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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보다 : 겨울 2022 ㅣ 소설 보다
김채원.성혜령.현호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2년 12월
평점 :
절판
소설보다 시리즈를 읽으면 적어도 한 편 정도는 마음에 드는 소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세 편 중에 한 편 정도는. 취향이란 확고하지만 설명 불가의 영역이어서 왜 그게 마음에 들었는지 논리적으로 접근하기 힘들다. 그냥 그날 느꼈던 기분이 소설에 투사되고 나도 모르게 감정이 이입되어 괜찮네, 괜찮았어 한다. 소설보다를 읽는 방법은 소설의 첫 문단을 읽고 읽어도 되겠어 안심이 되는 부분을 만난 소설을 먼저 읽는다.
『소설 보다: 겨울 2022』는 성혜령의 「버섯 농장」을 먼저 읽었다. '한동안 연락이 없던 진화에게서 연락이 왔다.'로 시작되는 「버섯 농장」. 현실에서는 연락이 없던 이가 전화를 걸어오는 일의 사정이란 대부분 전화를 받자마자 거절을 해야 하는 경우다. 잠깐만 쓰고 돌려줄게. 우리 이모의 아는 누가 이번에 좋은 상품이 있다고 하는데 등. 아니나 다를까 소설 「버섯 농장」도 차라리 진화의 전화를 받지 않았으면 좋았을 기진의 이상한 하루를 보여준다.
김채원의 「빛 가운데 걷기」는 딸을 잃은 노인이 딸이 남긴 아이를 돌보는 일상을 담는다. 걷고 잠깐 시야가 흐려지는 시간을 겪고 어디로 통하는지 모를 문을 여는 시간. 기억이 흐려지지 않기 위해 자신이 공부한 내용을 복기한다. 소설은 건조한 문체로 고여 있는 노인과 아이의 시간을 그린다. 「연필 샌드위치」에서 현호정은 꿈과 현실이 반복되는 서글픈 청춘을 이야기한다. 다이어트 중에 빵집에서 빵을 고르는 꿈을 꾸곤 하는데 소설에서는 복돼지 문구점으로 형상화한다.
띄엄띄엄 붉은 등 아래에서 세 편의 소설을 읽었다. 소설의 문장을 길게 따라가지 못하고 집중력은 자꾸 흐트러져 갔다. 한 문장을 읽고 딴 생각. 대부분 나의 행동에 대한 자책과 모멸감을 되씹었다. 꿈과 환상, 추상 대신 현실적인 현실의 서사였다면 어땠을까. 소설을 읽는 3월의 밤은 길었고 끝나지 않는 엉망진창의 시간이었다. 한편으로는 위안이 되었다. 나만 엉망진창이 아니구나. 모두 다 엉망진창이어서 다행이야.
상실, 불신, 거식의 겨울을 빠져나온다. 머리가 아플 정도로 낮잠을 자고 깨어난 봄에는 좀 더 나 같은 이야기가 도착해 있었으면.