아이를 낳기 전까지는 몰랐습니다.

'엄마'의 의미를......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아니, 아직도 잘은 모르겠습니다.

그저 이 책의 제목과 같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친구 같은 엄마가 되고 싶었는데

오히려 네가 친구 같은 딸이 되어주었구나"


너를 만나고 엄마는 매일 자라고 있어

 


'응애'하며 엄마 품 속에 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걸음마를 떼기 시작하고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다니면서 가족 외의 '친구'가 생기기 시작하고 이젠 '학교'라는 사회에 나가게 된 아이.

아이와 함께 '학부모'로써 또 하나의 역할을 짊어지게 된 부모의 이야기가 글과 툰으로 그려져 있었습니다.


저에게는 아직 몇 년의 시간이 남은 이야기이지만......

제 주변의 '학부모'가 된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아이가 처음 학교 정문에 들어가 교실에 앉아있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눈물이 난다고 합니다.

'언제 저렇게 컸지?!'

'부디 아이에겐 학교가, 사회가 힘겹지 않았으면......'

만감이 교차한다는데......

겪어보진 않았지만 그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4살에 어린이집 가방을 메고 서툰 걸음으로 가던 아이.

엄마랑 헤어지기 싫어서 어린이집 앞에서 그렇게 울고불고 했던 시절이......

이제는 추억으로 남아있지만 떠올리며 괜스레 울컥하곤 합니다.


아이가 자라면 항상 선택의 기로에 서곤 합니다.

여기가 좋을까, 저기가 좋을까.

이걸 해야하는 걸까, 저걸 해야하는 걸까.

내 아이가 남들에게 뒤쳐지지 않길 바라는 부모의 마음.

하지만 저자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엄마가 된 후로는

생각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아져서

습관적으로 고민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아무리 고민해도

달라질 수 없는 문제라면

고민할 필요가 없다.


그 힘을 아껴서

바꿀 수 있는 다른 일들에

쓸 수 있도록. - page 15


저에게 큰 깨달음을 준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엄마가 정말 준비해줘야 할 건

국영수가 아니에요.

혼자서 화장실에 다녀오기

친구를 때리거나 욕하지 않기

선생님 말씀에 잘 대답하기

돌아다니지 않고 식사하기

자기 생각을 똑바로 말하기

친구 물건 들고 오지 않기 등

학교생활을 즐겁게 하기 위한 준비가 중요하답니다.


그렇지. 학교는 생활인데,

선생님, 친구들과 하루의 반을

함께 생활하는 곳인데

왜 공부만을 생각했을까. - page 17


사실 유치원에 보내는 이 순간마저도 아이에게 '공부'만을 생각하곤 하였는데......

정작 중요한 것을 잊었다는 사실에 반성하게 됩니다.


'워킹맘'인 저자의 고충이, 그래서 더 아이에게 미안함을 느끼는 그녀를 보니 참으로 찡하였습니다.

모든 걸 해내고 싶지만......

항상 무언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그녀는 아이에게 매일 사랑한다고 말을 합니다.


먼 훗날 나의 아이가 커서 사랑을 하게 될 때

자신이 충분히 사랑받을 존재라고 확신하면서

상대방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길 바라기 때문이다. - page 186


그래서 저는 오히려 더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엿보였기에 멋졌습니다.

 

 

저 아이와 엄마의 손 하트에서 진한 사랑을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아이의 작은 손이 잡아주는 건

엄마의 손이 아니라

엄마의 마음이라고... - page 327


학부모가 된다는 것.

아이만큼 어른인 저 역시도 두렵다는 것을, 서툴다는 것을, 하지만 같이 한다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서로 성장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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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 검은 그림자의 진실
나혁진 지음 / 몽실북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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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끔찍하고도 잔인한 사건이었습니다.

'N번방 사건'

피해자들을 '노예'라 부르며 성 착취 사진을 올리고 신상정보까지 공유하는 텔레그램 채팅방.

특히나 주 피해자층은 미성년자들이었고 가해자들은 10대에서부터 시작되니 정말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아직도 계속 수사는 이루어지고 있지만......

그 시작과 끝을 알수 없는, 그야말로 음성화된 범죄를 매듭지을 수 있을지는 끝까지 관심의 끈을 놓치지 않으려 합니다.


그리고 이 소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n번방, 야동, 벗방, BJ......

현재 우리 사회에 존재하고 있는 성문제들을

통렬하게 파헤쳐 드러내고 있는


상처

 


한때 그는 우수한 형사였습니다.

황소바위 이 형사!

아내와 딸 예나와 함께 남들과 비교해 내세울 것도 없는 살림이었지만 항상 웃음꽃이 피는 집이었습니다.


2015년.

그가 경찰 생활 11년차로 격무에 시달리고 있을 때였습니다.

한 달에 일주일이나 집에 들어올까 말까 하는 상황 속에서도 예나는 아빠가 집에 오면 마하의 속도로 달려와 안기곤 하였습니다.

그런 예나는 놀이공원에 가고 싶다고 노래를 불러 어렵사리 하루 휴가를 받아 놀이동산에 가려던 찰나.

백과장에게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아파트 강도 살해범 오흥수의 소재가 파악되어 당장 현장으로 오라는 내용.

그렇게 그는 싸늘한 아내의 표정조차 달래줄 여유없이 달려가 무사히 오흥수를 체포하고 팀원들과 늦은 저녁을 먹을 때였습니다.

병원에서 걸려온 전화.

예나와 단 둘이서 놀이공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아내는 긴급 수술이 필요한 상황이었고 예나는 싸늘한 시체로......


내가 운전을 했더라면, 아니 내가 형사만 아니었더라면 하는 생각을 천 번, 만 번도 넘게 한 것 같다. - page 59


아내와 예나가 그의 곁을 떠나간 날.

그는 술병을 손에 잡았고 그렇게 오늘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지금처럼 술에 취한 밤이면 나는 DVD를 틀어놓고 옛 영상을 본다. 이것만이 내가 유일하게 살아 있는 이유였다. 혹시 두 여자를 잊을까 봐, 기억에서 아주 사라질까 봐 보고 또 보는 것이다. - page 61


그런 그의 집 문을 누군가가 두드리고 있었습니다.


"야, 호진아! 이호진!" - page 19


3년 만에 보게 된 백과장은 용현이란 젊은 부하를 데리고 그의 집을 찾아오게 됩니다.


"사람이 좀 나아지는 게 있어야지 만날 그 타령이야. 이 몸, 바싹 곯은 거 봐라, 이거."

"3년 만에 고작 그런 훈계나 하려고 오신 겁니까?"

"아니, 뭐 꼭 그런 건 아니고...... 겸사겸사 들렀지. 부탁할 것도 있고."

에둘러 말하는 사람이 아닌데 오늘 백과장은 어딘가 정말 예전가 달랐다.

"부탁이요?" - page 23


"은애가 없어진 거야." - page 28


어렴풋이 기억이 난 백과장의 딸, 은애.

이제 갓 대학생이 됐을 은애가 가출이라기엔 말이 안 되지만......

길게 탄식하던 백과장이 박용현에게 대신 말을 하라고 합니다.


"그럼 제가 말씀 드릴게요. 이번 달 초였는데요. 비번인 날이 있었어요. 집에 있다가 그냥 심심해서, 그냥 별 생각없이 인터넷에 있는 포르노 사이트를 갔어요. 제가 아직 총각이라 가끔 갑니다."

이야기가 뒤로 갈수록 박용현의 얼굴이 점점 붉어졌다.

"한참 이것저것 보고 있었는데, 낯익은 얼굴이 나오는 게예요. 그 얼굴이 나오는 동영상은 몇 분짜리 짧은 거였습니다. 계속 돌려봤어요. 분명 어디서 본 얼굴이었습니다. 저도 형사라 눈썰미가 있잖아요. 계속 보니까 알겠더라고요. 그게, 걔가......" - page 30 ~ 31


과장님의 딸, 은애였습니다.


과장님이 그에게 찾아온 이유는 자신의 딸 은애를 찾아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근데, 하필이면 그를 찾아왔을까!

형사도 아닌, 지금은 알코올중독자로 살아가는 그에게......


"이 사람아, 남부끄럽게 어떻게 그런 걸 떠벌리나. 은애 앞길이 9만 리다. 앞으로 졸업도 해야 하고, 시집도 가야 하는데 사람들이 포르노에 나왔다고 수군거리면......"

남동경찰서 터줏대감 딸의 일이다. 제대로 절차를 밟아 수사에 들어가면 인천의 모든 경찰 사이에서 소문이 쫙 퍼질게 분명했다. 아버지로서 외동딸의 평판에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니 자네가 나서서 조용히 해결해 줘. 아직 아는 사람 없을 때 말이야." - page 33


그렇게나 딸을 위하면서도 한낱 평판 때문에 공개수사를 망설이는 백과장이 마음엔 들지 않았지만 이 사건을 받아들고 수사를 하기 시작합니다.


사건을 수사하면서 밝혀지는 진실은 결국 우리 어른들 모두가 공범인지도 모르겠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유쾌하지 않았지만 우리에게 사회 문제에 대해 많은 질문을 남겼던 소설.


소설 속에서 이호진 형사가 알코올중독자가 될 수 없었던 핑계아닌 변명같은 이야기는 참으로 씁쓸하였습니다.


한낮의 뉴스쇼에는 이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출연했다. 단지 귀찮다는 이유로 두 살도 안 된 아이를 굶겨 죽은 젊은 부부와 상해 보험금을 노리고 어머니의 눈을 멀게 한 아들에 이르러서는 욕이 절로 나왔다. 지옥에도 번지수라는 것이 있다면 바로 이곳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가 딸을 성추행하고, 아내가 남편을 죽이고, 아들이 엄마의 눈을 파내는 곳이 지옥이 아니라면 달리 어느 곳이 또 있겠는가. - page 15 ~ 16


하지만 내가 무엇보다 뉴스를 좋아하는 진짜 이유는 술을 마시는 이유를 나 자신에게 떳떳이 댈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었다. 나 같은 알코올중독자는 늘 변명을 입에 달고 산다. 아직까지는 죄책감이 남아 있어 매일같이 술을 입에 대며 망가져가는 스스로의 모습에 이따금 괴로워진다. 그럴 때 뉴스에 나오는 이 지옥도 같은 세상에서 어떻게 술을 마시지 않고, 취하지 않고 견딜 수 있느냐고 당당히 항변할 수 있으니 이 얼마나 유용한 동반자란 말인가! - page 18


사이버 성범죄가 이토록 잔혹할 수 있는 이유.


이는 피해자의 몸과 마음에 새겨진 상처는 흉터로 남아 오랫동안 따라다니기 때문이었습니다.


N번방의 가해자들이 하나둘 잡히고는 있지만 그들에게 주어진 형량은 터무니없이 낮았습니다.

과연 누가 피해자이고 누가 가해자인지......

주홍 글씨의 낙인이 찍은 피해자들의 낙인은 누가 지워줄 수 있는지......

이런 사회를 만든 우리에게 책임의식을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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