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랑한 중년, 웃긴데 왜 찡하지? - 흔들리고 아픈 중년을 위한 위로와 처방
문하연 지음 / 평단(평단문화사)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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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미술관』

벌써 이름만 들어도 알고 있다며 입술을 씰룩거리는 이가 있을 것입니다.

(바로.... 제가 그랬습니다.)

다락방에서 뭔가 몰래 보는 재미를 느꼈다고 할까!

특히나 놀라웠던 점은 저자는 미술을 전공하지 않았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그림을 근 10년간 공부하면서 스스로 경험한 삶의 변화와 치유를 가급적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 이야기를 했다는 사실에 존경스러웠습니다.


그러다 이번엔 자신의 이야기로 우리 앞에 다가왔습니다.


친구들 대신 연애편지를 쓰고

이불속에서 미친 듯이 라디오에 사연을 보내던 문학소녀


40대에 문학중년으로 돌아와

삶, 사랑, 나이듦, 사람, 예술을 이야기하다!


명랑한 중년 _ 웃긴데 왜 찡하지?

 

현모양처로만(오직 저자만의 생각이라는데......) 살아온 삶에 빨간 불이 들어왔다고 합니다.

왜 내 꿈에 내가 없지? - page 5​


참으로 슬픈 말이었습니다.

왜 '내'가 없는 것인지......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키우면서 저도 종종 들었던 생각이었습니다.

내 삶에 '내'가 아닌 '다른 이'들이 가득 차 있는, 그래서 씁쓸하고도 공허함을......

그때부터 자아를 찾기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천생 '문학소녀'였던 그녀의 40대 '문학중년'이 되어 시작된 글쓰기.

'명량한 중년'의 웃픈 이야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어린 시절 언니와 오랫동안 같은 방을 썼던 그녀.

언니와 자신이 공부하는 것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으셨던 엄마의 밤늦게까지 방에 불을 켜고 있으면 전기세가 많이 나온다는 이 말을 잘 듣는 '착한 아이'인 그녀.

하지만 언니는 엄마의 말을 거역하고 책상 스탠드를 켜고 공부를 시작하는 '불효녀'였습니다.

그렇게 공부한 언니는 늘 전교 3등 안에 들었고 부모님의 자랑거리가 되어 대학 입학시험을 앞둔 시기에 그만 쓰러지게 됩니다.

2년 가까이의 병원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언니는 여전히 다시 공부를 하고 싶어 공부를 하면 언니의 등 뒤에서 미친듯이 라디오에 사연을 보내고 경품을 타면서 깨닫게 된 그녀의 운명!

바로 그녀는 글을 쓸 수 밖에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마흔 후반에서야 그녀의 글쓰기가 ​운명처럼 시작되었고 그 길이 열리게 됩니다.

그리고 지금 나는 덜컹거리고 있다. 이 덜컹거림이 한 단계 성숙으로 가는 길인지 퇴보인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유일하게 아는 것은 그러든지 말든지 계속 써야 한다는 것이다. 안 써지면 안 써지는 대로, 잘 써지면 잘 써지는 대로 말이다. 그러는 동안 내가 또 무엇이 되어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니까. - page 30

그녀의 이야기 중 가슴 찡한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93세의 사랑꾼 택규 씨가 전한 사랑의 의미.

금술이 좋았던 이 노부부에게 복덕 여사님이 간암 말기 진단을 받게 됩니다.

"할머니가 얼마 안 남은 거 같아. 평생 고생만 했는데 너무 안쓰럽고 속이 상해." - page 81


라며 눈물을 흘리신 그.

그는 한시도 쉬지 않고 굳어가는 그녀의 몸을 주물렀고 의식을 잃어가다가도 깨어날 때마다 뭐가 먹고 싶은지 물어 먹지 못하는 그녀에게 전하는 이 한 마디.


"제발 한 입만이라도 먹어봐요. 먹어야 기운을 차리지요." - page 82


정복덕 여사가 떠나고 그는 우울증과 함께 심한 불면증을 앓게 됩니다.

그녀의 오랜 설득 끝에 할아버지는 복지관에 가 강의도 듣고 사람들도 만나면서 차츰 나아지고 81세의 그에게 또 한 분과의 인연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이제 좀 인생을 제대로 사는 거 같아. 젊어서는 맨손으로 오 남매 키우느라 힘들었고 다들 출가시키고 나니 할머니가 아파서 병간호하느라 허리 한 번 펴기도 힘들었어. 이제야 좀 사람답게 사는 거 같은 기분이 들어. 아주 행복하고 좋다." 하신다.

그러면서 "돌아가신 할머니한테는 미안하지만 살아생전에 최선을 다해서 미련은 없어." 했다.

정말로 그랬다. 그는 자신의 에너지가 1도 남지 않을 만큼 복덕 여사님께 다 쏟아부었다. - page 85 ~ 86


그렇게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고 끝나면 좋을텐데......

10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어느 날.

돌연 택규 씨의 그녀가 심장마비로 숨을 거두게 됩니다.

공황 상태에 빠지게 된 그의 눈엔 눈물이 마르지 않습니다.

그런 그의 곁에 다정히 손을 내민 저자와 그의 관계는 시아버님이었습니다.

사랑이 뭔지를 보여주신 그.

'다정도 병인 택규 씨'에게서 저 역시도 사랑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두 사람이 하나가 돼서 살다 보니 그림자처럼 정이 붙고 그 정이 바로 사랑이 됐지. 사랑이 딴 게 아니고 정이야." - page 80 ~ 81


"사람은 사랑 없이는 살 수 없는거야. 어떤 형태로든 사랑이 있어야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가 있어." - page 88


나이가 숫자에 불과하다고는 하지만 사실 앞자리가 3으로 바뀔 때 저는 방황도 많이 했고 좌절과 상실감도 들곤 하였습니다.

그리고 다가올 4라는 숫자 역시도 두렵기만 합니다.

그런 저에게 그녀는 일러주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청춘이 가니 자유가 왔다. 이십 대에는 직장생활 하느라, 삼십 대에는 아이 둘을 키우며 일하느라, 사십 대 중반까지도 아내로, 엄마로, 며느리로, 딸로 사느라 정신없이 보냈다. 물론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지만 어느 순간부터 팽팽하기만 하던 삶의 장력이 느슨해졌다. - page 141


나이 듦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주름진 얼굴을 자연스럽게 생각해서 손대지 않고, 젊은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엔 물 흐리지 않도록 가지 않으며, 나이에 맞는 옷을 입고, 오십 넘어 미니스커트가 롱스커트로 바뀌고, 등산복이 일상복이 되는 것만을 의미하진 않을 것이다. 나이 듦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아마도 무리하지 않는다는 게 아닐까? 다른 사람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 page 142


그렇기에 인생은 두려운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고 즐기면 된다고, 너무 흔들리고 상처받지 말라고, 당신의 드라마는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모두가 자신이 주인공인 드라마를 살고 있다. 드라마는 갈등이다. 그러니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 갈등은 끝도 없이 이어진다. 이것만 해결되면 금세라도 올 것 같은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시절이란 애초에 없었다. 그 순간은 비 온 뒤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무지개처럼 때때로 찰나로 왔다가 사라졌다. 가슴속에 이고 지고 오느라 무거웠을 이야기들이 기어이 입 밖으로 나오고, 돌아가는 길에 흐린 미소가 지어지는 그 순간처럼 짧게. 그리고 다시 드라마 속으로. - page 166


봄이 오고 있다. 내가 주인공인 드라마 안에서 가족들과 밥을 먹고, 친구들과 차를 마시고, 내 일을 하는 그 사소한 시간이 내게 얼마나 눈이 부신 순간인지, 갈등조차도 그런 시간일 수 있음을 내가 꼭 기억하길, 내 드라마가 끝나는 그 순간까지. - page 167


책을 읽고나서 결코 늦은 나이는 없다는 것을, 지금의 순간을 즐기라는 것을, 뭐니뭐니해도 내 드리마의 주인공은 '나'라는 것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사실 저는 하고 싶은 것도 많지만 이미 늦었다고, 할 수 없다고 주저했고 포기했었는데 그런 저에게도 이 말이 울림으로 다가왔습니다.


 


그저 한 걸음만 내디딜 것.

그리고 내 노력은 절대로 쓸데없는 일이 되지 않는다는 것.


이제 내 드라마의 스토리를 만들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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