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우는 여성들의 미술사
김선지 지음 / 은행나무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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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이라 하면 '아인슈타인'.

회화라 하면 '레오나르도 다빈치'.

조각이라 하면 '미켈란젤로' 등.

어느 분야의 대표라 하는 사람을 떠올리게 되면 '남성'들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남성들만큼의 여성들의 업적은 없는 것인가!


아무래도 오랫동안 남성 중심 가부장제였기에 제아무리 훌륭한 재능을 갖고 있더라도 제대로 능력을 발휘할 수 없었습니다.


하! 지! 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별 사회에서 자신의 재능을 묵묵히 발휘하며 자신의 길을 개척한 여성 예술가들이 있었습니다.


「나는 여자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여줄 것입니다」

편견과 차별, 억압에 맞서온 스물한 명의 여성 미술가들


싸우는 여성들의 미술사

 


본문에 들어가기 앞서 <작가의 말>에서 놀라운 사실이 있었습니다.


미술 시장의 양성 불평등을 조사한 한 리포트에 따르면, 미술사의 명저로 칭송받는 H. W. 잰슨의 《서양미술사》에는 여성 화가의 이름이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러한 지적을 받고 잰슨은 훗날 몇몇 여성 화가를 개정판에 끼워 넣었을 정도로, 최근까지도 미술계 성차별은 심각했다. - page 13


누구나 갖고 있다는, <요즘책방 : 책 읽어드립니다>를 통해 많은 이들이 읽게 된 《서양미술사》마저도 이런 차별이 존재했다는 점에서 실로 놀라웠습니다.


책에서는 르네상스부터 20세기 초 현대 미술의 태동까지 여성 예술가의 삶과 예술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회화, 조각에서 패션, 공예, 디자인 분야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긴 21명의 여성 예술가들이 드디어 빛을 받기 시작하였습니다.


첫 등장은 이탈리아 볼로냐에서 태어난 르네상스 시대 최초의 여성 조각가 '프로페르치아 데 로시'였습니다.

 

15 ~​ 16세기,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 지역에서 여성들은 예술가로서의 지위를 거의 인정받지 못했던 시기.

그래서 미술 아카데미 입학은 꿈에도 못 꿀 일이었습니다.

그나마 화가를 아버지로 둔 아주 소수의 여성만이 아버지나 개인 교습을 통해 그림 훈련을 할 수 있었고, 그마저도 미술의 하위 영역에 위치하는 초상화, 수채화에 국한된 척박한 환경 속에서 여성에게 금기시된 조각가가 되기를 원했던 그녀, 데 로시.

남성들처럼 대리석이나 청동으로 정상적인 조각 기술을 익힐 수 없어 씨앗에 조각을 하기 시작하였는데 그 정교하고도 섬세한 그녀의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결국 그녀는 <요셉과 보디발의 아내>를 비롯한 역작들을 창조해 대리석 조각가로서 이탈리아 전체에 명성을 떨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바사리는 그녀의 씨앗 조각이 기적을 보여준 작품이라고 인정하면서도, 조각은 여성이 할 예술은 아니라고 단언했다. 또 <요셉과 보디발의 아내>가 젊은 귀족 안톤 갈레아조 말바시아에게 버림받은 데 로시의 자화상이라고 해석했다. 실연의 상처를 표현한, 극히 감상적인 작품이라고 폄하한 것이다.

그러나 일설에 따르면, 데 로시는 실연을 당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녀의 연인은 데 로시가 죽은 뒤에도 몇 년 동안이나 그들의 사랑을 소중히 여겨 결혼하지 않았다. 따라서 바사리의 주장은 신빙성 없는 소문에서 비롯된 것에 불과하며, 여성은 감정에 취약하다는 편견에 근거한 여성관을 피령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훌륭한 조각 작품을 두고도 작가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선입견에 빠져 작품을 공정하게 비평하지 못한 우를 범한 것이다. - page 29​


남자들은 여성 예술가들이 창의성과 천재성을 갖고 있지 못하다며 그녀를 끌어내리려고 남성 경쟁자들과의 불화, 부당한 대우를 하여 결국 명예 실추로 모든 공공 작업에서​ 손을 떼야 했었고 그녀는 무일푼에 흑사병까지 걸려 가까운 친구나 친척도 없이 비참하게 마흔 살에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그녀들의 투쟁의 길은 참으로 험난하였습니다.

아무리 뛰어나게 훌륭하게 작품을 완성하여도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왜곡된 해석에, 나아가서는 자신의 이름이 아닌 남성 화가의 작품으로 둔갑하는 사실에 분노를 일으키곤 하였습니다.

여성의 예술적 전문성이 남성보다 현저히 떨어진다고 인식됐던 시대이니 금전적 이익을 위해 여성 화가의 작품이 남성 화가의 작품으로 둔갑하는 일이 많았던 것이다. 이것이 그녀의 이름이 사망 후 미술사에서 사라졌던 결정적 이유이다. - page 60

사실 여성 화가들이 남성 화가보다 인체 묘사에 세밀하지 못한 건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여성을 배제한 미술 교육 시스템, 여성 화가가 맞닥뜨려야 할 사회적 편견과 비난에 원인이 있다. - page 80

자신의 상처를 예술로 승화시킨, 성폭력 피해자에서 불세출의 여성 화가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가 한 고객에게 보낸 편지의 문구가 참으로 인상적이었습니다.

"나는 여자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여줄 것입니다. 당신은 한 여자의 영혼에서 시저의 정신을 발견할 것입니다." - page 131


그녀의 작품 대부분은 여성을 주인공으로 그중 많은 것이 성서와 신화 속에 나오는 고통받지만 강한 여인들, 스스로 삶을 개척하는 주체적 여성들을 그렸습니다.

아마 그림을 통해 자신의 트라우마와 상처를 치유하고 극복하려 했던 것인지도 몰라도 17세기를 풍미한 그녀는 위대한 여성 화가임이 분명하였습니다.



최근에 읽은 『칼 라르손, 오늘도 행복을 그리는 이유』에서 만났던 이도 이 책에서 소개되었습니다.

북유럽 디자인의 개척자로 인정받은, 세상에서 제일 예쁜 집을 만든 여자 '카린 라르손'.

결혼 후 자신의 꿈이었던 화가의 길을 포기한 결혼 제도의 희생자였지만 예술에 대한 열정을 포기하지 않은 채 자신만의 직물 디자인이나 자수, 가구 제작을 하면서 최초의 직물 디자이너로 자리매김했음에 존경스러웠습니다.

 

책을 읽고난 뒤 아무리 척박한 땅에서도 한 줄기의 꽃은 피고 그 흔적은 남아 언젠가는 알려지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베르트 모리조'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여성을 자신과 동등하게 생각하는 남자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나 자신이 그들만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므로 동등하게 대접받기를 원한다." - page 87


그녀들이 위대했던 이유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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